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 시절 통일벼의 녹색혁명, 박정희의 농업정책

'통일벼 개발자' 허문회 교수 별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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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벼의 개발은 학문적으로 보아도 세계 벼 육종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허문회는 포기하지 않고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교배 조합을 시험한 결과 전 세계의 벼 육종가들이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 녹색혁명의 사례에서 보듯 과학기술의 혁신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언제나 혼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법 등 다른 사회 제도와 함께 작동함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특정 과학기술을 물신화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와 소통하는 양상을 왜곡시킴으로써 결국은 그 과학기술이 지닌 장점마저도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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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통일벼'를 다시 생각한다

 

 

 

 

지난 11월24일, “통일벼”를 개발한 허문회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향년 여든세 살로 별세했다. 그가 개발한 통일벼와 그 후계 품종들은 1970년대에 전국에 보급되어 비약적인 쌀 증산을 이끌었다. 1977년 역대 최고의 수확을 올려 정부가 “녹색혁명 성취”를 선포할 당시에 쌀 생산량은 1971년과 비교하여 무려 50%가 늘어났으며, 이 무렵의 농촌 가구의 평균 명목소득은 통계상으로 도시 가구를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벼라는 이름이 항상 이와 같은 빛나는 성취와 맞물려 기억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통일벼는 유신 시대 농정의 공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또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통일벼라는 이름,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허문회라는 이름을 낯설어 할 것이다. 통일벼가 한국 농촌과 농업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작지 않은 것이건만, 어째서 통일벼라는 이름은 먼 과거의 일처럼 희미하게 기억되는 것일까? 그리고 통일벼를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00HMH » 생전의 허문회 교수. 그는 생전에 27번째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자로 선정했다. "허문회는 포기하지 않고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교배 조합을 시험한 결과 전 세계의 벼 육종가들이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렇게 수백 가지의 교배 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줄기의 길이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벼의 유전 연구에 이정표를 세웠다."(글 본문에서)

 

 

 

“녹색혁명”과 한국

 

품종개량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것은 사실 한국 뿐 아니라 1960년대의 개발도상국에서 널리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냉전 체제에서 미국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신생 독립국들이 공산주의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로스토우(Walt Whitman Rostow)를 비롯해 미국의 개발 이론가들은 농업 생산력을 높여 농촌의 절대 빈곤을 해결하면 산업화를 위한 기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이 농민들 사이에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말하자면 미국이 생각했던 “녹색혁명”은 신생독립국의 “적색혁명”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록펠러재단이나 포드재단 등은 개발도상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지원했다. 록펠러 재단이 멕시코 정부와 협력하여 추진하던 밀 연구 계획의 책임자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기존 품종보다 키가 작은 '난쟁이 밀(dwarf wheat)'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난쟁이 밀은 줄기가 짧고 빳빳하므로 더 많은 비료를 주어 더 크고 무거운 이삭이 달려도 수확할 때까지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난쟁이 밀은 멕시코를 비롯하여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고 이들 나라의 밀 생산량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볼로그는 녹색혁명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난쟁이 밀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중반에는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기적의 쌀”로 일컬어진 IR8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난쟁이 벼가 개발되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나라들에 새로운 품종을 보급했다.

 

00Norman » 노먼 볼로그와 그가 개발한 난쟁이 밀.   00rice » 1962년 국제미작연구소를 방문한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오른쪽)과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가운데).

   

박정희 정부는 세계적인 녹색혁명의 유행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이를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쌀이 녹색혁명을 이끄는 나라들에서 재배하는 것과 다른 종류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쌀알이 짧고 차진 “자포니카” 품종의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 정도이며 대부분의 다른 아시아 나라들은 길고 찰기 없는 “인디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자포니카 쌀에 대한 연구는 이미 일본에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빈곤선을 벗어나지 못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위해 인디카 쌀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였다.

