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학 보도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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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링 사이언스(Selling Science)
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 옮김 | 궁리


이 책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과학 보도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두 다 보여주진 못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비판적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과학 보도의 이면에 있는 뉴스 생산과 유통 과정을 기자, 과학자, 홍보관계자 등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집어 든 책의 제목부터 심상찮네요. '셀링 사이언스(Selling Science)'라니 ‘과학을 판다’고요? 과학 기자들과 과학자들이 과학 뉴스에서 과학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다뤘다는 책의 제목이 "과학 팔기"라니, 다 읽어보지 않더라도 요즘의 과학 보도에 상당히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접근을 하는 책일 거라는 짐작이 드네요. 실제로 이 책은 과학 언론이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그 언론보도의 허점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책으로도 이미 정평이 난 책이라 하네요. 국내에 뒤늦게 번역돼 나온 것이군요.

 

지은이인 과학사회학자 도로시 넬킨(1933-2003)은 책의 앞부분에서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먼저 밝히고 있군요. 그는 과학 기자들과 과학자들을 만나 깊게 있는 인터뷰를 나누고 또한 당시 여러 매체에 등장했던 과학 관련 보도들의 경향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언론매체가 대중에게 제공하는 과학기술의 이미지와 그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언론과 과학 양쪽 모두의 특성”을 탐구하려는 게 이 책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지요. 1987년 초판이 나온 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1995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저는 과학 뉴스를 보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책이 비판하고 있는 과학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당사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나름의 반박 논리도 세워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초판으로 치면 20여년 전에 나온 책이니까, 그동안 과학 언론을 비평하는 여러 새로운 관점들도 제시됐고 또 과학 보도 자체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기에, 지금에야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이 여러 대목에서 그리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고난 뒤에 저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론이 대중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크며, 그런 언론매체의 영향력을 활용하려는 여러 환경들에서 언론은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넬킨의 지적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매체들이 늘어나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학 뉴스들이 넘쳐나고 어떻게 하면 과학 뉴스를 재밌게 전할까 하는 고민은 깊어가지만, '과학 저널리즘'의 측면에서 우리는 넬킨 식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서평 제목을 "과학 언론 반성문"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 뉴스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상당히 현실에 근접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과학 보도에 대한 이러쿵저러쿵 인상비평을 해대는 게 아니라 과학 뉴스가 언론매체에 보도되기까지 이뤄지는 여러 과정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사람들(취재기자, 데스크, 편집자, 그리고 과학자, 홍보 관계자 등)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지금의 과학 이미지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 뉴스에 등장하는 과학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자가 지적하 지 않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미 우리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과학은 어떤 풀기 힘든 난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그런 해결과정은 멋진 드라마처럼 이야기되지요. 거기에는 스타 과학자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또 이번 연구성과로 수십억~수백억원의 경제효과가 생겼다는 얘기도 자주 듣고 있군요. 갖가지 은유와 비유들은 과학기술의 다양성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어떤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해 버리기도 하지요. 또한 과학은 언제나 이해관계를 떠나 존재하는 순수한 진리나 의문의 여지 없는 진실을 전하는 확실성의 상징으로도 비쳐지지요. 아참, 이런 과학의 이미지와 관련해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우리가 흔히 "과학"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정리한 글인데 잠시 옮겨봅니다.

 

“과학”이라는 말은 단지 어떤 특정의 학문 분야를 가리킬 때 사용되곤 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등, 그리고 또 인류학과 심리학, 어떤 때에는 사회학, 경제학 등등을 지칭할 때에도 쓰인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적인” 같은 말들은 자주 (그렇지 않은 때보다 그런 때가 더 잦은 것 같다) 영예로운 의미로 사용된다. 광고업자는 과학적인 신제품 세제로 옷을 더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판적 사유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과학적으로 추론하라고,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재판관은 증인이 제시하는 바가 과학적 증거라는 말을 들을 때 증인을 좀 더 믿으려고 한다. …이런저런 주장을 의심할 때 사람들은 그 주장에 과학적 설명이 없다고 말하거나 과학적인 증명을 해보라고 요구한다. 사례는 더 많다. “과학적”은 인식론적 찬사를 담은 만능 용어가 되어 “강력하고 믿을만하고 훌륭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Susan Haack, Defending Science- within Reason : Between Scientism and Cynicism, 18쪽)

