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생명현상은 '선택된 특별한 짜임'의 복잡계"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 교수 특강원고
 

[고등과학원 기획 대중·특별강연 온라인 중계]

 

‘2010년 한국물리학회 춘계 학술논문 발표회’(4월21~23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고등과학원 기획·주관으로 열리는 ‘한국물리학회 대중강연과 특별강연’의 원고와 동영상을 사이언스온에 올립니다. 고등과학원의 'Open KIAS' 특강으로 △“생명현상의 물리학: 복잡계와 정보”(최무영 서울대 교수) △“Patterns and Waves in Living Systems”(이경진 고려대 교수)의 강연이 22일 오전 11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 101호와 102호에서 열립니다. 이어 ‘LHC -21세기 과학혁명을 꿈꾸다’라는 주제의 일반인 대상 물리학회 대중강연으로 △“입자가속기와 텔레비전 수리공”(최준곤 고려대 교수) △“빅뱅이론과 LHC: 가장 작은 세계가 가장 큰 세계를 밝힌다”(김항배 한양대 교수)가 22일 저녁 6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 301호에서 열립니다. 사이언스온은 고등과학원이 현장에서 촬영·편집한 동영상을 28일께 건네받아 29~30일께 독자들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원고로 작성된 최무영 교수의 강연 요지를 따로 웹진에 올립니다. 이 원고는 이전에 다른 곳에서도 발표된 적이 있다고 저자가 알려왔습니다. -사이언스 온

  

  

복잡계와 생명현상

 

 

0forest » 한겨레 자료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이끄는 말

 

자연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모든 대상은 많은 수의 분자 또는 원자 등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many-particle system)이다. 이러한 뭇알갱이계에서 구성원끼리 적절히 상호작용하면 이른바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on)에 의해 구성원 하나하나의 성질과는 관계가 없는, 계 전체로서의 집단성질(collective property)이 생겨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컵에 담긴 물은 1024개 정도라는 엄청난 수의 H2O 분자들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이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이 얼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분자들 사이의 협동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얼음도 물과 똑같은 H2O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일 H2O 분자가 서너 개 정도만 있다면 그것은 분자들일 뿐이지 물인지 얼음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컵의 물처럼 H2O 분자가 많이 모이면 분자들끼리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체적으로 집단성질이 매우 다른 물이나 얼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명현상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생명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많은 수의 단백질 분자 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분자 하나하나에는 생명현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분자들이 많이 모여서 형성한 세포라고 하는 뭇알갱이계에서는 생명이라고 부르는 신비로운 현상이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협동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집단성질은 구성원 하나하나의 성질과는 관계없이 새롭게 생겨난다는 점을 강조해서 '떠오르는 성질(emergent property)'이라고 부른다. 

 

근래에는 더 나아가서 이러한 논의를 사회현상에도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곧 사회를 개개인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 개개인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협동현상이 사회라는 집단의 성질을 생겨나게 한다는 관점에서 경제 현상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물리학에서는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을 이용해서 이러한 뭇알갱이계의 협동현상을 탐구한다. 통계역학은 깁스(Gibbs)와 볼츠만(Boltzmann) 등에 의하여 만들어져서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요소로 발전해 왔는데 거시적(macroscopic) 관점이라는 특징에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동역학(dynamics)과 구분된다. 거시적 관점에서 중요한 개념이 엔트로피(entropy) 및 정보(information)인데 이러한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질서가 떠오르고 생명도 탄생한다. 특히 생명체는 해로부터 자유에너지를 받아서 엔트로피가 늘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며, 정보를 늘려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뭇알갱이계는 흔히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매우 커다란 변이성(variability)을 보이는 이른바 복잡성(complexity)을 지니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복잡계(complex system)의 이해가 중요한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전자계나 초전도계 등 물리계에서도 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생명 현상을 보이는 생체계가 복잡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생체물리(biological physics)가 생겨났으며, 복잡계로서 사회적 현상을 다루려는 시도로서 이른바 경제물리(econophysics)나 사회물리(sociophysics)도 제안되었다.  

