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더 큰 이야기 세상에 뛰어들기, 과학의 도전

사이언스온 2011.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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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전문기자의 캘리포니아공대 졸업식(2008) 명연설/ 번역 최형순







00Krulwich » 로버트 크럴위치.

 


■ 번역에 앞서



오늘날 우리사 회에서 과학의 위치는 꽤나 특이하다. 과학의 사회경제적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강조되는 데 반해, 과학이 전문화함에 따라 대중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과학이 가진 권위는 오르는데 반해, 그 과학이 설명하는 내용에 대한 대중의 실질적 이해도나 관심이 감소하는 현상은 과학자와 대중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를 테면,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모를 때, 이 말은 돌팔이 약장수들에 의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이들에게 속아 사람들이 약을 사먹고 피해를 볼 경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잃는 것은 과학과 과학자들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없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오늘날 과학이 지닌 권위를 생각하면, 단순히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어렵기만한 물리, 화학, 생물로서가 아니라, 음악, 문학, 미술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교양으로서 과학이 이해되고 소비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상 해왔다. 실제로 이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접한 것이 로버트 크럴위치가 2008년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곳에 소개하는 이 연설이다.

 

과학자가 대중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 과학과 비과학의 대결에서 과학자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는 그 메시지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 솜씨는 언제나처럼 탁월했고, 그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이 연설문을 받아적어 번역을 해봤고, 라디오랩과 크럴위치의 허락을 받아 번역문을 사이언스온에 싣게 됐다.

 


□ 연설자 소개

00Krulwich2로버트 크럴위치 (Robert Krulwich) : 엔피아르(NPR, 미국 라디오 방송국)의 과학 전문기자인 로버트 크럴위치는 재드 애범라드와 함께 ‘라디오랩(Radiolab)’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는 과학, 기술, 경제 같은 복잡한 주제를 명료하고 강렬하면서도 흥미롭게 설명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 “텔레비전 매체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자”로 꼽히기도 했다. <에이비시(ABC)> 뉴스의 특파원으로, ‘나이트라인’ 외에 ‘에이비시 뉴스 투나잇’과 ‘굿모닝 아메리카’ 같은 뉴스 프로그램에도 정기 출연한다. <피비에스(PBS)> 다큐멘터리 5부작인 ‘노바(NOVA) 사이언스 나우’의 진행자 겸 책임편집자로 활동한 바 있다. 에미상, 포크상, 듀퐁상과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과학저널리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

- 옮긴이의 글

 








텍 졸업식에서, 크럴위치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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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설 직접 듣기

▶ 연설 대본


감사합니다. 켄트 크레사, 장 샤모, 주디 캠벨, 쉬프 의원님, 보가드 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205명의 2008학년도 칼텍 졸업생들과 머지않아 이 자리에 앉게 될 수도 있는 14분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모두 축하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에 대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보통 엔피아르나 엔비시 기자가 칼텍에 오게 되면 먼저 세계적 석학들에게 귀한 시간 좀 내달라고 전화로 약속을 잡은 뒤에야, 안내를 받아 자리잡고 앉아서는 ‘지금 이 양반,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을 하며(이런 기분은 아마 여러분도 익숙할 거라 생각합니다) 맹렬히 노트에 적기 바쁘죠.


line » ■ 카이스트 연구원인 최형순 박사가 혼자 듣기 아까운 좋은 내용이라며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졸업식의 연설문을 번역해 사이언스온에 기고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연설자인 로버트 크롤위치 쪽에 이 연설을 우리말로 옮겨 사이언스온에 싣을 수 있다는 허락을 사전에 받았습니다. 번역문의 소제목들은 사이언스온의 자체 편집 과정에서 붙인 것입니다. -사이언스 온

여러분 앞에서 연설을 해달라는 부탁들 받고 처음에는 ‘이봐, 내가 이 학생들한테 해줄 이야기가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뭔가 할 이야기가 떠올랐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할 이야기는 여기에 검정 학사모를 쓰고 앉아 있는 여러분께 곧 일어날 일입니다. 한두시간 뒤면, 여러분은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입은 채로 가족과 친구들과 친구의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삼촌이든 친구든 누군가는 여러분을 보고 “그래, 칼텍에서 그동안 뭘 공부한 거냐?”라고 물어 볼 거에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이러나 저러나 여러분은 이곳에서 4년, 대학원생이면 4년이 아니겠지만, 아무튼 몇년을 보냈으니, 그동안 뭔가는 했겠죠. 예의상 물어보는 게 당연합니다.


