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8월에 다시 생각하는 '제국주의, 과학, 과학사'

과학과 제국주의 ①

00imp2 » 대영제국의 위용을 그린 19세기 영국 잡지(Punch) 만화의 하나. 출처/ Wikimedia Commons

 

한국 과학자에게 한국 과학사는

어떤 의미이어야 하는가?

 

 

   

 과학과 제국주의: 

'가치중립 과학은 문화 영향에서 자유로운가'의 문제

 

과학은 서구에서 기원했다. 17세기 이후 근대과학의 탄생은 철저히 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과학의 모습은 그리스도, 유럽의 중세도, 중국도, 인도도, 이슬람도 아닌 17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발전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보여주는 세계는 유럽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은 일반적인 법칙들이 진화하는 과정이다. 과학이라는 지식체계가 다른 학문체계와 차별되는 하나의 이유는 ‘일반화’라는 과학의 야망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고, 결국은 국소적 현상에 머물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이러한 일반화에 성공해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서울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뉴욕에서도 떨어진다. 땅에서 일어나는 물리학의 법칙들은 전 우주로 확장될 수 있다. 외계인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생물학의 발견들도 전 지구의 다른 종들로 외삽 가능하다. 자연과학은 분과 학문별로 다양한 방법론과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자연과학이 결국 완성되는 지점에는 ‘일반화’라는 장벽이 놓여 있다.1)

 

과학의 기원은 유럽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지만 과학은 보편적 법칙을 추구한다는 딜레마에서 여러 학문적 논쟁 지점이 도출된다. 그 중 하나가 과연 ‘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라는 문제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일반성과 엄밀성을 분석하며 20세기 초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엔나의 논리경험주의에서 기원한 과학철학 진영은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을 주장해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과, 지적 사기, 그리고 과학전쟁을 거치며 세상에 등장한 과학사회학은 과학도 다른 학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흔히 이러한 ‘과학적 상대주의’ 논쟁의 기원으로 지목되는 저작이 바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다. 토마스 쿤은 과학의 발전단계를 ‘정상과학’과 ‘비정상과학’으로 구분하고 전자의 누적적인 성격과 후자의 혁명적인 성격을 분석했다.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 과학자사회에서는 급격히 패러다임이 이동하며, 이러한 과정이 많은 과학사회학자들에게 과학의 가치중립성 논제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쿤이 자신은 ‘쿤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과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언제나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해왔고,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폐기하라고 외쳐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전히 논쟁은 진행 중이며 이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없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로부터 중립적인 제안이 때때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두 진영간의 대립은 여전히 날카롭다.

 

실은 두 진영 간의 대립에는 부분적으로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성격을 ‘이론’이라는 틀에서만 분석해온 학자들의 모순이 존재한다. 과학철학자들은 ‘이론’이 정립되고 발전해가는 ‘정당화의 맥락’만을 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고,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론’이 구성되는 ‘발견의 맥락’을 주로 표적으로 삼았다. 둘은 분리될 수조차 없는 것이라는 많은 학자들의 외침이 있었지만,2)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과학의 이론들은 분명히 문화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문화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론은 언제나 반복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과학은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 반복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 즉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실험’이라는 활동이 과학철학자들의 주제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은 타협할 줄 모른다. 그들은 과학의 소박한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3)

 

과학이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로운가의 문제, 바로 이 지점에 제국주의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대답이 남아 있다. 만약 과학이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17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의 혜택을 입은 과학은 이후 세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 제국주의의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서구의 발명품인 과학을 동양인인 과학자가 연구한다고 할 때 처음으로 마주치게 되는 딜레마다. 전통적인 과학사회학의 주제들, 즉 다윈과 사회진화론의 문제, 나치와 우생학의 문제, 아인슈타인과 핵폭탄의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등이 모두 이런 딜레마의 사례들이다. 하지만 보통 이런 질문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바로 과학은 ‘일반적’인 법칙을 다루며, 따라서 보편적이라는 과학의 특성이 딜레마를 즉각 해소시키기 때문이다. 동양의 과학과 서양의 과학이라는 것은 없다. 과학은 하나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연구에 몰두한다. 아니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과학자의 현실에 닿아 있는 건,

