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진화·분자의 두 생물학 전통위에 초파리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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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초파리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마고


"눈길을 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젊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태도에서는 성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를 네이처 같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정기적으로 발표했다. 그들은 바로 초파리를 연구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린 시절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았고, 누구보다도 곤충채집을 좋아했던 나는 모든 권유를 뿌리치고 생물학과로 진학했다. 미숙했던 나는 생물학과에 가면 아프리카에라도 가서 사자라도 만날 것이라고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교과서엔 이름 모를 분자들만이 가득했고, 그 어디에도 사자와 타조는 없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김정만 박사님은 먼 세계였다. 생물학자는 동물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으로 보였다.

 

생물학은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생물학(Biology)은 하나다. 하지만 단순한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높은 장벽을 두고 생물학은 둘로 나뉜다. 그 하나의 가지는 박물학 혹은 자연사의 전통으로 현대에 이르러 진화행동생물학 혹은 진화생태학 등으로 불리고, 다른 한 가지는 생리학과 물리학 및 화학의 전통을 함께 물려 받은 것으로 현대에 이르러 분자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1).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의 고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로부터 생리학자였던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에게서 이미 나타나는 '궁극인(Ultimate causation)'과 '근접인(Proximate causation)'의 구분은 두 개의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준다. 예를 들어 '초파리는 왜 빛을 향해 날아갈까?'라는 질문에는 두 가지 형태의 답이 존재할 수 있다. '빛을 향해 날아가는 형질이 초파리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답은 궁극인적/진화론적 형태다. '초파리의 눈에 존재하는 빛 수용체로부터 뇌에 전해진 신경자극이 초파리가 빛을 향해 날아가게 만든다'라는 답은 근접인적/생리학적 형태다.fly1

 

궁극이라는 말에서 진화론적 답이 더 우월한 형태라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초파리 유전학의 세계를 야외로 넓혀 종 분화를 연구했던 진화유전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2)라는 말로 이러한 우월성을 과시했다. 심지어 국내의 모 교수는 이 말을 더 확장시켜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3)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화라는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도 의미를 가지는 생물학의 영역이 있다. 진화라는 개념을 몰라도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다.



도그마의 과학


DNA 이중나선이 발견되고 얼마 후에, 공동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도 도브잔스키의 언설과 같은 류의 '중심도그마(Central Dogma)'를 발표했다. 훗날 크릭은 도그마라는 말이 그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지 몰랐다고 서술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중심도그마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에른스트 피셔(Ernst Peter Fischer)의 말처럼 "과학은 세계의 마법을 없애버리기는 커녕 세계에 마법을 건다. 과학은 자연의 신비 옆에 신비로운 설명을 나란히 놓는다."4)

 

fly3도브잔스키의 도그마는 두 가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란시스코 아얄라(Francisco José Ayala)의 말처럼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진화론의 근대종합을 이룬 기수 중 한 명이 종교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도 개인적인 신앙의 여지는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과학자가 도킨스(Richard Dawkins)처럼 무신론자인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는 신은 진화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스스로를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의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도브잔스키의 도그마가 등장하던 때인 1964년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신흥학문이 생물학의 지형을 뒤바꾸고 있던 시기였다. 에드워드 윌슨이 '분자전쟁'이라고 묘사했던 바로 그 생물학 두 진영의 갈등은 유전학과 진화론을 하나로 묶어 완벽한 진화종합을 이루었다고 자축하던 유기체 생물학자들(도브잔스키, 마이어, 심슨[George Simpson])에게 하나의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도브잔스키의 발언은 바로 이 시기, 젊은 분자생물학으로부터 유기체 생물학, 구체적으로는 다윈의 자연선택을 개체를 중심으로 이해하던 구세대 생물학을 보호하려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릴 수는 없듯이, 결국 진화생물학에도 분자생물학의 방법론과 개념은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의 이론을 잘 포장했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도브잔스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궁극인이 최선의 답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상식이다. 하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가설들은 모두 정답에 열려 있다. 과학철학자 엘리엇 소버(Elliot Sob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러한 구별은 생물학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진화론이 최선의 또는 가장 심오한 대답을 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식물 내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그것이 빛을 향하여 자라도록 하는가?' 하는 것은 결코 진화론적 물음이 아니다. 진화론적 물음은 오히려 어떤 생물학적 현상에 대해서나 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이 중요한 것은 문제의 배후에 언제나 진화가 있기 때문이다."5)