00tell1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과학적으로는 까막눈인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들 중 한 사람이, 친척이라고 해봅시다, 과학자도, 공학자도 아닌 이 사람이 생물이나 수학에 대해 뭔가 복잡한 사고를 한 건 고2 때 두 과목 모두 '시 마이너스(C-)'를 받고는 내 평생 생물이나 화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거야라는 결심을 했던 게 마지막이라고 해봅시다. 그렇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여러분이고, 그 사람은 여러분 아버지이다보니,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을 사랑하는 누군가이다 보니, 아니면 다른 할 말이 딱히 없다보니 “그래서 말인데” 한마디를 던지고는 여러분께 그간 뭘 했냐고 물어볼 겁니다.


재밌는 건, 아마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지난 몇 년 간 이곳에서 공부한 것에 대해 설명하려면, 단백질이나 쿼크, 미분, (직각 삼각형의) 빗변 따위의 용어들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열심히 듣는 척을 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 머릿속에서는 그런 단어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과학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보니, 그 사람들은 엔싱크(N Sync)의 '바이 바이 바이' 가사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립싱크 할 수 있지만, 빗변이란 말만 들어도 겁을 먹죠.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누군가가 “그동안 뭘 공부했니?”라고 물어보면, 여러분은 ‘이 사람한테 이걸 제대로 설명할 방법은 없어, 난 설명을 쉽게 할줄도 모르고, 전문용어를 대신할 만한 적당한 어휘들도 없고, 사실 그런 걸 설명할 인내심도 없으니까. 과학을 모르는 사람한테 과학에 대해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렵다고, 게다가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작 뉴턴 경, 바로 그 아이작 뉴턴 경도 중력과 운동의 법칙에 관한 한, 지축을 흔들만큼 놀라운 업적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원리 (프린키피아)>를 대체 왜 그렇게 난해하게 썼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글쎄요,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을 쓰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아는 체 하는 바보(little smatterer)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한다고 설치고 다니는 걸 피하기 위해 그러지 않았소”라고 답했습니다. 아는 체 하는 바보랍니다. 뉴턴이 사용한 표현은 ‘아는 체 하는 바보’였어요. 그는 어렵고 학식 있는 라틴어와 많은 수식으로 책을 씀으로써, 학자들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쓴 겁니다. 바꿔말하면, 아이작 뉴턴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냐 마냐 따위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을 일이 없을 텐데, 아니,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듣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튼 누군가가 여러분 전공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작 뉴턴처럼 굴지 마세요. 절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00tell2사촌이나 삼촌, 또는 친구가 여러분한테 다가와서 “그래, 대체 뭘 공부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비록 설명하기 어렵더라도, 물어본 사람이 정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더라도, 한번 설명해보세요. 왜냐하면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일반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하찮은 일이 아니거든요. 과학자들은 비과학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 이야기는 이 우주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른 이야기들과 경쟁 관계에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다른 이야기들 중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거나, 영화, 신화, 전설 따위의 몇몇은 매우 아름답고 흡입력 있거든요. 과학과 과학자들을 보호하려면, 이런 이야기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경쟁은 전혀 점잖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링 안으로 들어가서 세상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며 치고 받고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창조과학 운동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모르고 있는 건, 그 운동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터키에는 이슬람 창조론자인 아드난 오크타르(Adnan Oktar)라는 사람이 이끄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는 그림으로 가득한 768페이지에 달하는 “생물학” 교과서를 매우 싸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교들이 헐값이라며 그 책을 사서 쓰는 바람에 지금 터키에서는 그 교과서를 매우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책은 아주 쉽게 씌여졌고, 예쁜 그림들도 많은데, 그 그림들은 화석이 진화의 증거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한 그림들입니다.