19세기 이후의 과학사

 

과학이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즉 가치중립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하나이므로 동양인이 과학을 하는 것과, 서양인이 과학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의 내재적인 특징인 가치중립성을 지킨다고 해서, 과학이라는 지적 활동이 문화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과학이라는 단어가 요즘 들어 사용되는 맥락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과학은 지구온난화나 유전자조작식품, 인간복제,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과 함께 거론된다. 더 이상 과학은 과학자들의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 머물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이제 과학은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는 거대과학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과학은 투자된 만큼의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말았다. 거대 제약회사나 거대 종자회사에 소속된 과학자들은 해당기업의 이익을 위해 논문을 날조하기도 하며,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많은 연구들도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 경제학 혹은 사회과학에서나 다루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개념들이 과학자들에게 더 이상 낯설 수도, 낯설어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인류가 처해 있는 현실적 조건을 이해해야만 한다. 과학자는 더 이상 상아탑 안의 선비가 아니므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수호하기 위해서는 과학 이상의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문화의 갈등이니, 통섭과 융합이니, 과학자에 대한 인문학적 교양교육이니 하는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인문학을 배운 이들이 반드시 윤리적이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과학이 안고 있는 여러 사회적으로 중첩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을 배우지도 않는 인문학자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는 소박한 것이다. 자신의 학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학문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과학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거창하게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현대의 과학자들이 서 있는 발판은 기껏해야 17세기, 가깝게는 대부분 19세기에 완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이 문화적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17세기에 대한 공부는 이미 과학과 자본이 강력하게 결합한 거대과학의 시기에 살아가는 과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당시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이해하고, 다시금 그러한 과학자의 낭만적인 향수를 되새기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런 낭만적인 과학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17세기 과학자들의 열정적인 태도는 분명 배울만한 점이 있다. 또한 과학교육에서 그러한 공부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기업과 국가라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과학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19세기의 과학사를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제국의 시각을 반영하던

제국주의 시대의 과학사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미안하지만 덧붙인다면,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물질적 성취만을 통해 알고 있고 과학의 정신을 무시해왔다. 과학의 내적인 미와 자연의 가슴으로부터 과학이 끊임 없이 끌어내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나는 과거 과학 업적들에서 교체되지 않고 또 교체될 수도 없는 무엇을 찾는 것이 우리 자신들의 탐구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참다운 휴머니스트는 예술 및 종교의 생애를 알고 있듯 이 과학의 생애를 알아야만 한다. -조지 사튼4)

 

과학사 연구를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초했던 조지 사튼(George Sarton, 1884-1956)은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벨기에 출생의 과학자였다. 사튼에게 과학사란 궁극적으로 ‘새로운 휴머니즘(New Humanism)’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찰스 스노 경이 ‘두 문화’라는 나이브한 논의로 전세계를 사로잡고 있었을 때,5) 사튼은 과학사를 통해 과학과 인문학을 서로 조화롭게 연결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에드워드 윌슨은 최근에야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다지만,6) 사튼은 과학사로 인류의 문명사를 종합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이미 70년 전에 던진 것이다. 사튼은 인간이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잘 활용한다면 인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사튼은 과학이야말로 진보하는 유일한 인간활동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점은 사튼의 ‘과학사 정리’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정의: 과학은 체계화된 실증적 지식이거나, 혹은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그렇게 간주되어 온 것이다.

정리: 실증적 지식의 획득과 체계화는 진정으로 축적적이고 진보적인 유일한 활동이다.

