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또다른 우주 있다' 물리·수학의 아홉가지 추론

_올해의 과학책 - 1·2월 서평___

문지문화원 사이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우주은하

우리 눈앞에 무한하듯이 펼치지는 이 우주는 하나일까, 여러 개일까 또는 무한할까? 현대 우주론의 한 편에서는 우리 우주가 유일하지 않다는 다중우주론이 과학적 추론의 결과로 제시되고 있다.







[관련글] 번역자 박병철 교수 인터뷰

"쉬운 과학책보다 어려워도 값진 과학책을"


‘…그래서 뭐?’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엄청난 시공간 규모에서 다뤄지는 현대 우주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가도 다시 일상사가 떠오를 때 즈음에는 바로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주가 137억 년 전 탄생했으며 지금도 계속 가속 팽창을 하고 있고 우주에는 우리가 아는 보통 물질과 다른 정체 모를 암흑에너지가 훨씬 더 많다는 현대 우주론은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지는 우리 일상의 생활에서 바라볼 때에는 한가한 지식 사치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실 우주론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관심사이다. 우주론 이야기의 곁에는 늘 많은 청중이 있다. 아마도 너무 익숙한 일상 경험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저 깊디깊은 근원 또는 기원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우주론 이야기를 들을 때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하여 작은 지구 행성의 인간사회가 좇는 화려한 가치들이 잠시나마 아주 낮은 곳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실감할 수 없는 규모의 우주조차 수많은 우주들 중에서, 또는 무한한 갯수의 우주들 중에서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다중우주 이론을 들으면 우리는 더욱 더 낯선 곳으로 나아간다.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s), 멀티 유니버스(multiple universes), 메가버스(megaverse) 등으로 불리는 다중우주론들은 일상 경험에서 더 멀리 달아난 과학이론을 제시하며,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되는거야?’ 하는 당혹스러움마저 던져준다. 이름난 과학저술가이자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그린(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수학·물리학과 교수)의 새 책 <멀티 유니버스>(원제: The Hidden Reality)는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되는 그럴듯한 다중우주 이론들을 아홉 가지로 정리해 독자들을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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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무엇보다 다중우주 이론이 아홉 가지씩이나 된다니 놀랍다. 무한우주론, 인플레이션 이론, 양자장 이론, 끈이론, 컴퓨터과학처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해 극한의 사유를 전개하다보면 “우주는 유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 개 또는 무한 개이다”라는 다중우주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멀티 유니버스>는 서로 다른 아홉 가지 이론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각각의 이론적 배경을 살피며 찬찬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다중우주 이론이 적어도 아홉 가지나 된다니 놀랍다. 무한우주론, 인플레이션 이론, 양자장 이론, 끈이론, 컴퓨터과학처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으되 극한의 추론을 펴다보면 “우주는 유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 개 또는 무한 개이다”라는 다중우주 세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아홉 가지 이론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각각의 이론적 배경을 살피며 찬찬히 보여준다. 다중우주론도 저마다 달라 어떤 것은 단순하고 어떤 것은 매우 난해해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공상과학의 상상이 아니라 진지한 과학적 상상력의 결과로 태어난 다중우주의 과학 이야기를 듣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저마다 다른 세계, 다른 다중우주들



