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여자 공대생, ‘아름이’ 넘어 새로운 감성의 공학도로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3)
    00arumi » 텔레비전 광고의 한 장면.    

백소영씨는 여자 공대생이다. 그것도 여자 없기로 소문난 기계공학과 3학년생으로 별명은 ‘기계공주’다. 그런데 과연 학과 안에서도 그런 별명으로 불릴까? 답은 ‘노(No)'. 그를 기계공주라고 부르는 이들은 모두 다른 학과 학생들이다. ’기계과에서는 공주 취급을 받겠지’ 하는 어림짐작에 친한 몇몇이 그리 장난치다 별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학점도 똑 부러지게 관리하는데도 3년 내내 '시시(CC, 캠퍼스커플)' 한 번 못해봤단다..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니냐고? 교내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로 선후배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걸 보니 그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왜? 바로 여기에 오늘 연재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여자 공대생이란? 공대생에게 여자란?‘(이 글에서는 이공학도라는 말 대신에, 이공계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공대생이라는 말을 쓰겠다.) 

 

 

 

‘기계공주’ ‘아름이’... 눈길 받는 여자 공대생들

 

‘여자 공대생’이라고 특별히 남녀를 나누어 분류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대에는 여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상이 있으면 그 현상을 있게 한 원인이 있기 마련. 공대에 여자가 별로 없는 이유는 분명 여자들이 자연계 선택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계열을 나누는 시기인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지금 그 시기를 여학생들과 보내고 있는 서울 시내 한 여자고등학교의 담임교사와 약 20년 동안 중 ‧고등학생에게 과학을 가르친 학원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동준 계성여고 수학 교사의 말]

“이건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잘 알 것 같은데. 뇌과학에서 이미 밝혔듯이 여학생들이 수학적 감각이 떨어지는 건 확실한 사실이지요. 실제로 가르치면서 보기에도 그렇고. 숫자에서는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여학생에게는 분명히 있어요. 여고에서 재직하면서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되는 데도 감각이 떨어져 자연계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죠. 그러니 그 떨어지는 감각을 뛰어넘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에게만 자연계를 권유하죠. 게다가 체력까지 떨어지니 여학생이 자연계에서 잘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주종탁 과학 강사의 말]

“감각적 차이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도 요즘은 어릴 때부터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예전에 비해 남녀의 수학적 감각 차이가 많이 줄었죠. 그런데 여학생들이 자연계 진학을 꺼리는 이유는 환경적 요인도 있어요. 뇌 발달 속도의 차이(쉽게 말하면 철드는 시기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는 수학·과학을 잘 못한대, 공부하기 힘들대’ 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환경적 요인)에 따라 상대적으로 현실을 빨리 파악한 여학생들은 인문계를 많이 선택하고 ‘남자라면 이과지’라는 남학생들이 대부분 자연계를 선택하는 경향도 무시 못하죠. 그렇게 휩쓸려 선택한 후에 남학생들의 수학적 감각이 발현이 되고 상대적으로 잘하는 남학생들이 늘어나고. 남학생들의 뒷심이 그런데서 나오는 거죠.”

 

 

말인즉 이렇다. 여학생의 수학적 감각은 남학생의 그것에 비해 다소 반응이 느리다(물론 남학생은 여학생에 비해 언어 감각이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이런 말에 억울해하지는 말자.) 앤 무어와 데이비드 재슬이 공동 저술한 <브레인 섹스>에서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인 뇌의 기능적 차이를 다루고 있는데, 좌뇌와 우뇌의 상호작용에 의해 남성이 공간 지각력에 뛰어나고 여성이 커뮤니케이션에 앞섬을 증명했다. 그러니 중학교 때까지는 문제를 읽고 문제가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해 공부를 잘하던 여학생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의미 이해’를 넘어선 ‘수학적 감각’이 필요한 자연계의 진학을 기피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문제를 언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공간과 수에 능한 남학생이 상대적으로 자연계에 더 많이 진학한다. 그러니 공대에 여학생이 모자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게 나의 생각과 몇몇 분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얻어낸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물론 학과 별로 차이는 있지만 공과대학의 여학생 점유율(?)은 대략 15%라 한다(2010학년도 한양대 기준) 그러니 “제발 엠티(MT)에 참여해달라”고 남학생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하는 어느 이동통신사의 ‘공대 아름이편’ 텔레비전 광고가 실제 공대생들에게는 씁쓸한 웃음을 남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00women » 어느 이동통신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 장면. 여자가 한 명뿐인 공대에서 남학생들은 엠티(MT)에 여학생을 데려가기 위해 노력한다. 여학생은 남학생들의 노력에 가상하여 MT에 참여하지만 옆 방에 여대 일행이 놀러와 소외받는다는 공대 여학생의 이야기.

