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제국의 과학과 식민지의 과학 어떻게 발전해왔나?

과학과 제국주의 ②

① - 8월에 다시 생각하는 '제국주의, 과학, 과학사'

   00sokichi    

impcol1

 

과학과 제국주의의 동반여행

         

제국주의의 시대

  전통적으로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라는 두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치체제란 19세기 영국인들이 사용한 식민지 지배를 뜻하는 용어라는 뜻이고, 경제체제란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에 기초한 분석에서 등장하는 요소라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도 또한 제국주의라는 틀에서 분석되곤 한다. 예를 들어 미국식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한 전세계적 지배를, 소련식 제국주의는 소련에 의한 동구권 위성국가들의 정치적 지배를 뜻한다.1) 하지만 군사적·정치적 지배의 토대를 제공한 것은 경제적인 것이었고, 제국주의의 팽창 동기도 또한 경제적인 것이었다. “경제적 이익은 정치 과정을 통해 여과되기도 하고, 정책은 복잡한 국가기구를 통해 효력을 발휘하며, 제도 전체는 자체의 변동계기를 낳기”2) 때문에, 정치적인 지배체제와 경제적인 지배체제를 따로 떼어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제는 문화제국주의가 문제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제국주의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엽의 중상주의 시대에는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중미와 안데스 지역의 광물을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가 전개되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지배력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로 넘어가고 제국주의는 중남미를 넘어 아프리카-아메리카-유럽의 ‘대서양 삼각 무역’의 형태로 확장된다. 엄청난 수의 아프리카인들이 이 시기에 노예로 끌려가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었다. 18세기가 되면 제국주의가 서서히 아시아로 영향력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서서히 유럽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동시에 산업혁명으로 유럽은 획기적인 전환을 겪는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산업혁명의 영향력은 급속히 커지고, 새로운 산업과 공업이 유럽과 북미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이 시기에 일본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세계는 점차 고발전 지역과 저발전 지역으로 양극화하기 시작했고, 레닌이 불렀던 진정한 제국주의의 단계로 돌입했다. 20세기 초반부터는 ‘독점자본’의 시대가 시작되며, 자본주의 중심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부를 위해 식민지를 약탈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를 두고 벌어진 쟁탈전은 결국 세계대전으로 번진다. 이후 20세기의 중반과 후반은 세계대전의 치유와 몇 차례에 걸친 불황 속에서 다국적기업과 금융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화가 시작되는 역사다.3)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몇 가지 방식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단순하게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과학이 제국주의적 팽창에 ‘능동적’으로 관여했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과학이 제국주의 팽창의 주요한 원인이 되며 반대로 과학이 제국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팽창을 돕기도 하며 반대로 제국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 방식은 과학과 제국주의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진다고 본다.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두 번째 방식은 과학이 제국주의적 팽창에 ‘수동적’으로 관여했다는 관점이다. 과학은 제국주의가 팽창해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식민지로 흘러 들어갔다. 제국주의 자체가 과학에 직접 끼친 영향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과학의 전파와 더불어 식민지로 퍼져나갔을 뿐 제국주의라는 이념에 노출되어 과학을 오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과학과 제국주의를 ‘간접적인’ 관계로 본다.   impcol2 의 두 방식 외에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기술하는 또 한가지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제국주의 정당화의 도구로 과학이 사용되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가 생겨났다. 따라서 유럽의 지배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이 도구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이 관점 속에서 과학은 지식체계로서 자율성을 갖는 반면, 과학과 관련된 다른 학문들, 예를 들어 사회학과 경제학, 역사학, 철학 등은 과학의 방법론을 채용하면서 과학의 아류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 그런 예다.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의 자연선택을 적자생존의 논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사회진화론으로 발전시켰다. 막스 베버는 과학적인 합리성에 바탕을 둔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인해 유럽의 자본주의가 가능했다는 주장을 펼침과 동시에 비유럽 지역을 모조리 비합리적인 집단으로 타락시켰다. 이 시기에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이 탄생하게 되고, 자본주의가 무르익는 과정에서 유럽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이 탄생한다. 헤겔의 역사 단계에서 오리엔트는 가장 원시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마르크스는 유럽에서만 나타나는 연속적인 발전단계가 아시아에 적용되지 않자,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특징은 외부로부터의 교란이 없을 경우 자체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4) 과학적 합리성의 기원을 찾아 철학자들은 상아탑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과학철학이 탄생했다.   사회학, 역사학, 경제학, 철학의 정당화 논리를 바탕으로 제국주의는 비유럽 국가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이었던 식민지 지식인들조차 이처럼 왜곡된 사상들에 영향을 받아 과학이 서구의 우월성을 설명해주는 무기라고 착각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식인들조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러한 공포가 사회로 전염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군사적 우위를 제공했던 산업혁명, 그리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식민지 착취의 기반이 되었던 자본주의, 이 모든 기저에 서구의 합리적 정신이 총망라된 과학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이 식민지 국가 전체로 손쉽게 퍼져나갔다. 제국주의의 지배가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로부터 정당화되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서구과학의 전파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다루는 세 가지 방식 중 정답은 없다.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례를 바라보는 학자들에 따라 세 가지 방식은 세 가지 관점으로 차용되며, 실제로 그 전개과정에서 세 가지 방식 모두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존재하며, 상대주의 과학관과 연관되는 방식으로 논쟁이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역사적인 시공간에서 살펴보고 다시 이 주제로 돌아오기로 하자.   서구의 과학은 어떤 과정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는가? 이러한 주제의 과학사는 최근 들어서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전까지 과학사 연구자들은 “왜 유럽에서만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주제에 매몰되어 있었다. 태생부터 영웅서사시의 구조를 지녔던 과학사 연구에도 제국주의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셈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인본주의를 표방했던 조지 사튼의 과학사 연구도, 중국과학사를 저술한 조셉 니담의 연구도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사실은, 비서구권의 과학은 유럽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정복 활동,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의 영향, 교역과 정치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유럽의 과학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순한 설명방식은 역사의 세세한 부분을 간과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가 과학의 매개체였는지, 그들은 어떤 분야의 과학을 가지고 다른 지역으로 건너갔는지, 과학이 이식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방법을 통해 이식된 과학이 서구과학의 전통을 재창출해냈는지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기술의 진화>를 쓴 기술사학자 조지 바살라(George Basalla)는 1967년의 논문에서 서구과학의 전파를 3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에서는 서구 유럽의 과학을 지니지 못했던 사회들이 유럽 과학에 일종의 소재를 제공했다. 2단계는 식민지형 과학의 시기이며, 3단계는 독립적인 과학전통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에 의해 과학의 이식이 종결되는 과정이다.5)   00basalla » G. Basalla(1967).      