추론: 과학사는 인류의 진보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역사이다.7)

 

사튼에게 과학사란 과학의 차갑고 객관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과학의 따뜻하고 주관적인 이미지로 향햐는 여행이다. 성영곤의 말처럼, “(사튼이) 두 문화 사이에 놓고자 한 교량은 과학사라는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그 교량에 대한 계획은 휴머니즘”이었던 것이다.8) 우리가 사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은 과학사를 통해 과학자가 휴머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그 가능성에 있다. 과학의 진보를 믿으면서도 동시에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도구, 그것이 사튼이 건설하고자 한 과학사의 최대 목표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튼의 과학사 연구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사튼은 과학사를 통해 서구의 전통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한 진보주의자이기도 했다. 비록 겉으로는 인본주의를 내세웠을지 몰라도,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작업이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의 기원을 찾고, 중세의 암흑기에서 과학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내려 했던 점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과학사라는 학문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하는 공간이 생긴다. 과학사가 독립적인 학문 분과로 자리잡던 바로 그 시기에 제국주의는 완성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고, 과학사가 바로 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서구의 것이었고, 그 전통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서구 열강이 제3세계를 침탈할 수 있는 우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과학사 연구의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튼의 과학사 연구는 보편적 휴머니즘의 기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휴머니즘을 얻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서구의 역사일 뿐이다. 따라서 제3세계의 과학자들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휴머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따라나올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관점의 동양과학사 연구,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의 한계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튼의 전통은 조셉 니덤(Josep Needham, 1900-1995)이라는 걸출한 과학자/과학사가에게 이어졌다. 발생학자이자 생화학자로 경력을 시작한 니덤은 사회주의에 매료되어 결국 중국에 건너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대작을 집필한다. 니덤은 사튼의 과학사 연구가 가진 서구중심적 한계를 파악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라는 문명에서 과학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 것이다. 백과사전식으로 집필된, 여전히 완결되지 못한 그 저작에는 니덤이 가진 과학에 대한 사상이 깔려 있다. 그는 중세까지 중국에 뒤쳐져 있던 서구의 과학이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수학적, 분석적 도구들의 출현으로 중국을 앞지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대과학이 출현하게 된 유럽의 특수한 조건들을 분석하면서, 니덤은 중국에서는 왜 과학이 출현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니덤에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과학은 하나뿐이다. 또한 과학은 일정한 역사적 방향을 따라 이러한 보편적 과학을 향해 발전하고야 만다.

 

니덤이 제시한 첫 번째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이 질문은 이미 오래 전에 논리학에서도 기각된 질문이다. 우리는 어느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다른 집들에는 왜 불이 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답은 엄청나게 복잡하거나 혹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집은 아예 불씨가 될만한 것이 없었을 수도 있고, 어떤 집은 얼어 있었을지도 모르며, 어떤 집은 홍수로 물바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앵거스 그레이엄(Angus Charles Graham, 1919 - 1991)이 오래 전에 지적한 이 문제는 여전히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 중이다.9)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의 사용이 단 한번 발견되고 전파된 것처럼, 고구마를 씻어 먹는 일본원숭이들의 기원이 하나의 원숭이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근대과학도 17세기의 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 불현듯 우연히 등장한 것 뿐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추측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왜 다른 지역에서는 근대과학이 출현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만큼 무지한 일은 없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니덤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 즉 역사에 어떤 필연적인 단계와 방향이 있다고 믿는 단선적 역사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니덤과 그의 시대가 가진 한계였다.

 

철저한 인본주의자이긴 했지만 니덤의 과학사 연구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니덤의 수수께끼, 즉 “중국에서는 왜 과학이 탄생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 그 자체가 서구의 시각에서 협소하게 동양의 전통을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의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기에 자신의 나라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이주했던 니덤이지만, 제국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된 과학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중국에서 찾아보려 한 인본주의자 니덤이었지만, 결국 그도 자신의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식이었던 셈이다.

