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자연은 속지 않는다, 안전 홍보보다 현실이 우선"

[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위험사회'를 지켜보며 ]


 

 

00fukushima33 » 후쿠시마 제1원전의 3호기에서 일어난 수소폭발 직후의 영상. 출처/ Digital Globe

 

 

성공적인 기술을 위해서는 현실이 홍보에 우선해야 한다. 자연은 속지 않기 때문이다 --리처드 파인만(1918~1988), 1986년 챌린저호 폭발사고 조사에 참여해

 

 

 

연일 들려오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불길한 보도를 듣고 있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과연 원자력 발전은 안전한가?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은 보통 원자력 발전의 원리나 안전 장치와 같은 물리적 요소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뤄진다. 이런 측면만 보자면 원자력 발전은 다른 발전 기술에 비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술을 다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란 좁게는 기술자와 과학자를 말하지만, 넓게는 정치가와 관료는 물론 시민까지 포함한다. 특히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시민의 광범위한 동의 아래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리적 요소에서 인적 요소(human factor)로 관점을 바꾸어본다면 원자력 발전은 다른 종류의 기술에서 보기 드문 위험들이 존재한다.

 

 

시민과 전문가의 판단이 엇갈리는 원자력 안전


민주사회에서 원자력 발전을 다루는 데 가장 큰 난관은 시민과 전문가들의 판단이 크게 엇갈린다는 데 있다. 원자력 발전을 포함해서 30가지 위험 요소에 순위를 매기게 했을 때 시민들은 원자력 발전을 가장 위험한 요소로 꼽지만, 전문가들은 자동차를 가장 위험하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뽑은 순위에서 원자력 발전은 20위에 지나지 않는다.1)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문가와 시민들이 사안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전문가들에게 ‘위험’은 명확히 정의할 수 있고 또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런 식으로 기술의 위험성을 측정할 때 가장 주요한 잣대는 그 기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이것은 위험을 판단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위험을 좀 더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이때 두 가지 축이 결정적이다. 하나는 알 수 없는 위험이다. 새롭고 잘 알려져있지 않으며 통제불능하고 비자발적으로 위험에 휘말리게 하는 것들을 말한다. 디엔에이(DNA) 조작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다른 요인은 끔찍한 위험이다. 이것은 무섭고 두렵고 치명적이며 파국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비행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또다른 축을 덧붙이자면 낙인(stigma)이 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은 이 세 축 모두에서 극단적인 위치에 있다. 원자력 발전은 대중에게 알 수 없고 끔찍하며 낙인 찍힌 위험이다.2)

 

 

'제한적 합리성'은 현실세계 인간의 조건


이러한 위험 지각(risk perception)의 특성은 실제로는 전혀 위험하지 않은 ‘혐오시설’들을 지역민들이 자기 동네에 들여놓기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직관적 판단은 종종 무지나 비합리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대중의 공포에 편승하기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이것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들은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갖고 있다. 인간의 지능은 모든 종류의 문제를 풀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화해온 환경 속에서 특수한 문제들에 맟춰져 있다. 위험에 대한 직관적 판단도 이러한 문제들에는 잘 맞지만 현대 사회에서 창출된 또 다른 문제들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무제한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라는 게 있기나 했을까?


대중은 원래 무지하고 비합리적이다.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한 걸음만 벗어나면 인간인 이상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무시할 수도 없고 편승해서도 안되는 전제다.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작동하려면 이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정확히 말하면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위험 관리의 결정적 요소는 '신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학자들은 과학 기술과 관련된 위험을 공공적으로 다루는 문제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신뢰라고 지적한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간과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 정부나 발전소가 정보를 숨기고 위기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신뢰를 잃는다. 반대로 정보를 공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위기에 대한 대책이 있으면 신뢰가 쌓인다. 하지만 신뢰를 잃기는 쉬워도 쌓기는 어렵다.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소를 폐쇄할 권한을 주는 것이 신뢰를 가장 많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것은 발전소에 대한 조사가 미뤄지거나 직원들이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정도로도 파괴된다.3)


신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정부나 발전업체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정보가 널리 공유되고 그러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대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민주적 통제를 이뤄내는 것이다. 이것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민주사회에서 위험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민주적 통제는 단순히 당위적으로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점을 간과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원자력 발전이 전기 생산량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프랑스의 경우 시민들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통제감도 크고 정부와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도 높다.4)

 

 

인간이 다루기엔 너무 복잡한 기술


이제 좀 더 직접적인 문제로 들어가보자. 미국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의 조사에 참여했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성공적인 기술을 위해서는 현실이 홍보에 우선해야 한다. 자연은 속지 않기 때문이다(For a successful technology, reality must take precedence over public relations, for nature cannot be fooled.)”5)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정보를 감추고 거짓된 홍보로 대중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연은 속일 수 없다.


