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이토록 중요한 '똥', 과학은 왜 이리 무심했을까?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2)
        00dung » 한겨레 자료그림

       

똥의 혁명

     

기생충 검사 때문에 주변 학교에서 받아온 1500여 개의 똥 중에서 이제 겨우 1000여 개 검사를 마쳤다. 오늘도 어김없이 길고 긴 똥과의 씨름을 끝마치고 수세식 변기라는 인류 문명의 정수를 누리고 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똥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할까? 주변 사람 아무에게나 가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 아침 변 색깔은 어떠셨습니까? 어떤 모양이었습니까?" 기억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반면에 "밤새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아니면 "아침 식사로는 무엇을 드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드물지 않을까.

 

배변은 인간, 나아가 생명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동시에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열대 지역의 저소득 국가들에 사는 사람들은 똥에 피나 점액이 묻어 나오는 고통을 겪기도 하고, 거의 쌀뜨물에 가까운 설사 때문에 고생을 한다. 그렇다면 고소득 국가들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배변 활동의 고민에서 자유로운가? 그렇지만도 않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잘 나오지 않아서 고통을 겪는다. 결국 기본적으로 너무 쉽게 나와 문제가 되었건, 너무 나오지 않아 문제가 되었건,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배변과 관련된 어려움을 한번은(혹은 너무 자주)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관련 서적이나 연구 결과들을 찾아보면, 그런 문제에 비해 배변이라는 현상에 직접 관련된 연구는 놀랄 만큼 적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먹고 싸고 자는' 삶에서 중요한데, 왜 '똥의 문명'은 별게 없을까?

 

인간이 생명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바로 먹고, 자고, 짝짓기하고(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그리고 싸는 일이다. 이 일들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다른 일들은, 그러니까 문명의 건설, 과학의 발전, 궁극적인 선에 대한 탐구 등등은 이에 비하면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로,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고 과학을 발전시키켜 이런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류가 처음으로 도구를 만든 이유는? 더 손쉽게 맛있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다. 인류가 집을 지은 이유는? 더 편안하게 잠을 자기 위해서다.

 

그런데 인류는 배변을 위해 무얼 했을까? 화장실을 만들었다. 듣기에는 굉장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다른 발전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먹기 위해 우리는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길렀다. 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의 궤도를 바꾼 '녹색혁명'도 나타났다. 녹색혁명을 통해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가능해졌다. 인류가 지금처럼 몇 백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지구를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먹을거리가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집은 어떨까? 이제 인간은 수백 미터 높이에 달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덕분에 작은 단위 면적에 놀라운 숫자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고, 도시가 탄생하고 집약적인 생산과 생활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비하면 우주 정거장에 날려보낸 번쩍거리는 무중력 화장실도 초라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먹는 것, 자는 것, 짝짓기하는 것과 똑같은 중요성을 가진 배변에서는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

 

어쩌면 잘 정돈된 수세식 화장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우겨볼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똑같은 논리가 다른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먹을거리? 이미 고기와 쌀이 있다.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새로운 요리법, 더 나은 재료를 갈구한다. 그래서 GMO와 유기농 작물들이 탄생했다. 잠자리? 이미 우리에게는 깨끗하고 안전한 잠자리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높은 집, 더 넓은 집을 짓는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가 수백 세대 동안에 선택 교배시켜 탄생한 작물 종에서 나온 유기농 채소를 먹으며 디자이너가 설계해 각종 기술이 총집합된 건축재로 지은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도, 정작 배변은 수십년 간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수세식 화장실에서 한다는 사실이다. 왜 사람들은 배변에 대해서는 너그러울까.

 

 

00dung2 » 한겨레 독자 백은주씨 제공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유독 '똥'에 관한 과학적 이해만은 걸음마 수준

 

이제 배변 자체, 배변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다른 잠자리, 먹을거리, 짝짓기에 비해 배변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이다. 먹을거리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특정 유전자를 특정 작물에 집어넣어 원하는 형질을 순식간에 얻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건축용 자재도 역시 끊임없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배변에 이르러서는 잘 나오지 않으면 하제, 너무 잘 나오면 지사제, 피나 점액이 나오면 항생제, 그리고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요거트나 좀 먹으면서 좋은 일이 생기기만을 바라는 수준이다. 어떤 때에는 효과가 있고, 어떤 때는 효과가 없다. 우리가 장내 환경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일부분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내 환경, 특히 장내 정상미생물총은 배변 활동, 나아가 장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도, 우리는 말 그대로 '우리 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이루어진 놀라운 의학과 과학의 발전도 배변의 이해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불면증이 있다 치자. 사람들은 전문 클리닉에 가서 머리에 전극을 잔뜩 달고는 잠을 잔다. 잠을 자는 동안에 뇌파와 호흡 등을 측정해 왜 잠을 자지 못하는지를 파악하고 약을 처방해주거나 보조 요법을 조언해준다. 식사에 문제가 있다 치자. 내시경으로 소화기 안을 샅샅이 살펴 문제점을 찾아낸다. '유당 불내증' 같은 특정 음식물과 문제가 있다면 유전자 검사나 임상검사를 통해 문제를 찾아낸다.