 

0lifet

 

 

 

복잡계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연현상은 완전한 질서나 완전한 무질서를 보이지 않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완전한 질서는 예측 가능하므로 간단하다고 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완전한 무질서, 곧 이상적인 마구잡이는 균일한 확률로 기술된다는 의미에서 역시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대부분 뭇알갱이계가 보이는 자연현상은 많은 경우에 변이 가능성이 매우 커서 예측할 수 없고 균일한 확률로 나타낼 수도 없다는 점에서 복잡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규칙적인 (질서 있는) 살창이나 마구잡이로 무질서한 기체와는 달리 지표면은 산, 강, 들, 바다, 섬 등으로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복합물이다. 이러한 자연의 경관은 복잡성을 보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만일 경관이 완전히 질서가 있거나 또는 무질서하다면 집에 가는 길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분자, 세포, 기관 등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와 이들로 다시 이루어지는 생태계는 대표적인 복잡계이다.

 

이러한 계들은 수많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 사이의 비선형 상호작용에 의해 집단성질이 떠오르는 뭇알갱이계이다. 특히 복잡계는 세세히 또는 멀리 들여다보면 각 단계마다 새로운 상세함과 다양성을 발견하게 되며 모든 크기의 구조들이 존재하게 되고, 흔히 구성원 사이의 상관관계가 거리나 시간에 대해 대수적으로 감소하는 눈금잡기 불변성(scale invariance)을 보이기도 한다.

 

공간에서 이러한 눈금잡기 불변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보기로 스스로 닮음(self-similarity) 성질을 지닌 쪽거리(fractal) 구조를 들 수 있다. 스스로 닮음이란 일부분의 구조를 확대하면 전체의 구조가 다시 얻어지는 성질을 말하는데, 이러한 구조는 자 눈금에 관계없이 같은 모양을 보이게 되며, 복잡한 해안선, 눈송이, 나무의 모양, 은하의 분포, DNA 구조, 도시의 성장, 고속도로 교통 등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시간에서 눈금잡기 불변성을 가진 대표적 현상으로는 1/f 신호가 있다. 이는 신호를 여러 진동수들의 성분으로 분석할 때 각 성분의 세기가 진동수에 대략 반비례하는 경우를 말하며, 대부분의 전자흐름길과 강물의 흐름, 별의 밝기, 염통의 박동, 뇌전도, 생태계의 진화, 교통의 흐름, 주식 시세, 고전음악, 박수갈채 등에서 널리 나타난다.

 

단순한 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고비성질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액체와 고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고비점에서 물질은 눈금불변성을 보이며 외부의 자극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전체가 결맞게 응답한다. 이러한 성질들은 복잡계가 보이는 성질과 비슷하지만 스스로 짜이지(self-organized) 않고 온도 등 외부변수를 미세 조정해야 나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혼돈(chaos)계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나타내는데 스스로 짜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하얀잡음(white noise)을 보이며 변이 가능성이 크지 않으므로 역시 복잡계는 아니다.

 

복잡계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구조를 구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 나가는 유동성을 지닌다. 열역학 둘째법칙이 나타내듯이 외떨어진 계는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반면 복잡계는 열려있는 흩어지기 구조(open dissipative structure)를 지녀서 외부 영향 아래서 스스로 짜이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성을 미시적 관점에서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복잡계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많은 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로부터 엄청난 변이 가능성, 곧 복잡성이 어떻게 떠오르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계를 기술하는 동역학의 끌개로서 복잡성이 얻어진다는 스스로 짜인 고비성(self-organized criticality)이 관심을 끌고 있으며, 환경과의 정보 교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정보전달 동역학(information transfer dynamics)도 제안되었다.

 

복잡성을 보이기 위해서 마구잡이와 함께 쩔쩔맴(frustration)이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쩔쩔맴을 보이는 아주 간단한 예로서 서로 적인 A, B, C의 세 사람을 생각하자. 곧 A와 B가 서로 적인데 B와 C도 적이므로 A 입장에서 볼 때 적의 적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면 A와 C가 친해야 좋겠지만 A와 C도 역시 적이다. 또는 한 여자에 대해 두 남자가 벌이는 이른바 애정의 삼각관계도 마찬가지로서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쩔쩔맴이라고 부르는데 자연 현상에서 흔히 나타나며, 텔레비전 연속극을 비롯한 연극에서 긴장도(tension)를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뭇알갱이계에서 구성원끼리 쩔쩔맴이 많아지면 변이가능성이 커져서 이른바 복잡성을 보이게 된다.

