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글로벌 이슈 시대에 과학에 참여하기" -버나드 쉴르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정윤)은 28일 서울 강남구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과학에의 참여, 미래와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과학커뮤니케이션 관련 인사들을 초청해 ‘2010년 미래연구컨퍼런스’를 열었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토스 개스코인(Toss Gascoigne)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PCST Network) 회장과 버나드 쉴르 캐나다 퀘백대 과학기술과 사회학과 대학원장이 기조강연을 했다. 사이언스온은 과학과 사회의 소통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들의 강연내용 초록을 싣는다. 번역원고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제공했다. -사이언스온
   

버나드 쉴르 : 글로벌 이슈 시대에 과학에 참여하기

(Participation in Science in the Age of Global Issues)

 

버나드쉴르 사진1

      글로벌화가 이뤄진 세계에서 과학에 참여하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제 및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국내 경제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그 역의 관계도 성립한다는 불편한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 하나로는 세계화를 제한할 순 없다. 말하자면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이뤄진다. 세계화의 초기 개념이 경제적인 측면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과학에 참여하기에 관한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기 위해선 다른 개념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측면을 포함한 네 가지 요소를 간략히 설명하려고 한다. 이들의 상관관계는 20세기 후반 전처에 걸쳐 존재했던 개념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내재된 동력을 통해 과학에의 참여, 행동상의 목적 및 이들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에 관해 새롭게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러한 네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환경에 관한 인식,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통신사회의 발전 및 경제적인 급박함이다. 첫 번째 부분을 ‘ 큰 그림’이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새로운 세계 질서’라고도 부를 수 있다. 두 번째에선 이들 요소의 상관관계에 관한 역학을 설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과학에의 참여에 있어 고려해야 할 여러 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큰 그림, 또는 새로운 세계 질서

   

첫번째 요소:  환경에 관한 인식

  20세기 후반 우리가 오랫 동안 알고 있던 사실, 즉 우리가 유한한 세계에 살고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20세기를 마무리지었다. 우리는 환경의 균형을 맞추기 힘들고 제한된 자원이 있는 지구에서 살고 있다. 매일 연구실이나 현장에서 수 백만 건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 및 해석하고 결과를 밝히며 자신의 연구 성과와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노력한 수천 명들의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기울인 노력 덕분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생태계에 관한 아이디어를 통해 지구에 관한 인식이 커지면서 집단적인 인지를 하게 되었다 .   현재 우리 모두 하나의 지구와 하나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곧 공간을 공유하고 자원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타인의 논리를 보다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동시에 자신의 논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자급자족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반적인 인식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그리고 과학에의 참여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러한 요소를 무시할 순 없다.

  두번째 요소: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무언가를 이해 및 인정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사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 것과 동시에 과학기술과 오랫동안 타협을 해왔다. 과학기술은 현재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과학과 사회의 복잡한 상관관계에 관한 역사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1차적으로 과학기술과 병행하여 사회가 발전한 시점까지 시간에 따라 통합의 정도가 커지는 현상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 및 사회적인 발전에 관한 개념은 두 가지 요소를 통합시키기 위한 요량으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이러한 역사에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인식을 추가해보자. 근본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부차적인 요소이고 사회의 동력에 제한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응용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는 커다란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구조를 뒤집고 이에 관련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게 되었다.    

세번째 요소:  통신기술의 혁명

  과학발전의 성과물인 세 번째 요소는 통신기술의 영향과 정보문화의 힘이 갖는 영향력이다. 개인컴퓨터(PC), 인터넷,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등의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과 관련하여  수 년 내에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쳐온 기술이 기존의 지식 및 문화의 논리와 현재의 사회 관계에 관한 전통적인 논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가족의 범위, 교육 구조 및 직업 모두가 개인과 사회 집단 사이의 관계는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 재정의가 이뤄지고 있다. 진정한 혁명이 인간 활동이 경제의 세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고 있으며 이를 통해 몇몇 사람들은 21세기를 ‘평평한 사회’라고 언급하고 있다.    