 

넬킨은 한때 미국에서 "기적의 치료제" "마법의 탄환" 등으로 열띤 주목을 받았다는 '인터페론' 보도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과학 뉴스의 특징들을 뽑아냅니다. 첫째 과학 보도의 특징으로 그는 과학의 '내용'보다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미지들이 자주 사용되며, 둘째 연구과정을 극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경향을 띤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넬킨은 "독자들은 기대수준을 높이고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장법과 홍보성 보도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섣부른 열광과 낙관적 기대를 자아낸다. 그러나 약속이 실패하면 곧 환멸이 찾아온다"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도 경험했던 바이지요. 세번째 특징으로는  과학 보도가 "경쟁'에 초점을 맞춰 연구자들을 해법을 찾아나서는 '경주'를 벌이는 사람들로 자주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보도 특징들이 학술저널이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는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만, 그런 특징들이 지나치게 두드러진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그런데, 그가 인터페론 보도 사례 연구에서 또 하나 주목한 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과학 보도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과학자들이 [연구성과를] 홍보하고 연구에 대한 언론 보도를 형성하는 데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주목을 끌기 위한 수사적 전략을 점점 더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의 이러한 경향은 언론의 주목이 돈주머니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다"라고 그는 말합니다(22쪽). 

 

 

 

■ 넬킨의 눈에 비친 과학 기자와 과학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읽기에는, 이 책 곳곳에서 과학 기자는 상당히 불안정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왜냐고요? 전문가인 과학자, 그리고 일반 독자인 대중의 사이에서, 과학 기자는 자주 전문가이면서 대중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춘 사람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전문가도 아니며 대중도 아닌 존재로서 활동하기 때문이겠지요. 한 걸음만 떨어져 있어도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을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지식이 세분화한 시대에, 과학 기자는 언론인의 역할을 인식하기에 앞서 '전문가 콤플렉스'를 엄청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과학 기자는 난해한 과학을 독자 대중이 쉽게 읽도록 풀어 전하는 중개자로 이해됩니다. 중개자인 기자는 뉴스의 '원본'인 과학의 언어를 그대로 난해하게 전할 수는 없기에 늘 대중의 언어로 요령있게 간추려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과학 언어를 대중 언어로 바꾸는 일종의 '번역' 과정으로도 비유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보자면, 과학 기자는 과학의 원본을 대중의 언어로 옮기는 번역자입니다. 만일 과학 기자가 번역자일 뿐이라면, 그한테는 늘 '얼마나 원본에 충실했는가'라는 도전적 물음이 따라다니게 되겠지요. 이 책에서도 여러 과학자들은 저자와 한 인터뷰에서 과학 내용을 엉뚱한 은유나 맥락으로 옮기는 언론매체들에 대한 '원본의 깊은 불신과 불만'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과학 기자의 불안정한 존재'란 이런 의미였습니다. 과학 기자는 번역자일 뿐일까, 이게 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물음이었습니다.

 

넬킨은 또한 과학 기자들을 상대하는 과학자들은 언론매체에 대해 대체로 이중적 태도를 지니는 특징을 드러낸다고 지적합니다. 지은이가 인터뷰를 통해 경험했던 여러 과학자들의 목소리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연구 분야를 대중에 더욱 더 널리 홍보하기 위해 언론매체에 더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기 전공 분야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연구예산을 지원받아야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 자체로는 당연한 일이고 나쁜 일도 아니지요. 그래서 "언론의 주목이 돈주머니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정에 입각"해 일부 과학자와 과학연구기관들은 자기 연구성과와 자기 분야 연구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홍보자료들을 쏟아내고, 기자들은 전문 연구분야를 다루는 홍보자료 더미에 묻힌 채 홍보자료에 이끌려 과학 보도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는 게 넬킨의 진단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풍경이군요. 그러나 이런 풍경이 공익적인 과학 뉴스를 널리 알린다는 좋은 취지를 넘어서서 지나치게 돌아갈 때에는 건전한 과학 보도에 매우 심각한 해악이 되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어떤 과학의 이미지가 조장될 수도 있지요.