제1단계: 박물학의 대항해 시대

  16세기에 접어들어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일군의 학자들이 전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박물학자(naturalist)들은 16세기 중엽부터 전세계를 떠돌며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의 박물학자들은 17~18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세계를 여행했고, 19세기 초엽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이러한 여정을 집대성하게 된다. 찰스 다윈은 박물학의 역사가 거의 저물 무렵에 훔볼트의 영향으로 비글호에 올랐다.   impcol3박물학자들이 세계를 여행하는 단계는 제국주의의 팽창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16세기~17세기에 중남미 지역을 주로 여행하던 그들은 18세기에 이르면 아프리카로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대서양을 건너간 과학은 미국이라는 영토에 뿌리를 내린다. 18세기 중엽이 되면 제임스 쿡과 같은 항해자들에 의해 태평양 항로가 개척되고, 그 길을 따라 박물학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일대로 퍼져나간다. 이 여정의 흐름 속에 19세기 중엽 자연선택의 공동발견자인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가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은 서구 과학의 전파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과 달리 이들 지역엔 문명화된 사회가 건설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 말 일본에 선교사들이 당도하기 이전부터 박물학자들이 도착해 지역을 조사하고 식생을 연구했다. 1583년 중국에 예수회 선교사들의 도착하면서 당시 막 꽃피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천문학이 소개되었다. 특히 중국은 17~19세기를 거치며 식물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인도에 먼저 도착한 것은 포르투칼인들이었지만, 17세기가 되면서 인도는 영국의 선교사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탐사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동인도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그곳에 속해 있던 인물들이 박물학자로 변신하는 일도 생겼다.   이 단계에서 가장 활약한 학자들은 박물학자들이었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식물학, 동물학, 지리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주종을 이뤘고, 천문학, 지질학이 때때로 그들과 경쟁했다. 인류학과 민속학은 1단계에서는 주류가 아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각을 따라 해당 지역을 탐사하던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해당지역의 토양, 식물, 동물 등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과학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과학자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아마추어들, 모험가들, 단순한 여행자, 군인, 상인, 선교사, 예술가, 모험가 등의 직업군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수집된 다양한 재료들과 자료들은 고스란히 유럽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연구의 재료가 되었다. 근대과학이 탄생한 문화적 기반을 가진 나라들에서만 이렇게 수집된 자료가 과학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쓰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유럽 외의 지역은 근대과학의 모재료로 기능했다. 이러한 단계의 말미에 갈라파고스를 모재료로 삼았던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완성한다.      