네번째 요소:  경제 분야에서의 경쟁

  경제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의 고조된 경쟁과 국가의 역사, 사회 및 문화적 가치를 종종 초월하는 경쟁에 대해서만 간략히 다룰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맥락

  이러한 네 가지 요소는 보편적이다. 다양한 정도로 모든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어떻게, 무엇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 여기서 분명히 밝혀야 할 사실은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기 보다는 이들의 상관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회는 특정 상태를 나타낸다. 앞으로 설명할 각각의 사례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의 문화는 과학적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과학과 사회의 통합과 함께 시작해보자. 사회 자체의 구성에 관한 일반적인 형태와 가치로서 과학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과학문화가 근대 사회의 기반을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우선 과학 문화라는 것이 과학에 부여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과학,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문화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과학에의 참여에 관한 생각을 함에 있어, 과학을 통해 우리가 세상, 우리 자신 및 타인을 바라보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관점을 정의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과학문화가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서술적인 단어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과학기술은 “ 우리가 경제, 정치 및 지적 과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목적, 개념, 유사 및 논리적 구조의 큰 부분을 만들고 설명하고 있다 ”. 무엇보다도 우리가 과학문화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지 않거나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과학문화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 모두 과학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현대 문화는 하나의 문화이며, 과학적인 문화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세계 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상호작용 및 교역을 통해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인 경제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 과학’이라는 개념을 유사하게 사용하여 지구상의 모든 사회로 과학문화를 확장시키는 과학문화를 규정하는 유기적인 단위를 설명하며 이러한 과학문화는 경제 발전 규모에 상관 없이 모든 경제에 내포되어 있다. 이에 더해, 이러한 ‘세계 -과학’이라는 개념은 각 사회의 가치관, 신념 및 관습을 뛰어넘고 있다.   두 번째 결과는 과학 교육과 문화와는 대립되며 일반적으로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통 문화와의 비교는 불가능하며, 한편으로는 사회를 두 개의 양극화된 모습으로 분류하여 인지할 수는 없다. 이는 과거를 바라보는 데 있어 그 자체에 내재된 모습이고 다른 면으로는 찰스 스노(C.P. Snow)가 자신의 유명한 ‘리드’(Rede) 강의에서 정의하듯 미래를 지향하는 열린 과학이라는 모습을 갖고 있다. 문학과 예술을 보다 선호하고, 과학에 저항하며 미래보다는 과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근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를 부정하더라도 과학문화가 형성한 사회에서 도망갈 수는 없다.   즉, 과학이 규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 우리 모두 과학문화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사회기술적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개념, 구조, 설계 및 행동을 흡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이러한 내용을 관찰한다 그리고 이를 숙달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이러한 사회적인 학습을 통해 촉진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사회에 흡수되며 지속적으로 다른 기술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하면, 변화를 통해 사회가 우리를 변화시키며 그만큼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각 개인에게 보다 일반화시키면 이는 정규교육 수준과는 무관하게 어느 정도 과학자들과 동일한 지적인 방법을 학습하는 데 있어 동일한 탐구 기법을 사용하고 동일한 사고 패턴을 활용하게 된다. 이에 더해, 과학문화와의 관계는 사회조직을 통해 수용된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학문화는 한편으로는 사회는 단순히 개인을 모아 놓은 것 이상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회적인 역량의 합을 초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내 주체들의 기술과 능력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장치 내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핍 모델의 개념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가정한다 : 첫 번째는 과학과 과학문화의 분리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자, 지식의 범위 및 대중과의 차이를 텅 비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과학과 사회의 통합으로부터 퇴보하는 과학문화의 사회화는 이를 무의미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 현대 사회는 기본적인 과학에의 이해를 보유하고 있다 : 이는 대중이 기본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정규과정에서 과학을 필요로 한다.   과학기술의 정규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ICT(정보 및 통신 기술)의 확장을 통한 정보의 홍수로 인해 교육 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풍부한 자원으로부터 형성된 이러한 정보로 인해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는 정규 과학 교육의 위기로 인해 교사들이 자신의 교수법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과학교육의 구조 및 방법을 다시 구상해야 한다. 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교육계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대학이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주된 장소이며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장소로서 그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고 학교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책임은 근대화를 이뤄낸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현상은 주로 과학적인 사고의 통합을 통해 일어난다. 학교를 통해 얻게 된 이러한 사회화가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양방향 흐름

