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제국주의와 과학의 발전' 두 시각의 혼란스런 충돌

과학과 제국주의 ③

① - 8월에 다시 생각하는 '제국주의, 과학, 과학사'

 ②- 제국의 과학과 식민지의 과학 어떻게 발전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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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인가?

    과학사에 대한 탐구는 과학자의 현실적 조건과의 연관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점을 1부에서 살펴보았고, 서양의 제국주의와 함께 과학이 식민지로 정착되는 과정을 2부에서 살펴보았다. 과학사에 대한 이해는 과학자가 과학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과학활동을 연구와 논문 등의 좁은 범위로 한정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서양의 과학이 식민지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독립적인 과학의 전통은 과학자들의 전방위적 투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학 전파의 3단계를 지나 제도적 정비와 과학의 문화적 속성까지 겸비한, 즉 독립적인 과학전통을 지닌 비유럽의 국가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1) 그리고 한국은 여전히 그런 독립적인 과학의 전통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살펴보기 전에,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분명히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를 중심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의 속성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로버트 머튼이 분명히 명시한 과학의 제도적 규범들과 기술적 규범들조차 구분되지 않고 혼용된다.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과학의 제도적 측면을 연구한다. 제국주의가 어떻게 식민지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과학은 제국주의를 위해 어떻게 봉사했는가에 대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서 조금 더 강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제국주의라는 정치·경제적 신념체계가 과학의 지식체계 자체, 즉 기술적 규범의 내용들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한다.2) 우선 앞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제3의 관점, 즉 과학이 제국주의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리고 그 관점 하에서 과학과 제국주의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역사적 사례들을 훨씬 폭넓게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됨을 보일 것이다.      

제국주의의 시녀로서의 과학

  우선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 과학이 제국주의의 팽창에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관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방식의 사유는 제국주의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소유자들은 제국주의와 과학의 관계를 다루기 위한 초석으로 과학에 대한 매우 느슨한 정의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과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이를 ‘과학의 사회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과학 혹은 과학적 지식체계는 생산을 위한 인간의 투쟁과정 속에서 발전해온 지식의 결정체다.3)
  이 구절은 마오쩌뚱의 유명한 연설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개념적으로조차 분리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개념적인 분리는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고, ‘기술’은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이나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으로 정의된다.4) 물론 이렇게 단순한 정의만으로 과학과 기술의 구분과 그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적 구분만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정의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과학과 기술은 역사적으로 탄생한 시기가 다르다. 기술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인간 생활양식의 일부다. 돌도끼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인터넷의 발명까지, 기술이란 인류의 전체 역사와 분리한 채 생각할 수 없다. 반면 과학은 17세기 이후 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 단 한번 우연히 탄생한 지식체계이자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론적 체계다. 만약 마오쩌뚱의 정의대로 자연과학이 생산을 위한 투쟁과정 속에서 등장한 지식의 결정체라면, 그 정의는 기술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함축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정의를 따르면 과학은 인류가 원시인일 때부터 존재해왔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과학이 지닌 가치들은 쉽게 과학사회학자들의 사회구성주의의 틀 속에서 해석되어 버리게 된다. 과학기술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국내의 학자들은 이러한 오류를 항상 저지르고 있다.   둘째, 이러한 관점은 과학의 탄생을 결정론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를 따라 과학도 문화적 특수성이나 정치·경제적 특수성에 상관 없이 모든 문명에서 등장해야만 하는 필연적 귀결이 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의 탄생에서 작동했던 모든 우연적 요소들을 제거해야만 이러한 견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로 이미 1부에서 중국에서 과학문명으로서의 자격을 발견하려 했던 조셉 니담의 시도를 비판한 바 있다.5) 간 밤에 옆집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해서 왜 다른 집들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는 없다.6)   셋째, ‘과학의 사회성’을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마오쩌뚱이 중국에서 혁명을 준비하던 당시에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물론이 확산되어 나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과 동치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 혹은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이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당시에 통용되던 과학의 통념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다. 즉, 자연과학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변증법적 도식 안으로 종속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서 과학이라는 개념은 “과학지식과 과학활동의 총화로서의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인식과 과학지식이 응용되고 물화된 형태로서의 기술에 대한 인식 모두를 포괄”한다.7) 따라서 마오가 인식한 과학이란 마르크스주의적 과학이었다. 마오에겐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과학이었던 것이고, 이 틀 속에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동류로 취급된다.8)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점보다 유사성을 강조하는 태도, 즉 자연과학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성찰 없이 아전인수격으로 자연과학의 성격을 규정해버리는 태도는 논의할 가치도 없이 무의미하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소유물이 소중한 법이다. 학자도 인간이며, 자신의 학문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다른 분과의 학문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윤리적 황금률이다. 따라서 세 번째 문제점은 기각하고, 첫 번째 문제점이 발생시키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오해가 주로 제국주의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왜곡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9)   과학과 기술을 모호하게 구분하는 관점에서는 “과학은 제국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고 진보할 수 있었다”라는 주장이 옹호된다.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회구성주의의 견해를 차용한다. 토마스 쿤의 역사적 과학철학의 입장에서 과학자 사회의 비합리적인 요소를 수용하고, 에든버러의 ‘스트롱프로그램’으로부터 모든 학문의 성격은 동일하다는 강한 상대주의적 입장을 받아들인다. 과학활동의 기술적 규범들은 제도적 규범들과 마구 뒤섞인 채 사용된다. 과학이 외부의 에너지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기이한 존재는 아니지만,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생명체와 같다고 유비해 본다면,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투과성 막은 존재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견해를 지닌 학자들은 그 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자들은 정부와 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비를 타기 위해서, 더 좋은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의 가치관 속으로 함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통제에 놓였을 때 과학보다 더욱 위험하게 인식되는 것이 기술이다. 유전자 조작식품, 줄기세포 치료, 컴퓨터 바이러스, 핵폭탄처럼 우리가 과학기술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버리는 과학과 기술 중에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영향력에 놓였을 때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은 기술적 측면들이다.   따라서 위의 관점을 주장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기술의 오용을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사례로 등장시킨다. 당연히 산업혁명과 전지구적 산업화는 제국주의의 발판이 되었으며, 과학은 이 과정에 봉사했고 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1,2차 산업혁명 모두가 과학에서 기술로 이어지는 단선적 과정에 의해 등장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한 방식의 단순한 과학과 기술의 종속적 이해는 이미 20세기 후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10}}   특히 위의 관점에서는 경제적 요소가 과학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목된다. 당연히 제국주의의 팽창과정에서 경제적 이념으로 기능했던 자본주의와 과학의 관계가 거론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식민지에 도입해서 그들을 착취한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의 과학제도들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식민지에 과학기술을 보급했을 뿐이다. 따라서 제3세계의 과학발전은 제약 속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제국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과학은 제국주의의 틀 속에서 발전해 나가야만 했다.{{11}}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00song » “새 못되야 저 하늘 날지 못노라/그 옛날에 우리는 탄식했으나/프로페라 요란히 도는 오늘날/우리들은 맘대로 하늘을 나네/(후렴)과학 과학 네 힘의 높고 큼이여/간데마다 진리를 캐고야 마네”. 홍난파 작곡, 김안서 작사의 '과학의 노래'.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로웠던 과학

