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언제나 같지 않은 '번개 맞을 확률, 병 걸릴 확률'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0)
     

번개 맞을 확률

 

 

 

몇 년 전 광우병과 관련한 논란이 한참 불타오를 때, 사람들이 광우병의 위험성과 그 통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번개 맞을 확률’을 자주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번개는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은 아니다. 여름철 태풍이 올 때나 잠깐 볼 수 있을까, 그나마도 먼 산에 내리꽂히는 번개 한두 가닥을 간신히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스와질랜드 산골 마을에 와보니 번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자연현상인가, 그리고 번개 맞을 확률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 말장난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광우병 걸릴 확률' 무모한 계산

 

한국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칠 때까지 몇 초가 지나는지 세어보면, 번개가 얼마나 멀리서 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1분당 수십 차례씩 여기저기서 비처럼 내리는 번개 속에 서 있으면 어느 번개에 어느 천둥이 치는지 분간하기는 고사하고 빨리 집에 들어가 피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을 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니 두세 시쯤에는 숨 쉬는 것도 짜증이 날만큼 덥다 가도 네다섯 시가 되면 어두컴컴해져서 비와 번개가 내려댄다. 그리고 밖에 나가보면 평소에는 가끔씩 보이던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비와 번개를 피해서 집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친인척, 혹은 전해 전해 들은 이야기만 해도 번개 맞아 숨진 사람들을 벌써 열 명 가까이 알게 되었다. 이 근방 지역 주민이 이만여 명쯤 되니 번개 맞아 죽을 확률은 아주 거칠게 계산해서 1/2000쯤 되는 셈인가보다. 로또 5등 맞을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통계는 참 말장난 치기 쉬운 부분이다. 주변의 위험 요소나 지리적, 문화적, 생태적 고려를 빼놓고 이야기하면 놀라운 숫자가 되지만, 전체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별다른 의미가 없거나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3세계에서는 이런 식의 재해나 사고들이 흔하다는 것이었다. 번개는 스와질랜드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사건·사고들 중 하나다. 이런 자연재해나 우발적인 사고들은 스와질랜드뿐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한 요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교통사고가 있다. 아프리카에는 한국에서 폐차시킨 차들만 건너가 있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포장도로에 나가보면 한국에서 고가의 외제차로 통하는 자동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도로교통 안내판이나 법규를 강제할만한 수단과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고가 굉장히 잦다. 교통량이 비교적 적은 이 동네도 마찬가지다.

 

산골마을인 우리 동네는 전부 비포장 도로인데, 산길이라 경사도 급하고 구불구불해서 차가 쉽게 미끄러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진창이 생겨 차가 빠지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밤길에 굽이도는 길에서 사람을 뒤늦게 보고 피하다가 사고가 나는 일, 진창이 된 언덕길에서 차를 밀다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지는 일 등등 관련 사고들은 자주 일어난다. 이처럼 국가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이나 인프라가 부실하다 보면 그만큼 미리 막을 수 있는 여러 사건·사고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 개인적인 경제적 빈곤도 마찬가지 영향을 미친다.

 

 

촌충 때문에 생긴 파푸아 뉴기니의 화상 환자들

 

요 며칠 새 화상 환자가 몇 명이나 왔는지 모르겠다. 끓는 물에 주저앉아 버렸는지 엉덩이며 허벅지에 ‘고추’까지 홀랑 덴 세 살짜리 꼬마도 있고, 무릎 아래로는 피부가 전부 벗겨질 정도로 심한 아저씨, 손등에 화상을 입었는데 제대로 처치를 하지 않아 곪아 고름이 흘러내리는 여학생, 세 달 전에 입은 화상에 이차 감염이 일어나 아직도 다 아물지 않은 남학생 등등. 특히 요즘처럼 비가 잦아 밤낮으로 기온차가 심한 계절에는 화상 환자가 더 늘어난다.

 

이는 스와질랜드 뿐만 아니라 제삼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다. 환자 왕진을 가서 집 안을 들여다보면, 단칸방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가족 모두가 모여 누워 있다. 환기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오두막 안에서 제대로 마르지도 않은 나무 장작을 때면 순식간에 너구리 굴이 된다. 코가 맹맹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로 매캐한 연기가 풍겨나오는 안에서 하루종일 있다 보니 천식 같은 기관지 질환이나 눈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깨닫게 된다.

