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인간-인공물 경계 무너지는 융합시대를 내다보며

[퍼온글]

 

 

 

인지과학 기술과 미래 융합기술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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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수렴적, 융합적, 총체적 접근이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인지과학은 심리학, 언어학, 신경과학, 전산학, 철학, 인류학 등의 학문이 수렴되어 인간, 동물, 기계의 지능 연구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제적, 수렴적 가능성을 보였으며, 21세기에 이르러 그 자체 내에서 수렴적 특성을 넘어서 또 다른 상위 수준에서 총체적 자연관의 시도인 융합과학기술의 한 핵심 축 역할을 제공하고 있다.

 

 

미래 융합기술의 요체, 인지과학기술

 

line »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내는 사보 3+4월호에 실린 이정모 교수의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주신 연구기관과 저자한테 감사드립니다. -사이언스 온

2002년 미국 과학재단이 제시한 미래 NBIC(나노+생명+정보+인지) 융합기술의 틀은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몇 가지 시사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미래 융합기술의 4대 핵심 축으로 '인지과학응용기술'(CogT)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 사회의 기술은 국내에서 회자되는 NT(나노기술), BT(생명공학), IT(정보기술)의 3두마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지과학기술이 이 셋을 연결한 핵심 축의 하나가 되어 융합적, 수렴적 기술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인지과학기술이 그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스페리 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인지과학의 등장이 단순히 기존 과학기술에 영역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을 넘어서서 하나의 ‘과학적 혁명’, 즉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지과학의 등장은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결정된다는 전통적 물리학의 가정 대신에 역방향적인 하향적 결정론을 전제하는 것이다. 스페리 교수의 말처럼 전통적 물리학의 상향적 입장과 인지주의의 하향적 입장이 조합된 ‘이중 방향’, ‘이중 결정’ 모형은 과학으로 하여금 인간 자신과 자연의 질서, 그리고 문화 전체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기술 개발하는 데에 전적으로 새로운 양식, 즉 진정하게 쿤(Kuhn)적인 '세계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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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융합기술의 궁극적 목표

 

둘째는 이 융합기술의 틀이 물질과학의 최첨단을 연구하는 나노과학 연구자들이 제안한 것임에 불구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미래 융합기술의 궁극적 목표가 '획기적인 물질 또는 기계의 발명'이나 '인간의 장수'와 같은 물질적, 생명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인간 개개인이 처한 각종의 일상 생활과 일(단순 제품 생산의 좁은 영역의 근로자이건 산업기술 정책을 결정하고 좌우하는 사람이건, 올림픽 출전 선수이건)의 제반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적으로,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삶과 일의 활동 퍼포먼스(수행, Performance)를 증진하고 향상시키는(Improving Human Performance) 기술의 개발에 미래 융합기술의 궁극적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융합기술이 지향하는 미래 세계는 개개인이 행위적, 인지적으로 끊임없이 최상의 퍼포먼스(performance)를 내며, 계속하여 학습·진화하고, 협동을 통해 학습하는 공동체로 성장하며, 최적으로 디자인된 사회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 첫째와 둘째의 시사점과 스페리 교수의 말을 종합하여 미래 융합기술 틀을 다시 그려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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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까지 과학과 기술의 연구가 인간 밖의 대상인 물질과 동식물의 물리적 측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제는 과학과 기술의 핵심 연구 대상이 바로 인간 자신이 되며, 마음이라는 높은 추상 수준의 현상이 과학 탐구와 융합기술 개발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생명체의 과정이 이뤄내는 자연 지능의 본질과 인공물인 컴퓨터의 물리적 과정이 이뤄내는 인공지능의 본질과 실제적 구현. 이 두 지능 사이의 관계성이 21세기 과학과 기술 개발의 중심 주제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미국 과학재단이 제시한 미래융합기술 틀은 단순히 종래의 물질 중심 기술 개발의 틀을 재구성하는 단계를 넘어서 비물질 측면의 기술, 특히 인간의 각종 인지 및 감성 기능 등의 능력 향상 및 확장이 인류가 21세기와 그 이후에 추구하여야 할 중요한 목표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전통적 물질 중심의 과학기술관에 젖어 있는 국내 과학 기술계 일부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 시대’의 도래 