린 교수가 전해주는 다중우주의 아홉 가지 이야기를 잠시 따라가 보자. 먼저 우주가 유일하지 않으며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추론은 아주 단순명쾌한 논리에서 나올 수 있다. '우주는 무한하다’는 게 사실이라면 가능한 추론이다. 배가 수평선 저 너머로 나아가면 해변에서 더 이상 배를 볼 수 없어도 배는 수평선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듯이, 우주가 무한하다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한계인 ‘우주지평선’ 너머에도 우주 공간은 계속 이어져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우주가 무한하다면 우주지평선 너머의 무한 공간에는 우리가 접할 수 없는 또 다른 우주들이 계속 이어서 존재할 테고 무한 공간에서 그런 우주들은 당연히 무한한 갯수로 존재할 테니, 거기에 우리 우주와 똑같은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서 우주가 무한히 크다면, 지금의 당신과 같이 행동하면서 당신과 동일한 실체를 느끼는 존재가 우주 어딘가에 또 있다는 뜻이다”(70쪽). 물론 다른 우주들은 우주지평선 너머에 있으니 인식할 수도, 우주들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없어 다른 우주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런 “누벼 이은 다중우주” 가설이 책의 맨 앞에서 다뤄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주론에 관한 기본 개념부터 접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린 교수는 점점 복잡하고 기기묘묘해 따라가기도 벅찬 이론과 가설을 줄줄이 등장시킨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반이 탄탄한 이론은 아무래도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론일 것이다. 우주대폭발(빅뱅) 이론에서 표준모형으로 인정받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도출되는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은 팽창하는 우주들은 우리 우주 말고도 더 있다는 가설에서 생겨난다. 인플레이션(공간의 급팽창)은 균일한 장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음압(음의 압력)’ 에너지가 어느 순간 급격히 팽창하며 일어나는데, 무한 공간에서는 이런저런 인플레이션들이 서로 다른 조건과 상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린 교수는 팽창하는 여러 공간들을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 모형에 비유한다. 크게 팽창하는 우주와 작게 팽창하는 우주들은 아직 팽창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또 다른 공간들이 구멍난 치즈처럼 어울려 있다는 것이다. “우주 치즈는 한 없이 커지고 그 안에 나 있는 구멍의 수도 한없이 늘어나게 된다. 우주론 학자들은 이 구멍을 ‘거품우주(buuble universe)’, 또는 ‘주머니우주(pocket universe)’라고 부른다. 각각의 거품우주는 초고속으로 팽창하는 우주에 나 있는 구멍으로 생각할 수 있다”(108쪽).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야는 끈이론이다. 그린 교수 자신이 끈이론 연구자이기도 하거니와 다중우주론이 끈이론 분야에서 여럿 제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끈이론은 물질과 힘의 근원도 쪼개고 쪼개다보면 결국에는 어떤 '입자'가 아니라 1차원의 '끈'이며, 이런 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서 여러 입자 물질과 힘들이 만들어지고 작용한다고 보는 수학적 물리학의 이론이다. 끈의 존재는 현재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직접 검증할 수 없으나, 끈이론 체제가 우주의 근원적인 물질과 힘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에 물리학에서는 주요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린 교수는 끈이론 분야에서 제기되는 다중우주 이론으로, 브레인(brane, 막) 다중우주, 주기적 다중우주, 경관(landscape, 풍경) 다중우주 이론으로 요약하며 제4~6장에서 추상적인 끈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찬찬히 설명하며 다루고 있다.



끈이론에서 태어난 난해한 다중우주들, 그리고…



이론의 '브레인 다중우주' 가설에서는 3차원 공간의 세계를 단순하게 표현해 2차원의 막으로 나타내는데, 이런 막들은 공간을 떠다니며 서로 건너갈 수 없는 각자의 세계를 구성한다. 특히 브레인 다중우주론은 4차원 시공간 이상의 여분차원들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이론이며 우주 만물의 기본 힘 중 하나인 중력이 다른 힘들(핵력, 약력, 전자기력)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은 이유(예컨대 쇠붙이가 중력에 거슬러 자석(자기력)에 달라붙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가설에서는 중력으로 작용하는 끈(중력자)만이 유일하게 브레인의 속박을 벗어나 이쪽 브레인 세계에서 저쪽 브레인 세계로 자유롭게 건너뛸 수 있다고 이해된다. 브레인 세계들이 주기적으로 멀어지다가 다시 접근하며 충돌할 때 새로운 우주 탄생(빅뱅)을 만든다는 가설은 ‘주기적 다중우주론’으로 불린다. 또다른 가설인 '경관 다중우주론'은 저명한 끈이론 학자 레너드 서스킨드의 책 <우주의 풍경>에서 더욱 자세히 다뤄졌는데, 공간 팽창의 에너지로 설명되는 지금의 '우주상수' 값이 유일하고 보편적인 게 아니라 우리 우주를 포함하는 더 큰 우주 공간에 나타나는 여러 경우들 중 하나의 경우로 이해된다. '경관' 또는 '풍경'에 비유하자면, 산에 높은 골짜기와 낮은 골짜기가 존재하며 경관을 이루듯이 갖가지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들이 크고작은 우주상수를 지니며 존재할 수 있음이 수학적으로 입증된다는 것이다.


