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이공계 위기'를 넘는 대학원 사람들의 진짜 고민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6)

 

 

 

00lab_univ » 서울의 한 이공계 대학 연구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제는 진부하게도 들릴 법한 소식 하나. 최근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의 응시 인원이 3년째 미달 상태라는 뉴스가 보도됐다.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 선발 현황을 보면, 2009년부터 2011년 전기까지 8개 주요 전공 분야(건축학, 재료공학 등)에서 경쟁률이 1 대 1 언저리를 맴돈다. 한 동안 수그러들었던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이번 보도를 계기로 다시 떠올라 기세를 드러냈다.

 

‘이공계 위기’, ‘이공계 기피‘ 현상은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다. 그 원인, 배경과 대책에 대한 분석도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분석의 주체는 대개 교수나 언론인 같은 기성세대들이었다. 정작 이공계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이공계 학생의 시선으로 이런 문제가 충분히 다뤄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의약 계열로 몰리고 있다” “이공계의 우수 인재들이 빠져나간다” 같은,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화한 표현만이 익숙할 뿐이다. 나는 이번 글에서, 많이 부족하겠지만,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진학하려는 이들의 속마음을 담아보고자 했다. ’요즘 학생들이 이렇다더라‘가 아니라 그 ‘요즘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또는 최근에 대학원에 진학한 이공학도 다섯 명을 인터뷰했다. 물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길은 대학원 진학 말고도 많고도 많지만, 이번 글에선 ‘이공계 위기’라는 사회분위기가 무색하게 대학원에 진학해 이공학의 학문 세계에 깊이 뛰어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활상은 어떠한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먼저 자신의 진로를 대학원 공부로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아, 이곳이 내가 가야할 길”

나를 대학원으로 이끈 것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공학도 중에는 대학생이 되기 이전부터 대학원에 갈 생각을 품고 있던 이들이 꽤 많다. 어릴 적부터 그냥 수학이 너무 좋아서, 과학이 너무 좋아서, 다른 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에 품은 꿈을 차곡차곡 실현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00robot_hubo2 » 어린 시절 로봇을 조립하며 놀던 것을 넘어서, 로봇과 함께 하는 삶을 직접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사진은 인간형 로봇 '휴보2'. 사진 카이스트 제공

“고등학생 때부터 로봇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로봇과 관련한 분야로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기계공학도로서 학부 지식만으로는 로봇 분야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히 대학원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2학년 때 이론 위주로 전공 공부를 하면서, 학부 과정에서는 정말 기본 지식만을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학원에서 심화 학습과 연구를 하고 나서야 정말 이 분야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구나, 했어요.”(남아무개씨,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 4학년)

 

“저는 고등학생 시절에 이과를 선택했을 때 이미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시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연 과학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고교 과정보다 심도 있는 학습을 경험했지요. 공부하면 할수록 평소 궁금해 했던 문제의 해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 뿌듯했지요. 실생활과 우리 자신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있는 화학, 생물학 분야에 매력을 느껴 이쪽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학부 3학년)

 

어릴 적부터 이공학 분야 석·박사의 꿈을 품은 게 아니더라도 대학생이 되어 전공 분야의 매력에 빠지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이공학도도 많다. 계기는 무엇일까? 셀 수 없을 만큼 갖가지 사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이공학도 세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부 시절에 얻은 배움

 

일부 대학들은 교내 실험실을 자유롭게 개방하고 학교 차원의 여러 프로젝트를 시행해 이공계 분야에 대한 학부생들의 흥미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학부생들은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직접 실험해보고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하며 새로운 관심을 키울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교 3학년부터 대학원 진학을 고민했어요. 제가 학부 과정으로 다닌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는 실습을 매우 많이 하는데요, 실험장비나 실험실이 24시간 개방돼 이론 공부를 하다가도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가 직접 호기심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올 한 올 호기심을 직접 풀다 보니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습니다. 3~4학년 때에는 졸업 작품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그러면서 이론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동료와 어떻게 의사소통 하는지 등을 배웠습니다. 이런 여건과 전공에 대한 저의 관심이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조아무개씨,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사실 1학년 성적이 조금 안 좋아서 전혀 뜻하지 않던 과에 배정되었어요. 그러다 3학년 초에 하수처리공학 수업을 들었을 때, 이거다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충주댐과 남한강을 자주 보며 자랐고, 주변 상하수도 처리장도 여러 번 가봤는데요, 그러다 보니 물의 처리 과정이나 수자원 문제 등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이아무개씨, 성균관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학부 4학년)

