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로 소실된 기억, 복원하다 -쥐 실험

일본·미국 연구진, 알츠하이머 질환모델 쥐 대상 ‘광유전학 실험’

단기기억 해마의  기억세포들 ‘연결’ 강화하면 저장된 기억 복원


00memorycell2.jpg » 기억의 처리 기능을 하는 해마 치아이랑 부위의 영상. 광민감 단백질이 발현된 기억 세포들이 녹색으로 나타나 있다. 알츠하이머 초기 질환을 지닌 실험용 쥐의 뇌 영상. 출처 / RIKEN


‘알츠하이머 환자도 새 기억을 저장한다, 다만 다시 끄집어내지 못할 뿐.’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심각한 기억 상실도 실은 저장된 기억을 복원하지 못할 뿐이지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기억은 저장되지만 기억 장소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해서 그 기억이 복원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 연구의 결과는 당장 사람의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초기 환자의 기억 상실 증상을 치유하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리켄(RIKEN, 이화학연구소)-엠아이티(MIT) 신경회로유전학센터’ 소속 연구진은 기억의 저장과 소실, 복원에 관한 쥐 실험에서, 조금 전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질환모델 실험쥐의 뇌 기억 신경세포(뉴런)들의 연결지점들(‘spines’)을 활성화하는 인위적 자극을 가했더니 경험 기억이 복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 질환의 기억 장애가 기억 저장의 문제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의 문제에서 비롯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이다. 이 연구진의 이번 논문은 2013년 ‘기억의 조작’에 관한 연구에 뒤이어 나온 것으로서, 과학저널 <네이처> 최신호에 실렸다.


[참조]

진짜 같은 가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동물실험 (2013년)

http://scienceon.hani.co.kr/114991


연구진은 실험용 쥐들들을 어떤 방에 넣어두고서 전기쇼크라는 경험을 주어 ‘공포’ 기억을 심어준 뒤에 그 기억이 일반 쥐와 알츠하이머 쥐 간에 어떻게 복원되는지 살폈다. 이 실험에서 일반 쥐들은 그 방에 다시 들어갔을 때에 전기쇼크 경험을 기억해 얼어붙는 공포 반응을 보였으나 쇼크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쥐들은 별달리 큰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처럼 새로운 최근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쥐들의 뇌 기억 세포들 간의 연결지점에 특정 파장의 빛 자극을 주어 세포와 연결지점들을 활성화하자 알츠하이머 쥐들이 이전의 공포 기억을 되살려 공포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기억 세포들 간의 연결이 활성화하자 끄집어내지 못했던 과거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 실험에는 특정 파장의 빛을 쪼이면 활성화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뇌 세포들에서 발현하도록 미리 그 단백질의 유전자를 집어넣은 알츠하이머 쥐들이 사용되었다.


다음은 이번 실험 방법을 정리한 리켄의 보도자료 일부이다.


“쥐의 기억이 어떠한지는 종종 학습된 행동을 통해서 추론된다. 이번 실험의 경우에는 특정한 사육상자와 그 안에서 경험하는 불쾌한 전기쇼크와 연계된 기억을 다룬다. 실험쥐는 (경험의 기억에 의해) 그 상자에서 다시 전기쇼크를 당할 걸로 예측할 때 얼어붙는 행동을 보이지만 다른 일반 상자에서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일반 실험쥐와 비교할 때에 알츠하이머 질환모델 생쥐는 기억상실을 보여주었으며 그 쥐에선 얼어붙는 행동도 덜 나타났는데, 이는 알츠하이머 쥐에서 전향적인 기억상실이 일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특정한 경험의 기억소(engrams, *‘엔그램’의 의미는 맨아래 자료 참조 [1]) 또는 기억 흔적(memory traces)은 기억 처리를 맡는 핵심적인 뇌 영역인 해마의 치아이랑(dentate gyrus) 부위에 놓여 있다. 공포 조건이 일어나는 동안에, 연구자들은 (유전자 전달 수단으로서) 바이러스를 사용해 ‘활성 기억 세포들(active engram cells)’로 불리는 치아이랑 안에 유전자 하나를 전달했다. 이렇게 해서 연구자들은 그 특정한 공포 기억에 해당하는 기억소(engram)를 구성하는 뉴런들을 시각적으로 식별해냈다. 이어서 연구자들은 이 기억 뉴런들(engram neurons)만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는 다른 유전자 하나를 두 번째 바이러스 감염을 통해 집어넣었다. 알치하이머 질환모델 쥐들에서 기억 세포들이 빛 자극에 의해서 다시 활성화되자, 전기쇼크 경험의 기억들이 다시 생겨났으며 얼어붙는 행동도 복원됐다.”(리켄 보도자료)


00memorycell1.jpg » 광민감 단백질이 발현된 해마 치아이랑 부위의 기억 세포(녹색) 영상.출처 / RIKEN 알츠하이머 쥐한테서 이처럼 복원된 기억은 하루 정도만이 유지되었다. 연구진은 광유전학적 자극을 계속 되풀이함으로써 기억의 복원이 최대 6주가량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결과는 해마의 기억 세포들에 자극을 주어 단기기억을 반복함으로써, 나중에 그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억의 복원도 알츠하이머의 초기 단계에서나 가능했으며 질환 증상이 심해져 뇌의 장기기억 기능까지 망가지는 단계에 이르면 이런 기억 복원 자극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쥐실험 결과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새로운 경험의 기억을 제대로 저장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저장된 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데에 장애를 겪는 것일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연구진은 공포 기억을 저장한 기억 세포들을 식별해낸 다음에 그 세포들에서만 빛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 세포 활성화를 일으키는 단백질이 발현하게 하고서, 실제로 특정 파장의 빛 자극을 줄 때에 세포들 간의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기억이 복원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정 기억 세포를 찾아내고 광 자극 단백질이 그 세포들에서만 발현되도록 만들었으며 특정 파장의 빛 자극을 주어 특정 행동을 유도했다는, 그런 실험의 정밀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남은 물음은 있다. 쥐의 뇌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를 인간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접근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이번 연구결과의 의미를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알츠하이머의 주요한 원인물질인 아밀로이드 플라크(amyloid plaque)가 나타나는 방식이 쥐 뇌와 사람 뇌의 경우에 다르기에 이번 연구결과를 곧바로 사람 뇌로 확대해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다른 연구자 견해를 전했다. 특히 이번 결과를 사람 뇌에서 확인하기 위한 실험은 쉽지 않은데, 실험용 쥐에 쓴 외래 유전자 주입이나 광유전학 기법을 사람한테 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네이처는 이미 심각한 뇌 질환의 경우에 일부 쓰이는 미세자극장치(micro-stimulation device)를 뇌에 이식해 이용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는 논문 연구자의 견해도 함께 전했다.


[1] 엔그램(engram)은…


사이언스온: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엔그램(engram)은 가설적인 개념으로 나오는군요. …과연 엔그램의 물리적/생화학적 실체는 어떤 것인지요? 기억 엔그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한진희 카이스트 교수: “기억은 개념적으로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생긴 신경생물학적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하나의 신경세포 내에서 매우 다양한 물리적/생화학적 변화가 분자수준에서 일어나고 이런 변화는 신경세포들간의 연결부위인 시냅스에서도 일어나며 최근 많은 연구들에서 보여주듯이 신경세포들의 기능적 집합체인 신경회로수준에서도 일어납니다. 이런 모든 변화가 아마도 기억을 표상할 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이런 변화의 전체를 어떤 하나의 기억에 대한 엔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출처: 사이언스온 2013년 7월30일치 http://scienceon.hani.co.kr/114991 )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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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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