이 단체에서 펴낸 책들과 시디, 슈퍼마켓 가판대 잡지, 웹사이트를 보면, 네, 심지어는 슈퍼마켓 가판대 잡지까지 펴내고 있습니다, 매우 널리 퍼져 있고 싼 데다 “다위니즘의 피비린내 나는 이데올로기” 또는 “기만적 진화론”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어서, 터키의 고등학교들은 전통적으로 비종교적 학교들인데도 진화와 다윈은 교육과정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2006년에 터키인들을 대상으로 다음 문항을 갖고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다음 문장을 듣고 이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진위 여부를 모르겠는지 답하시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인간은 다른 동물 종에서 발전해 왔다.” 2006년에, 고작 25%의 터키인들만이 이게 참이라고 했습니다. 매우 낮은 숫자이지요. 일본에서는 78%가 참이라고 했고, 미국에서는 겨우 40%가 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터키보다는 높습니다.


터키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그 논쟁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오크타르씨가 그의 세계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어요. 그렇게해서 그들의 블로그들을 폐쇄시켰고, 생물학 교수들이 진화를 가르친다며 그들을 모택동주의자라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모택동주의자라고요? 그러면서 진화론이란 서방 강대국들이 우리를 억누르기 위해 주입한 거짓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들은 창조과학이 아니라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오크타르씨는 최근에 성매매 조직에 연루되어 체포되면서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창조과학은 여전히 터키 전역의 학교에서 교육되고 있습니다. 이걸 먼나라 이야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먼 곳의 일이 아닙니다.


00tell3오크타르 같은 인물은 언제, 어디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이 있는 바로 이곳의 심장을, 칼텍이 그 태초부터 존중했던 가치들을 향해 겨눕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분량의 숙제와 시험을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감각한 여러 교수님들한테서 수많은 과제와 시험, 페이퍼를 받으며 치여 살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악몽 같은 나날들 속에서, 여러분은 선생님들이 여러분한테 두통거리나 던져준 게 아니란 걸 깨닫는 날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분들은 여러분께 과학의 가치, 호기심과 의심, 열린 마음, 실험 결과가 얼마나 맘에 안 들던 간에 데이터가 이끄는 곳을 따라갈 용기, 정직과 절제에 대한 깊은 선망을 심어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누구나 / 어디서 왔고, 언어나 종교가 뭐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와, 나이, 성격이 어떻냐 따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 생각해 보십시오, 이곳은 에고로 똘똘뭉친 사람들과 봉고 연주자, 바이킹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누구나 / 공부하고 배울 생각이 있다면, 실험실에 앉아서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자연의 패턴을 찾기 위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쳐다보고, 또 쳐다볼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던 겁니다.


지루할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사람을 매우 지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너무나 귀한, 세상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는 이야기들을 통해 공격받을 수도 있고, 이야기들을 통해 지켜낼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과학적 실험이란 게 뭡니까?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실제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면서 그 이야기를 시험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피사에 있다고 해봅시다. 때는 1590년이고, 갈릴레오라는 양반이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이봐요!”라며 말을 겁니다. 이런 말투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보시다시피 내 오른손엔 포탄이 있습니다. 이건 아주 아주 무겁죠. 반면에 내 왼손엔 골프공이 있죠.” 아, 골프공은 아니겠네요, 골프가 생기기 이전이니까요. 아무튼 이 양반이 “내 왼손엔 소총탄이 있어요. 포탄보다는 훨씬 가볍죠. 자, 선생, 내가 이 공 2개를 똑같은 높이에서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게가 5배 혹은 10배 차이 나는데도 이 둘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질 거라고 한다면, 가벼운 공이나 무거운 공이나 동시에 바닥에 떨어질 거라고 한다면, 어떻소, 믿으시겠소? 한번 시범으로 보여드릴까요?”라고 말을 겁니다. 갈릴레오가 실제로 이 실험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갈릴레오라는 사람이 여러분한테 이런 제안을 한다면, 여러분이라면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춰서 이걸 보지 않겠습니까?


