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떤 과학자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가?

 

 

불확실성의 시대에 두드러져 보이는 과학자의 개인적 덕성

김기윤 강원대학교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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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ientific Life: A Moral History of A Late Modern Vocation
 Steven Shapin |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당신은 어떤 과학자와 함께 실험실을 쓰기를 원하는가. 어떤 과학자와 함께 공동 연구를 기획하기를 원하는가. 누군가 그런 질문에 답하면서 과학자 개인의 덕성이나 도덕관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출판되기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사회학자인 세이핀은 책 제목이 “소명으로서의 과학(Science as A Vocation)”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된 책의 부제가 좀 더 분명히 이야기해주고 있듯이, 이 책에서 세이핀은 소명으로서의 과학관을 통해 만들어졌던 과학 또는 과학자의 도덕적 성격이 후기 근대사회의 과학 활동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line »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학회가 내는 <과학기술학 연구>(2009년 겨울, 통권 제18호)에 실린 김기윤 연구교수의 글입니다. 좋은 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사이언스 온의 원문 게재 요청을 받아들여주신 저자께 감사드립니다. 독자를 위해 저자가 원문 일부를 고쳐 보내왔습니다. -사이언스 온 편집자

과학 활동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전문영역으로 인정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반부터는 산업계와 정부기관이 과학자들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다. 과학은 소명이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한 직업이라는 의식이 점차 더 깊숙이 자리잡아가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중반이면 '소명으로서 과학'이란 듣기 거북한 시대착오적 발언처럼 들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올바른 과학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대학이며, 대학의 과학자들은 영리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연을 이해하려는 동기를 지녔을 뿐 아니라 도덕적인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즉 대학 교수들의 과학 활동 속에는 개인의 영달보다는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성격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20세기 끝 무렵부터 “산학협동”이 강조되면서 많은 대학의 과학자들이 산업계로 뛰어들거나 기업 활동과 연계된 연구 활동을 시작하는 모습은 도덕적 대의를 지닌 '소명으로서의 과학'이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서의 과학'으로 변화해가는 마지막 탈바꿈 단계처럼 보였다. 이러한 변화로부터 초래될 도덕적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전의 대학 교수들도 소명의식 같은 이야기에 코웃음을 쳤을망정 대학에서의 과학연구를 통해 큰 돈을 벌어보자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이핀은 이들 특히 벤처 기업가로 변신한 과학자들과 그들 주변의 삶 속에서 개인적인 덕성이나 도덕의식이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읽어낸다. 

 

shapin1하버드대학으로 적을 옮기기 전 세이핀은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15년간 재직했다. 그 대학은 가장 발 빠르게 산업계와의 협업을 추진하는 대학으로 유명했으며, 세이핀은 대학의 과학자들이 첨단 산업계 사람들과 활발히 교유해 나가며 함께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 기업을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세이핀은 옛 시대의 유물로 간주될 수 있는 도덕적 동기나 개인적 덕성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벤처 투자자들은 어떤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가. 차갑게 손익계산을 할 줄 아는 과학자를 원하는가 아니면 주말의 가족 모임을 함께 하고픈 과학자를 원하는가. 유망해 보이는 연구 기획서를 손에 쥐고 있는 과학자를 원하는가 그보다는 오랫동안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통해 믿음이 가는 과학자를 선택하는가. 막연한 일반적인 추측이 어떻든, 이 후기 근대의 과학자 사회에서는 과학자 개인의 덕성은 물론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정의로운 과학기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담론이 가득했다. 이런 도덕적 담론을 설파하는 과학 경영인들의 카리스마는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면서 경외감을 자아내고 있었으며, 이 역시 그 사회에서 개인적 매력이나 덕성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대의 과학자 사회에서 개인적 덕성이 중요시되는 이유

 

과학자 개인의 도덕적 특성이 중요시되며, 따라서 그가 어떤 직함을 지녔으며 어떤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지보다 그가 어떤 취미와 취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가족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인지가 중요시되는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이유를 세이핀은 무엇보다도 이 후기 근대사회의 갖가지 불확실성으로부터 찾아낸다. 이제 과학자 사회는 엄청나게 그 규모가 커졌고, 그 과학자 집단 속에서 과학자들의 일반적 속성이란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 되었다.

 

당신이 함께 일해야 할 과학자가 어떤 사람일지를 당신은 그의 이력서를 보거나 출신 학교 정도를 보고 짐작할 수 없다.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과학자 사회로 진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과학 자체의 미래 역시 불투명해졌다. 어떤 과학, 어떤 기술이 어떻게 진화해 나가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역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너무도 복잡한 우발적 요인들이 특정 연구 과제들 앞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과학자에 대한 평가에는 개인적 덕성과 친숙함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적 덕성과 친숙함이 중요시되는 후기 근대의 한 과학자 사회의 모습 속에서 세이핀은 그가 이전부터 연구하고 있던 바로 그 오래된 도덕적 가치관이 면면이 지속되고 있는 모습을 읽어낸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알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일종의 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이래 기독교 문명권 내에서 신의 작품인 자연에 대한 탐구는 신을 기리는 신성한 작업으로 여겨졌다.