 

"역사가 엔서니 스미스가 말했듯이, '누군가가 잡은 특종은 종종 다른 누군가가 용의주도하게 위장해 배포한 유인물이다.' 복잡한 기술 자료와 씨름하는 어려움은 회의적인 탐사보도의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복잡성이 언론의 한계와 합쳐지면서 과학 기자가 (자신들의 뜻대로 뉴스를 형성하려 애쓰는) 정보원들에게 노출하는 약점을 더 키운다는 데 있다."(192쪽)

 

이와 관련해 이 책의 다른 대목도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의 삶에서 형성된 자기만의 과학 이미지에 의지해, 사람들은 과학을 단순화하고 예단함으로써 과학을 지나치게 칭송하거나 지나치게 폄하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지요. 나 자신은 물론이고 여러 동료와 선후배 기자들, 그리고 노련한 편집국 데스크들조차 쉽게 빠져드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글은 과학의 권위에 쉽게 의지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물론 과학의 권위를 너무도 쉽게 거부하는 반과학의 태도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기자들, 그중에서도 과학 보도에 경험이 일천한 기자들은 정보원에 의한 조작에 약점을 노출한다. 그들은 균형감각과 객관성에 관심이 있으며 과학이 중립적 권위자이자 진리의 객관적 심판자라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 과학 기자들 중 일부는 과학자들을 우러러보고 일부는 과학자들을 보고 겁을 먹지만, 기술적 쟁점의 복잡성을 접하면 당황한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비슷하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주제를 평가하는 어려움은 기자라는 전문직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제약과 합쳐져 과학적 전문성에 무비판적으로 의지하는 경향을 강화한다. 정치 담당 기자들은 종종 언론 보도자료를 훌쩍 뛰어 넘어 뉴스 뒤에 숨은 기삿거리를 탐색하는 반면, 과학 기자들은 권위 있는 연구자, 기자회견, 전문 학술지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많은 기자들이 과학자들의 사고방식 내지 ‘프레임’을 받아들여 정보원이 정의하는 대로 과학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257-258쪽)

 

넬킨의 얘기를 듣다보면, 특히나 과학기술 요소가 사회적 쟁점에 섞여들어갈 때에 과학 기자들은 탐사 보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사회 쟁점을 푸는 일에서 과학자들의 역할도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의 위험성이 사회 이슈가  됐을 때에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태도나 언론의 보도 경향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문 분야 취재에서 과학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과학 기자들은 종종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지요. 

 

"때로는 과학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확실성과 유능함의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러한 전문용어와 과도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험에 관한 보도의 질은 기자가 갖춘 기술적 소양과 입수할 수 있는 정보를 가려내고 해석하는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종종 경쟁하는 주장들의 질을 평가하지 않고 위험 논쟁의 모든 당사자들을 인용해 균형 잡힌 설명을 제시하려는 노력만 기울인다."(191쪽) 

 