 

fly2궁극인과 근접인은 상호보완적이다. 궁극인은 근접인에 의해 좀 더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되고, 근접인은 궁극인적 설명을 통해 이론적 간결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물학의 역사에서 벌어진 일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예를 들어, 근접인과 궁극인의 구별은 실험과 이론 중 무엇을 더욱 중요한 지침서로 따르는가 하는 과학의 분과다양성과 맞물려 설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6) 다만 여전히 분자생물학의 전통에 서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진화의 불빛에 비추어 볼 생각을 하지 않고도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 진화생물학 및 행동생태학의 전통에 서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도 분자생물학이라면 머리를 질끈 감싸 매고 있다는 것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실제로 실험을 기반으로 재확인 가능한 결과들을 내놓는 분자생물학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물학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만, 두 분야 모두 제 각각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가의 피


자연사의 전통엔 작가의 피가 흐른다. 언제부터 이런 전통이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깝게는 다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그의 자연선택을 훌륭하게 종합한 저작이기 이전에 한 편의 문학작품이자 철학책이기도 하다.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도 글재주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의 손자들 중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실제로 <멋진 신세계>라는 베스트셀러를 남긴 소설가가 되었고, 또 다른 손자 줄리앙 헉슬리(Julian Huxley)도 동물학자로, 유네스코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수려한 글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으로 넘어 오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리쳐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를 빼놓을 수 없다. 동물행동학의 창시자 중 한명인 니코 틴버겐(Nikolass Tinbergen)의 제자 도킨스와 고생물학자 조지 심슨(George Simpson)의 뒤를 잇는 굴드 역시 자연사의 전통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자연사 전통이 가진 작가적 재능은 현대에 이르러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기술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게놈>의 저자 매트 리들리(Matt Ridley)도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학자로 자연사 전통에 서 있다. 이 책,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초파리(이후 초파리)>의 저자 마틴 브룩스(Martin Brookes)도 자연사의 전통, 정확히는 행동생태학의 전통에서 나방을 연구하던 학자였다. 리들리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신의 조류 연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접어들며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성과를 조망했듯이, 마틴 브룩스도 나방을 연구하면서 초파리라는 이상한 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신기함을 느끼고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젊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태도에서는 성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 그리고 자신의 연구를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정기적으로 발표했다. … 그들은 바로 초파리를 연구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초파리> 15쪽)



과학사에 대한 오해


곤충학자들은 오랫동안 자연사의 전통에 서 있었다. 최근에 와서야 완역된 <파브르 곤충기>처럼 곤충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관찰과 기술(記述)'을 바탕으로 연구한다. 관찰과 기술이 중심이 되는 학문이니 기술자의 주관적인 미학이 개입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치 우리가 <동물의 세계>는 열심히 시청하면서 식물에 관한 다큐멘터리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초파리는 무시당하기 딱 좋은 동물이다. 사람들은 초파리를 100마리나 깔아뭉개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고,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순전히 주관적인 나의 동물 심미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초파리에게는 아주 낮은 점수밖에 줄 수 없었다. 편형동물보다는 높은 점수였지만, 유럽옆주름고둥보다는 낮은 점수였다."(<초파리> 14쪽)


초파리는 그런 생물이다. 썩어가는 음식냄새가 조금이라도 진동하면 부엌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날벌레가 바로 초파리다. 마틴 브룩스의 책과 함께 읽어야만 하는 책, 조나단 와이너의 <초파리의 기억>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초파리 유전학자 마이클 애쉬버너의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놀랍게도 곤충학자들 대다수는 초파리를 곤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곤충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초파리에 관한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그걸 다 읽어보려면 유전학에 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한데, 곤충생물학자들에겐 그게 부족하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7)


생물학의 두 전통은 여전히 복잡하게 갈등하며 얽혀 있다. 특히 관찰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사의 전통은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으로 무장한 초파리를 끌어 안지 못하고 있었다(시모어 벤저[Seymour Benzer]라는 학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자연사의 전통이 분자생물학을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분야에 긴 골이 패여 있는 이유에 대해 마틴 브룩스는 이렇게 판단한다.