  

  

 

 

이공대 여학생을 어떻게 보나요? ...편견과 오해

 

이처럼 공대생의 놀라운 남녀 성비를 보면, 자연의 법칙에 의해 모든 수컷은 소수의 암컷을 위해 피 튀기는 사투를 벌이며 암컷을 쟁취해야만 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법하다. 그렇지만 (심지어 여자 공대생의 예쁜 외모에도 불구하고) 졸업할 때까지 여자 취급은커녕 ‘남성화’가 되어가는 여학생들이 태반이다. 왜? 도대체 왜? 개인적으로도 심각하게 여겼던 문제이기 때문에, 이토록 민감한 ‘이성’ 문제에 대해 기가 막힐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을 공대생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해인 한양대 학생의 말]

“남자가 많은 집단에서 살아남으려다보니 저도 모르게 남성화하는 것 같아요. 밥은 빨리 먹고, 후식 없이 당구 치고, 값싸고 양 많은 식당 좋아하는 애들이랑 몰려 다니는데, 그럴 수밖에요. 여자 취급 받았던 건 신입생일 때 선배들이 다른 과에 비해서 더 오랜 동안 밥을 사줬다는 정도? 공부나 실험의 특성상 남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해야 해서 막역해져요. 서로 이성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안에서 정 들어 사귀는 커플도 있지만 너무 가까워져서 헤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이성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서로 너무 솔직하게 이성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니까요.”

 

 

[김우철 한양대 학생의 말/ 공대 여자를 사귄 적 없음]

“솔직히 생각보다는 공대에 예쁜 여학우들이 많아요. 일반인이 생각하는 ‘공대 다니는 여자’는 안 꾸미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같은 모습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외모 때문에 사귀기 싫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도 사귀기는 좀 그래요. 아무래도 공대는 술도 많이 먹고, 그런 술자리에 단련되는데다 맨날 과제 한다 시험 본다 해서 바쁘고. 그런 생활을 잘 아니까 싫은 거예요. 이왕 만날 거면 공대 다니는 여자는 안 만나고 싶어요. 같은 여자이지만, 뭐랄까 좀 예비역 같아요. 저도 공대 다니니까 일반인들이 갖는 편견은 없지만 그만큼 그 생활을 아니까 ‘되도록’ 안 만나고 싶은 거예요.”

 

 

[김명현 한양대 학생의 말/ 공대 여자를 사귄 적 없고 사귈 생각도 없음]

“전 다른 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 공대 다니는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아마 안 만날 것 같아요. 공감대가 너무 많아요. 너무 편해지는 거죠. 솔직히 연애는 좀 ‘신비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너무 서로에 대해 잘 알면 너무 친구가 되요. 너무 친해지는데 어떻게 사귀죠? 그럴 수 없잖아요.”

 

 

[ㅇ아무개 한양대 학생의 말/ 공대 여자와 사귄 적 있음]

“전 여자 공대생을 사귀어 봤어요. 근데 솔직히 공대 다니는 여자 사귈 마음은 정말 없었거든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마음에 들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더니 알고 보니 공대생이었어요. 여자 공대생과 사귈 마음이 없었던 이유는 저도 남자이지만 남자들의 뒷얘기가 엄청 심하거든요. 보통 이름 말하면 다 아는 커뮤니티이기도 하고, 그러니 사귀고 헤어지는 둘 만의 일을 거의 모두가 알게 되는데다 여자가 주변에 항상 ‘친구’인 남자들과 함께 있으니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구요. 주변의 캠퍼스커플은 십중팔구 그런 이유로 아주 좋지 않게 헤어져요. 그런 걸 피하고 싶어서 안 만나고 싶었어요. 아! 전 아니에요. 성격 차이로 헤어진 거예요.”