기업은 또 어떻습니까? 언론매체 수입의 상당 부분을 기업들의 광고비에 의지하는 언론 경영 구조는 언론매체가 과학기술 문제에 대해 그야말로 "과학적인" 보도를 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넬킨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점에서는 넬킨과는 다르게 할 말도 생겼습니다. 먼저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과학보도의 문제들이 '과학 보도만의 고유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대중매체 전반의 문제입니다. 뉴스를 극적 이야기로 만들고 독자의 눈길을 더 끌고자 선정성으로 치닫는 일은, 지나치게 부각될 때에는 다른 분야의 보도 비평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정도로, 대중매체의 속성 때문에 생겨나는 만연한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인정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넬킨의 날카로운 지적을 너무 독창적 지적으로 과장하여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찬가지로 넬킨은 과학 보도를 비평하는 틀에 집중하다보니 여러 사회 쟁점들을 과학 보도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컨대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에 관한 사회적 이슈는 과학 보도만의 영역을 넘어 더 넓은 사회 이슈의 무대로 오른 주제입니다. 과학 연구 결과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갈등의 민주적 해결 절차, 소비자의 심리, 기술 위험에 대한 인식 구성, 사회 안의 숙의 전통과 제도 등처럼 매우 사회적인 접근이 필요한 보도 영역입니다. 즉, '과학의 요소를 담은 사회적 이슈'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고 적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일 넬킨처럼 이런 성격의 이슈를 과학 보도의 영역으로 축소한다면, 사회적 이슈였던 미국산 쇠고기수입 파동도 '광우병 과학의 보도' 문제로 축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언론의 관계에 관해 넬킨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원본과 번역본의 관계'처럼 인식하는 태도를 자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언론인은 과학자가 아닙니다. 언론 보도가 과학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느냐의 문제는 '정확한 보도'라는 언론인의 직무로 보더라도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이것은 언론의 여러 사명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언론은 과학계와 사회 전반의 관심사를 두루 보려는 눈으로, 과학 연구와 지식의 트렌드를 보여주고, 과학이 어떻게 설명되며, 과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서 생기는 새로운 소식을 뉴스와 비평으로 전달합니다. 과학 언론은 과학 자체가 아니며 과학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매체이기에, 과학 기자는 과학자와 다른 직업적 가치관, 사명감, 그리고 스타일을 갖고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 언론과 과학의 '틀림'뿐 아니라 '다름'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하고(틀림은 극복 또는 개선해야 하지만 다름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이런 언론매체의 고유한 특성이 좀더 세심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과학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게울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  넬킨의 책에 대해 직업적 과학 언론인으로서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을 얘기한다는 게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할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반성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과학계에 유익하고, 또한 우리사회에 유익한 과학 뉴스를 쓰도록 노력해야 겠지요. 상투적인 과학의 이미지를 쓰고 있지 않나 늘 반성하면서, 또한 과학의 신비에서 벗어나 현실의 과학을 꼼꼼하게 전달하고자 애쓰면서, 또한 홍보 수단을 갖춘 연구기관의 과학 뉴스만이 아니라 홍보 수단 없이 묵묵하게 연구와 교육을 지키는 현장에서도 흥미로운 과학 뉴스를 찾고자 노력하면서, 과학 뉴스가 우리사회가 향유할 지식과 문화의 자산으로 자리매김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현실 과학에 더욱 더 밀착하면서도 과학 언론인으로서 정신적 독립을 이루는 일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과학 보도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두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비판적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과학 보도의 이면에 있는 뉴스 생산과 유통 과정을 기자, 과학자, 홍보관계자 등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비평자의 눈으로, 과학 뉴스의 겉모습과 뒷모습을 함께 보게 하며, 뉴스 이면에 있을지 모를 '과학 이미지의 홍보 전략'을 따져보는 눈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과학 뉴스를 소비하는 문화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하나를 덧붙입니다.

 

대중 언론이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제도에 대해 감시자로서 역할을 하려면, 또 과학과 대중 사이를 매개하고 중요한 정책 쟁점에 관한 공공적 담화를 촉진하려면, 과학자와 기자들 모두가 불편하고 종종 적대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고 감수해야만 한다. 과학자들은 정보에 대한 통제나 과대선전으로 이어지는 홍보 성향을 자제해야 하며, 좀더 정력적인 탐사보도에 문호를 열어두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자들은 정보뿐만 아니라 이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학계의 사건에 단순히 반응해 이를 대중이 소비할 수 있도록 번역하고 명료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독자가 과학기술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위치한 맥락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과학 활동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함의, 의사결정을 떠받치는 증거의 성격, 그리고 과학이 인간 활동에 적용될 때 갖는 힘뿐만 아니라 그것의 한계까지도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268~269쪽)  

 



■  책갈피 

   

• 좋은 보도는 일반대중이 과하정책의 쟁점들을 평가하는 능력과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 반면 나쁜 보도는 과학기술에 의해, 또 기술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에 점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대중을 오도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15쪽)  