  이제 정보통신의 개발의 맥락에서 비형식적인 과학의 전파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답을 할 것이다.   아주 최근까지, 기존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대부분 과학자나 전문 언론인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들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는 자’가 ‘모르는 자’의 하향식 관계를 재생산했다.   사이버 문화의 발전을 통해 이러한 접근 방식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이버 문화는 인터넷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 기존의 글쓰기의 시간 및 공간적인 한계를 없앤 웹 서핑, ‘그 안에 숨어 있는 지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내 어느 곳에 있더라도’ 정보의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의 ‘영구적이고 반동하는’ 상관관계의 축소가 그러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상호작용이 네트워크 데이터 전송 능력의 증가를 통해 추가되었다.   이러한 사이버 문화는 새로운 주체를 생성하고 있으며 기존의 당사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다변화는 인터넷에 있는 무궁무진한 정보의 활용과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에 관한 뉴스를 생성 및 순환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자신의 확고한 연구 분야를 갖는 전문 과학자에서 아마추어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범위에서 새로운 주체의 도입을 통해 이뤄진다. 그 효과는 기존의 과학 기자들에게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 과학기자들이 생성하는 과학 뉴스 만큼이나 다수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연구, 발견, 활용 및 과학의 스핀오프에 관한 대중의 의견을 계몽해야 한다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 저널리즘은 더 이상 자신들이 누렸던 주도적인 역할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유일하다고 주장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주류 언론은 여러 주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최근의 연구 결과 “다른 직업군에 비해 언론인들이 최근 수 십 년간 진행된 기술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라는 내용과 “ 이러한 상호 연결을 통해 과학 저널리즘이 재정의되고 있다 ”라는 사실이 모든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이 정부 프로그램을 통한 지식의 공개와 공유 및 과학관을 포함한 해당 분야에서의 성과 및 다양한 기관이 실시하는 전통적인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 주로 청소년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이러한 기관들의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과학과 관련한 직업을 갖도록 하며 여전히 필수적인 요소로 남아 있는 인지 및 안정의 기능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에 더해 ICT가 잠재적으로 제공하는 지속적인 지식의 풍요로움을 통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활동은 사회-기술 환경의 발전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즉, 위의 모든 내용은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의 경계가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두 당사자 사이의 정보 순환과 상호작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무시와 지식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와 지식 및 의견과 판단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 그리고 정보와 상호작용의 감소와 관련한 이러한 동력이 또 다른 기술-과학 사회의 강력한 트렌드를 시작하는 경우 과학의 전문화가 이뤄짐에 따라 어떻게 이룰 것인가 ?   과학은 19세기에 설명한 이상적인 섬이 아닌 “ 군도 ”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상호 의존도가 높은 전문 분야로 지속적으로 분할되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의 분야를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진화는 첫 번째로 세계를 설명함에 있어 몇 가지 기본 원칙으로 단순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세계는 복잡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세계는 다양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해석 및 이해가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의 유입으로 인해 해석이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만 더 할 뿐이다. 두 번째, “ 특정 분야를 무시하는 것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그러하다 ”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언급한 “ 비과학자들과 과학자들을 차별하는 하나의 큰 차이를 다루는 데 아니라 ” 과학자들 자신을 구분하고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 다양한 틈의 크기 ”를 다루고 있다. 이에 더해, 세계에서 공유가 가장 많이 되고 있는 부분은 분명 과학기술이다. 그러나 막상 공유가 이뤄지는 지식의 양을 살펴보면 식자의 수와 마찬가지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모순되게도, 우리 사회는 정보의 부족과 과잉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이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관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과학자일 수는 있겠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일반인과 마찬가지이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과학자들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할 때 동일한 사고 패턴을 보여주며 과학적 탐구의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이다. 정보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의 구분이 이전에 비해서 보다 모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경계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관심 분야와 환경에 따라 동일한 개인 내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점점 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에의 참여에 대해 상대론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경제의 영향