 

 

 

허문회와 “통일”의 개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녹색혁명을 이루려는 시도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희농 1호”의 실패 사례다. 이것은 원래 이집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나다(Nahda)”라는 품종이었는데, 1965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그 종자를 한국에 몰래 들여왔다 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이름의 “희” 자를 떼어 이름을 붙여 줄 정도로 이 품종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후와 잘 맞지 않았던 탓에 결국 희농 1호는 농가에 보급되지도 못한 채 폐기되었으며 박정희는 이후로는 다른 품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허문회가 IRRI에 벼 육종을 연구하러 간 것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나다의 종자를 들여오기 직전인 1964년 여름이었다. 허문회는 미국 벼 육종의 최고 권위자였던 헨리 비첼(Henry M. Beachell)에게 벼 육종을 배우고자 IRRI로 찾아갔고, 곧 연구소 간부들의 신뢰를 얻어 2년 동안 IRRI의 품종 개량에 참여했다. IRRI에서 개발한 키 작은 다수확 인디카 품종을 한국에 도입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허문회는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우선 교배한 뒤 그것을 다시 다른 인디카 품종과 교배하여 안정된 품종을 만드는 전략을 시도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해 얻은 종자는 마치 노새와 같이 씨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중 일부 불임이 아닌 종자를 다시 인디카와 교배하여 번식력을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66년 봄에는 IRRI의 유명 품종들과 비슷하게 키는 작고 이삭이 크지만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뒷날의 통일벼다.

 

통일벼의 개발은 학문적으로 보아도 세계 벼 육종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일본 농학자들이 1920년대 벼를 후반 인디카와 자포니카라는 두 갈래로 분류한 이래, 두 아종(亞種)을 교배하면 불임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었다. 허문회가 IRRI에서 난쟁이 자포니카를 교배하고자 했을 때에도 연구소의 일본인 동료들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문회는 포기하지 않고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교배 조합을 시험한 결과 전 세계의 벼 육종가들이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렇게 수백 가지의 교배 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줄기의 길이를 결정하는 유전자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벼의 유전 연구에 이정표를 세웠다.

 

희농 1호의 실패로 조바심을 내던 박정희 정부에게 허문회의 연구 결과는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새로 농촌진흥청장에 취임한 김인환은 허문회가 개발한 품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1970년 말에는 유망 개체들이 엄선되어 “통일”이라는 품종명을 받고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통일벼는 기존의 자포니카 품종들과 비교할 때 평균 30% 이상 높은 수확량을 올려 당국자들을 들뜨게 했다. 특히 박정희는 통일벼가 찰기가 없어 인기가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무기명으로 이루어진 국무위원 시식회에서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적고 맛이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둘러 보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통일벼는 1973년부터 재배 면적을 급속도로 늘려 나갔다. 1970년대 중반이면 통일벼는 물론 통일벼를 바탕으로 그 형질을 개량한 후계 품종들이 여럿 선을 보였다. “유신”, “조생통일”, “통일찰”, “밀양21호”, “밀양23호” 등이 다양한 지형과 기후에 맞춰 개발되어 1977년 무렵이면 전국 논의 대부분이 통일형 품종으로 채워지기에 이르렀다. 1977년에 정부는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하고, 쌀의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초과하여 해외에 수출도 하게 되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00rice2_ParkJH » 1971년 2월5일 실시한 'IR667('통일'의 육성번호) 밥맛 검정 조사표'. 원래 무기명이 원칙이었으나 박정희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서명을 했다고 한다. 김인환, 한국의 녹색혁명(농촌진흥청, 1978), 49쪽.

 

“통일”이나 “유신”과 같은 이름을 보면 이들 신품종이 유신 정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통일형 품종을 매개로 한 증산운동은 유신 정권이 농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통일벼 보급은 모두 농민의 협조와 참여에 비례하여 정부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자포니카 품종을 추곡수매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통일벼 재배를 적극 권장했다. 통일벼 재배에 협조한 농민들은 현금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계 소득을 늘리고 나아가 시장 경제에 통합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모든 농민이 통일벼 재배를 반긴 것은 아니었지만, 통일벼 보급과 수매 사업을 통해 농촌에 현금이 돌게 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1970년대에 생활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느꼈던 것 또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사실이다.

 

 

 

성공 이면의 갈등

 