•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보와 이미지, 가치와 관점, 기호와 상징에 대한 통제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분명 극히 민감한 쟁점이다. 산업체, 정치 조직, 전문직 단체, 특수 이익집단, 야심만만한 개인들은 모두 교육과 오락,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매체를 통해 문화 영역으로 진입하는 메시지를 관리하고 싶어한다. 과학자들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언론과 맺는 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대중의 과학이해 증진과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추가하는 과학자, 어렵고도 중요한 전문직에 종사하는 기자, 그리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기술적 요소에 대해 공평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와 관련된 문제들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줄 수단이 될 것이다. (30-31쪽)  


• 역설적인 것은, 기자들이 과학자를 공통의 문화로부터 동떨어진 사람으로 그리면서도, 종종 그들을 자신의 전문능력 밖의 영역에서도 발언할 수 있는 권위자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자가 과학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치적 딜레마에 대한 견해를 밝힌 글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에는 과학이 하나의 우월한 지식 형태이며, 따라서 이 영역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은 모든 문제에 대해 어떤 특별한 통찰력을 당연히 가졌을 거라는 믿음이 함축되어 있다.(43쪽)  


• 언론은 어떤 이론을 옹호할지를 선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과학이라는 보증수표를 이용해 특정한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언론은 그 과정에서 과학의 실체나 그것이 서서히 누적되는 과정, 그리고 복잡한 인간 행동을 적절히 설명함에 있어 과학 이론이 지니는 한계 등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51쪽)  


• 하지만 과학은 여전히 심원한 활동이며 동떨어진 문화로, 다른 인간사에서 분리되어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전문분야로 이상화되고 있다. 이는 지위와 자율성을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면서도 기자들에게는 긴가민가 싶은 사건을 중대한 ‘뉴스’로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과학의 내용을 무시하고 연구의 과정을 간과하고, 과학의 책임에 관한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언론은 궁극적으로 과학을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고 과학과 시민들 사이의 거리감을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8쪽)  


• 첨단기술을 다루는 기사의 언어는 여전히 경쟁, 투쟁,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오랫동안 사용된 이미지이다. (62쪽)  


• 생명공학에 관한 보도에서 언론은 독자들을 생명공학의 기적에서 묵시록적 전망으로, 진보의 예찬에서 위험에 대한 경고로, 낙관주의에서 의구심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기자들이 기술 관련 기관들의 홍보 열정에, 또 변화하는 대중적 유행에 반응하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처럼 변덕스러운 보도 양식은 극적인 사건을, 흥분되는 ‘뉴스’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언론의 이해관계에도 잘 부합한다. 이와 같은 양극화된 양식은 기술적 ‘만병통치약’ -장기이식, 정신외과, 에스트로겐 대체요법, 재생산기술- 을 다루는 보도를 특징짓는 요소이다. (67~68쪽)  


• 대다수의 기자들은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양식을 피하려 애쓰지만, 그러면서도 사건을 과장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꼭 선정적이지는 않더라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의 응용 가능성은 연구의 의미에 붙은 단서조항보다 더 멋진 기사 제목을 뽑아낼 수 있다. ‘혁명적인 대약진’은 ‘최근의 발견’보다 훨씬 더한 흥분을 자아낸다. 그리고 논쟁에는 일상적인 사건들보다 더 큰 뉴스 가치가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은 익살스럽거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식으로 다뤄지면 사람들의 입맛에 더 맞을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음조들을 뒤섞어야 합니다. 말초적으로 자극하고, 교육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오락을 주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거죠.” (181~182쪽)  


• 미술, 연극, 음악, 문학은 일상적으로 비평에 노출되는 반면, 과학기술은 터무니없는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거의 항상 그로부터 면제된다. 정치 기자들은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과학 기자들은 해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추구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비편적 논평이나 탐사보도를 하려는 기자들에게 열려 있는 기사 창구는 거의 없다...과학 기자들은 보도에서 공격적이지 않고 공식 정보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보도의 폭이 좁다. 그 결과 많은 기자들은 과학기술을 탐사하는 대신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으며, 정보원에 도전하지 않고 그들과 동일시한다. (258~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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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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