 

"박물학의 철학은 관찰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박물학자들은 생물학의 우표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보존된 수백만의 동식물 표본이 그 우표에 해당했고, 박물학자들은 이것들을 수집하고 기술하고 분류했다. 20세기가 되자 그 우표는 유전자나 DNA 배열로 변했지만, 생물학에 대한 (박물학자들의) 기본적인 접근방법은 이전과 똑같았다. … 새로운 유전박물학자 세대는 새로운 기술과 실험방법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단지 관찰과 기술을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마치 박물학자가 새를 관찰하기 위해 쌍안경을 사용하거나 아메바를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해 현미경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신중하게 제어된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실험 철학의 기초)은 이제 필요 없어졌다.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직접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거나 그 배열을 알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의미에서 초파리의 게놈 배열을 알아낸 것은 박물학의 전통에 종말을 가져왔다. 초파리에 대한 유전자 우표 수집은 이제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방대한 문자 목록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아마 21세기에는 생물학자들이 이 일에 매달리느라 무척 바쁠 것이다."(<초파리> 213-216쪽)


바로 이 구절이 우리가 마틴 브룩스의 책을 읽으며 놓치지 말아야 하는 주제다. 물론 이 책은 매우 재미있게 쓰여 있고(부록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초파리 돌연변이들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주로 초파리를 가지고 연구하는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끊임 없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생물학의 발전과정에서 두 전통이 갈등했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다. 우리는 과학사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리학이 과학사 연구의 중심이던 20세기 초엽에 형성된 이러한 견해들은 대중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 만약 우리가 교과서나 신문 혹은 엉터리 학자들의 농담으로만 접하던 과학사들이 정말로 왜곡된 것인지 궁금하다면 에른스트 피셔의 <과학을 배반한 과학>을 비롯한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권한다. 아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든지, 갈릴레오가 과연 교회에 의해 탄압을 받은 것인지, 멘델은 유전법칙을 확립한 사람이 맞는지, 플레밍은 정말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인지 등에 관한 상식의 오류를 비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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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왜곡 중 하나가 바로 라마르크와 다윈에 관한 오해일 것이다. 멍청한 과학자로 그려지는 라마르크는 실은 멍청한 과학자가 아니었고, 위대한 승자로 그려지는 다윈도 그리 위대한 승리자는 아니었다. 이러한 오해는 첫째, 라마르크를 비역사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그 잣대를 다윈에게는 가져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라마르크는 그의 시대에 위대한 생물학자였다. 그는 박물학의 전통을 구시대적 생물학이라고 규정하면서, 실험철학의 탄탄한 기초 위에 생물학을 올려놓고자 했다. 비록 그의 <동물 철학>의 일부분이 '용불용설'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훗날 다윈의 지지자들에게 조롱을 받게 되지만, 실은 유전에 관한 마땅한 이론이 없었던 다윈도 라마르크를 받아들였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우스꽝스럽다면 다윈의 유전에 대한 이론인 '범생설(pangenesis)'도 현대의 관점에선 우스꽝스럽다.


라마르크와 다윈에 대한 오해의 두 번째 원인은 과학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라는 이분법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이념의 대립 어디에도 과학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식적인 과학이해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고 하지만, 과학에 대한 이해에는 그 중립이 필요하다. 라마르크의 시대에, 아니 다윈이 생존했던 시기까지도 라마르크의 학설은 학자들에게 인정받던 당당한 경쟁이론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실험생물학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라마르크의 이론을 믿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윈의 시대에 "다윈은 분명 과학자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기는 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이론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8)다. 다윈의 이론과 경쟁하던 가설들이 존재했고, 특히 그가 제시한 범생설과 관련해서는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파스퇴르나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bard)와 같은 생화학, 실험의학의 창시자들은 다윈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초파리로 대동단결


<초파리>의 서문과 제 1장의 초반부는 모건의 실험실에서 유전학이 탄생하기까지의 생물학사를 짧고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박물학의 전통에서 초파리 유전학의 전통으로 옮겨온 마틴 브룩스는 과학사에 대한 많은 연구들을 상당부분 반영하며 균형 있게 생물학사를 정리하고 있다. 물론 생물학사의 남겨진 이야기들은 이보다 방대하지만, 이 정도의 주요 역사만을 제대로 알고 있어도 대중을 상대로 한 사기에 휘말릴 일은 없을 것이다.