갈릴레오야말로, 제 입장에서는, 위대한 반(反)-뉴턴입니다. 뉴턴과 달리, 그는 서사에 재주가 있었습니다. 이야기꾼이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뉴튼과 달리, 그는 그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뉴튼과 달리, 그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그토록 고생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임을 설명한 그의 명저 <두 가지 주요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The Dialogues)>를 보면, 그 책은 라틴어로 씌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중을 위해 이탈리아어로 그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대단히 유려합니다. 그의 글은 시적이면서도 도전적이고, 또 동시에 위트가 있습니다.


00tell4그 책은 나흘간 같이 먹고 놀며, 논쟁하고,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를 돌아다니는 세 친구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그들 논쟁의 핵심 주제는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인가? 어쩌면 태양이 그 중심은 아닐까?”입니다. 또 그는 그의 책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산문이 되지 않게끔, 텍스트를 나누기 위해 간단한 선으로 쬐끄만 그림들을 그려 책 머리 여백에 군데군데 넣었습니다. 그 책에는 숫자도 가끔 등장하지만, 책의 3분의 2가 지날 때까지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골치가 아프면 그 숫자들은 대충 넘기더라도 책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갈릴레오의 책은 읽기도 쉬웠거니와, 매우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를 위협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때문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는 자택 구금되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위협한 건 그의 과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엔 그의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그게 그를 유난히 위험한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위대한 이야기꾼인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은 다른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의 구성에 기반한다. 우리 삶은 결국 서사이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그조차도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라디오와 TV 방송을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건 황금시간대의 TV 프로그램에서 끈이론과 다차원, 시공간의 곡률과 초대칭 따위에 대해 한 시간을 떠들 수 있단 겁니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고요. 이런 내용들은 아까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사람들, 여러분의 할머니나 동생, 사촌들에게는 매우 어렵고 기이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도 아주 많은 사람들, 몇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앉아 이를 봅니다. ABC는 이런 걸(시청률을) 기록하거든요, 그래서 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앉아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봐요. 그리고 제 짐작컨대, 그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보면서 신기하다며 혹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몇 분 뒤에 똑같은 채널에서 다음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외계 생명체가 순진한 여성 바텐더의 가슴을 검사하기 위해 반중력 머신에 착륙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금 전 한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서 TV를 보던 사람들이 이걸 보면서도 한 시간 전에 갖고 있던 것과 똑같은 경이감을 갖고 “우와!”라고 하면서, 이 내용도 어느 정도 사실일 거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대해 꼬장꼬장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사실과 허구 사이의 갈등은 TV 시트콤 '프렌즈'의 로스와 피비 사이의 끝없는 말다툼이랑 비슷합니다. 프렌즈가 뭔지는 아시죠? 로스는 화석학자로 공룡을 연구합니다. 피비는 그의 마사지사 친구죠. 그녀는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아요. 보통의 에피소드를 보면 로스는 앉아서 엄지 손가락이 어떻게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하도록 천천히 진화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피비는 이 이야기를 경청하죠. 로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는 “자, 이제 진화가 어떻게 엄지 손가락에 대해 설명하는지 알겠지?”라고 하자 피비는 “그게 아니라 지배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우주선을 조정하길 바라는 걸 수도 있잖아”라고 대꾸합니다.