 

융합기술의 세 번째 시사점은 미국의 미래 과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의 ‘특이점의 도래’ 예측과 NBIC 융합기술의 연결이 주는 의의이다. 커즈와일 박사는 수많은 세계의 과학과 기술 등에 대한 자료를 모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2030년 전후에는 인간과 인공물(인간이 만든 하드 시스템 또는 소프트 시스템)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이러한 예측에 대해 아무리 비판적이고 보수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네비게이션 등의 기술 사용에 익숙해지고, 인터넷 3.0, 휴먼 v2.0 등의 실현이 불가피함을 생각해보면 큰 변화의 시점에 와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17세기에 신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자연과 인간 중심으로 생각 틀을 바꾸었던 ‘제1의 계몽시대’를 넘어서서 ‘인간’과 ‘인공물’의 2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제2의 계몽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인류 문화사에서 굉장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시대의 초입에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 테크놀로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통적, 고식적, 물질 중심의 기술관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최소한의 수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과 인공물의 관계, 특히 인공물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추월하고 인공물이 인간과 같은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미래 가능성 등을 고려한 미래 융합기술 틀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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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학기술인들에게 주어진 과제

 

인간(의 지능)과 인공물(의 지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기술을 개발하여야 할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다.

 

1. 인간이 (특히 수많은 소프트웨어ㅡ하드웨어 인공물의 일상화로 인해 각종 정보처리의 부담이 극도로 가중된 인간이) 최적, 최상으로 자신의 인지적, 감성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간 인지, 감성 능력을 조성하는 기술

2. 가장 인간과 닮은 기능을 하는(때로는 인간 기능을 초월하기도 하는) 지능적 인공물을 개발하는 기술

3. 인간과 인공물이 가장 효율적으로(때때로 팀을 이루며) 상호 작용하게 하는 기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세 범주의 기술이 서로 괴리되어 있지 않고 밀접히 엮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를 위한 기술 개발이 곧 다른 것을 위한 기술 개발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요인이 곧 인공물(기계)요인이고, 인공물 요인이 곧 인간요인이라는 점이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다’라는 말은 곧 ‘결국은 인공물이 문제다’로 바꾸어 생각하여야 하고, ‘결국은 인공물(기계 등)이 문제다’라는 말은 곧 ‘결국은 인간이(인간의 마음, 인지, 감성이) 문제다’라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인식하였기에 미국의 첨단과학의 선두주자들인 나노과학자들은 미래 융합기술의 궁극적 목표를 새로운 물질이나 기계의 개발, 혹은 인간의 장수에 두지 않고, ‘인간(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질 수도 있는 경우도 고려하여) 퍼포먼스의 향상’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지기능 향상 기술이 이스라엘 등에서 첨단 기술로 현재 개발되고 각광받고 있으며, 닌텐도의 위(Wii) 시스템이 성공하였고, 인지과학과 융합기술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인지컴퓨팅, 인지시스템, 인지로보틱스 등이 서구에서 각광받는 미래 융합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자동차나 컴퓨터를 많이 생산하는 것을 미래기술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 국가와 국민 개개인이 아인슈타인에 준하는 인지적 능력을 지니며 또 발휘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인지기능향상 기술 개발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국가가 있다면 몇 십 년 후에 예상할 수 있는 두 국가의 차이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이제 깨어있는 융합과학기술인들에게 부과된 과제는 미래에는 사람들이 과거처럼 편하게, 오래 사는 단순 목표를 넘어서서 각자가 일생동안 최적, 최대한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공물과 함께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인지적 능력 향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 인지과학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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