  과학과 사회 및 통신기술 혁명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어 두 가지 요소가 경제적인 맥락에 개입하는 요소로 추가될 수 있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간의 상관관계를 정의하는 경쟁의 구조에서 발전하고 있는 경제 상황에 항상 신경을 쓰는 국가는 생산체계에 있어 과학기술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국민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상승하는 것은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과학에 관한 이해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과학의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국가가 도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정부 및 경제 주체가 직면한 도전과제는 집합적인 경제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빠르고 유연하게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용은 새로운 과학지식과 응용분야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따른다. 그러므로 과학, 기술 및 산업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는 것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새로운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요약하자면 높은 수준의 연구진과 숙달된 근로자들의 새로운 유입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함과 동시에 과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소비자들을 필요로 한다.      

대중의 모순

  몇 가지 예시에서 두 가지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우선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가공할 능력을 가진 주체이며 촉매인 과학기술이 일상생활의 생산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근간인 과학의 이성과 숙련 정도를 정의하는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그렇기에 사회 및 실제 환경에 미치는 과학기술의 영향력 또한 이러한 변화의 결과에 대해 논의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시민 사회에 속한 많은 기관 및 단체에서 변화의 범위와 영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기술 및 유전공학 연구를 통해 생산된 산물이 생명계의 이해를 발전시켰으며 삶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역사 전반에 걸쳐 서서히 발전 및 규정된 관념, 개념 및 사상과 현재 “ 인간 ”으로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정의하는 복잡미묘한 틀을 빠른 속도로 해체하고 있다. 이와 동일하게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통신 혁명은 개인 사이에서 사회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관념을 재정의하는 가상 상호작용을 도입함으로써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기존의 틀을 해체하고 있다.   또한 단결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해체로 인해 발생한 환경, 사회 및 철학에 관한 민주적인 해결책은 모든 사람들의 깨인 생각을 필요로 한다. 필수적인 과학의 관념에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집단 및 개인이 보다 복잡해져가고 있는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한다. 과학과 그 산물은 지속적으로 세계와 사회와의 관계를 바꾸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와 관련하여 모든 사람들이 윤리, 전략, 환경 및 기술에서의 변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전세계적인 인식의 상승으로 규정되는 이러한 논쟁은 발전 단계에 종속되기보다는 이를 통제하려고 하는 의지의 발로를 포함한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사전예방원칙을 삽입한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맥락에서 법, 과학 그리고 정치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하고 제로(0)에 가까운 위험을 갖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서 인식이 이뤄지고 있다.      