사람들은 이성에서 환상으로 아주 쉽게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믿으면서, 그 둘 사이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몰입할 수 있기를, 뭔가에 휘말려 휩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야기를 할 때면... 아, 이 모자 무지 신경 쓰이네요. 잠깐만요, 그냥 벗어버려야... 여러분은 안 됩니다, 나만 돼요! 오늘 머리꼴이 말이 아닌데, 아무튼 양해해주세요. 여러분이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할 때면, 세상에는 피비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00tell5시선을 사로잡는 비주얼과 아주 가슴에 와닿는 몇 마디가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직관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들, 여러분의 눈과 귀와 촉각을 통해 말이 된다고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힘이 있어요. 여러분은 하나는 무겁고, 하나는 가벼운 2개의 공이 같은 높이에서 떨어지면 바닥에 동시에 닿을 거란 걸 믿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그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과학이 어려워질수록 적절한 비유는 유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사실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들은 우리의 직관과는 멀어집니다. 우리 감각에 반하고 있어요. 이런 괴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이렇게 단상을 세게 내려치면, 제 손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자와 이 나무의 가장 바깥에 있는 전자가 서로를 밀어낸다고 배웁니다. 전자기력이란 거죠. 전자들은 다른 전자들이랑 어울리는 걸 싫어합니다. 제 손이 이 책상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건, 이 전자 두 부대, 제 손의 전자와 이 단상의 전자들이 스크럼을 짜고는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얼굴과 동기가 있는 존재로 만들고, 이를 미식축구에 비유한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연에 대해 그렇게 설명하면 안 돼. 그건 진실을 왜곡하는 거라고. 진실은 방정식, 그리고 이런 법칙으로 우릴 안내하는 수식 안에만 있다고”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시 갈릴레오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에 대답하겠습니다. 그는 아마도 지식의 근원이 수학이라고 생각한, 적어도 서양 문화에서는,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의 책 <시금자(The Asseyer)>를 보면 그는 “이 우주의 논리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고, 수학이 없다면, 우리는 어두운 미로를 헤매고 있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수학의 가치를 인정한 갈릴레오도 날카로운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름다운 비유를 사용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 미로를 볼 수 있게끔 불을 밝힐 줄 알았던 거지요. 과학이 더 추상적이고 수학적이 될수록, 우리는 더욱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물리학자 앨런 라이트만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발명하는 맹인들”입니다. 그런데 400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비유와 형용사, 그리고 능동태를 사용하는 일을 매우 꺼려하게 됐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많은 이들은 “이것이 관측됐다”가 “우리는 봤다”보다 훨씬 세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사람들은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이 기자라는 양반이 내 이야기를 멍청하고, 만화 같고, 잘못된 내용으로 뒤틀어 버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갑자기 박수를 치는군요. 뭐, 사실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전 이 사람들이 기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까칠하단 걸 알고는 꽤나 즐거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들 중 두 사람인 베르너 하이젠베르그와 에르윈 슈레딩거 사이에 오간 편지들입니다. 슈레딩거는 이미지로 생각하길 좋아했습니다. 그 가장 유명한 예가 바로, 상자 안에 숨어 있는데 꽤나 역설적으로 동시에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고양이 이미지죠. 자세한 건 묻지 마세요. 중요한 건 슈레딩거는 그림을, 하이젠베르그는 숫자를 좋아했단 겁니다. 슈레딩거가 하이젠베르그의 논문들을 읽어보니, 너무 수학적이어서 그는 하이젠베르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시각화가 불가능한 선험적인 대수학 방법적 접근에 아주 질려버렸소.” 그러자 하이젠베르그가 답장을 썼지요. “그래서 어쩌라고?” 뭐, 그렇게 말하진 않았겠지요. “슈레딩거의 연구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역질이 나오.” 구역질 난다는 말은 하이젠베르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겁니다.


00tell6이걸 보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두가지 종류의 진리, 수학적인 진리와 서사적인 진리를 놓고 긴장감이 돕니다. 이쯤에서 여러분 앞에 제 생각이 뭔지 실토를 해야겠는데,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세상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 사실이면서도 복잡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흥분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다양한 층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상기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이야기를 내놓는 겁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확인해보지 않은 의견이 아니라 어렵게 얻어진 정보라는 것, 이 세상을 관찰하며 조심스레 다듬어진 그 무엇이란 걸 알리는 일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우습게 여기는 몇몇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던져놓은 아이디어들이 아닙니다. 물론 이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여러분을 내려다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더 많은 과학자들이 그럴 마음자세가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단어와 그림, 비유를 이용해서 잘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듣고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심없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팽팽한 기싸움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금 놀라울 수 있지만, 끝에 가서는 과학 이야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랜드 캐년의 가장자리에 서서 흐르는 물, 저 멀리 콜로라도에 내린 빗물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흘러내린 물이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계곡과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어떻게 이 아름다운 장관이 탄생했을까?’ 궁금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매우 뛰어난 과학자이자 저술가였던 로렌 아이즐리가 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때 읽었던 구절인데 “빗방울에 숨겨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격렬함”이란 구절입니다. 그랜드 캐년을 다시 내려다봤을 때, 그곳에 흐르는 포효하는 듯한 강물을 봤을 때, 제가 본 것은 먼 옛날의 쏟아지는 빗방울들에 숨어 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격렬함이었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매번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로스를 떠올립니다, '프렌즈'의 불쌍한 로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화석들이 천천히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생명체의 형상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화석 200개를 서류 가방에 담아 와서는 피비 앞에 늘어놓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이제 네 앞에 이 화석들을 다 늘어놓을 거야. 너는 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이 화석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거거든.” 그러자 피비는 말합니다, “정말? 정말 볼 수 있어?” 로스가 대답하기를, “물론이지. 미국, 중국, 아프리카, 곳곳에서 모은 거라고.” 피비가 “그건 몰랐는데”라고 하자 로스는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고 답합니다. 그 순간 피비는, “허! 그럼 이제 중요한 건 누가 그 화석들을 왜 거기에 놔뒀냐는 거네?”라고 말하죠.


