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데이터도 미술재료다

[8] ‘뮌’…21세기 빅데이터 시대의 시각예술 작업 방식




기 몬드리안 작품이 있다. 나무라는 구체 형상에서 격자로 된 추상 작품으로 이어지는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Red tree>는 인상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파란색의 배경에 대비되는 빨간색 나무가 강렬하다. <Gray tree>와 <The flowering apple tree>는 나무 형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나무를 그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다가 <Composition No. VII>부터는 표현하려는 것이 나무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단계가 된 이후, <Pier and ocean>를 거쳐 <Composition No. II>에 이르면 격자와 원색으로 구성된 완전한 추상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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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 tree, 1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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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y tree,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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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lowering apple tree,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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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No. VII, 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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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er and ocean, 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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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No. II, 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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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


우리는 추상화를 볼 때 그것이 시작된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드로잉이나 스케치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물의 특징을 포착하고, 완성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를 계획한다.


21세기 빅데이터 시대에 시각예술 작업 방식도 100년 전과 달라졌다. 구글 자동검색 기능, 뉴스 큐레이션, 고객 맞춤형 광고에 이르기까지 빅데이터는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각예술 작가도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물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출발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뮌이 바로 그런 작가다. <미술관 옆 실험실>을 연재하는 서범석과 박상준은 부부이자 함께 작업하는 최문선, 김민선이 결성한 뮌(mioon)을 2015년 6월 파주 헤이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문선과 김민선은 비슷한 시기에 홍익대학교를 다녔지만(둘 다 1997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이 달라(최문선은 토목공학 전공, 김민선은 조소 전공) 당시에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이후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나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팀 이름인 뮌(mioon)은 김민선의 Minsun과 최문선의 Moonsun에서 sun을 빼고 Min과 Moon을 합친 것이다.



정보를 추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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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불빛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구를 이용한 인테리어처럼 보였던 것이 <캐릭터(점, 선, 면)>이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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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점, 선, 면), Light Object, Stainless steel, Light Bulbs, Plexiglas, 2014 ]


뮌은 삼성을 이끄는 인물들이 결혼을 통해 다른 기업과 어떻게 연결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는지에서 출발했다. 작가들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이용해 <삼성가 혼맥도>를 그렸다. ‘끼리끼리 결혼했겠지’라는 짐작이 구체적인 네트워크로 드러났다. 뮌은 이 인포그래픽을 이용해 추상화 작업을 거쳐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멋진 그래픽으로 정보를 한눈에 전달하는 게 인포그래픽이라면, 미술 작품은 정확한 정보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미술 작품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면서도, 세상에 관한 굳어진 생각을 흔드는 반전이 있어야 한다. 뮌은 예술의 이러한 특성을 ‘뒷목을 서늘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데이터에서 작품을 만드는 첫 단계는 작품을 만드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군중과 개인, 그리고 극장에서 보는 연극이나 영화처럼 각자 역할을 해내는 사회 관계에 관심이 있던 뮌은 삼성의 결혼 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드러내고자 했다. 대상을 선택한 다음에 작가들은 정보를 결합해 특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형태로 배치했다. 인포그래픽처럼 한눈에 정보를 습득해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보를 추상화하는 드로잉 과정을 거쳤다. 이쯤 되면 드로잉에서 원래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다.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으로 원래 데이터를 추론할 수 없다. 실제 작품 제작으로 데이터를 이용한 추상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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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가 혼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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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가 혼맥도를 이용한 드로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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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가 혼맥도를 이용한 작품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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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작품 ]


2009년 <연구실에서 만들어진(Made in Laboratory)> 작업에서도 뮌은 데이터를 주요한 오브제로 사용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이 작업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두 명(경제학과를 갓 졸업한 두 명)에게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 50명과 해외 현대미술 작가 50명의 자료를 찾도록 요청했다. 미술작가의 작업실이라기보다는 사무실이나 연구실 분위기가 나도록 전시장의 한 공간을 연출했고, 두 명의 작업자가 조사하고 분류한 전시자료와 비평을 파일로 축적했다.


미술사나 현대미술 분야를 잘 모르는 조사자들에게는 전시장에 막 들어온 관람객과 비슷한 처지다. 이들은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유명한 사람들을 들어보기는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했고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자세히 알진 못한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나 모노크롬, 앵포르멜 같은 단어들도 낯설기만 할 뿐이다. 이들에게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을 조사하고 분류하면, 미술계를 잘 아는 사람보다는 조사자의 선호와 편향을 줄일 수 있다.