제2단계: 식민지의 과학

  서구 과학의 전파 제2단계는 ‘식민지의 과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이 단계에 참여했고, 과학적 활동도 더욱 활발했다. '식민지의'라는 표현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첫째, 당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수행되던 과학이 근대과학의 문화가 정착된 유럽의 해당 국가에 의존적이었다는 뜻이다. 둘째, ‘식민지의’라는 말이 당시의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유럽의 과학이 비유럽의 과학을 억압하지도 않았고, 제국주의적 권력에 의해 비굴한 상태로 유지되지도 않았다. 셋째, 과학이 전파된 유럽 이외의 지역이 모두 식민지 상태였던 것도 아니다. 러시아, 일본, 미국과 인도 등에서 수행된 2단계의 과학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impcol4박물학과 자연사가 주종을 이루었던 1단계와 마찬가지로, 2단계의 초창기에도 자연사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식민지의 과학’  활동이 증가하면서 해당 지역이 의존하고 있던 유럽 국가의 과학 발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의 범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식민지의 과학’을 수행했던 학자들은 해당지역에서 출생한 사람일 수도,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일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식민지의 경계 밖에서 교육받은 인물들인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교육받는다면 그들은 유럽의 학교에서 정식절차를 밟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유럽학자들의 저술과 실험기구들을 사들여와 스스로 공부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랬기 때문에 식민지의 과학은 유럽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유럽에서 평가 받고 싶어했다. 18~19세기의 북남미, 러시아, 일본의 과학자들과 20세기 중국과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이 이 단계에 속한다.   식민지의 과학은 악조건 속에 놓여 있었다. 일단 그들은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유럽 학자들과 교신하기도 어려웠으며,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가끔 나타났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대표적인 예다. 18세기 러시아의 화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Mikhail V. Lomonosov)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가진 과학자들조차도 유럽으로부터의 의존성을 탈피하지는 못했다. 20세기 초중반까지도 대부분의 미국과학자들이 유럽의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고 싶어했을 뿐 아니라, 깁스처럼 뛰어난 물리학자조차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교육과정을 마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갈 정도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미국과학자들이 베를린, 라이프치히, 괴팅겐, 하이델베르크, 뮌헨, 파리의 대학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의 교육체계는 완성되어 있지 않았고, 과학자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수 없었다.   1636년 예수회 선교사들을 추방했던 일본은 18세기에 들어와 서구의 문물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가 이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었음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1868년~1912년의 44년 동안에만 600여명의 학생들이 과학과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언어장벽은 엄청난 노고를 들인 번역으로 메워졌다. 외국의 과학교과서들은 필요하다면 모조리 번역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일본의 과학도 여전히 유럽에 의존적이었다.   00sokichi »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외과의사 하시모토 소키치(1762-1836)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번개 실험을 재현하고 있다. G. Basalla(1967)      