제8, 9장에서는 양자역학이 낳는 좀 더 기묘한 다중우주들이 다뤄진다. '양자적 다중우주'는 양자 세계에 나타나는 존재의 확률론적 성격 때문에 빚어진다. 전자의 위치는 확률로만 파악될 수 있는데, (ㄱ) 위치에 놓인 전자를 관측하는 관찰자와 연계된 우주와 (ㄴ) 위치에 놓인 전자를 관측하는 관찰자와 연계된 우주는 서로 다른 우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아홉 가지 이론 중에서 가장 난해한 '홀로그래피 다중우주'는 서스킨드의 또 다른 책 <블랙홀 전쟁>에서 훨씬 더 자세히 소개된 바 있는데, 그린의 책에서도 여전히 난해한 이론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가설의 바탕이 되는 정보이론은 우주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 아니라 정보일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근원적인 정보는 우주의 경계면에 기록되며 경계면 안쪽의 공간에 나타나는 물질의 존재는 경계면의 정보가 투영돼 나타나는 홀로그래프라는 게 이 가설의 뼈대이다. 그린 교수도 지적하듯이 이는 플라톤이 얘기했던 ‘동굴의 우상’ 비유와도 비슷하다. 실체는 알 수 없으며 그 실체가 비춘 그림자 영상만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을 뿐일까?


그가 책에서 다룬 아홉 가지 이론 가운데 마지막 두 가지는 이전까지 다룬 일곱 가지 가설에 견줘 훨씬 더 자유분방하다. 그 하나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친숙한 주제로 다루어지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이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우리가 가상 세계와 그곳에 생명체, 인간을 현실과 똑같이 만들어 내어 실감나는 가상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면, 즉 우리가 ‘시뮬레이션 우주’를 창조하는 날이 온다면? 그렇다면 지금이 사실 그런 세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어느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완벽한 시뮬레이션 안에서 살며 실제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놀랍고 발칙한 상상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의 논리가 된다. 마지막 가설인 '궁극적 다중우주'는 현대 물리학의 수학법칙이 유일하지 않고 그저 우리 세상을 설명하는 법칙일 뿐이라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온갖 가지의 수학법칙이 물리적으로 실현되는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모든 가능한 수학법칙이 어디선가 물리적으로 실현되는 다중우주”(468)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중우주이론을 바라보는 그린의 시선



린은 다중우주 이론을 ‘코페르니쿠스 식 사고의 전환’이라는 물리학의 역사 전통에서 바라본다. 지구가 우주 중심이라고 믿던 근대 이전의 우주관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관점으로 지구와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우주론은 태양계 중심에서 벗어나고, 우리 은하 중심에서 벗어났으며, 이제는 우리가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니 우리 우주가 유일하지 않을 가능성을 과학과 수학으로 추론하는 다중우주 이론은 이런 전통을 잇는 지적인 탐구 활동이다. 책의 원제인 ‘숨겨진 실체(The Hidden Reality)’처럼 실체는 여전히 알지 못하며, 그런 실체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은 없지만, 수학은 숨겨진 실체를 더 많이 엿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그린 교수는 바라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우주’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실체의 전부인지, 아니면 더 크고, 더 희한하면서 더욱 은밀한 어떤 실체의 일부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17쪽).


하지만 그린 교수도 인정하듯이, 다중우주론은 여전히 “사변적인 주제”이며 “지금까지 어떤 실험이나 관측도 평행우주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다”(24쪽).


“지금까지 언급된 평행우주(다중우주)에 대한 가장 공정한 평가는 “판결 보류상황”이라는 것이다. 무한히 큰 공간, 영구적 인플레이션, 브레인세계, 주기적 우주론, 끈이론의 경관 - 이 흥미로운 이론들은 과학 발전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설로 남아 있다. 물리학자들은 다중우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지지파와 반대파로 양분되어 있다 ”(308쪽).