 

africa » 이런 식으로 집 바닥에 불을 피워놓고 난방과 조리용으로 사용한다. 아이들이 옆에서 뛰어 놀다 화상을 입는 경우도 흔한다.

 

천식이나 눈병 같은 것은 파푸아 뉴기니에서 일어난 일에 비하면 사실 사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생충, 그 중에서도 촌충이 엮여 있다. 1970년대, 파푸아 뉴기니가 독립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틈 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질서 수호라는 명목 하에 군대를 파견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한다.

 

당시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들은 돼지를 최고의 가축으로 쳤는데,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인도네시아 군대는 식량으로 가져간 돼지 일부를 원주민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불행히도 이 선물 안에는 촌충이라는 재앙이 들어 있었다. 본래 돼지 촌충을 비롯해 돼지로 감염되는 기생충증이 따로 없었던 파푸아 뉴기니에서는 돼지를 완전히 익혀 먹지 않았다. 그런데 돼지 촌충의 유입과 이런 음식문화가 촌충의 폭발적인 유행이라는 상승 효과를 낳고 말았다. 돼지 촌충의 또 한 가지 무서운 점은, 길 잃은 촌충이 장에 기생하는 대신 근육이나 간, 폐, 심한 경우에는 뇌에도 자리 잡아 커다란 주머니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뇌에 기생충이 자리 잡은 경우, 감염자는 발작 같은 신경계 관련 증상들을 보이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의 발작도 충분히 위험하지만, 이 원주민 사회에서는 더더욱 위험했다. 스와질랜드와 마찬가지로 고원지대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집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모두가 불 주변의 온기에 의지해 잠을 잤다. 촌충 때문에 일어나는 발작이 없을 때는 이런 생활방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촌충이 들어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취침 중에 발작이 일어난 사람들이 모닥불 안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빠져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발작이 일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이 황급히 환자를 끌어내더라도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1970년대 초반, 파푸아 뉴기니의 지역 보건소들은 심한 화상을 입은 동시에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들로 넘쳐났다. 이후 촌충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가족처럼 여기던 돼지나 자신들의 전통문화 일부를 버려야만 했다.

 

 

생활문화가 다르면 질병 발생도 달라

 

사실 이런 가정 안의 사고들은 좀더 현대적인 연료가 제공된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일들이다. 집 안에서 나무 대신 연탄이나 석유, 가스를 이용한 조리기구를 이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천식이나 눈병 뿐만 아니라 화상 같은 외상을 입어 병원에 오는 사람도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손발에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려면 적어도 2주 이상의 치료 기간이 필요하다. 날마다 클리닉까지 걸어오는 데 서너 시간씩 소비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 기간에는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이렇게 손실되는 생산력이 얼마나 많을까? 상하수도 시설은 어떨까? 흔히 풍족하고 안전한 상하수도 시설이 있다면 설사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줄어들어 삶이 윤택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또 이런 상하수도 시설을 통한 수인성 전염병의 예방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득 하나는 바로 피부 질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염된 물에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은 피부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이 뿐만 아니라 세탁도 그렇다. 산 아래로 두세 시간씩 걸어 내려가 식용수를 길어오다 보니 빨래 같은 부차적인 곳에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세탁은 세제를 푼 물에 빨래를 한참 담구어 두었다가 그냥 꽉 짜서 밖에 말리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헹구는 과정이 생략되는 셈이다. 이렇게 옷에 세제 잔류량이 많다 보니 특히 피부가 약한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피부 질환에 굉장히 자주 걸린다. 피부가 민감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가장 흔한 증상인 간지럼증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증상이다.

 

사회 기반시설의 확충, 그리고 이에 대한 손쉬운 접근성은 단순히 기생충이나 질병의 예방 측면 뿐만 아니라 삶의 질 전반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사람들의 삶에서 사소한 듯이 느껴지는 부분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질병의 예방처럼 눈에 띄는 효과보다 잠재적으로 더 큰 이익과 잠재성을 가져다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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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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