그런데도 1970년대 후반 내내 통일형 품종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궁극적인 원인은 역시 밥맛이었다. 온대 기후에 적응하도록 개량되기는 했지만 통일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디카에 가까운 벼였다. 찰기 없는 밥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고, 그 결과 통일쌀은 시중에서 자포니카에 비해 한결 낮은 값에 팔리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통일벼의 후계 품종들은 거듭된 품종개량을 통해 낟알의 길이도 줄이고 찰기도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한번 형성된 소비자의 선입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통일쌀의 낮은 시장 가격은 생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통일쌀의 시장 가격은 심하게는 속칭 “일반미”의 절반 가까이까지 낮게 형성되었는데, 이 경우 통일벼로 두 배 가까운 수확을 올려야 통일벼를 재배할 충분한 경제적 동기가 생기는 셈이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쌀 수확량이 늘어나고 통일형 품종 재배 면적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통일벼를 회피하고 자포니카를 선택하는 농민들이 점차 늘어났다. 특히 시장 경제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정부의 추곡수매에 의지하지 않고도 판로를 확보할 수 있는 농민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므로 자포니카 재배가 성행했다. 1970년대 말 통일벼 재배를 강권하는 정부에게 눈엣가시 같던 존재는 경기도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일본 품종 “아키바레”였다. 해마다 모내기 철이면 아키바레를 몰래 심었다가 농촌지도소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농민의 이야기가 신문에 오르내리곤 했다. 정부가 아키바레를 밀어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아키바레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더 깊이 각인되었다.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아키바레를 더 적극적으로 찾았고, 미곡상들은 정부의 수매가보다 높은 값을 약속하고 농민들에게 아키바레 재배를 권유하곤 했다. 결국 통일벼가 퇴장한 1980년 이래 아키바레는 가장 인기 있는 품종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군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통일벼 신화 이면의 숨은 수혜자는 어쩌면 아키바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쌀 이외의 작물이었다. 통일벼로 쌀 증산을 추진하는 사이 다른 곡식들의 자급률은 꾸준히 낮아졌다. 일부는 소득 증대에 발 맞추어 낙농과 축산이 성장하면서 사료용 곡물의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쌀 증산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음으로써 보리와 밀의 생산 기반이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통일벼의 전성기이자 쌀 자급을 선언했던 1977년의 전체 곡물 자급률은 60퍼센트 전후로 떨어졌으며, 오늘날은 30퍼센트를 밑돌고 있다.

 

 

 

혼란 속 퇴장, 그리고 통일벼에 대한 기억

 

1978년부터 1980년에 걸친 3년은 통일형 품종에게는 시련의 시기였다. 새로 개발하여 야심차게 보급한 품종들이 각종 병충해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농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1980년에는 이상 저온으로 전국적 흉작을 기록했는데 역시 통일형 품종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부당한 집권 과정에서 이미 각종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던 신군부는 통일벼를 퇴출시키는 것으로 농촌 민심을 달래고자 했다. 정부의 지지를 잃은 통일형 품종은 빠른 속도로 그 세를 잃어 80년대 후반에는 사실상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통일벼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마다 엇갈린다. 통일벼 덕분에 집안을 일으켰다는 농민들도 많고, 통일벼를 강제했던 국가 권력이 지긋지긋하여 유신 정권이 무너지자 쾌재를 불렀다는 이들도 많다. 도시에서도 수입이 넉넉했던 달이면 꼭 돈을 모아 일반미를 사 먹었다는 이들도 있고, 맛은 없었지만 애국하는 마음으로 통일벼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이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통일벼는 좋은 벼였느냐 나쁜 벼였느냐”는 식의 질문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통일벼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두드러지는 품종이었고, 그 장점과 단점은 결국 유신 시대 농정이라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신 시대 농정의 궁극적인 문제는 특정 품종을 권장했느냐 억압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시간이 갈수록 경직되어 농민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통일벼가 보급 초기에 거둔 성공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초기의 성공에 확신을 가진 농정 담당자들은 통일벼를 물신화하게 되었고, 통일벼를 핵심 고리로 성립된 쌀 증산 정책은 점점 큰 관성을 얻게 되어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70년대 말의 행정가들은 육종가들의 조언도 무시하면서 성급하게 새 품종을 확대 보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지점에서 1978년에서 80년에 이르는 실농(失農)은 예고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세대 전 통일벼의 이야기는 과학기술이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녹색혁명의 사례에서 보듯 과학기술의 혁신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언제나 혼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법 등 다른 사회 제도와 함께 작동함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특정 과학기술을 물신화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와 소통하는 양상을 왜곡시킴으로써 결국은 그 과학기술이 지닌 장점마저도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기여하되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항상 과학기술에 대한 공론의 장을 남겨 두는 것, 그것이 통일벼의 사례를 보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KTH글쓴이/ 김태호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과학기술사)   오늘날 한국 사회의 뼈대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인 1970년대에 과학기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통일벼와 증산체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으며 그밖에 한글 타자기의 역사, 기능올림픽과 기술자 담론의 형성 등에 대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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