보다시피 과학 이야기가 항상 승리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팽팽하게 기싸움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야기를 잘만 하면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로 오는 길에 저는 스미소니안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그 기사는 제가 하는 이야기의 아주 좋은 예입니다. 여러분이 과학자가 아닌 친구와 집 베란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둘이 앉아 있는데 평범한 개똥지빠귀 한마리가 정원으로 날아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 친구에게 말합니다. “저 개똥지빠귀 봤어? 저 개똥지빠귀가, 아니 사실 모든 새들은 공룡의 직계 후손인 거 알아? 저 개똥지빠귀는 말이지 작은 털달린 공룡이라고.” 응? 여러분 친구들도 제 친구와 비슷하다면, 그녀는 “뭐라고? 지금 뭔 소릴... 꺼져”라고 할 겁니다. 그렇지만 꺼지지 마세요. 대신에, 제가 지금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00tell78년 전에, 로키 박물관에서 일하는 밥 하몬이란 사람이 몬타나의 협곡에서 점심을 먹다가, 커다란 바위표면을 언뜻 올려다 봤는데, 그 표면에 아주 작은 뼛조각이 튀어 나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뼈의 일부였죠. 아직까지도 현재까지 발견된 T-렉스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 중 하나입니다. 3년 간 아주 조심 조심하면서 주변의 돌을 깍아내서는, 그 벽에서 이천파운드(약 1톤)짜리 해골을 파냈습니다. 그 협곡에서 나온 그 해골에는 발견자인 하몬의 이름을 따서 밥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협곡에서 그 해골을 내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수송 문제로 인해 다리 뼈 하나를 부러뜨려야만 했습니다. 그 부러진 뼛조각의 일부는 매리 슈바이처라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과학자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에게 보내졌습니다.


덕분에 매리 슈바이처는 우편으로 뼛조각을 하나 받게 된 건데, 그걸 받아 꺼내서는 이리저리 살펴 봅니다. 공룡 밥은 비록 6800만년이나 됐지만, 그녀는 보는 순간 즉시, “이건 밥이 아닌데. 이 공룡은 암컷이라고, 임신 중인 암컷.” 매리는 암컷이 잉태를 하면 태아의 뼈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뼈에 있는 칼슘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류의 경우에는 알을 밴 동안 뼈 안에 아주 특이한 구조가 형성됩니다. 알 껍질에 필요한 칼슘 때문입니다. 매리는 예전에 새를 연구한 적이 있어서, 그 공룡 뼛조각을 보자, 알을 밴 새의 뼈에서 발견되는 구조를 본 겁니다.


그렇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매리는 가장 원시적인 새인 에뮤와 타조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타조 사육사들에게 “혹시 죽은 암컷 있나요? 다리 뼈가 필요한데”라며 연락을 합니다. 몇달 뒤에 전화가 울리고 한 농부가 “아직도 암컷 타조 필요하오?”라고 묻습니다. 매리와 두 조수는 죽은 타조를 가지러 가기 위해 그 농장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이 농부의 굴착기 버켓에 있던 이 타조를 갖고 랠리로 돌아왔죠.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죽은 타조가 운 좋게도 알을 밴 상태로 죽었던 거죠. 그래서 이듬해에 매리는 <사이언스>에 공룡뼈와 타조뼈를 나란히 놓고 거의 동일한 구조임을 보여주는 논문을 펴냅니다.