 

이제 먹고 자는 문제, 심지어는 짝짓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수 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거대한 산업이 형성되어 있다. 의사나 과학자들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언제, 어떻게, 어디서 자야 하는지까지도 이야기해준다. 짝짓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문 심리 치료사도 있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파란 알약들도 있다. 하지만 배변과 관련된 산업은 그리 크지 않다. 배변과 관련된 가장 큰 산업이라 해봐야 관광지 근처에서 500원을 받고 휴지 약간과 깨끗한 변기를 제공해주는 공중 화장실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더욱이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변을 봐야 하는지 말해주는 과학자들은 더더욱 없다. 들을 수 있는 조언이라봐야 "때 되면 나오니까 신호 오면 주저 말고 바로 가세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정도가 전부다.

 

배변의 과학이 얼마나 초보적인 수준인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장내 정상미생물총, 즉 장내에 일반적으로 살고 있는 미생물들의 집합이 얼마나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장내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종의 미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몸무게 중 이 장내미생물들이 차지하는 무게가 약 1~2kg은 족히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우리 몸의 2-3%를 이 미생물들이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 몸 속의 이 미세 생태계는 건강에도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쾌적한 아침의 장 운동을 위해 먹는 요거트도 이런 장내 미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이 요거트의 미생물들이 우리 장내 환경에 영향을 주어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냥 그렇게 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똥 속의 미생물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물론 항상 이렇게 눈대중으로 과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섬세한 접근법'도 존재한다. 몇 년 전, 대장에서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들이 사실은 장내미생물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지기 시작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대장질환이 여기에 속한다. 과학자들이 왜 장내미생물총의 변화가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 명확한 연관성이 존재했다. 즉 장내미생물총이 망가지면, 장도 함께 망가지는 것이었다. 시대는 바야흐로 '인간 게놈(유전체) 지도'를 낱낱히 밝혀내고 개인의 유전자 지도가 그려진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수 많은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유전자적 접근법들이 펼쳐져 있었고,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정확히 어떤 미생물, 혹은 미생물들이 여기에 연관이 되어 있는지 밝혀보고자 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자면, 결국 특정 미생물을 연관짓는 일은 실패했다. 그냥 미생물 종류가 너무 많았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가 아니라 건초 더미에서 건초 찾기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과학자들이 아니다. 고민과 커피가 뒤섞인 수많은 나날들이 지나고, 문득 어느날, 과학자 한 명이 놀라운, 그야말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Borody TJ et al.,  "Treatment of ulcerative colitis using fecal bacteriotherapy," J Clin Gastroenterol 2003 Jul; 37(1):42-7). 놀랍고도 깔끔한 아이디어였다. 혹자는 놀랍게도 '더러운 아이디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과학자가 낸 아이디어는 이랬다.

 

우리가 특정 미생물을 분리해 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특정 미생물을 분리해낸다 하더라도 이 미생물만 단독으로 장내에 집어 넣었을 때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잘 굴러가고 있는 시스템 하나를 통째로 옮겨다가 이식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시스템이란 바로 다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총을 말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깨끗한' 장을 가진 자원자를 구해 감염성 미생물이 없는지를 철저히 확인한 뒤에 똥 샘플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우리 같은 '반대쪽 끝'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

 

다음 단계부터가 진짜 어려웠다(아마도 대장염 환자의 동의를 얻는 부분이). 이들은 '깨끗한' 똥에서 섬유질 같은 잔류물들을 제거해내고 미생물만 따로 침전시켜 분리해냈다. 그리고 이 침전시킨 미생물을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장에 관장을 통해 직접 '이식'시켰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우와!'라고 외쳤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웩!'이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임상시험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정상미생물총을 이식받은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증상에 상당한 호전을 보였을 뿐 아니라, 일부 환자들은 수년 간 재발 없이 완치되기도 했다. 염증성 대장 질환은 하루에도 십수번씩 설사나 혈변이 나올 정도로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질병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위험한 질병이다. 하지만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나와 있는 치료제들은 증상만 완화해줄 뿐 궁극적인 치료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런 발견은 그야말로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똥, 거기에선 뭔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어!"

 

어릴적 나는 똥에 관심이 많았다. 다 밥 먹고 나오는 똑같은 똥일진대도 색이며 모양이며 냄새며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작은 똥덩어리 안에서도 무언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나타날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내가 기생충학도가 되어 동네 아이들 똥을 받으러 다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똥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날마다 생활의 골치거리라서, 혹은 해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며 열대 지역 사망 원인의 10위 안에 들어가는 문제라서 그런 게 아니다. 똥,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들은 우리 몸속의 거대한 생태계다. 생태계란 단순히 저 멀리 숲과 야생에 나가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구해야 하는 생태계는 단순히 숲 속 새들과 동물들의 생태계 만이 아니다. 우리 뱃속에 존재하는 가장 가까운 생태계, 이 생태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생태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이렇게 베일에 싸인 생태계, 한번쯤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우리에게 너무 무시받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똥은 그야말로 똥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언젠가 이 '똥덩어리'는 과학계의 또 다른 '성배'가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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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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