모건은 야외형 생물학자였다. 조나단 와이너의 표현을 빌자면 "모건은 생물학을 실험실로 끌어들인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야외형 인간이었다. 그러니 '야외형 학자'가 '실험실형 학자'를 위해 싸운 셈이다."9)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모건에게 회의주의자의 기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다윈도 멘델도 직접 실험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 완고한 노인이었다. 모건의 관점에서 "멘델의 유전체계는 현실에 사실적인 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호와 가설에 불과했"고, "그것은 모건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10}} 그가 오직 중요하게 여긴 것은 '실험적 증거의 설득력'이었다. 마틴 브룩스가 나방을 연구하는 자연사의 전통에서 초파리로 옮겨 오며 경험했던 여정은 모건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었다.


fly5모건의 실험실에 '파리방(fly room)'이 꾸며지고 얼마 되지 않아 흰 눈을 가진 초파리 한 마리가 태어난다. 화이트(white)라고 명명된 이 돌연변이가 모건을 멘델에게로 이끄는 견인차의 역할을 해냈다. 물론 모건이 한 발견 중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스터티번트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건이 멘델을 믿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모건은 스터티번트를 비롯한 훌륭한 제자들과 함께 고전 유전학의 시대를 열었다. 모건에 이르러서야 멘델이 추상적으로만 상상했던 유전자가 염색체라는 물리적 실체 위에 자리를 잡았고, 멘델의 유전법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반이 생겼다. 진화생물학의 근대적 종합은 실은 '멘델과 다윈의 결합'이 아니라, '모건과 멘델, 그리고 다윈의 결합'인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군소에 대한 연구로 신경생물학의 신기원을 이룩한 에릭 캔들(Eric Kandel)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물 종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통찰이 19세기 기술적인(descriptive) 과학에 일관성을 부여한 것처럼,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를 발견하고 이를 염색체에 옮겨 놓은 모건의 발견은 생물학이 실험과학으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브룩스의 말처럼 다윈이 핀치 대신 초파리를 선택했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3장에서 7장까지 브룩스는 초파리를 이용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그의 뛰어난 글 솜씨로 인해 독자들은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이 부분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사의 전통에서 공부했던 저자의 약력은 실험실 초파리 학자들의 연구분야에만 편중하지 않고 집단유전학과 하와이에서의 연구까지를 망라하고 있어 더더욱 도움이 된다. 실제로 초파리를 연구하고 있는 필자가 감탄할 정도로 브룩스는 최근의 연구들을 잘 분류해서 장 별로 정리해놓았다. 필자가 연구하는 주제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 때마다 유심히 바라보며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이야말로 독자들에게 많은 흥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모건의 사생아


하와이에서의 초파리 연구를 다룬 7장에는 다시 도브잔스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미 살펴본 그의 도그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루어지지 않지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종(species)'개념을 둘러싼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등장하므로 반드시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하는 장이다. 모건은 멘델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다윈에 대해서는 언제나 평가를 유보하는 입장이었다. 모건은 진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화가 반드시 다윈이 제시한 방법에 의해 일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다윈주의를 반대하는 책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진화의 메커니즘을 둘러싼 논쟁은 정당하다. 자연선택만으로 진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다윈도 알고 있었던 점이다. 유전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건의 다윈에 대한 반대는 정당한 것이었고, 모건만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은 187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다위니즘의 침체기였다. 멘델의 재발견과 모건에 의한 고전유전학의 성립이 없었다면 아마도 다윈은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fly6


모건의 제자들 중 특히 진화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 바로 도브잔스키였다. 그렇다고 해서 도브잔스키가 무조건 다윈의 편에 섰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조금이나마 모건에게서 물려받은 실증주의자의 피가 남아 있었다. 물론 그에게는 종교적인 선동가의 피도 함께 존재했다. 도브잔스키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종 개념에 대해 철학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견지했다.


