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읽는 컴퓨터와 인간의 ‘자유의지’ 대결?

인간 뇌파 읽는 컴퓨터 vs. 뇌파 신호와 다른 행동 선택할 줄 아는 인간

“무의식적 뇌 결정도 실행 직전에 뒤집어…돌이킬 수 없는 순간은 존재”


00thethinker.jpg »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 출처/ Wikimedia Commons


가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는 행동 이전에 뇌에서 그 운동의 신경 반응이 먼저 나타난다면? 그러니까 나의 행동을 내가 의식하는 순간 이전에 뇌에서는 이미 그런 행동의 신호가 관찰된다면, 나의 의식이 행동을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뇌의 명령 이후에 나는 내 행동을 내가 선택했다고 의식하는 걸까?


피실험자가 자기 손가락을 움직이는 선택을 의식하기 이전에 뇌에서 그 행동과 관련한 신경 반응(전기신호)이 먼저 나타난다는 신경과학 실험(벤자민 리벳의 연구)의 결과가 보고된 이래,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순수한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의 물음을 둘러싸고서 신경과학과 철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2008년에는 독일의 존-딜런 헤인스(John-Dylan Haynes) 박사 연구팀이 비슷하게 설계한 실험을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 관찰 기법으로 수행해 비슷한 결론을 발표하면서 자유의지 논쟁이 다시 일기도 했다.


2008년 연구의 책임자였던 존-딜런 헤인스 박사가 이끄는 다른 연구팀이 얼마 전에 당시의 결론과는 다소 다른 실험 결과를 제시해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헤인스 연구진은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낸 논문에서, 의식할 수 없는 뇌의 사전 신경반응이 의식적 행동(의지)을 결정한다는 이전의 해석과는 사뭇 다르게, 사람들이 뇌의 사전 신경반응과는 달리 자신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즉 무의식적인 뇌의 결정론적 명령을 인간이 이후에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조 베를린 샤리테의과대학 보도자료]


다음은 이번 실험의 의미를 설명하는 논문의 머릿글 부분이다.


자발적 운동에 앞서 뇌 신호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어 왔다. 단순한 자발 운동보다 1초가량 앞서 이른바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 RP)’라는 신경 반응이 운동 관련 뇌 영역에서 관찰된다. RP는 자신이 ‘행동 결정(decision to act)’을 했다고 보고하는 피실험자의 보고 시각보다 앞서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비슷한 사전 신호들이 침습적 전극생리학 기법과 뇌기능 자기공명영상 기법을 사용한 연구에서 관찰되었으며, 그런 사전 신호들은 복합 반응 선택지들 중의 선택, 추상적 판단, 지속적인 선택, 그리고 가치 기반 판단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입증되어 왔다. 지금까지도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그런 선행 신호들의 정확한 성격과 인과적 역할은 논란의 대상이다.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은, 사람이 RP가 나타난 이후에 운동을 중지함으로써 그것에 거부(veto)를 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RP의 개시가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의 인과적 연쇄를 격발하기에 그것이 중간에 취소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RP의 개시는 한 줄로 이어진 도미노에서 첫 번째 돌을 넘어뜨리는 것과 유시할 것이다. 만일 중간에 개입할 기회가 없다면 도미노는 하나씩 넘어지면서 결국에 마지막 돌에 이를 것이다. [...] 또 다른 가능성은 피실험자들이 그 과정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느 중간 단계에서 연쇄적인 도미노 중에 돌 하나를 들어내어 그 과정이 끝까지 나아가는 것을 막는 것과 유사하다. 이번에 우리는 실시간 실험으로 이 문제를 직접 시험했다. 실험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장치에 의해 피실험자의 RP의 개시가 관찰된 이후에도, 피실험자가 자신의 운동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00braincomputerduel.jpg » 실험 장면. 출처/ John-Dylan Haynes 연구진 구진이 설계한 실험은 대략 다음과 같다. 뇌파 측정 장치를 머리에 쓴 피실험자는 컴퓨터 화면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2초가량 기다렸다가 그 이후에 언제든지 바닥에 놓인 버튼을 발로 누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 그 불이 여전히 초록이면 피실험자는 점수를 얻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불이 빨강으로 바뀌면 점수를 잃는다. 게임의 상대는 컴퓨터다. 컴퓨터는 피실험자의 뇌파 신호를 실시간으로 받기 때문에, 피실험자의 의식적 행동에 앞서서 그 행동의 신경반응 신호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컴퓨터는 피실험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그래서 그 행동을 예측해 초록불을 유지하거나 적당한 때에 빨간불로 바꿔 피실험자가 게임에서 실패하게 할 수 있다. 피실험자한테도 이런 컴퓨터의 기능과 전략을 알려준다. 이제 피실험자는 자신의 행동 이전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뇌파 반응을 파악하고서 컴퓨터가 불빛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될수록 불가예측의 행동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컴퓨터한테 유리하게 설계된 실험에서 컴퓨터는 늘 승리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피실험자가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뇌의 선행 신호들을 거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보고했다. 피실험자의 행동 선택은 자신도 모르는 뇌의 사전 행동 반응을 파악하고 있는 컴퓨터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으로 일어나는 뇌의 사전 신경반응이 의식적인 선택 또는 행동을 일으키는 결정론적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으며, 인간 의지가 이전 실험 결과들이 제시한 것보다 더 자유로운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실험 결과였다.