 

자연현상을 가져오는 모든 물질계는 에너지(일반적으로는 자유에너지)라고 하는 양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연현상은 계의 전체 (자유)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어나게 된다. 간단한 계에서는 이러한 진행이 빠르게 일어나서 안정한 평형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평형상태는 다양성과 변화가 없는 “죽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쩔쩔맴이 많은 복잡계에서는 구성원 하나의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전체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고, 특히 전체에너지가 최소인 상태가 매우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가 최소인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극히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일반적으로 계는 평형이 아닌 준안정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복잡계인 유리(glass)가 바로 그러한 경우로서 유리의 에너지가 최소가 되는 데에는 우주의 나이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 있는 유리는 가장 안정한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생체계도 마찬가지로서 비평형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생명이라는 놀라운 스스로 짜임 현상을 보일 수 있다. 

 

이를 사회현상에 대비시켜 본다면 사회현상은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쪽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나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방향이 사이가 나쁜 다른 사람에게는 그의 행복을 적게 하는 것일 수가 있고, 따라서 전체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가 있다. 곧 개인의 이익이 서로 상충하는 관계는 쩔쩔맴을 주게 되고 복잡계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안정한 상태에 스스로 도달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사회현상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이 때 외적인 강제력을 사용하면 그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만히 놓아두면 안정한 상태로 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복잡계에 적절한 건드림(perturbation)을 주면 빨리 안정한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0life » 한겨레 자료사진/ 이정아 기자

 

 

생명현상과 사회현상

 

생명이라는 놀라운 현상을 보이는 생체계는 궁극적인 복잡계라고 할 만하다. 다른 복잡계와 마찬가지로 생체계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분자들은 “간단한” 물리법칙을 따르지만 이들이 많이 모여서 구성한 유기체의 거동은 매우 복잡하다. 다시 말해서 생명 현상은 그 본질이 생체계를 이루는 개개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특별한 짜임으로부터 떠오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포막에서 화학적 신호를 받는 분자라든가 유기체의 성장을 제어하는 특정한 유전자 등 기본적인 생화학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곧바로 생체계 전체의 성질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같이 생명현상을 생체계의 구성원 사이의 협동에 의해 떠오르는 것으로 간주하면 그 본질의 이해를 위해서는 당연히 복잡계로서의 탐구가 중요하다. 이 경우에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이것이 수 십 만년이 넘는 동안 자연선택을 통하여 합당한 기능을 가지도록 선택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또한 생체계에는 유전자 정보 등에 의해 완전히 결정적이기보다는 확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의 뇌도 겉보기로는 같지만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각 신경세포나 그들 사이의 연결 등은 어느 정도 마구잡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통계역학적 방법이 타당할 수 있다. 이러한 생체계에서 그동안 연구되어 온 주제들로는 단백질의 구조 및 동역학, 효소의 작용, DNA의 상전이와 정보 저장, 세포막과 이온채널, 내분비와 조절 기능, 심전도, 뇌전도, 생체주기 등에서의 집단때맞음, 두뇌의 모형으로서 신경그물얼개, 면역계 및 진행성 질병의 진행, 생태계와 진화 등이 있다.

 

단백질은 20가지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사슬로서 이들 사이의 결합에 의해 특징적으로 꽉묶인 3차원 구조를 이루는데 이것을 단백질 접기(protein folding)라고 한다. 여기서 먼저 아미노산의 배열을 1차 얼개라고 하며 아미노산들이 모여 이룬 알파나사선(alpha-helix) 및 베타켜(beta-sheet)를 2차 얼개라고 부른다. 2차 얼개가 다시 무리를 이루게 되어 3차 얼개를 형성해서 단백질의 특징적인 3차원 구조를 형성한다. 주어진 아미노산의 배열에 대응하는 이러한 구조를 설명하는 단백질 접기는 전형적인 복잡계 문제로서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미노산 또는 그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알고, 이에 따라 에너지 및 엔트로피를 고려해서 최적화하는 효율적인 방법 및 동역학 과정의 효율적인 시늉내기가 필요하다.

 

세포의 경계면을 구성하는 생체막은 두 켜의 고분자들로 이루어지며, 특정한 이온들이 드나들 수 있는 이온 통로(ion channel)가 있다. 이는 외부와 경계를 구성하면서도 적절히 열려있어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온 통로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명현상의 이해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로 연구될 것이다.

