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과학자 꿈꾸는 남아공 소녀와 아인슈타인의 편지

이정모 교수의 페이스북 통신

"무엇이 중요한가" 격려의 울림...그러나 계속되는 여성 과학자 처우 문제


이 글은 이정모 전 성균관대 교수(인지심리학)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 중에서 골라 이곳에 옮긴 것입니다. 필자와 협의해 원문을 다듬고 편집했습니다.  -사이언스온



00einstein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어린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책 <아인슈타인 교수님께>(2002)의 표지 일부.



마 전에 영어권의 문화웹진인 <브레인 피킹스(Brain Pickings)에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소녀에게 아인슈타인이 들려준 말: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실렸다. 브레인 피킹스는 불가리아 태생의 마리아 포포바(Maria Popova)가 2006년에 문을 열어 운영하면서 전 세계에서 수많은 독자들이 애독하는 문화웹진이다. 마리아 포포바는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처음에는 영문학을 전공했다가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졸업한 뒤에 범세계적인 문화 웹진 브레인 피킹스를 시작했고 지금도 매주 10여 권의 책을 읽고 웹진과 트위터에 글을 쓰며 지낸다. 그는 저명한 잡지 <더 애틀란틱(The Atlantic)> <와이어드(Wired)> 등에 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최근의 아인슈타인 웹기사는 2002년에 로버트 슐만이 낸 책 <아인슈타인 교수님께: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어린이들이 주고받은 편지(Dear Professor Einstein: Albert Einstein‘s Letters to and from Children)>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여자 어런이들을 위해 다시 쓴 글이다.

 

책 앞쪽의 상당부분은 이미 다른 문헌에서도 다뤄진 바 있는 아인슈타인의 전기와 관련한 연대기 등 자료들이 실렸다. 이어 책의 주제인 어린이와 아인슈타인이 주고받는 편지들에는 아이들의 엉뚱한 호기심이 담겨 있기도 하고 과학과 관련해 얘기할 수 없는 사소한 질문도 담겨 있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편지에 일일이 답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질문과 답변은 아인슈타인 삶의 철학 면면을 보여주거나 한 과학자로서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학문 활동이나 사회문화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에도 어린 소년소녀들이 편지로(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사회연결망 서비스(SNS)가 없었으니까) 질문한 내용에 대해 짧막하지만 위트 있고 통찰력 담긴 답변을 하기도 했다. 편지 내용 중에서 브레인 피킹스가 발췌해 전한 문답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946년 9월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녀 티파니가 보낸 편지]

“지난번 편지에서 제가 잊고 얘기하지 않았는데요, 저는 소녀예요. 여자 아이라고요. 제가 여자라는 것에 대해 저는 언짢게 생각해왔는데, 요즈음에는 점점 포기하고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많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옷이나, 춤, 기타등등을 아주 싫어해요. 저는 말을 좋아하고 말타기를 좋아해요.  과학자가 되고 싶어지기 전에, 오래 전에는  경마 기수가 되어 경마에 참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옛날 이야기예요. (그런데) 제가 여자 아이라고 해서 저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1946년 9~10월 어느날, 아인슈타인이 보낸 짧은 답장]

“나는 네가 여자 아이라는 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단다. 중요한 것은 네가 소녀라는 것을 스스로 마음에 담아 두지(그리고 그런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란다.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니.”

 

레인 피킹스 웹진에 실린 짧은 글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래,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갇히지 않는 것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 시원하지 못한 것은 남아공 소녀 티파니가 "여자이기에" 걱정했던 상황이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방송이나 다른 매체에서 날마다 나오는 편향된, 고전적인 관념으로 다뤄지는 여성의 모습들, 그리고 이런 낡은 고정관념의 여성관에 반발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자각하며 다른 길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는 우리의 수많은 똑똑한 딸들, 그리고 그런 딸을 자녀로 둔 부모의 모습들…, 그들이 걱정하는 여러 모습들이 떠오른다.

 

많은 딸과 부모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전히 인력의 성별 불균형은 계속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에서 남자의 수가 여자의 수보다 훨씬 많다. 해외에서는 과학 분야의 여성 교수 비율을 높인다든지 티이디(TED) 등에서 여성 강연자의 수를 늘린다든지 하여 여성의 과학 분야 진출을 권장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는 여성 과학 인력을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아 왔다. 그래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과학기술 인력의 남녀 불균형은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브레인 피킹스에 실린 짧은 글을 통해 아인슈타인과 어린이들의 편지를 다시 떠올리며,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다시 얘기되는 여성 과학자의 처우 문제를 안타깝게 떠올려본다. 우연찮게도, 오늘(4월18일)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격려했던 아인슈타인이 1955년에 세상을 떠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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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인지과학
인지심리학 전공. 교수 퇴임 전에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심리학사 등 강의했다. 저서로는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 <인지과학: 과거, 현재, 미래>, <인지심리학> 등이 있다.
이메일 : metap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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