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로 태어난 우리나라 첫 곤충기, 그리고 조복성

_올해의 과학책 - 8월 서평___

문지문화원 사이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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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성 곤충기
조복성 지음, 황의웅 엮음 | 뜨인돌


1948년에 출간된 책 <곤충기>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조복성 곤충기>라는 이름 아래 300쪽이 넘은 분량에 원색 화보가 담긴 화려한 책으로 변모했다. <곤충기>에다 조복성 사후에 유고로 간행되었던 <조복성 곤충채집 여행기>를 덧붙였을 뿐 아니라 1948년 조복성이 펴낸 또다른 곤충기인 <곤충 이야기>를 참고하여 엮은이가 상당 부분을 재구성했다.



‘국민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로 빠지지 않고 나왔던 곤충채집, 자연보호를 위해 더 이상 학교숙제로 내주지 않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여름이면 잠자리채를 들고 동네를 뛰어다닌다. 한갓 아이들의 놀이로 여겨지는 곤충채집이지만 사실 생물학 연구는 동식물 채집에서 시작한다. 열대우림에서 녹색 황금이라고 불리는 유용 유전자원을 찾기 위한 전문가들의 손놀림 역시 채집 활동에 다름 아니다.


곤충은 지구에 사는 동물 종 수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며 다른 동물에 비해 채집이 쉽기 때문에 많은 생물학도들이 곤충 채집을 통해 생물에 대한 관심을 싹틔웠다. 비록 일부만 발췌 번역된 것이었지만 어렸을 때 <파브르 곤충기>를 들쳐본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파브르가 평생 동안 진행한 곤충 관찰기록에 기초해 28년에 걸쳐 간행한 <파브르 곤충기>는 탁월한 곤충기이자 그의 삶이 담긴 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60여년 만에 새롭게 빛을 본 <조복성 곤충기>의 엮은이는 파브르에 앞서 조복성을 먼저 읽으라고 주장한다.




곤충에 대한 열정으로 성장한 곤충학자



<조복성 곤충기>는 1948년 말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곤충기>를 다시 펴낸 것이다. 필자인 조복성은 한국 곤충학의 태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고급 과학기술의 연구와 교육을 억제한 총독부의 정책으로 인해 한국인이 과학기술 연구자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과 기자재가 없어도 가능했던 분야의 특성상 생물학 분야에서 상당수의 한국인이 연구활동을 펼쳤다. 한국인 최초의 생물학자로 불리는 식물분류학의 정태현이나 ‘나비 박사’로 명성을 날렸던 석주명, 그리고 강점기에 50여 편이 넘는 곤충 논문을 펴냈던 조복성이 가장 왕성한 연구성과를 이루어낸 한국인 생물학자였다.


조복성은 평양고보 시절부터 곤충 채집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고, 해주의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틈틈이 곤충채집을 수행했다. 곤충 표본을 만드는 남다른 재주와 정교한 그림 실력은, 강점기 대표적인 생물학자로 해주를 방문했던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 모리 다메조의 주목을 끌었다. 조복성은 모리의 주선으로 서울로 전근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모리의 조수가 됨으로써 전업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비록 보통학교 교사보다 못한 처우였지만 모리의 연구를 도우면서 조복성은 생물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고, 모리와 함께 한반도 곳곳은 물론 만주, 몽골, 중국 대륙까지 누비며 곤충 연구에 매진했다.


당시 한국인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그의 풍부한 채집경험은 모리의 조수로서 누리는 특권이었다. <조복성 곤충기> 뒤표지에 “혈혈단신”으로 백두산을 비롯한 한반도와 중국 대륙까지 누볐다고 밝혔으나 당시 백두산이나 중국 대륙은 한국인 연구자가 홀로 다니며 조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실제 조복성의 채집여행은 많은 경우 스승인 모리와 함께했다. 그는 1942년부터 일본 대사관 문화부의 촉탁으로 중국 남경과 항주 박물관에서 특파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중국의 곤충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조복성은 “어디 가든지 내가 전공으로 하는 곤충만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는 게 목적”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다양한 지역의 곤충상을 연구했고, 이러한 폭넓은 경험에 힘입어 해방 후 과학박물관의 관장이 되었다. 비록 고보 사범과 졸업이 정규학력의 전부였으나 그는 곤충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탁월한 곤충학자로 성장했다.