 

17세기에 근대적인 의미의 실험과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자연철학자들은 실험과학의 문화적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그 실험이 믿을만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목격했음을 공들여 설득해나가야 했다. 무엇보다도 17세기 자연철학자들은 자신의 과학행위가 신뢰할만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이 보수 또는 대가를 위해 과학 활동을 한 게 아니었음을 강조해야 했다. 현대인들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아마추어로서 과학 활동을 하고 있음을 강조해야 했던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도 과학 활동은 여전히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업 활동은 아니었으며, 그런 가운데 삶이나 신체적 욕구와는 격리된 활동이라는 점에서 과학은 신성한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자연철학자는 도덕적으로도 뛰어난 사람들로 여겨졌다.

 

19세기 중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서양문명의 세속화 경향과 함께 자연의 탐구가 신의 작품을 탐구하는 신성한 행위라는 생각은 설득력을 잃어갔다. 과학 활동이 천재의 소명이라는 생각 역시 사라져 가면서, 생계를 위한 직업 활동일 뿐이라는 시각이 널리 확장되어 나갔다. 전문 직업으로서의 과학을 주창하던 토머스 헉슬리와 같은 과학자들은 과학이 전혀 특별한 종류의 지식이나 활동이 아니며 단지 조직화된 상식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직업으로서의 과학상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헉슬리조차, 과학의 문화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자가 지녀야 할 도덕적 성격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도, 막스 베버나 쏘르스타인 베블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과학은 소명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기 근대사회 과학자들의 과학적 삶이 맞부딪친 상황은 역사상 전례가 없이 세속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세이핀은 이들 사이에서 그에게 낯익은 도덕적 성격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과학자의 개인적 도덕성이 폄하되었던 역사적 맥락

 

25년 전 출판된 세이핀의 <리바이어던과 공기펌프>를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은 그간 17세기 자연철학자들의 과학적 삶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세이핀은 이 책을 쓰면서 우리가 20세기 과학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무지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열망을 지니고 살아갔는지 우리는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세기의 과학자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20세기 초 중반 대학의 사회과학자들이 그려낸 피상적이고 안이한 과학자 사회에 대한 기술에 크게 기대고 있는 바, 그 사회과학자들이 그려낸 과학자 상이란 실재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고 세이핀은 판정한다.

 

로버트 머튼이 과학자 사회의 규범적 성격을 민주사회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할 규범적 성격과 동일시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체로 과학자란 특별히 천재적인 사람들도 아니며 더구나 특별히 도덕적인 사람들도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머튼은 어떻게 과학자 사회가 유별난 도덕적 규범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세이핀은 과학자 개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머튼이 과학자 사회의 특성을 정형화해 보이는 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 자신이 특별히 도덕적인 사람들이 아니지만, 과학자 사회의 작동 구조가 과학자들을 ‘사회화’시키면서 독특한 행위 규범을 길러주게 된다고 이론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정치 물결을 피해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왔던 머튼은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가장 친숙해 보이는 이름을 택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아주 평범해 보이는 성을 골라 개명했다. 사회화란 머튼 자신이 경험했던 익숙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머튼에게 과학자들의 사회화란 그들 과학자 사회의 독특한 작동모델은 보여주는, 사회학의 존재 이유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학문적 도구이기도 했다. 머튼이 그린 과학자 사회의 독특한 규범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과학자 개인이 과학자 사회 이외의 주변 사회와 고립된 환경에서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오래된 과학적 삶의 이미지가 지속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규범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전체주의 사회의 획일화 된 삶의 방식에 대항해 개인의 정체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20세기 중반 서구사회의 위기감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가 집단 정체에 묻혀버리지 않는 개인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던 모습은 당시의 영화나 문학작품부터 데이비드 리스만이나 윌리엄 H. 화이트와 같은 사회 이론가들의 글에서도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화이트는 만년에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도시사회학이라는 중요한 분야의 선구적 연구자가 되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의 <조직인>(The Organization Man)을 통하여 개인의 특성과 창의성을 말살할 수 있는 조직화된 사회의 폐해를 그려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동감을 얻었다. 당시 화이트는 저널리스트였지만, 창조적인 연구를 할 수 있기 위해서 과학자들에게는 사회나 조직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연구 의제를 선택하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는 당시 강단 사회과학자들의 견해를 잘 정리해 보여주고 있었다.