  제국주의의 팽창에 과학이 그리고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봉사했고, 식민지의 과학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나아가 과학의 지식체계의 내용조차 당시 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위의 견해와는 반대로, 과학의 내용만은 제국주의에서 보호되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입장을 ‘과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부르도록 한다.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표현된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과학도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지식의 내용만은 제국주의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관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개념적, 실천적으로 구분시켜야만 한다. 과학은 순수과학(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리학)과 응용과학 (공학, 농학, 의학)으로 구분된다. 순수과학은 또다시 정밀과학(천문학, 물리학)과 비정밀과학(생물학, 지리학) 등으로 구분되어야만 한다. 과학의 분과다양성을 무시하고 과학을 물리학을 중심으로 정의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역사적으로 물리학이 근대과학의 모습을 최초로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과학의 분과마다 다루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근대과학의 모습을 갖추어나간 과학의 역사적 발전 경로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밀과학의 영역에서 과학과 제국주의를 다루려는 학자들의 의도는 어쩌면 응용과학의 영역이 사회적 압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를 경영하려는 정책결정자들에게 응용과학은 산업에 직결되는 유용한 학문이기 때문에 국가가 목표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그 통제 하에 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응용과학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기술, 그리고 산업의 측면들은 제국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제국주의의 초창기에 식민지의 자원과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지리학자와 박물학자들 역시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반면에 이미 근대과학의 모습을 확실히 갖추고 있었던 천문학과 물리학의 영역은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고 제국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의 지식내용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정밀과학의 지식내용이 제국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주장이 도출된다.{{12}}   정밀과학에 한정해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은 ‘과학의 순수성’ 옹호론자들의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단점이라면 과학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장점이라면 지나친 상대주의적 관점에 빠지지 않은 채 과학의 소박한 객관성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사회학자로서가 아니라 과학사가로서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에 접근하는 학자들일수록 이러한 관점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1부에서 살펴본 것처럼 조지 사튼에 의해 정립된 과학사연구는 과학사로부터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과학사회학과 과학사의 갈등은 오래된 것이다.      

범주적 오류의 되풀이

  사회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응용과학 혹은 공학과 기술의 영역에서는 과학과 제국주의의 다양한 상호작용이 관찰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분과과학이 역사적 발전경로에서 자신만의 독자성을 확보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 발견된 꼬마RNA들과 이 발견이 생물학의 지형을 바꾸는 데에 어떤 사회적 압력이 존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양 진영의 학자들은 범주적 오류 속에서 공허한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과 제국주의, 혹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다룰 때, 과학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는 진영과, 과학도 주관적이고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음을 주장하는 진영이 말하는 ‘과학’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범주적 오류를 저지르는 학자들은 그냥 그들만의 리그를 고수하라고 내버려 둔다 해도, 여전히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주의라는 망령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계 외에도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로 식민지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앞에서 제시했던 제3의 관점, 즉 ‘과학이 제국주의 정당화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관점을 살펴보면서,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증을 펼쳐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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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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