재편집 책에서 다시 살아나는 ‘조복성’



<조복성 곤충기>의 원본인 을유문고 19 <곤충기>는 조복성이 과학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필한 문고본으로, 손바닥만한 크기에 130쪽이 조금 넘은 소박한 책자였다. 이 책이 <조복성 곤충기>라는 이름 아래 300쪽이 넘은 분량에 원색 화보가 담긴 화려한 책으로 변모했다. 이는 <곤충기>에 조복성 사후에 유고로 간행되었던 <조복성 곤충채집 여행기>를 덧붙였을 뿐 아니라 1948년 조복성이 펴낸 또다른 곤충기인 <곤충 이야기>를 참고하여 엮은이가 상당 부분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유문고 <곤충기>는 곤충계의 무장과 전술, 곤충계의 화장술, 곤충계의 성생활, 곤충계의 근로봉사, 곤충계의 식량연구, 곤충계의 악단소식, 곤충계의 경기선수, 곤충계의 사회생활, 곤충계의 모성애와 부성애, 곤충계의 수명 등 10여개 항목으로 구분하여 각각에 해당하는 흥미로운 곤충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조복성 곤충기>는 최고의 미식가 이야기, 최고의 싸움꾼 이야기, 최고의 패셔니스타 이야기, 최고의 뮤지션 이야기, 최고의 스포츠선수 이야기, 최고의 사회건설자 이야기, 최고의 연애고수 이야기, 최고의 모성애와 부성애 이야기 등 8개 장으로 재편성했으며, 각 장에 속한 곤충을 새롭게 추가하는 등 많은 부분을 재구성했다.


또한 문장 역시 상당부분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고쳐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했다. 엮은이의 노력 덕분에 곤충의 변태를 떠올릴 정도로 원래의 책과는 매우 다른 느낌의 책이 되었으며, 그 노력만큼 더 체계적이고 흥미로운 구성을 갖게 되었다. 다만 조복성의 원래 문체나 원본의 곤충 그림은 감상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조복성은 1934년 모리, 평양고보 시절 은사인 도이 히로노부와 공저로 <원색 조선의 접류>라는 도감을 펴냈는데, 여기 실린 화려한 나비 그림은 모두 조복성이 직접 그렸다. 문고본 <곤충기>에는 흑백의 단순한 스케치였지만 곤충 그림이 여럿 실렸는데, 이는 조복성의 그림으로 여겨진다.


이 곤충기는 이 땅에서 쉽게 보이는 곤충들을 다루고 있으며, 평이하게 서술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곤충의 생태를 묘사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에 빗댄 조복성식 해석이 군데군데 담겨 있어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준다. 원본의 머리말에서 조복성은 박물관식의 서술을 피하고 “곤충 생활과 인생”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겠다고 밝혔는데, 곤충을 통해 해방 직후의 사회상도 함께 되새겨보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런 이유로 엮은이는 파브르보다 조복성을 먼저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로, 세상에 나온 지 60여년 후에 다시 간행되었기 때문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와 같은 가치를 지니기는 어렵다. 물론 엮은이가 내용을 재구성하고 첨삭, 정정을 가하고 전문가의 감수를 거쳐 새로운 모양새로 탈바꿈시켰지만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곤충기를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곤충기라는 책 자체보다 필자인 조복성이라는 잊힌 곤충학자를 세상에 다시 알렸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을만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나라 과학사



대학에서 과학사를 강의하면서 종종 학생들에게 한국인 과학자의 이름을 아는 대로 얘기해보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서양 과학자의 이름은 줄줄 대던 학생들이 한국인 과학자 이름 열 명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는 기억할 만한 훌륭한 한국의 과학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는 노벨상에 근접하거나 세계 최초, 최고의 연구업적이나 기술을 개발해내야만 훌륭한 과학기술자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훌륭한 한국인 과학자는 열 명을 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 역사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하는,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사회가 필요로 했던 과학을 묵묵히 해냄으로써 오늘날 과학기술의 기틀을 구축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다. 세계적인 연구성과가 개인의 탁월한 연구역량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불충분한 연구환경에서도 연구나 교육에 매진했던 과학자들은 좀 더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복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일본인 연구자의 조수에서부터 연구활동을 시작했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당당한 연구자로 활동했으며, 신문이나 잡지에 곤충에 대해 평이하지만 위트가 담긴 글을 기고하여 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했던 그의 노력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조복성은 해방 후 고려대학교에 몸을 담고 많은 후학을 길러냈으며, 고려대학교 한국곤충연구소는 곤충연구 및 교육에 대한 그의 열의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현재 우리나라 곤충학자의 상당수가 이곳을 거쳐 갔다. 최근 완역된 <파브르 곤충기>의 역자인 원로곤충학자 김진일도 조복성의 제자였다.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복성 기증자료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여기에는 ‘조복성 임의제본도서’라는 이름으로 그가 직접 분야별로 논문을 모아 제본한 도서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각 동물 분류군별로 별쇄본 논문들을 묶어 하나로 정리한 자료들, 그리고 논문들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있는 그의 메모를 보면서 그의 ‘꼼꼼함’에 감탄하곤 했다. 비록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원래의 색채를 많이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들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조복성이라는 과학자가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조복성 곤충기>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글쓴이/ 문만용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연구교수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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