뮌은 조사 결과를 정리한 아카이브도 미술 작품이지만, 조사 과정도 작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시장 내부에 연구실을 차렸고 그 과정을 공개해서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전시기획이나 비평을 할 때 이런 자료조사가 초기 작업으로 진행되며, 이 작업을 미술계에서는 ‘리서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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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Live Installation, Office Environment, 2 Researches, 2009 ]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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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술에서 사랑, 기억, 죽음을 키워드로 삼은 전시와 작품이 많다. 데이터를 오브제 삼아 작품을 만들었던 뮌은 그중에서 기억을 다루었다. 작가들은 기억의 메커니즘으로 과장, 망실, 해체, 혼합을 꼽았다. 작은 것을 크게 만들고, 했던 말도 잊어버리고, 사건이 스틸사진으로 분절되며, 다른 사진들이 섞여 새로운 사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2014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뮌은 책장 다섯 개를 원형으로 세운 작품 <오디토리움>을 선보였다. 개인의 기억에다 역사, 사회의 기억을 혼합한 이 작품은 극장 형태로 기억을 제시한다. 오브제들은 특정한 사건, 인물, 사물을 표현하지만, 그것들의 조합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혼합되고 해체되어 재조합된 이미지들의 결합은 음산하면서도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정면에서 보면 오브제들이 반투명 막을 통해 보이고, 벽면에는 그림자가 보인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처럼 전경에 드러난 흐릿한 이미지와, 배경에 맺힌 어두운 그림자를 통해 오브제들을 본다. 그렇다고 작품 뒤에서 오브제와 그것들을 움직이는 모터를 본다고 해서 동굴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진실, 진짜, 진품, 원조,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비판받고 있다. 기억이, 그렇게 의식이 해체되고 재조합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시냅스에서 관찰하고 있다. 특정한 조건에서만 진실이기 때문에, 조건이 달라지고 관점이 바뀌면 진실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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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토리움(템플릿 A-Z), Installation, 5 Cabinets, Objects, DMX Controlled Lights, Motors, 2014 ]

[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EcvkQ_IqUg ]


기억을 다룬 뮌의 또다른 작업으로는 <세트>가 있다. 이 작품은 2008년 미국에서 3주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만든 것으로, 집 주변 영상을 보여주다 암전되면서 야광 안료에 의한 이미지가 나타난다. 작가들은 안료를 벽면 전체에 고르게 칠하지 않고, 영상의 밝은 부분만 칠해 암전된 상태에서도 회화적인 그림이 되도록 했다. 사진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암전 상태의 이미지는 이전 사진, 또는 그 이전 사진의 윤곽이 계속 겹쳐진다. 작품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원하는 것을 기억하려 하고 기억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부의 복잡한 상황에 의해 기억은 덧칠된다.


기억만이 아니라, 기록물도 덧칠된다. 중세 시대 양피지가 귀하던 시절, 이전 사람이 기록한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롭게 자신의 글을 쓴 것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한다. 이런 재활용 양피지를 최근에는 여러 방식으로 복원해 기록물의 지층을 전부 확인할 수 있다. 유한한데다 혼합되어 재조합되는 기억을 보완하는 장치였던 기록물도 재활용되어 덧칠된다. <세트>는 우리가 본 야광 이미지가 바로 직전 사진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거 이미지들의 중첩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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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트(미국식 목조주택), Video Installation, Fluorescence Wall Painting, HD video (10min), Sound, 2014 ]



빅데이터에서 찾은 과거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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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배우 박보영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팬미팅 이벤트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메일은 전혀 모르는 곳에서 온 것이었다. 평소 자신의 컴퓨터에서 박보영을 자주 검색했던 것 때문에 이런 메일을 받은 게 아닌가 추측했다. 이외에도 대형마트에서 받는 광고 전단지, 인터넷에서 기사를 볼 때 뜨는 구글 광고, 자동 완성 검색 기능까지 빅데이터는 이제 우리 생활 가까이 있다.


데이터는 과거에 우리가 검색했던 키워드, 구입했던 물건, 좋아하는 영화 장르, 나이와 성별에 따른 선호를 기억했다가 미래의 선택지를 추천한다. ‘너 이거 좋아했지? 이번에 신상품 나왔어,’ ‘네가 찾는 게 이거지?’ ‘너한테는 이게 필요해.’ 나의 과거를 통해 미래까지 예측한다는 건 놀랍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감시하는 빅브라더가 바로 옆에 있다.


데이터를 이용해 작업한 뮌 작가들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있는 정보가 가진 힘을 포착했다. 재벌가의 결혼 인맥은 누구나 금방 상상할 수 있고 또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미술 작품으로 표현했을 때 뒷목이 서늘해지는 반전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들 작업실에서 하기 마련인 리서치 과정을 미술관에서 직접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작업 방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데이터에는 우리의 과거가 저장되어 있다. 연락처, 카톡 메시지들, 검색기록,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사진들, 이전 6개월 동안 구입했던 목록까지 데이터는 우리가 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빅데이터는 이 기억들을 분석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지 예측한다. 뇌에서 진행되는 기억의 방식 그대로 빅데이터에도 적용된다. 미래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불안을 잠시만이라도 줄여주었던 것이 점, 타로, 점성술, 토정비결, 명리학, 상수학이었다.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인생을 설명해 주었고 위로와 안심을 주기도 했다. 조만간 구글 알파고의 다음 버전 인공지능이 이것들을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생일, 가족 관계, 현재 나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사용하고 있는 언어, 주로 먹는 음식, 자신이 속한 국민국가의 역사, 세계사적인 흐름, 지구라는 우주적 위치 등을 입력하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답이 나오지 않을까? 모두들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답이긴 하지만.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작가들은 그것을 어떻게 작업에 활용할 수 있을지 이리저리 실험해본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등장했을 때 백남준은 이 매체를 이용해 미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뮌은 컴퓨터, 인터넷, 포토샵에 이어 빅데이터도 시각예술 작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디어가 메시지’인 것처럼 빅데이터는 과거를 기억해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데이터 아트(data art)가 어떤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뮌의 작품은 유튜브에서 mioon을 검색하거나, 아래 링크에 가면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p=QgIIAQ%253D%253D&q=moonsunchoi


박상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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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물리학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고 있으며, 집에서는 예쁜 푸들을 키우고 있다. 시각예술 월간지 <아티클>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동시대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을 포함해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이메일 : cygnus30@hanmail.net      
블로그 : blog.naver.com/cygnus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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