 

니덤의 과학사 연구 전통은 그대로 한국의 과학사학계로 이어졌다. 한국 과학사에는 니덤의 전통이 그대로 배어 있다.{{10}} 그 덕분에 한국과학사의 많은 부분이 고대의 과학을 찾는 연구들에 할애되어 있다. 첨성대의 과학과, 물시계, 해시계를 발명한 장영실 등에 대한 연구들이 우리 민족의 과학적 자부심을 고취한다는 원대한 목표 속에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우리의 과학적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은 근현대의 한국과학사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첫째, 근대과학의 기원은 어차피 서구의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한국과학사란 바로 그 서구의 근대과학이 수입되어온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고, 셋째, 바로 이 지점에 현재 한국과학자들이 기대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의 연원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한국과학사란 바로 그 서구과학의 수입에서 시작해 이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사학계가 최근 들어 근현대 한국과학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11}} 특히 김근배 교수의 연구들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한국과학사학계가 일군 탁월한 성과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튼-니덤-한국과학사로 이어지는 전통은 바로 그렇게 현실의 과학자들에게는 와 닿지도 않는 고대사와 중세사에 집착함으로써 과학자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는 비극을 초래했다. 따라서 과학자들에게 과학사란 그냥 재미로나 보는 것으로 전락해버렸고, 과학사를 통해 과학자들은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존재로 타락해버렸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과학자사회가 움직이는 방식, 즉 교과서를 중심으로 최근의 지식만을 습득하는 방식이나 과학이 움직이는 방식, 즉 10년만 지나도 곧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과학의 진보적인 특징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의 기저엔 과학과 과학사를 뿌리깊게 갈라놓은 과학사가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0sciday1 » <조선일보> 1935년 4월20일치 제2면의 일부.

   

 

 

오늘 한국과학자들을 돌아보게 할 

'제국주의, 과학'의 역사는

 

따라서 과학사는 현장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조건을 이해하고, 과학의 결과물들을 인본주의적 지침 하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만 한다. 그 전제 조건은 과연 과학의 역사가 과학자의 현실적 조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학교육의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교육에서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을 좀 더 제공하려는 시도는 오래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뉴턴의 사과’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은 자라서 과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현장의 과학자들은 그 공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와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절대로 자식들을 이공계에 진학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기여한 사회 속에서 고립되었고,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중인의식이라는 숙명 속에 살아가고 있다.{{12}}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학사가 해야 하는 일은 자명하다. 첫째, 과학사는 역사 속에서 과학자들이 현실적 조건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연결고리 속에서 과학사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셋째, 그 시작은 고대과학이나 민족과학과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연구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현재 기대고 있는 현실적 조건을 형성한 근현대의 공간이어야만 한다.

 

제국주의와 과학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출발의 디딤돌이 된다. 그 이유는 첫째, 동아시아의 과학이라는 것이 결국은 제국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전파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제국주의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된 과학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과학자들이 좀 더 분명하게 자신들의 결과물이 가진 힘과 파괴력을 인지하고 이를 인본주의적 조명 아래에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현재의 과학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사회구조가 바로 그 제국주의의 전통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역사적인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윤리적인 것이며, 세 번째 이유는 사회적인 것이다. 첫 번째 이유를 알게 됨으로써 과학자는 과학의 역사성을 인식하게 된다. 과학의 역사성을 인식한 과학자는 두 번째 이유를 푸는 과정에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며, 이 두 과정을 거쳐 세 번째 이유에 도달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 조건을 역사라는 지평 위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만약 필자의 생각이 옳다면, 동아시아는 과학을 발명하지 못했다는 비참한 딜레마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잠시 부끄러워하던 과학자는, 과학이 제국주의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는 역사에서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한 역사가 결국 여전히 과학자들의 삶을 옭매고 있다는 데에서 사회참여의 의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국주의 정당화 도구로서의 과학의 위치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서두에 언급된 동양에서 과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이 서구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해서 동양의 과학자들이 자존심을 잃을 필요도 없고, 실제로 그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을 뿐더러, 그 어떤 학자집단들보다도 글로벌화되어 있다는 현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과학사란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통해 한국과학자들의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활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환단고기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고양시키겠다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니덤의 말처럼 보편적 과학은 하나뿐이다. 그 뼈대는 17세기의 유럽에서 기원했다. 하지만 실험과학의 전통이 확립된 그 시대에도 여전히 과학 이론의 많은 부분은 과학자들의 상상력에 의존했으며, 그 상상력의 토대 속에 문화적 영향력이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앞으로 어떤 과학이 펼쳐지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국과학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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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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