"다윈의 입장에서 종은(속, 과, 목을 비롯해 다른 분류학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비록 자의적인 기준이라고 하더라고, 자연계를 조직적으로 분류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용어였다. 만약 종이 자의적이라면, 종 분화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다윈의 입장에서는 종의 기원과 집단간 차이의 기원을 절대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즉, 항상 변하고 있는 자연계에 우리가 부과한 추상적인 경계라고 생각한 것이다."(<초파리> 199쪽)


다윈은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종개념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화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점진주의자이며 진화의 연속성을 강조했던 다윈에게 종이란 진화의 흐름 속에 놓인 연속적인 실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브잔스키에게 이러한 추상적인 정의는 맘에 들지 않았다. 분명 그에게선 모건에게서 물려받은 실증주의자의 피와 그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피가 뒤섞여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로부터 70여 년 후인 1930년대에 도브잔스키가 종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도브잔스키는 다윈의 개념을 부정하고 나서면서, 종은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실재하는 생물학적 단위라고 주장했다. 종은 다른 종과 이종 교배를 할 수 없게 하는 본질적인 장벽을 갖고 있다고 그는 믿었다."(<초파리> 200쪽)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을 싫어했던 그의 스승 모건의 전통은 도브잔스키에게 일종의 관념적 강박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는 하나하나 실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증명하고 반박하려 했던 스승의 실험정신을 묘하게 비틀었다. 도브잔스키는 초파리에서의 증거만을 가지고 '생식적으로 격리된 종'이라는 개념을 창조해냈다. 도브잔스키의 손에서 초파리들의 잡종은 존재하지 않거나, 태어난다고 해도 생식적으로 불임일 뿐이었다. 도브잔스키는 모건의 전통을 희미하게나마 붙잡고 있었지만 그의 스승에 비해 지나치게 일반화에 성급했다. 1940년대 에른스트 마이어는 도브잔스키의 종 개념에 열광해서 이를 '생물학적 종의 개념'이라고 포장하기에 이른다. 마이어의 눈에 도브잔스키가 제기한 이 개념은 모호하기까지 한 종분화를 명확하게 만드는 멋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물학자였던 마이어는 이 개념을 '지리적 격리'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종분화의 메커니즘을 일반화했다. 이렇게 포장된 개념은 현재의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자연은 다윈과 도브잔스키 모두의 편이었다. 도브잔스키 이후 생물학자들은 야생 상태에서 수 많은 잡종의 사례들을 보고했다. 어떤 평가에 따르면, "동물종들 중 최소한 10%는 자연에서 교잡하여 잡종을 낳"고, "많은 잡종들은 불임 상태도 기형도 아니며, 양쪽 부모의 어떤 종과도 이종 교배할 수 있 "다.{{11}}


fly7과학의 개념이 한번 왜곡되기 시작하면 그것을 뒤집기는 더더욱 어렵다. 유전자라는 추상적 실체를 염색체라는 물리적 실체로 만든 그의 스승 모건처럼, 도브잔스키도 종이라는 모호한 실체를 확고한 생물학적 실재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모건은 성공했고, 도브잔스키는 실패했다. 마이어와 같은 선동가 덕분에 그의 이론은 인기를 얻었고 여전히 득세 중이지만, 자연엔 도브잔스키가 말한 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종에 대한 일반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브룩스의 말처럼 "도브잔스키의 종 개념은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자연에 대한 이상적인 시각"이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생물학이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라는 점 때문에 생겨난다. "철학적으로 잘못된 생각은 용서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 종이라는 개념은 자연계의 다양성을 묘사하는 데 아주 유용한 방법도 아니 "기 때문이다.{{12}}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미친 듯이 야외를 돌아다니며 때로는 FBI에 의해 스파이로 몰리기까지 했던 도브잔스키는, 유전적 다양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초기의 목표와는 반대로 그 기묘한 성향 때문에 자연의 다양성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도브잔스키의 종의 정의가 없더라도, 세상은 실제로는 훨씬 더 간단하고 만족스러운 장소라는 사실이다. 진화가 우리에게 준 분명한 교훈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엄격한 공식으로 종의 개념을 고정시켜놓을 필요가 있겠는가?"(<초파리> 206쪽)