'판결 보류 상황'인데도 다중우주 이론에 그린 교수가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책 곳곳에서 그가 강조하듯이 우주론을 더 깊숙이 파고들수록 생겨나는 다중우주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다중우주론이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게 아니라, 과학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불가피한 산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언급된 모든 평행우주이론은 물리학자들이 자연의 가장 깊은 속성을 탐구하다가 개발한 수학법칙으로부터 탄생했다. 이들 중에는 기존의 물리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양자역학은 확실하게 검증된 이론이고 인플레이션 우주론도 관측데이터와 잘 일치하지만, 끈이론은 아직도 가상의 이론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각 이론과 관련한 평행우주이론의 논리적 필연성도 그리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패턴이 있다. 물리학이 잡고 있던 자동차의 운전대를 수학에게 넘겨주면 어김없이 다중세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434)


는 ”과학의 고속도로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길들을 골라 서서히 주행하다 보면 다양한 다중우주 후보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들을 찾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어렵다“(491쪽)고도 말했다. 사실 그린이 이 책에서 저술 방향으로 삼고 있는 것도,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을 독자한테 믿으라고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린의 의도는 여러 분야에서 생겨나는 수수께끼 같은 물음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중우주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다중우주는 존재하는 거야 아니야“라는 물음에 최종 판정을 하는 게 이 책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가 독자한테 주문하는 바를 받아들인다면, 왜 과학자들은 다중우주를 연구하게 됐으며 그런 관심사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인 것이다.


그린 교수는 다중우주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 주요하게 작용한 물리학 체계의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다중우주론이 어떤 맥락에서 생겨났는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는 물리학자가 특정 물리계를 서술할 때에는 세 가지 요소를 명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 요소는 관련된 물리법칙을 표현하는 수학방정식, 두 번째는 수학방정식에 포함돼 있는 다양한 상수들(중력상수, 전자기상수 등). 세 번째는 주어진 계가 초기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초기조건이라고 요약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주의 입자 배열을 만든 우리 우주의 초기 조건은 왜 그렇게 주었는가?”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는 왜 그렇게 주어졌는가?” “우리 우주는 왜 이런 수학법칙을 따르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린 교수는 현재 우리 우주가 왜 지금 이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묻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며 오히려 다양한 우주들에서 우연히 지금 우리가 현재의 우주에 존재하게 되었음을 이해하는 게 훨씬 더 간편하고 자연스럽다고 강조한다.


“뉴욕에 있는 수많은 신발가게들 중 어딘가에 당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전혀 없지 않은가”(501). 우주 팽창 속도가 지금보다 더 늦거나 빠르다면 지금처럼 생명체가 사는 지구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우주가 존재할 수 없을 터인데, 어떻게 이런 매우 특별한 우주 상태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무얼까? 이런 물음을 던지기보다는 수많은 초기조건, 자연상수, 물리법칙을 지닌 다중우주들 중에서 지금 지구에 꼭 맞는 우주가 존재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논리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보니 이 얘기는 갈릴레오가 즐겨 했던 얘기에서도 본 듯한 익숙한 논리다. 갈릴레오는 지구중심설을 비판하면서 지구를 붙박이로 두고서 태양을 비롯해 모든 우주 천체를 하루에 한 번씩 회전시키는 것보다는 지구가 태양 둘레를 회전한다고 보는 게 훨씬 간단하고 자연스럽다는 논리로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천문학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다. ‘간편하고’ ‘자연스러움’의 미를 추구하는 물리학자의 전통을 그린 교수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다중우주론이 '판결 보류의 가설'로 이해되는 것은 물리적 세계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난해한 수학의 언어로 전개하는 다중우주론을 현실 세계에서 검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린 교수도 의식하고 있듯이 다중우주론에 반감을 갖고 있는 비판자들은 ‘다중우주론은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이며 따라서 과학이론이 아니다’라고 논박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린 교수는 책에서 여러 종류의 다중우주론들이 살아남느냐 폐기되느냐 하는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할 수 있는 검증 포인트를 제시하는 일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한 대목에서 정리된 바는 다음과 같다.


“만일 우주공간이 유한하다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누벼 이은 다중우주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면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도 폐기될 것이다. 또한 끈이론의 수학에서 어떤 불일치가 발견되어 끈이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로부터 파생된 모든 다중우주이론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의 패턴이 거품우주까지 충돌했을 때 나타나는 패턴과 일치한다면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초대칭 입자와 미니블랙홀이 발견되면 끈이론과 브레인 다중우주가 설득력을 얻을 것이고, 거품의 충돌은 경관 다양성(Landscape variety)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우주 초기에 발생한 증력파가 감지된다면 인플레이션 패러다임에 기초한 우주론과 주기적 다중우주를 구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496-497쪽)


이밖에도 여러 검증 포인트와 논거들이 여러 대목에서 제시됐으며, 더 깊이 있는 논의는 이 책의 제7장 “과학과 다중우주: 추론과 설명, 그리고 예측에 관하여”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명쾌하게, 폭넓게…’ 글쓰기 스타일


 

그린 교수는 자신의 세 번째 교양과학서인 <멀티 유니버스>의 집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잡았다고 책의 앞부분에서 밝혔다.