 

일부 대학원들에서는 학부생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도 한다. 이런 기회에 학부생은 실험실에서 간단한 일을 도우며 대학원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대학원 생활이 실제 어떠한지, 교수와 조교, 연구생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어 궁금하고 불안하게 여기던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는 큰 도움이 됐다.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잠시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입니다. 전공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일단 대학원 생활을 체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흥미 있는 분야에서 자리가 났기에 당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원 생활이 어떤 것인지 직접 지켜보면서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에 지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학기가 더 지나고 저는 대학원에 입학했지요.”(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사 1년차)

 

 

나의 인간형은? 적성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든지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며 고민하는 일은 꼭 거치게 마련이다. 회사 생활이 더 즐거운 사람도 있고, 연구 활동에 더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적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삶이 자신에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 대학원 진학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저희 학과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취업 못하면 대학원 간다.’ 어쩌다 보니 취업도 안 되고 대학원 왔다는 사람도 몇몇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지요. 대기업 여러 곳에 합격해도 대학원에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저도 취업을 못해서 대학원에 가는 경우입니다. 대학교 입학할 때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것을 했어요. 내가 어떠한 성적을 받더라도 학점 포기나 재수강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제는 반드시 직접 풀지 않으면 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미련한 짓을 하다 보니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고, 남들이 말하는 ’스펙‘도 없더라고요. 저는 그저 궁리하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기쁨인데.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회사에서 안 받아주는구나, 나는 ’회사형 인재‘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을 때 대학원이 제가 갈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이아무개씨, 성균관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학부 4학년)


이처럼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시기나 계기는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각자가 정말 좋아하는 전공 분야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 진학 결심의 고민,

다른 길의 유혹들

 

아무리 자기 전공을 사랑하는 이공학도들이라지만, 이들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좀 더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기에는, 현실에서 생각해야 일들은 너무 많다. 장래 직업의 안정성, 학자금과 생활비의 문제, 또 결혼 문제 등은 대학원 진학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은 갈수록 심해지고, 교수 임용의 벽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이공학도들은 의학·약학·치의학 전문대학원(‘MDP’로 약칭) 진학을 준비하거나, ‘일단 취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이들한테 남은 고민에는 어떤 게 있을까?

 

 

매력적인 기회, MDP

 

요즘 이공계 우수 인재 유출의 최고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의학·약학·치의학 전문대학원(MDP)이다. 의료계 직업군은 대개 안정적이고 어느 정도의 고소득과 좋은 사회적 대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공학도라면 누구나 MDP를 한번쯤 고려하거나, 주위의 사람들한테 “너 MDP 준비 안 하니”라는 소리를 한번쯤 듣게 된다.

 

통계 하나를 보자.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2011년 1학기 전공선택 승인 내역‘에 따르면, 전공을 신청한 학생 137명 중 이공계열 학과를 1개 이상 선택한 학생은 총 39명이다. 이 중 생명과학부를 선택한 학생은 19명으로, 이공계 전공을 선택한 학생의 약 50%에 달한다. 생명과학이 상당히 유망한 분야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생명과학부에 쏠리는 이런 과도한 인기는 ’MDP 광풍‘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풀이할 만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이공학도들도 MDP의 진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이들은 왜 MDP를 택하지 않았을까?

 

“주변에 MDP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꽤 있고, 이런 친구들이 더 안정적인 미래를 얻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의학 분야에 관심이 없었고, 무언가 재미있고 유익한 것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것을 동경하고 바라봐 왔기 때문에 특별히 고민하진 않았습니다.”(남아무개씨,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 4학년)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신문이나 뉴스 언론에서 듣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가 있었기에, 이공계로 오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부터 의학 분야에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그냥 사회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조아무개씨,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석사 과정 진학 예정)

 

“솔직히 의전(의학전문대학원)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요. 3학년 때부터 슬슬 준비할까 생각했고 실제로 의전에서 요구하는 수업도 몇 개 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의사 직업과는 적성이 너무 안 맞았어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 편하고 쉬운 길을 걷는 것보다는 좀 더 고생을 하고, 보답을 받지는 못할망정 저만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사과정 1년차)