과학의 참여 : 필요성과 도전과제

  무엇보다도 참여가 의미하는 것은 보다 큰 상태와 관련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참여를 위해선 공통 분모를 가져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연결하자면 이는 과학문화이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재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인해 촉발된 정치, 사회 및 경제적인 논쟁이 대부분인 세계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과학문화는 민주주의의 구현에 필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없으며 사실상 2등 시민으로 밀려나게 됨으로써 말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지역사회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과학문화는 사회에서 일반화 된 경우 개인의 역량 부족이 부의 생산과 혁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높은 수준으로 연관된 국제경제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집합적인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발조건을 포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선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선 지식을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공통의 부에 기여하는 것은 개인의 수준까지 세분화된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풍부한 과학문화와 일반화 된 지식의 전달을 통해 정의가 이뤄지는 양상은 과거의 모습과 비교할 때 우리가 이점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미 과학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경험하고 있으며 채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일상생활과 전문 활동에서 활용하고 있다. 분명 엄격한 의미로 볼 때 문화자산의 분포는 동일 사회 내 집단, 직업 및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사실 자체를 변화시키진 않는다.   두 번째 의미는 과학문화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동시에 다음과 같이 “ 참여의 활동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에는 결과를 기반으로 하는 의지의 수단이며 개인의 활동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참여에 관한 도전과제이다.   참가자의 지식과 경험의 잠재성을 도출해내는 이러한 과학문화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질 수 있는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내용이 동일한 이익이나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이미 언급한 과학적 지식의 확장과 원칙의 통합 및 일반적인 정보의 순환을 통해 심화되었다. 몇몇 부분에 있어 이러한 사항은 과학에의 참여를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도전과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에 각각의 상황을 연구원이 자신의 믿음을 수동적인 대중에게 일반적으로 전달하고 그 후 질문을 할 수 있는 일방적인 분위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위치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영국 상원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수 년 전 발간한 보고서는 명확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현재 중요한 단계에 있다. 오늘날 과학은 흥미진진하고 기회로 가득 차 있으나 정부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광우병(BSE)로 인해 흔들리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과 같은 분야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의견은 다른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보고서는 인간의 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인 광우병이 발병하고 전세계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면서 세계적인 혼란을 만들어 낸 시점에 간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지난 여름 발생한 멕시코 걸프만의 원유 유출 또한 신뢰의 위기라고 하는 동일한 정서를 떠오르게 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이에 따른 의심과 저항도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과 생활양식 및 위험 요소에 대한 인지도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198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호프만(Roald Hoffmann)이 기술한 대로 ‘과학을 존경하나 의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과학에 대해 이러한 모순, 존경 및 의심스러운 태도는 21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과학기술에 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두 가지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과 질문은 시간에 따라 감소하는 과학 이전의 시대 또는 과학에 반대하는 사고방식의 잔재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과학에 관한 현대 사회의 인식의 일부이며 우리의 행동, 태도 및 가치관에 과학이 미치는 영향력과 그 맥락을 함께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선택 및 결정과 관련된 경쟁의 논리와 단합 사이의 분열은 경제분야에서의 경쟁이 작용하는 관대한 전망의 예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선택과 결정이 갖는 2중성을 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발전의 능력을 공유하진 않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를 사회의 미래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에게 닥친 위험으로 간주한다.   참여를 위한 진정한 조건은 지식을 제외한 다른 조건을 포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셀 클래센스(Michel Claessens)는 ‘연구진의 모델과 업적은 종종 실생활과 요원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학은 정치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더해, 채택된 전략은 폭 넓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 및 지역 수준의 논의, 신중한 조사, 조정 위원회, 포커스 그룹, 시민 배심원, 의견의 합치, 이해당사자의 대화 및 인터넷 포럼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단이 충분한 경우, 그리고 참여의 세 번째 요소가 아닌 경우 지식과의 통합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일반인의 지식과 전문가의 지식을 동일선상에서 고려할 수 있다. 즉,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연구진의 이러한 특성과 관련된 다수의 주체들의 지식과 생활을 통합해야 한다. 대중은 다양한 사유의 접근으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식으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이를 인식하는 방법)은 우리의 사회, 문화, 지리 및 정서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사회 주체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연구진들보다 더 다양한 지식의 경로를 따를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러한 접근방식은 과학에의 참여가 특정한 움직임으로 귀결되지 않고, 무작위하고 즉각적인 목표를 향해 조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목표에 부합하지만 정치적인 경험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한편으로는 환경 및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이해를 포함시키기 위해 과학교육을 개편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소통과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재구성해야 할 대중과의 접촉 전략의 주입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결국에 국가는 더 이상 결정과는 동떨어진 채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험한 것은 대중의 믿음이다.  

 

버나드 쉴르

-퀘백대 과학기술과 사회학과 대학원장 -세계과학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이사 -대학간 과학기술 연구센터(IRCST) 창립자 -<과학이 문화가 될 때>(When Science Becomes Culture·1994)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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