 

“이 책의 목적은 다중우주 가설이 물리학이론에 필연적으로 도입된 과정과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소개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공상과학 같은 다중우주가 현대과학에 어떻게 도입되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또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관측결과들이 다중우주 가설을 통해 얼마나 명쾌하게 설명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제안된 가설의 입지를 위협하는 중요한 의문점들도 함께 소개할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실체에 대한 개념이 더욱 선명하고 풍부해지기를 바라며, 이와 동시에 실체의 경계라는 것이 과학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24-25쪽).

 

그의 저술 의도를 바탕으로 다시 책을 되돌아보니 책의 짜임새가 더 눈에 띈다. 책은 다중우주에 ‘드러난 실체’를 바라보듯이 접근하지 않으면서 다중우주 가설을 만들어낸 우주론적인 여러 근본 물음과 이론의 배경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다. 일반 독자들한테 공상과학의 소재로나 이해될 법한 다중우주를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즉 현실과학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게 도와준다. 다중우주론의 약점과 허점도 아울러 충분히 다뤄어 다중우주를 과장해 이해할 우려를 덜어준다. 미국의 온라인서점인 아마존닷컴의 독자 서평 코너에 이 책의 장점을 칭찬하는 많은 서평들이 올라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닷컴의 독자 서평들을 보면, 많은 독자들이 그가 “남이 쓰는 상투적 은유를 빌려 남발하지 않으면서 ’실제 과학’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 “명쾌하고, 폭넓은 논의를 다루며, 독자의 지적 수준을 배려하는 과학저술의 모범이 된다”는 점, “수학의 개념을 생생한 그림으로 그려 보이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대중적 과학교양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서점인 알리딘에도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의 애독자들이 올린 여러 칭찬의 글을 볼 수 있다.

 

흔히 흥미진진한 책을 읽고나서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또는 마음을 움직인 슬픈 또는 무서운 영화를 보고나서도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난해해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을 읽고나서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재미있다’는 말은 관객이나 독자한테 보거나 읽을 동기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창작자가 말하려는 주제에 빠져들게 하는 어떤 매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린의 책들이 솔직히 말해 결코 쉽지 않은 현실과학의 이론과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재미있다’는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단지 ‘쉽게 풀어썼다’는 점에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여러 독자들이 이미 말했듯이, 명쾌한 설명, 추상적 수학 개념의 시각화, 폭넓고 다양한 논의를 한 권의 책에다 짜임새 있게 구성한 그의 장점은 그가 독자들의 궁금증을 독자들과 함께 풀어나가면서 다중우주에 관한 색다르고도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솜씨 때문에 더 빛나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베스트셀러 과학도서 저술가인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그의 책의 머릿말에서 보여주듯이, 이런 솜씨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각고의 노력 덕분에 얻어지는 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과학교양서들이 ‘작품’으로 호평받을 수 있는 그 이면에는 이들의 작가 정신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추가] 이 글의 마지막 소주제 ""명쾌하게, 폭넓게..." 글쓰기 스타일"에 딸린 글을 추가했습니다. "올해의 과학책" 서평작업을 알리는 '알림'을 글의 맨 아래에 추가했습니다. 2012년 4월27일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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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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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 생명의 느낌이대한 | 2014. 03. 21

      이대한의 책꽂이: '생명의 느낌' 연재 생명 또는 생명과학과 관련된 고전 및 최근 명저들에 대한 독서 에세이. 생명과학 박사과정 이대한 님이 책의 내용이나 주제를 소재로 생명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담으면서 생명 현상에 대한 ...

  • 새책단신: '이것이 힉스다' '사회 속의 과학'새책단신: '이것이 힉스다' '사회 속의 과학'

    오철우 | 2013. 03. 20

      새책 단신  #1.힉스 메커니즘, 힉스 장, 힉스 보손 이것이 힉스다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김연중·이민재 옮김/ 사이언스북스/ 9000원힉스 보손(Higgs boson)은 흔히 "신의 입자"로 불리며 그 검출실험 소식이 대중매체에서도 떠들썩한 화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