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시조새 논란에서 무엇을 배우고 해야 할 것인가?

endo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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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새 화석 중 하나. 출처/Wikimedia Commons




학자와 학술 단체를 위장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청원에 의해서 ‘시조새와 말의 진화’ 부분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삭제될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과학 교육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을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네이처>라는 유력한 학술저널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져 세계적 관심사가 된 뒤에야 비로소 국내에서 관심을 받게 될 정도로, 정작 한국 내에서는 그 이전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네이처>가 뉴스 보도로 다루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한국 고생물학회나 진화학회에서 관련 성명까지 발표했을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한국 내 언론에서 일찌기 보도되었을 때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었는데도 어떤 노력도 없다가 외국의 과학저널에 보도되고 국제적 관심사가 되자 뒤늦게 대응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듭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부단히 분석하고 종합해서 교과서에 반영하는 능동적 역할을 하지 못한 출판사와 교과서 집필진,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이들이 국민의 지식과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초교육을 그토록 소홀히 생각하고 헛점을 보였기 때문에 그 틈을 종교단체가 놓치지 않고 이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청원에 의해 교과서가 바뀌기 이전에 사회적 논란이 되고, 또 아직 교과서 심의 절차가 남아 있기에 결정된 일이 아니라 다행스러운 점도 있지만 이번 시조새 논란을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이번의 시조새 논란이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논란을 일으킨 궁극적 원인을 명백히 파악하고 규명해서 장기적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일이 발생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건전한 과학을 종교로 파괴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론, 창조과학, 지적설계론…부단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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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 진화론에 대한 종교의 공격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1920년대 말까지 이들은 반진화론자들로서 학교에서 진화론을 교육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1929년부터는 단지 진화론을 부정하던 데에서 벗어나 반진화론의 관점을 ‘창조론(creationism)’이라는 이름으로 종합하여 진화론을 대체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함으로써 과학계는 반진화론이 아닌 사이비 과학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line » ■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온

‘창조론’이라는 사이비 과학과의 싸움은 미국 알칸사스 주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여 교사가 1968년 진화론 수업을 금지한 법이 헌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내어 대법원에서 그 법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것을 계기로 본격화했습니다. 진화론 수업을 금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해지자 그 이전에 창조론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던 데에서 벗어나 진화론과 동등하게 과학으로서 공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1975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생물학 교사들이 낸 소송에서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판결이 내려진 뒤에 창조론을 더욱 과학으로 위장하기 위해 창조론에서 성경을 명시적으로 인용하거나 거기에 기초를 둔 모든 부분을 없애고, 그것을 다시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으로 명명했습니다.

 

창조론에 창조과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지만, 다시 1982년 미국의 알칸사스주에서 벌어진 법정 소송에서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어 1987년 루이지애나 주의 비슷한 법정 소송에서 미국 대법원에 의해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로써 창조과학은 더 이상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시스템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창조과학자들은 다시 변신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90년대 이후부터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으로 명명한 새로운 창조과학입니다. ‘창조자’라는 말 대신에 ‘지적 설계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생물학적인 접근을 추가한 반면에 종교적인 측면을 줄이고서 다시 국가 교육 시스템에 들어오기 위한 시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역시 2005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도버(Dover)에서 벌어진 유명한 법정 소송에서 지적설계론은 창조론과 차이가 없고 과학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짐으로해서 더 이상 국가 교육 시스템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문제 = 진화론 무용’ 종교적 의도 짙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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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이것으로 종교가 국가 교육 시스템이나 과학의 영역에 들어오려는 시도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한국의 시조새 논란이 보여 준 것입니다. 창조론이 국가 교육과정에 들어갈 수 없다면 진화론도 국가 교육과정에서 없애겠다는 최초의 방법으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창조론에 과학을 덧칠한 다른 이름의 사이비 과학을 내놓기 이전까지 이들은 종교와의 무관함을 주장하는 위장된 학술단체를 통하여 진화론 교육을 최대한 방해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확인된 과학적 사실과 확립된 이론으로 기초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는 진화론 자체를 학술적으로 반박하고 거부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창조론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진화론에서 특히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화석 연구에서 부분적인 미비점을 부각해 진화론 자체가 마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속이거나, 진화론의 내용을 왜곡해 반복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세뇌교육의 효과를 노리는 등의 교묘한 수법으로 진화론 교육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시조새 논란은 이러한 교묘한 수법이 한국의 허술한 교과서 관리 체제를 틈타 시도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터무니없는 공격의 빌미를 없애기 위해서는 교과서의 집필과 수정 과정에서 임시방편의 대응이 아니라 철저한 검증과 감독 같은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과학자들의 연구부정 행위가 만연할 때 과학계에도 책임이 있듯이 종교계 안에서도 사이비 과학을 배제하려는 자정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적 목적을 이루고자 과학을 파괴하는 것은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로서 있을 수 없는 극단적 이기주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특히 물질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에 종교 역시 상업화에 물들어 교인의 이탈을 막거나 모으려는 동기에서 과학을 파괴하려 한다면, 수많은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제 종교 본래의 역할과 의무가 과연 무엇인지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종교를 과학으로 위장하여 시조새 논란과 같은 일을 일으키는 한 그 온상이 되는 종교계도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그렇기에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진화를 믿고 창조론과 같은 사이비 과학을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교의 과학 교육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초과학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과학과 과학을 위장한 사이비 과학을 분별하는 능력은 기초과학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를 위주로 한 과학 교육에서 벗어나 진정한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초교육이 될 때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대다수 국민이 건전한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80% 이상이 진화를 믿는 유럽 국가들에서 종교가 없어지거나  종교의 존재감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오히려 올바른 과학 교육이 종교와 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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