 

화이트나 대학의 사회과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과학자들의 창의성을 말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조직은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던 교수들을 스카웃하고 있던 기업의 연구소 조직이었다. 창조적인 연구 활동을 하던 대학의 교수들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 머지않아 창의적인 과학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화이트나 사회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자연스러운 과학 활동의 장소는 자유가 숨 쉬는 대학이며, 이익을 위해 조직화된 기업계는 그 자연스럽고 독립적인 과학 연구 활동을 질식시키는 장소라고 보았다. “황금 알을 낳을 수 있는” 과학연구란 자유로운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20세기 초부터 널리 펴져 있었다. 따라서 기업 연구소를 이끄는 사람들 역시 창조적이고 유익한 과학연구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한 대학과 비슷한 연구 여건을 기업 연구소 측이 유지해주어야한다고 말하곤 했다.shapin2

 

하지만 세이핀은 과학적인 삶을 그려 내는 이들 강단 사회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강단 사회학자들은 20세기 초 중반 대부분의 과학 활동이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이핀이 보기에는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대학보다는 산업계에서 더 많은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강단 사회학자들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당연히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 원했을 것이며, 이들이 산업계를 선택할 때는 좀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세이핀은 많은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산업계를 선호하기도 했으며, 이들이 산업계를 선호했던 것이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밝혀 낼 수 있었다. 더구나 산업계에서의 과학 활동이란 결코 영혼을 팔아넘기는 비도덕적인 활동도 아니었으며, 대학보다 자유롭지 못한 장소만도 아니었다는 게 세이핀의 관찰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대학 연구진이 참여했던 맨하탄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그리고 정부가 순수과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학자들만이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섰으며,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세이핀은 이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 그간 전혀 이야기되지 않아 왔음을 지적했다.  20세기 과학자들과 그들의 사회를 그려내는 연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 제도를 유지하는 힘인 조직화 된 신뢰의 기반이 되는 개인적 덕
 

출판 전 인터뷰에서 예고되었던 책 제목 “소명으로서의 과학”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은 문자 그대로 과학의 역사 속에서 도도히 이어져 온 과학의 도덕적 성격에 대한 내용을 연상했다. 그런데 출판된 책의 부제에는 부정관사가 두 차례나 등장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본다면 “어느 후기 근대 소명의 한 도덕적 역사”가 될 텐데, 이 머뭇거리는 듯 소극적인 부제를 보고서, 책을 집어든 독자는 세이핀이 그리는 과학적 삶이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과학적 삶의 상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미리 느끼게 된다.

 

사실 생명공학계의 과학자들 중 크레이그 벤터나 케리 멀리스와 같은 연구자가 몇 사람이나 될까. 정보공학계의 경영자들 중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같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벤처 기업보다 훨씬 규모가 클 듯싶은 군산 복합체에서 또는 제약회사나 담배회사 같은 곳에서 연구 중인 과학자들의 도덕적 역사는 세이핀이 그린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이핀은 이 책에서 자신이 그리는 후기 근대 과학자 사회가 바람직한 과학의 모습이라거나 또는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굳이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특정 과학자 집단의 특이해 보이는 도덕사를 조명하는 도덕적 열망은 분명해 보인다.

 

철학자들과 사상사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모든 감각 경험의 논리적 명징성을 확인해보는 ‘체계적인 회의’가 17세기에 근대과학이 출현하는 출발점을 마련해주었다고 이야기해 왔다. 이에 반해서, 25년 전 세이핀이 저서 <리바이어던과 공기펌프>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지적들 중 하나는, 근대과학이라는 제도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회의’보다도 ‘조직적인 신뢰’ 체계가 구축되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조직적인 신뢰체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익숙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적인 덕성에 대한 저울질이나 사회적 평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shapin25

 

런던 왕립학회나 파리 과학학회는 물론 18세기에 설립되는 수많은 지역의 작은 학회들에서도 개인적인 비방이 금기시되고 또 과학적인 논쟁점 외에도 논쟁을 전개해나가는 예절이 중요한 화두였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전문 과학자들은 과학적 논쟁의 정곡을 피해 나가는 듯한 절차와 매너를 비판하고 직설적이며 솔직한 발언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그 후에도 사실 신사다운 매너나 도덕적 배려는 과학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정착되는 데, 그리고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샌디에고에서 첨단과학 연구자들이 기업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세이핀은 현대의 과학적 삶에서도 여전히 개인적 덕성이나 도덕적 동기가 중요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더 복잡하고 더 불확실해질 미래의 과학자 사회에서는 친밀한 교유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는 과학자의 도덕적 측면의 비중 역시 점차 더 커 질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과학 제도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관찰을 바탕으로 세이핀은 과학이 점차 더 세속화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확인되는 신뢰나 덕성보다는 익명의 몰개인적인 표준과 얼굴 없는 제도가 과학자의 평가기준이나 평가도구가 되어가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속설이 무지와 일방적인 관찰 그리고 표현상의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후기 근대의 과학기술이 형성되고 유지되어 나가는 데에도 개인적인 덕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으며, 그런데도 이제는 과학계에 개인적 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그 이유를 캐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13쪽).

 

당신은 어떤 과학자와 함께 실험실을 쓰기를 원하는가. 어떤 과학자와 함께 공동 연구를 기획하기를 원하는가. 누군가 그런 질문에 답하면서 과학자 개인의 덕성이나 도덕관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20세기 중반 강단 사회학자들이 만든 무지하고 일방적인 관찰의 산물을 아직도 보물같이 간직하며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김기윤

강원대학교 HK 연구교수 (과학사)

 kiyoonkim@hanmail.net 

 

김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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