원자력 발전은 대체로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안전을 위해서는 복잡한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다시 제한된 합리성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발전소 바깥의 대중들이 원자력 발전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발전소 안의 기술자들도 이러한 안전장치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기가 버겁다.


00TMI21 » 노심융해의 중대사고를 겪었던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의 복잡한 제어실 장치들. 출처/ TMI 25 years later(2004)에서 재인용, 원본 NRC 1980 보고서

원자력 발전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모두 결정적 원인을 사람이 제공했다.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 문제는 기술자가 조작 실수로 시작되었다. 보통이라면 안전 장치인 ‘비상 노심 냉각 장치(emergency core cooling system:ECCS)’가 대응을 했겠지만, 당시 체르노빌 원전은 실험을 위해 ECCS를 꺼놓고 있었다. 스리마일 원전도 비슷한 실수로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운전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ECCS를 꺼버렸다. 기술도 안전 장치도 문제가 없었지만 사람이 그 모두를 망가트렸다.


이런 경우에 보통 사람들은 실수한 사람을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복잡한 기계를 다루기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실수는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기술 자체에 있다. 원자력 발전이 아니라도 복잡한 기술이 초래하는 실수로 인한 위험은 이미 도처에 있다. 미국 국립 의학 연구소가 199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년에 실수로 죽는 환자가 4만 4천명에서 9만 8천명에 달한다. 이것은 미국 내 교통 사고 사망자 수를 훨씬 초과한다.6)


컴퓨터나 다른 전자기기를 사용해보면 일상적인 용도로 설계된 물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워 한다. 한 가지 기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도 다른 기기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세탁기 앞에 서면 당황하기 십상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기술자들과 병원의 의료진은 모두 훈련받은 전문가들이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복잡한 기술 앞에서는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모두 인간의 사고 능력이 저하되는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다.

 

 

하나의 역설: 안전해질수록 위험해진다?


체르노빌과 스리마일의 교훈 덕분에 원자력 발전소는 더욱 안전하게 설계되었고 복잡한 장비들도 좀 더 인간이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바뀌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른 역설이 생겨났다. 원전이 안전해질수록 사고에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이번 지진은 매우 심각한 자연재해였지만 일본인들은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늘 지진에 대비한 훈련을 하고 지진도 자주 있기 때문에 비록 더 큰 규모이기는 했지만 경험한 바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원전 사고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동안 안전하게 관리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고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기술의 복수'가 시작된다. 문제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정부 고위층까지 사고 대처에 개입하게되는데,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정책결정권자들이 복잡한 기술적 사항들을 이해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대중들도 마찬가지로 공황에 빠지게 된다.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넘쳐나는 정보에 압도되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에도 시작은 지진이었지만 사태에 대처하는 와중에 크고 작은 실수가 일어났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TEPCO)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정보를 은폐하거나 말을 바꾼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신뢰도 붕괴되었다. 몇몇 국가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자국민에게 대피를 권고하기도 했다.


사후에 돌이켜보거나 외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무능하게 대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무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무능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이다. 대규모 지진과 그에 뒷따른 엄청난 피해 속에서 벌어진 원전 사고에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정부가 있을 수 있다면 일상적으로 원전 사고에 노출된 그런 국가에나 가능할 일이다.

 

 

마법이 필요한 때


원자력 발전은 물리적 요소만 보자면 매우 안전한 기술이다. 하지만 발전소 안팎에서 이 기술을 운영하는 인간과의 접점에서 위험이 생겨난다. 이러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밖으로는 민주적 통제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안으로는 복잡한 장치를 인간이 실수 없이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벌어지더라도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기술자, 관료, 정치가, 시민들 모두를 훈련시켜야 한다.


괴테의 시에서 한 마법사의 제자는 스승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물을 긷게 한다. 그러나 제자는 마법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침내 마법사의 작업장은 물바다가 되고 만다. 우리 인간도 마법사의 제자처럼 우리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불러낸 것은 아닐까? 괴테의 이야기는 외출에서 돌아온 마법사가 사태를 정리함으로써 어쨌거나 더 큰 피해없이 마무리된다. 후쿠시마 원전의 안팎에는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분투하는 수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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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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