 

두뇌는 신경조직이 발달하여 이루어지는데 구성단위인 신경세포는 비교적 단순한 비선형 작용을 하지만 수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발현되는 뇌의 집단작용은 매우 신비롭고 생체계에서도 궁극적인 복잡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경세포는 수상돌기를 통해서 주위 신경세포로부터 생화학적 신호를 받고, 작용 퍼텐셜이 특정한 문턱값 보다 크면 축색돌기를 통해 다른 신경세포에 생화학적 신호를 보내는 공통적인 특성과 작용을 가진다. 이러한 신경세포는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시냅스(synapse)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그물얼개(neural network)를 이룬다. 시냅스는 생화학적 신호를 전달할 때 적당하게 세기를 조절하는데 이 세기는 긴 시간 활동에 따라서 조절될 수 있다. 이러한 시냅스의 빚음성(plasticity) 때문에 두뇌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서 저장할 수 있다.

 

두뇌의 각 부위가 하는 작용은 다양하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뇌는 일종의 범용 컴퓨터로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기억 및 연상, 운동 제어, 감각 처리 등과 같은 특정 작용은 해부학적 상세함에 관계없는 통계역학적 모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물학적 두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자 수준에서부터 행동 및 인지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의 통합이 요구되므로 물리학 뿐 아니라 생물학, 화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

 

진화는 아주 다양한 생명체를 야기하는 어떤 보편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지구는 처음에 생명체가 없이 시작했다고 생각되므로 현재 생명체의 다양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진화는 먼저 분자들로부터 자기복제가 가능한 상대적으로 단순한 유기체의 형성 단계와 이런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보다 복잡한 유기체의 형성 단계로 나눈다. 유기체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생물체의 청사진에 해당하는 DNA의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DNA가 마구잡이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해 왔다고 본다면 지구의 수명으로는 DNA의 모든 가능한 배열 중 극히 일부분만이 탐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화의 과정은 유전자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이 포함된 퍼짐 현상으로서 유기체와 자원 두 요소로 구성된 퍼짐-반응계로 모형화할 수 있다. 특히 유전자 수준에서 마구잡이 변이(random mutation)과 표현(phenotype) 수준에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고려하고 환경과 정보전달을 강조하는 모형에서 화석 자료와 일치하는 눈금불변성을 보여서 관심을 끌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더 정밀한 통계역학적 모형을 통한 진화의 이해가 기대된다.

 

복잡계의 과제로 연구된 문제로 교통흐름(traffic flow)과 주식시세 요동 및 시계열 분석 등 사회과학적 문제도 있다. 교통흐름에서는 주로 고속도로에서 차량의 흐름을 띄엄띄엄한 낱칸자동기계(cellular automaton) 또는 연속적인 흐름체로 보고 여러 가지 맺음변수에 따른 정상 소통과 체증 등의 다양한 상을 고찰하였다. 주식시세 요동 분석은 파생상품과 관련하여 이른바 경제물리를 낳았으며 확률방정식(stochastic equation) 등 통계역학 및 비선형동역학의 기법들을 이용한다. 현실적인 중요성으로 이러한 분야는 앞으로 더욱 많이 연구될 것으로 보인다.

 

최적화 문제란 어떤 양의 최소값 및 그 양을 최소화하는 짜임새를 찾아내는 문제로 널리 알려진 외판원 문제(traveling salesman problem)를 비롯해서 그림 나누기(graph partitioning), 차량 대기(vehicle queuing) 등이 있는데 물리학 뿐 아니라 공학과 사회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찾아내는 풀이법은 일반적으로 계의 크기에 지수적으로 의존해서 시간이 증가하므로 현실적으로 큰 계에서 풀이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최적화 문제는 복잡계의 바닥상태 및 그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과 동등하며, 따라서 통계역학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주로 불림 시늉내기(simulated annealing) 방법과 유전자 셈법 등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고, 특히 엔트로피 추출을 이용한 엔트로피 불림(entropic annealing)과 형태공간 불림(conformational space annealing)이 좋은 결과를 준다. 이 주제는 앞에서 언급한 단백질 접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실용적인 중요성으로 널리 연구될 전망이다.

 

각 구성원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꼭지점과 연결선으로 나타내면 뭇알갱이계는 일반적으로 그물얼개의 구조를 가진다. 이는 결정(crystal) 등에서 보듯이 질서가 있는 경우에는 규칙적인 살창이 되며, 완전히 무질서하면 마구잡이 그물얼개(random network)로 주어진다. 복잡그물얼개(complex network)는 이러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복잡성을 보이는 구조를 지녔으며, 이른바 작은 세상 그물얼개(small-world network)와 눈금 없는 그물얼개(scale-free network)가 널리 연구되었다. 이러한 그물얼개 구조의 예로서 인터넷 및 웹 연결, 교통망, 사회적 관계, 단백질 상호작용, 신진대사, 신경그물얼개 등이 제시되었고, 그 구조적 특성이 연구되었다.