 

대학원으로 향하여 석·박사 이상을 바라보는 이공학도들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의학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공학도들이 대학원과 MDP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적어도 이번 인터뷰에 응답한 5명은 이 둘 사이에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MDP로 쏠리는 사회 분위기에 반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공계가 위기다, 의대가 좋다 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항심이 안 생기진 않았지요. 하지만 그런 반항심보다는 일단 MDP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어요.”(이아무개씨, 성균관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학부 4학년)

 

MDP 제도가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있다. 그런 취지에 맞게 MDP를 올바로 선택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지나치게 치열한 의대 입시 경쟁에서 피해를 보았다거나, 대학 입학 이후에 의사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으나 적당한 진로를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 MDP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MDP는 많은 이공학도들한테 뚜렷한 목표나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나도 MDP 진학을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에 이공계 인재 유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사실 MDP로 향하는 이공학도들을 비판할 근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의사를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앞길이 보이지 않아서‘ MDP를 찾는 이공학도들을 보면 마음이 쓰리기도 하다. 이공계의 미래가 좀 더 매력적일 수는 없을까? [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이공계 대학원생의 진짜 고민:

학비, 미래직장, 결혼

 

연간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이 시대,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학부를 마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불효’가 되기도 한다. 대학원에서는 적절한 수준의 일정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바쁜 대학원 과정의 일정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런 상황은 이공계에나 인문계에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공계에는 장학금 혜택이 다양하므로, 인문계의 상황이 더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공계가 위기면 인문학은 죽음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공계 학비는 인문계 학비보다 대체적으로 더 비싸며, 재원 부족과 사각지대 때문에 모든 학생이 장학금 혜택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누가 더 나은지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공학도들은 대학원생으로서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은, 돈을 버는 것과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0대 후반에 결혼한다는 친구도 있고, 이미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그래도 어떻게 해서라도 취직을 해볼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대학원에 있는 선배들도 웬만하면 취업하라고 자주 얘기하지요. 이것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고민해왔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공계의 비싼 학비가 아무래도 부담이 되기도 하고….”(이아무개씨, 성균관대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학부 4학년)

 

00job“취업과 대학원 사이에서 고민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바로 나이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수입도 없고, 2년 동안 공부를 다시 하게 됩니다. 부모님께서 은퇴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를 크게 꼽을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고 취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저처럼 국가에서 공부하면 국비지원과 함께 랩에서 일한 만큼의 돈을 약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석사과정 학비와 생활비 등 엄청난 지출이 생깁니다. 저의 경우엔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어 지금의 학교를 선택하였습니다.”(조아무개씨,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이처럼 경제적 요인은 대학원 진학 시 결정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대학원이 적성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경제적인 문제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취업을 해 돈을 벌고 있는 동년배 친구들을 보면서 경제적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더군다나 대학원에 진입하는 나이는 대개 20대 중후반으로, 이는 결혼 적령기를 앞둔 나이이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경제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 인생설계까지 미리 해두어야 하는 이중, 삼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결혼적령기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보통 30~32살 정도입니다. 취업해서 한푼 두푼 모아 이 나이쯤 결혼을 하지요. 그러나 대학원에 가게 되면 이렇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더욱이 제가 늦게 대학원에 입학하는 편이라서, 이런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갈 때에도 큰 고민을 하겠지요. 결혼을 해서 아이들도 낳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몇 가지의 역할이 또 추가되지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로서….”(조아무개씨,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사족을 덧붙이겠다. ’MDP 광풍‘, ‘이공계의 위기‘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좋은 머리를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만 쓰는 ’젊은이들의 이기심‘을 은근히 단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MDP 광풍‘, ’이공계의 위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하게 ’이기심‘이라는 말로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을 하나하나 드러내어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젊은 이공학도들의 꿈이 의료인으로 수렴되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전공마다 배운 것이 다르고 각자가 느끼는 바가 다 다른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직업만을 바라본단 말인가? 이공계 인재들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논리를 유지하려면, 나라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일할 수 있는 이공계 인재들을 보호해야 한다.

 

 

 

 

 

“내가 발전하고 있구나!

그걸 발견할 때 가장 기뻐요”

 

00pipette » 피펫 팁 용기에 팁을 꽂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실험실의 아르바이트이기도 하다..