물론 이러한 오류를 지나치게 비역사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브잔스키와 마이어는 종 개념에 대해서도, 분자생물학의 약진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권위적이며 비과학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로 돌아가 면밀히 평가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점에 대한 비판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브룩스의 말처럼 도브잔스키를 비난하기 보다는 초파리를 비난하도록 하자. 그에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만든 원인은 초파리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현대생물학을 가능하게 했던 초파리를 용서하면 될 것이다. 그다지도 많은 일을 해낸 초파리라면 종 개념에 약간의 혼선을 제공한 정도야 용서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흥망성쇠


책의 마지막 장에서 브룩스는 직접 모건이 초파리 연구를 시작했던 콜럼비아 대학의 셔먼홀로 찾아가는 수고를 한다. 그는 최초의 파리방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건이 제자들과 토론하고 초파리들을 고르며 오랜 세월을 보낸 그 방은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파리방의 전설은 그저 사진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초파리, 실험적 생명 (혹은 '실험실 생활', Fly, Experimental life)>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의 제목이 <초파리, 20세기 과학의 이름없는 영웅, Fly, The unsung hero of 20th-century science>으로 바뀐 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초파리라고 해서 모건 이후 계속 성공가두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이후 계속된 실험생물학과 더불어 생물학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이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및 닐스 보어(Niels Bohr)와 교류했고, 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막스 델브뤽(Max Ludig Henning Delbrück)이 생물학에 입문한 것은 생물학자들에게는 행운이자 초파리에게는 불행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초파리의 운도 다하기 시작했다. 초파리는 연구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새로운 세대의 실험 개척자들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초파리는 스스로의 성공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파리는 유전자를 유전의 기본단위로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분야를 급속도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 단계는 필연적으로 유전자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보는 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질문들은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의 영역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실험생물이 필요했다. 필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생물이었다. 그래서 이제 초파리 대신에 바이러스, 세균, 효모, 곰팡이가 주요 실험대상이 되었다." <초파리> 20쪽

 

델브뤽은 '파지그룹(phage group)'의 지휘자로 분자생물학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델브뤽이 모건의 실험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스터티번트가 그려 놓은 어마어마한 염색체 상의 지도를 보고는 질겁을 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도 별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가 DNA라는 점을 알고 있던 델브뤽에게는 조금 더 단순한(초파리도 박테리오파지에 비한다면 단순하진 않다) 생물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델브뤽에게서 배운 한 학자가 훗날 행동유전학을 창시하고, 분자의 세계로 함몰 중이던 생물학을 행동생물학이라는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그가 바로 시모어 벤저이고 그가 바로 조나단 와이너의 책 <초파리의 기억>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모건에게서 시작된 초파리 유전학의 계보는 우리네 인생처럼 성공과 실패의 이중주인 셈이다.fly8

 

브룩스의 이 책은 모건 이전과 그 직후의 초파리 유전학의 역사와, 최근의 연구를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초파리 수컷이 암컷에게 주입하는 정액 속 물질에 대한 연구는 필자의 실험실에서 여전히 진행중인 일이다. 하지만 <초파리의 기억>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는 시모어 벤저의 이야기 이외에 독일에서 초파리 연구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뉘슬라인-폴하르트(Christiane Nusslein Volhard)와 에릭 위샤우스(Eric F. Wieschaus)에 대한 언급은 매우 부족하다. 내 지도교수의 스승이기도 한 시모어 벤저는 물론 행동유전학이라는 영역을 열고 기억과 학습 및 주기성에 대한 연구를 개척한 위대한 과학자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나의 실험실에서 언제나 동시에 진행중인 발생학적 연구의 전통은 1970년대에 독일에서 온 것이다. 그나마 뉘슬라인-폴하르트의 저서 중 한 권이 <살아 있는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으니 많이 읽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과학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최초로 초파리를 실험동물로 삼았던 과학자 윌리엄 캐슬(William Castle)의 예를 들어 설명하던 브룩스의 말은 미국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이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에른스트 피셔의 말처럼 "대다수의 과학자는 그런(과학사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만 과학사의 혜택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과학 연구는 오직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있을 때만 꽃을 피울 수 있"{{13}}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초파리는 바나나를 좋아한다