 

질서와 무질서의 사이라는 점에서 “혼돈의 가장자리(border of chaos)”에 있다고 표현하는 복잡성이 자연 현상에 보편적으로 널리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복잡계 현상은 21세기에 중요한 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을 지닌 복잡성이 떠오르는 성질로서 나타남은 전통적인 자연관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결정론(determinism)과 (인식론적) 환원주의(reductionism) 모두의 재검토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0complex » 한겨레 자료그림. 2001년 정하웅 카이스트 교수가 증명해낸 효모의 단백질 2천여종의 결합관계를 나타낸 네트워크.

 

 

 

 

맺는 말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 달리 이론을 추구하는 이론과학이며, 이것이 물리학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론이란 보편지식 체계를 지칭하는 말로서 실험과 대비되는 용어가 아니다.) 지난 20세기의 물리학은 기본원리를 구성하였고 주로 환원주의와 결정론적 관점에서 비교적 간단한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데 주력했다.

 

이에 반해 21세기의 물리학은  자연의 해석에 중점을 두게 되리라 예상한다. 특히 자연에서 다양하고 근원적인 복잡한 현상을 다루게 될 터인데 이를 위해서는 예측불가능성을 인정하고 전체론(holism)적 관점을 고려해야 하며 해석에서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물리학의 범주 뿐 아니라 화학, 생물, 지구과학, 사회과학 분야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포함되며 이에 따라 물리학, 혹은 이론과학의 지평이 넓어지리라 예상한다. 특히 복잡계 및 복잡성의 관점에서 생명 현상의 보편지식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는다면 생명이라는 가장 신비로운 현상을 근원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잡계에서는 매우 커다란 변이가능성 때문에 처음 조건의 조그만 차이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예를 들어 환경 등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적응에 유연성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복잡성은 본질적으로 생명 현상의 존재에 필요할 뿐 아니라 유지, 곧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것이 건강한 사람의 심전도나 뇌전도가 복잡성을 보이는 근본 이유라고 추측한다. 사회의 경우에도 상황이 결정되면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또는 외적인 강제력을 통해서) 사회는 대체로 안정된 질서의 상태가 되겠지만, 너무 질서만 있는 (경직된) 사회는 적당히 복잡성이 있는 사회에 비해 상황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곧 복잡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은 열려있는 사고와 반증 가능성을 인정하는 진정한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며, 부분적 합리주의 및 이에 기반을 둔 과학주의가 지닌 위험을 생각하면 스스로 성찰하는 비판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기술로 대변되는 도구적 지식에 반해 인간에게 진정한 과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복잡성의 이해는 결정론에 근거한 기계론과 환원주의에서 출발했다는 현대문명의 여러 병폐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시사한다. 곧 복잡성이 지닌 예측 불가능성과 떠오르는 성질은 결정론과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전통적인 자연관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런 토대에 기반을 둔 현대문명은 여러 가지 병폐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사고의 규범이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자연을 파악하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생명 현상 탐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활동의 주체이다. 이는 복잡계 현상의 진정한 궁극으로서, 서로 얽혀있는 생명과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 이 원고는 이전에 다른 곳에서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사이언스온)

 

 
최무영 서울대 교수/ 물리학 0C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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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 급팽창 입증 첫 단추…검증·후속 연구 주목우주 급팽창 입증 첫 단추…검증·후속 연구 주목

    리뷰사이언스온 | 2014. 03. 31

    원시 중력파 관측결과 발표, 의미와 과제기고: 이석천 고등과학원 연구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 성경 창세기 1장 3절지난 3월 18일, 우주론 연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가 발표됐다. 우주 태...

  • 작지만 위대한 잡초 '애기장대' 모델식물이 알려준 것들작지만 위대한 잡초 '애기장대' 모델식물이 알려준 것들

    리뷰사이언스온 | 2013. 12. 02

    모델식물의 가치와 한계, 그리고 자연이수민 포스텍 생명과학과 박사후연구원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내 직업을 식물학 연구자로 소개할 때마다 나는 그 순간이 참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다음에 이어질, 몇 년을 고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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