이공학도들에게 대학원 진학은, 이제까지 해 온 공부의 연속이자 지식을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시작이다. 따라서 아무리 대학원에 가기 좋은 여건(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전공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대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힘들다. 특히 이공계열 대학원에서는 밤새 직접 실험하고 같은 실험을 반복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그 생활은 꽤나 괴로울 거란 걸 이공학도들은 잘 알고 있다.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제가 발전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에요. 방학도 없고 토요일에도 오전부터 랩에 나와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대학원생의 일과인데요, 그렇게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제가 그 시간 동안 배운 것이 없거나 한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참 슬퍼요. 그렇지만 일단 공부하는 것 자체가 보람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렇게 지식을 늘려가는 것 참 재밌어요. 배운 지식을 가지고 실제로 연구하는 분야에 적용을 하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그럴 때도 참 즐거워요. 기본적으로 연구와 공부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바탕일 텐데, 문제에 다양한 접근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또 해결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가끔은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기도 하고 주변의 부유한 의사들 이야기를 들으면 울컥하기도 하지만 한걸음 한 걸음 내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네요.”(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사 1년차)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결국에) 제가 선택한 전공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공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성찰, 이것이 바로 제가 선택한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학부 3학년)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싶어요.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회사든 연구소든, 누구보다 앞장서서 인류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회사에 간다면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을 선점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선배 엔지니어들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화학, 기계, 중공업,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에서 가정과 자신의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국가가 성장할 수 있었잖아요.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선배 엔지니어 세대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잘 먹고 잘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혜택을 좋은 경제 성장 기반 아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목표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싶네요.”(조아무개씨,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이공계는 위기가 맞다.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이공학의 학문 분야를 풍부하게 하고자 하는 이공학도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꿈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연 지금 이공계가 위기가 맞나 싶기도 하다. 이들에게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이들이 있기에, 비록 지금의 이공계는 위기라지만 이공계가 희망 없는 진짜 위기를 맞는 날은 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 다만 이들이 학문적인 이유가 아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사회가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글은 (아직 확정하진 않았지만) '이공계 학생들에게 교양수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준비하고자 합니다. 교양수업에 관한 이야기 소재나 주제가 생각나시면 dbdps9060@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거나, @AriTotoro로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연재 글 전체 보기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망망대해에서 나의 진로 방향 찾기, 연구 분야에 대한 고민망망대해에서 나의 진로 방향 찾기, 연구 분야에 대한 고민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상엽 | 2017. 05. 30

    이상엽의 “로봇공학도, 대학원 입시 앞에서”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이상엽 님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겪는 경험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눈다. 도움 되는 진학 정보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 “한편으론 억울했다, 왜 이공계에선 인문학을 배울 수 없었나”“한편으론 억울했다, 왜 이공계에선 인문학을 배울 수 없었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윤기성 | 2017. 04. 18

    윤기성의 “이공계 대학생, 우리 삶의 이야기”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대학 화공과에 들어와 어느덧 졸업학년을 맞이한 윤기성 님이 이공계 대학생들이 흔히 겪는 삶의 경험과 고민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1] 이공...

  • 로봇공학 배움의 길에서 마주친, ‘나’에 관한 물음들로봇공학 배움의 길에서 마주친, ‘나’에 관한 물음들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상엽 | 2017. 04. 13

    이상엽의 “로봇공학도, 대학원 입시 앞에서”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이상엽 님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겪는 경험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눈다. 도움 되는 진학 정보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 “과학자는 과학-사회 상호작용도 고민하는 사람”“과학자는 과학-사회 상호작용도 고민하는 사람”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박나영 | 2017. 04. 11

    박나영의 “과학을 공부하며, 과학과 사회를 고민하며” 이공계 대학생들의 연합동아리인 큐브(CUBE)는 인간, 사회, 자연을 생각하는 ‘이공계 3차원 지식공동체’를 슬로건으로 내건다. 큐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과학과 사회에 관해 새로운 생각...

  • 요리하는 마음, 실험하는 마음요리하는 마음, 실험하는 마음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조범식 | 2016. 09. 02

    조범식의 ‘후배에게 들려주고픈 실험실 이야기’  “이 글을 통해 학부생연구원으로 살았고 2016년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