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국과위 개편, '과기부 부활'에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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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과기부는 무엇인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장관급 위원장을 두고 집행기능을 갖는 행정위원회로 개편하는 안이 발표되었다. 일부 언론과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2008년에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되면서 사실상 폐지되었던 과학기술부(과기부)의 부활로 해석하고 있다. 정확히 보면 국과위 개편안은 ‘과기부 복원’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기부 복원에 그쳐선 안 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과기부가 없어지던 상황을 되돌아보자. 당시 과학기술계 분위기는, 과학기술부가 담당하던 업무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면 “교육 현안에 치여 과학기술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팽배했고, 2년의 시간 동안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또한 과학기술부 장관은 ‘과학기술계의 수장’으로 인식되는 것이 통념이었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에 보장되던 장관 자리 하나’가 없어졌다는 상실감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차관급이었지만 사실상 ‘과학기술수석’의 역할을 했던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함께 폐지되어 지난 2년간 ‘과학기술의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불만이 끊임 없이 터져 나오는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2년 반 전에 과기부와 정보과기보좌관을 폐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가 반과학기술적이었기 때문일까? 과학기술계 원로들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니다. 당시 이명박 당선자 진영에서는 ‘10년 진보정권과의 차별화’를 내세웠고 정부조직개편 역시 그것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수정권이 즐겨 꺼내는 카드가 바로 ‘작은 정부’와 ‘시장 기능’이다. 정부 차원의 과학기술정책이 필요한가? 정부 안에 과학기술 관련 집행 기능이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비전을 정하는 것은 민간 위원들과 정부 위원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마련하고 대통령이 채택하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옛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목적이기도 하다). 또한, 기획재정부에서 연구개발예산안을 만들고 국회에서 검토, 편성하면 연구개발 프로그램들에 대한 기획, 집행, 그리고 평가는 국가 연구개발 지출을 담당하는 전문 에이전시(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서 수행하면 된다. 원자력 등 중앙정부가 통제해야 하는 부분은 에너지 관련 부처에, 시장 기능에만 맡기기에는 불안한 기초과학 지원은 고등교육 관련 부처에 이관하면 된다.

 

또한, ‘한국에 과학기술부가 여전히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도 답해야 했다. 과기부는 1967년 과학기술처로 출범하였고, 그동안 한국의 과학기술 혁신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강한 정부의 역할에 힘입은 성공적인 추격’이다. 선진국을 모방하며 후발자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추격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민간 부문이 성장하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부의 역할은 ‘리더’가 아니라 시장의 룰을 관리하는 ‘심판’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기업들을 돕는 ‘도우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애초부터 과학기술부가 따로 없던 미국은 물론, 영국을 비롯한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사정에 따라 교육, 노동, 에너지, 환경 등과 묶어 놓았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라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나 공무원 문화에서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에는 교육과 과학기술을 포괄하는 문부과학성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교육과학기술부의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2008년초에 이루어진 과학기술부 폐지는 옳고 그름을 떠나 나름의 배경과 논리를 갖고 있었다. 이번 국과위 개편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줄기찬 요구에 의한 사실상의 과기부 부활’이라는 시각은 과학기술계의 자찬과 정권의 생색내기일 뿐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과기부가 없어도 무방하다는 말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472" caption="2008년 1월 물리학회, 화학회, 수학회, 금속재료학회, 분자세포생물학회 등 8개 학술단체가 과학기술부를 교육과학부와 지식경제부로 분리하는 새 정부 조직개편안을 두고 긴급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 오철우"][/caption]

 

 

 

옛 국과위, 옛 과기부의 틀 벗어나야

 

과학기술계에서는 “참여정부 시절의 과기부총리-혁신본부 체계가 나았다”는 얘기들이 돌기도 했다. 과기부총리-혁신본부 체계는 상당히 발전된 형태로 평가되는데, 과기부총리가 여러 정부 부처들을 조율, 조정하고 혁신본부가 과학기술예산 기획, 편성권을 갖는 것이다. 과기부총리-혁신본부 체계가 출범할 당시 관가에서는 “선수 심판 겸임 불가론”이 힘을 얻어 과기부가 가지고 있던 집행기능의 상당부분을 타부처로 이관하기도 했다. 과기부총리-혁신본부 체계는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미처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는데, 차관급이 수장인 혁신본부가 과기예산 기획에 대한 충분하고 실효적인 권한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과기부총리 역시 예우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과기부총리-혁신본부'라는 실험으로부터 약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결국 대통령 직속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제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 혁신본부가 가지고 있다가 기획재정부에 반납한 과학기술예산 기획, 편성권을 다시 가져오고, 국과위를 통해 자동 위원인 과학기술 관련 부처들 사이의 조율,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국무총리실 산하의 3개 연구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지금은 소관 부처 산하로 바뀐 과학기술 관련 정부출연연구소들을 국과위 산하로 두어 특정 부처의 영향에서 멀어지도록 하며, 일부 집행 기능 역시 부처들로부터 이관받아 갖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국과위 사무처에 집행 기능을 부여하고, 위원장은 대통령으로 하되 장관급 사무처장을 두자’는 의견이 제안된 바 있다. 이번 국과위 개편 방안은 특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닌 셈이다. 다만, 방통위와 마찬가지로 장관급 행정위원회로 개편하기 때문에 정보통신부가 방통위와 통합되면서 행정위원회가 된 것을 연상시키고 ‘2년 반의 공백을 두고 과기부가 국과위로 변신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해석을 낳게 되었다.

 

새로 출범할 행정위원회로서의 국과위가 과거 과기부의 부활에 그치고 만다면, 그야말로 지난 2년 반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무엇보다도 “이제 선진국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과학기술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4~5년을 우왕좌왕한 것에 그친 꼴이 된다. 과기부가 갖고 있던 ‘여러 부처들 중 한 부처’라는 한계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과위는 여러 부처들을 총괄하는 ‘부처 위의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옥상옥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행 정부조직법 체계의 묘미를 살리기만 해도 충분하다.

 

현행법상 국과위 위원장은 대통령이다. 새로운 ‘행정위원회로서의 국과위’의 조직 수장(장관급)을 부위원장으로 하면 된다. 만약 방통위와 마찬가지로 장관급 위원장을 둔다면 국과위의 위상이 급락하는 것으로, 과기부가 부활한다며 과학기술계가 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새 국과위는 과거 과기부 산하에 두었던 혁신본부를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혁신본부를 없앤 이유 중에는 참여정부에서 즐겨 사용한 ‘혁신’이라는 단어에 대한 현 정부의 반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혁신본부가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면서 그 취지는 되살리는 셈이다.

 

한국 정부에 과학기술혁신에 특화된 정부 기구가 꼭 있어야 하는가? 간단히 답하자면 ‘그렇다’. 일본의 예를 보면 총리가 주재하는 종합과학기술회의가 확고히 자리잡았고, 총리실에 과학기술정책 담당 장관이 있다. 많은 선진국들은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기구의 확대 또는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육성하는 시대는 끝났다 하더라도,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이후에 대응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신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술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충분하지 못해서 연구개발 노력이 필요하며, 단기적 이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시장 기능만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진하기가 어렵기에 정부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행정체계 ‘실험’에 소모한 5년여의 시간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새로운 국과위는 과거 국과위의 것도, 과기부의 것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목적과 기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과위 개편이 '과기부 부활'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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