그러나 뇌의 신경반응이 결정하는 행동을 거부 또는 취소하는 것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연구진은 전했다. 행동의 거부 또는 취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순간(point of no return)’이 있다는 것인데, 피실험자가 행동을 실행하기 0.2초 이전에 빨간불을 보았을 때엔 뇌의 실행 신호를 멈출 수 있었지만 그 순간 이후엔 행동 실행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는 0.2초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인 셈이다. 


자유의지 논쟁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연구결과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뇌의 신경반응, 즉 뇌의 명령이 의식적 행동에 앞서 나타나지만 그것이 행동을 반드시 일으키는 결정론적인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의식하는 선택과 행동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일 뿐일까? 아니면 이런 실험들은 자유의지와 다른 개념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일까? 한때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신경과학과 자유의지 논쟁의 열기는 많이 식었지만, 행동을 매개로 그 전후에 나타나는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는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한겨레 스페셜   http://special.hani.co.kr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알림] 사이언스온이 미래&과학으로 바뀝니다

    뉴스사이언스온 | 2017. 12. 11

    미래/과학/기술/환경 뉴스와 비평, 연재물 서비스사이언스온 옛 글들은 지금처럼 접근 가능합니다 독자님들께안녕하세요. 그동안 작은 도전이었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의 필자들을 격려해주시고 또 웹진을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

  • “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언어사용 패턴은, 몸의 스트레스 보여주는 지표”

    뉴스오철우 | 2017. 11. 07

    특정 언어사용패턴과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발현 사이에 ‘상관성’“무의식적 언어패턴이 의식적 자가보고보다 측정정확도 더 높아” 일상언어 사용의 패턴이 말하는 이 자신도 잘 모르는 몸의 스트레스 반응을 알려주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결...

  • 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

    뉴스오철우 | 2017. 11. 07

    ※ 이 글은 한겨레 11월6치 '미래&과학' 섹션 지면에 실렸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분량을 줄이기 이전 원고를 사이언스온에 올립니다.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꿔치기[미래&과학] 주목받는...

  • ‘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뉴스오철우 | 2017. 11. 03

    수학적 모형 분석 논문 ‘눈길’세포간 경쟁과 선택, 노화와 암의 ‘딜레마’ 같은 상호관계 다뤄‘노화는 불가피하다. 논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수학적으로도 노화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노화를 일정 정도 늦출 순 있어도 멈출 순 없다는 ...

  • 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염기 하나만 바꾸는 단일염기 수정기법의 '확장'

    뉴스오철우 | 2017. 10. 26

    시토신-구아닌 쌍을 티민-아데닌 쌍으로 ‘점 수정’ 이어아데닌-티민 쌍을 구아닌-시토닌 쌍으로 수정기법 개발하버드대학 리우 교수와 MIT 펑 장 교수 각각 성과 발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법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되 디엔에이(DNA) 두 가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