 

00twitt » 며칠 전 내가 트위터에서 받은 한 멘션. 물론 농담이겠지만 (농담이라고 믿고싶다.) 여자 공대생은 이런 존재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어느 개그맨이 말했듯이, 정말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일반적으로 남초 현상이 심한 공대에 여학생이 다니면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현실은 같은 여자인데도 인문계열, 예체능계열에서 그런 것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니! 안 그래도 여자가 견디기에 퍽퍽한 이공계 생활인데, 일반적인 통념과 현실의 괴리가 여자 이공대생들을 더 외롭게 한단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이공계 여학생이 활약 중

 

이런 여자 공대생들을 위해 각 학교의 공대 학생회에서는 여학생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테면 ‘여학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등의 회칙을 제정한 것. (학생회 차원에서 여자를 우대해주는 것이라 이해하면 쉽다.) 공대 여학우 우대의 1세대 시절이라 볼 수 있는 약 15년 전, 기계공학을 전공한 독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트위터 사용자 U-Media, 부산대 기계공학 졸업]

“450명 중 16명이 여학생이었죠. 그 전에는 더 적었고요. 그 친구들은 ‘예쁜 기계과’의 준말인 ‘예기’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녀들의 최대 목표는 공대에 여학생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었죠. 결국 강력한 주장에 따라 화장실이 만들어졌죠. 또 여학생 휴게실도 만들었어요. 학과장 교수님과 면담 끝에 결정된 내용이에요. 물론 모든 비용은 학과가 책임졌죠.”

 

 

이후 여성의 이공계 진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공대 안에서 여학우 대우가 좋아졌고 현재는 많은 학교에서 ‘여학우 모임을 열 때 학생회비로 모임 비용 지원’, ‘공대 내의 여학생 휴게실(수면실) 설치’, ‘여성용품 자판기 도입’ 같은 여러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여학생이 공대 다니기가 편해졌다. 늘 밤샘과 과제의 연속인 이공계에서 상대적으로 체력이 부족한 여학생들에겐 더없는 복지인 셈이다. 이 뿐만 아니다. 한국산업기술대학교의 경우에는, 여학생들의 졸업 이후까지 내다보는 복지를 실천한다. 여학생들이 이공계에서 상대적으로 ‘오래 살아남기’ 힘든 것을 감안하여 이미 졸업하고 현장에 나가 있는 여자 졸업생들을 정기적으로 초빙하여 선후배간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박지윤 한국산업기술대 학생의 말]

“그냥 전공이 좋고 뒤쳐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생각하여 취업에 대한 걱정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당당하던 여자 선배들이 현장에서 위기를 겪은 에피소드를 듣고 마음이 달라졌죠. 제가 우물 안 개구리 같더라고요.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현장 이야기를 들으니 전공 공부 뿐 아니라 공학적 마인드도 길러야 한다는 결심이 생겼어요. 좋은 기회였죠.

 

 

[백소영 한양대 학생의 말]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여자이다보니' 모르는 건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다 남자니까) 친절하게 알려줘요. 이건 농담이고, 여학생에게는 체력도 딸리고, 감각도 좀 떨어진다 해도 '꼼꼼함'이라는 큰 장점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남학생들보다 레포트, 노트 필기 하나는 자신있어요. 남학생들이 맨날 빌려달라고 아우성칠 정도예요. 그 꼼꼼함 덕분에 저도 얻은 게 많은데 최근에 캡스톤디자인(*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의 일종) 프로젝트 제출한 랩실에서 인턴 제의를 받았어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KTL)에서 현장실습 합격과 동시에요. 캡스톤디자인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세심함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같은 조건의 남학생들도 있는데 제가 된 게 아닐까 해요."

 

 

안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여자는 힘들다 한다. 아무리 사회가 점차 여성에게 문을 열어준다 한들 한국사회에서 여성만이 느끼는 벽은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공계에서 여성이 잘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과거에 비해 여성의 이공계 진학률은 높아지는 추세이며 실력으로 인정받는 여성 과학자의 수는 미분계수가 0보다 큰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여러 대기업들에서 여성 인력의 승진 가능성을 넓힌 것도 그러하다. 그러니 이공계의 꽃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부각시켜 이공학에 감성을 보태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여고생 님들!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자연계도 한 번 더 생각해봐요. 여기 아주 살만한 곳이랍니다!

 

00LSA » 2008년 학과 체육대회 사진. 일부는 한창 경기 중이라 모두가 사진에 나오진 않았지만 '남초 현상'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다음 글은 '자연과학 전공자의 사회 진출, 의학/치의학/약학전문대학원이 전부인가?'를 주제로 삼아 준비 중입니다. 이와 관련한 경험이나 생각을 들려주실 분들은 stella.pisces.lee@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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