제3단계: 독립적인 과학전통을 위한 투쟁

 
이젠 유럽에 뭔가를 배우러 가는 데 지쳤습니다. 우리도 독립을 하고 싶어요. 우리 세대가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10년쯤 후면 우리가 저 위에 올라가 있을지도 몰라요. -이시도어 라비(Isidor Isaac Rabi)6)
  2단계에서 3단계로의 전환은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단계를 구분 짓는 개념은 ‘독립적인 과학 전통’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끈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정치적·문화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던 민족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독립혁명은 이러한 흐름에 부채질을 했다.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재료들을 갖다 바치는 종속적인 과학을 거부하고, 스스로 과학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impcol5민족주의만을 원인으로 삼기는 어렵다. 어쩌면 식민지의 과학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에 이미 독립적인 과학의 전통은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과학교육기관들이 해당 지역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통해 그들만의 과학전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유럽으로부터 돌아온 과학자들은 자신의 고향을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국가를 위한 과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의 과학 활동은 2단계를 거치며 그들이 쌓아간 스스로의 전통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식민지의 과학자들은 고향에서 과학을 공부한 이들에 의해 점차 대체되기 시작한다. 유럽과의 교류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해당 지역의 과학자들끼리의 교류가 더욱 중요시되기 시작했고, 전반적으로 모든 교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유럽에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에서 과학자로 인정받고 싶어했으며, 스스로 과학단체들을 조직해 나갔다.   독립적인 과학전통을 완결 짓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과학에 대한 해당 지역의 철학적 종교적 저항은 극복되고 대체되어야만 했다.7) 사회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필요했다. 과학이 줄 수 있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고, 과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납득될 때에만 새로운 과학전통이 성립할 수 있었다. 실험가운을 입고 손에 물을 묻히는 직업을 천시하는 문화에서 상류층은 과학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 브라질이 그랬고, 조선이 그랬다. 과학과 정부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만 했다. 또한 정부가 과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했다. 과학교육 시스템이 정착해야만 했다. 교육만이 아니라 연구실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자들과 여건이 마련되어야 했다. 과학단체가 조직되어야만 했고, 과학진흥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했다. 17세기 유럽의 왕립학회가 했던 역할을 담당할 조직이 필요했다. 과학저널들이 간행되고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용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숫자로 구성된 과학자사회가 필수였다. 또한 언어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다. 과학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기술발전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위에서 기술한 난제들을 해결해야만 독립적인 과학전통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3단계의 과학은 하나의 투쟁이었다. 1921년이 되어서야 미국은 유전학에서 유럽을 앞지를 수 있었다. 토마스 헌트 모간의 초파리 연구 덕분이었다. 전체주의 국가였지만 소련도 기초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뒤를 이어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위에서 기술한 내용을 잘 따라온 독자들이라면, 한국에서의 과학이 어느 단계에 위치하며, 한국은 어떠한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과학을 발전시켜왔는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과학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처럼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는가? 혹은 한국의 과학은 독립적인 과학전통을 이미 확립하고 있는가, 아니면 확립해가는 과정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일별한 서구과학이 전파되는 역사를 통해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좀 더 파헤쳐 보기로 하자.  

impcol6

 

▶ 김우재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김우재의 연재물 ‘파리의 사생활’ 전체 보기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부산행’의 좀비와 감염병 인식: 의학과 서사 (2)‘부산행’의 좀비와 감염병 인식: 의학과 서사 (2)

    시각김준혁 | 2017. 11. 09

      시 각   | 의학과 서사 ② |☞ 의학과 서사 ① 한 소녀가 다급하게 열차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불행히, 누구도 소녀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신을 찾는 걸까, 용서와 구원을 구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면서 소녀는 상처 ...

  •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 의학과 서사 (1)“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 의학과 서사 (1)

    시각김준혁 | 2017. 10. 17

      시 각   | 의학과 서사 ① |2013년 방영되어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굿닥터’가 최근 미국에서 리메이크 되어 인기리에 방영 중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1]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

  • 우리는 '질환'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행자들: 질병의 은유 (4)우리는 '질환'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행자들: 질병의 은유 (4)

    시각김준혁 | 2017. 09. 19

      시 각   | 질병과 은유 ④ |☞ 먼저 읽기: 햄버거병, 전쟁, 춤: 질병과 은유 ①백신, 죽음, 의료화: 질병과 은유 ②영웅과 희생양: 질병의 은유 ③서른네 해, 평범하다면 평범할 삶을 살아가던 로체 서덜랜드의 인생은 그날 ...

  • 영웅과 희생양: 질병의 은유 (3)영웅과 희생양: 질병의 은유 (3)

    시각김준혁 | 2017. 08. 24

      시 각   | 질병과 은유 ③ |☞ 먼저 읽기: 햄버거병, 전쟁, 춤: 질병과 은유 ①백신, 죽음, 의료화: 질병과 은유 ②지난해, 의과대학에 막 입학한 신입생을 맡아 지도하면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 적이 있다. 갓 ...

  • 혁신본부장 사퇴 파문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혁신본부장 사퇴 파문 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각사이언스온 | 2017. 08. 18

      시 각    글쓴이: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생리학) “새로 만들어지는 혁신본부가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으로 이런 복잡한 일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