그 이후로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또 다른 T-렉스 역시 똑같은 칼슘 구조를 갖고 있단 게 밝혀졌습니다. 공룡과 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유사한 점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여기에 여러분 앞마당의 개똥지빠귀는 아주 쬐끄만 공룡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 이후로 매리는 공룡에 대해 더 흥미로운 연구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의 비과학자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을 향해 몸을 앞으로 숙이며 과학자들이 어떻게 뼈와 죽은 새들과 버켓을 놓고 연구하는지, 인내심을 갖고 패턴을 찾는지 듣게 만든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친구들 손에 칼을 쥐어준 겁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그에게 과학자들은 자기 의견이나 내던지면서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구는 족속들이라거나, 과학은 엘리트들의 음모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는 ‘글쎄, 난 이런 (공룡과 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제법 그럴싸하던데’라고 생각할 거고 과학적 방법은 그녀로부터 약간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그가 다음에 또 다시 개똥지빠귀를 보게 되면, 바라컨대, 그는 개똥지빠귀 이상을 보게 될 겁니다. 그는 뜰에서 벌레를 쪼는 작은 새 한마리를 보고는, 창조론자들은 존재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세상으로 6000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이야기 덕분에 그는 안타깝게도 밥이란 이름을 가진 알을 밴 티라노사우러스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개똥지빠귀와 참새와 박새와 까마귀와 모든 새들을 보는 일은 조금 더 신기하고 조금 더 기분 좋은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여러분이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창조론자들은 빛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야기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면 말이지요.


2008년 졸업생 여러분, 캠퍼스 이곳 저곳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학위를 수여할 이 곳, 이 학교는 지적 자유와 진리에 대한 선망, 호기심, 시내 길거리에 피우는 모닥불, 207경기 연속 패배하는 농구팀, 아, 물론 여자 농구팀은 빼고, 2경기 연속 승리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단 이야기 들었거든요, 아무튼 이런 문화들을 지닌 곳이란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학위를 받으면, 여러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드물고, 아주 귀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주 깨지기 쉬운 그 어떤 것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그것을 기념하는 일이란 것을 아십시오. 이곳은 자유를 기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자유인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곳에 오지 않은 이들, 여러분과 여러분의 선생님들이 하고 있고, 그들의 선생님들이 했던 일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여기에 올 일이 절대로 없는 이들을 도우면서 여러분이 받은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몇시간 후에 여러분의 동생이나 숙모님, 엄마가 “여기 있는 동안 뭐했니?”라고 묻거든, 도전해 보십시오. 적당한 단어를 찾고, 적당한 비유를 찾고, 아름다움을 나누고, 여러분 머리와 가슴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세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 번역을 마무리하며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분명한 사실 관계를 좋아한다. 과학자들이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은 이런 식이다. 명백히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사안들을 늘어놓고, 이건 참, 이건 거짓, 이건 참, 이것도 참, 그러니까 결론은 당연히 이거. 그렇지만 크럴위치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과 거짓으로 갈리는 사실 관계의 렌즈만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끔, 아니 꽤나 자주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과학을 단순화해야 하고, 이야기로 구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이 섞일 수도 있다. 이는 정교한 수식과 명쾌한 논리의 힘을 믿는 과학자들에게는 답답한 노릇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적 진리의 왜곡이나 과학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더라도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이 무엇인지, 그게 우리 삶에 왜 중요하고, 또 왜 흥미로운지를 이해시킬 수 있다면, 과학자들 본인이 그만큼 더 많은 우군을 얻는 것이고, 비이성과 비합리적 공격으로부터 그만큼 더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크럴위치의 이야기는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과학자나 일반인 모두 이 글을 통해 서로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옮긴이의 글




□ 번역자

00choi최형순

카이스트 자연과학연구소 연수연구원.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진학 이후 꾸준히 과학의 대중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으며, 올해 초부터 “당신 안의 과학자”라는 제목의 팟캐스트와 같은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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