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살아있는 사례 읽는 재미, 공학에 치우친 과학

_올해의 과학책 - 3월 서평___

문지문화원 사이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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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
유영제, 박태현 등 7인 | 동아시아


‘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일반인들이 교과서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들을 저자들이 안타까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의 이슈들을 담고 좀 더 생활에 밀접한 지식들을 곁들이면 사람들이 생명과학 교과서를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목차는 생물학 교과서들이 다루는 주제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생 시절을 지나고 나면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공부를 강제로 해야 했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 사람들은 ‘교과서’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십상이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애써 공부하는 어떤 분야들을 제외하면 더 이상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도 그렇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면서 생업에 힘을 쏟는 사람의 경우에도 분야를 넘어선 지식을 갖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지면서 어느 한 분야의 좁은 지식으로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움 경우가 많으니 다른 쪽을 기웃거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실마리를 잡아서 골머리 앓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터. 용기를 갖고 새로운 분야로 고개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가 지루한 교과서를 찾아 읽는 이유


자신이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분야를 넘어서 새로운 분야로 넘어갈 때 가장 좋은 길잡이가 교과서일 텐데도 정작 교과서를 읽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의아한 일이다. 왜 최고의 방법이 홀대를 받는 이유가 궁금하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물건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겨운 교과서를 떠올리기 싫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교과서의 유용성을 잊어버린 탓이 더 크지 않을까?


대학 시절,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갔을 때 느꼈던 괴리감은 잊기 어렵다. 별 고민 없던 자연계 학생이었던 내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쓰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용어도 생소했고 약어는 외국어와 같았다. 따라가 보려고 기를 써 보았지만 기초가 부족했다. 밤을 새워 급히 용어만 익혀 사상누각을 쌓았다. 모르는 것은 웃음으로 때우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이후에 시간을 두고 교과서를 공부할 때까지 메울 수 없는 간극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이후로 생소한 분야를 만나면 우선 교과서를 기웃거린다. 조금만 지루한 시간을 참고 견디면 기쁨이 있다. 어설픈 교양개설서보다 훨씬 값진 독서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교과서에는 어떤 분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검증받은 비교적 정확한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다. 그렇다고 교과서가 완전하다거나 가장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검증받은 지식은 새로운 지식에 대해 보수적이다. 새로운 지식이 교과서에 실리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교과서는 교육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의 깊이보다는 설명에 치중한다. 많은 경우에는 분야를 아우르는 설명을 위해서 다루는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나 불평은 교과서를 떼고 나서 할 일이다. 특히 교과서의 지루함은 그 단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어떤 분야이든 지루함을 지나지 않고 쌓을 수 있는 지식은 없다. 그것이 어려운 개념과 씨름하느라 느끼는 지루함이든, 반복적인 연습에서 오는 지루함이든 한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단계를 넘지 않으면 정말 하고 싶은 공부는 시작도 못한다.



'낯선 지식의 길잡이' 교과서는 살아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과학자들 중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지식을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를 여럿 만났는데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 중에서 자연과학 지식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는 하는 경우는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이유. 이런 불균형의 근원은 무엇일까?


읽던 책에서 수식을 만나면 부들부들 떨면서 달려와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보라는 친구가 있었다. 요구는 당당하다. 원래부터 수학을 못해서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들도 제법 수가 되는데, 이들은 숫자나 공식을 만나면 아예 외면을 한다. 살아가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수학이 필요한, 혹은 수학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훨씬 많다. 어떻게 수학으로 쌓은 세상을 수학이 아닌 말로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과학의 기본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쉬운 말로 과학의 세계를 안내하는 것은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곰곰이 따져보면 철학이나 역사학의 어떤 설명들도 기본적인 개념을 모르면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익히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 동안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무식해서 인문학에서 논의하는 복잡한 주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자들이 무식해서 입자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지루한 훈련이었을 뿐이다. 교과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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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와 지식 차곡차곡...'생명' 풍부한 관점은 부족


이 책에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제목이었다. ‘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일반인들이 교과서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들을 저자들이 안타까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의 이슈들을 담고 좀 더 생활에 밀접한 지식들을 곁들이면 사람들이 생명과학 교과서를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목차는 생물학 교과서들이 다루는 주제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생명의 정의, 에너지, 유전, 생태, 생명공학, 의학 등의 주제를 훑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건들을 생물학의 눈으로 읽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물론, 이 책이 지닌 장점은 제목과 목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가 생명과학과 관련된 기본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기다가 에세이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에 생물학적인 지식들을 녹였기 때문에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학 교과서에 의례 등장하는 수식도 없다. 저자들이 모두 생명과학을 응용한 공학 전공자들이라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사례들을 교과서적인 지식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교과서의 단점인 지루함을 없애면서도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들은 대부분 제공하려고 노력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책에 대한 불만은 다시 ‘교과서’ 문제로 돌아간다. 생명과학  교과서, 적어도 대안 교과서를 주장하고 있는 이 책이 가진 편향은 앞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저자들의 전공에서 생겨난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항상성과 물질 대사를 중심으로 설명하는데, 공학적이고 기계적인 이해에 편중되어 있다. 생명을 투입과 산출의 중간에 있는 기계, 혹은 매체로 이해하는 것으로만 생명을 설명한다. 생명공학적 응용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과정에서 보통의 생물학 교과서들보다 편협하거나 불완전한 방식의 설명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만한 분량의 책에서는 방향을 분명히하고 색깔을 갖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제목을 잘못 달았다. 적당한 제목은 ‘생명공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 공학에 치중해서 생명과 관련된 풍부한 논의들을 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과학책의 애독자로서, 올해의 과학책을 3년째 고르려고 애를 쓰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한 궁구를 통해서 잘 쓴 모노그라프를 찾으려고 했다. 교과서를 표방한 이 책을 3월의 책으로 고른 이유는 그 기준과는 조금 어긋나지만 과학 교과서를 일반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내 바람과 저자들의 바람이 한 곳에서 만난 탓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지식을 갖춘 독자가 앞으로 나갈 길은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좀 더 지루하지만, 진지한 교과서로 갈아타고 진지한 생물학적인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 없는 수식에 도전해서 정말로 과학자들이 자연의 비밀을 찾아나가면서 느끼는 기쁨을 느껴보는 것. 또 다른 방향은 이 지식들로 무장하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깊게 다룬 교양 생물학 책에 도전하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접점을 저자와 함께 탐험하면서 희열을 느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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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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