fly9서두에서 말했듯이 분명 자연사 전통의 연구자들에겐 작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때로 그러한 재주는 지나친 선동으로 과학을 왜곡하지만, 마틴 브룩스처럼 과학의 역사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잘 기술해내기도 한다. 반면에 실험실 전통의 연구자들에겐 작가의 피가 그다지 흐르지 않아서 자신들의 역사조차도 제대로 기술하지 못하고 남들에 의해 각색 당하는 꼴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실험실에 갇혀 초파리를 사육한다기보다는 초파리에게 사육을 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글쓰기란 사치라는 생각이 들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정은 매한가지다. 분명히 다른 전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시장에서 생물학은 모두 자연사 전통의 학자들 차지다. 철저한 실험가 전통의 주인공 시모어 벤저가 주인공이었던 <초파리의 기억>도, 이 책 <초파리>도, 심지어는 분자생물학자들 중에서는 드물게 역사학에 관심을 가진 과학사가이기도 한 미쉘 모랑쥬의 <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조차도 모두 자연사 전통의 학자들에 의해 기획되거나 감수되었다. 슬픈 일이고 국내의 과학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여전히 실험생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자연사의 전통에 선 학자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에 나선다. 이러한 괴리가 문제되는 것은 과학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왜곡될 때 생겨난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리긴 하지만 과연 다윈의 전통에만 생물학이 존재하는가? 그것과 똑같이 우리는 <모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 두 전통의 갈등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통섭'은 공허한 말일 뿐이다.

 

초파리는 20세기 초엽에 스터티번트(A.H. Sturtevant)가 이야기한 '고전 유전학(Classical genetics)'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유전학과 진화론의 종합을 이끌었고, 분자생물학을 깊숙이 끌어 안으면서 분자발생학과 행동유전학의 시대를 열었다. 심지어 자연사 전통의 학자들이 완전히 새로운 학문인 듯이 선동하고 있는 '진화발생생물학(Evo-Devo)'도 초파리에게서 시작된 전통이다. 근대종합의 기수들이 기껏해야 유전학과 진화론의 종합을 이루었다면, 생물학의 모든 전통이 하나로 엮인 곳은 초파리라는 깃발 아래에서였다. 만약 생물학에 종합과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초파리에게서 단 한번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종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간은 화살과 같고, 초파리는 바나나를 좋아하며, 생물학자들은 초파리를 좋아한다(Time flies like an arrow, fruit flies like a banana, and biologists like fruit flies).


책들을 연결하기


모든 독자가 생물학사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생물학사란 방대한 분야여서 영어로 되어 있는 책들과 논문들 뿐 아니라, 독일어에도 능숙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사의 전통이 부족한 한국에서 그나마 독자들이 교양과학을 넘어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선동적인 책들보다는 좋은 책들을 찾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평을 넓혀가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그저 초파리에 대한 가벼운 교양과학지식을 원하는 독자라면(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조나단 와이너의 <초파리의 기억> 정도를 읽으면 족하다. 초파리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는 이 두 권의 책에 충분히 소개되어 있다. 이 두 권을 읽고 조금 더 생물학적인 깊이를 원하는 독자라면 러셀 포스터(Russell G. Foster)와 레온 크라이츠먼(Leon Kreitzman)이 공저한 <바이오클락>과 아먼드 마리 르로이(Armand Marie Leroi)가 지은 <돌연변이>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생체시계가 존재하고 이 분자시계들에 의해 주기성이 나타난다는 것은 브룩스의 책에서도 기술되어 있듯이 코노프카(Ron Konopka)라는 학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또한 초파리 유전학은 돌연변이들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돌연변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유전학은 물론 초파리도 이해할 수 없다. 르로이의 책은 그런 면에서 독자들에게 쉽고도 깊은 이해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러한 이해를 넘어 생물학사에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이미 언급된 미쉘 모랑쥬의 <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와 이 책의 짝으로 출판된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를 추천한다. 이 두 책을 비교하며 읽으면 꽤나 많은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생물학의 철학에 관한 책들은 철학자들의 취향대로 자연사 전통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별반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아가 진심으로 생물학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따로 필자에게 연락을 취하시길 바란다. 어차피 그런 공부는 지나치게 깊고 재미없으며 또한 한국에서 통하지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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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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