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인을 위한 물리학

• 전진식 기자가 읽은 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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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지구와 우주
크리스토퍼 포터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당신과 지구와 우주>의 핵심은 지은이가 첫머리에 걸어둔 블레즈 파스칼의 문장에 담겼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섬뜩하게 한다.” 책의 원제(You are here)에서 알 수 있는 바, 지은이는 침묵과 침묵 아님, 없음과 있음, 확실과 불확실 등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삶 전체를 한 개인의 마음으로 끌어들인다...

 

학과 대중은 마치 ‘팽창하는 우주’ 같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도플러효과를 보이는 듯하다. 긴 파장의 가시광선이 도드라지는 적색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붉은색, 그것을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하면, 아니 인문의 무늬로 번역하면 열정이 아닌가. 해가 바뀌어도 대중과학서가 끊임없이 출간되는 이유다. 그만큼 대중이 과학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임은 대중이 아니라 과학에 있을 것이다. 너무 어려워져버렸다. 갈수록 분과학문으로 쪼개져,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끼리의 소통마저 뻑뻑해졌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대중이 겪는 ‘무식함’은 대중이 치러야 할 빚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와 대중 사이에 있는 ‘반(半)과학자’들의 몫일지 모른다. 대학에서 수학과 과학사·과학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발행인을 지낸 크리스토퍼 포터(51)가 직접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당신과 지구와 우주>의 핵심은 지은이가 첫머리에 걸어둔 블레즈 파스칼의 문장에 담겼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섬뜩하게 한다.” 책의 원제(You are here)에서 알 수 있는 바, 지은이는 침묵과 침묵 아님, 없음과 있음, 확실과 불확실 등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삶 전체를 한 개인의 마음으로 끌어들인다. 지난해 봄 영국에서 책이 출간됐을 때 “대중과학서의 걸작”(<가디언>)이라거나 “시인을 위한 물리학”(<선데이타임스>)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은, 이러한 독특한 서술방식에 힘입은 바 크다.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확정하기 위해 지은이는 되도록 멀리 가보자고 한다. “오로지 너무 멀리 가본 자들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첫 걸음은 1m, 그다음부터는 10배씩 발걸음을 넓힌다면 우주 전체를 상상하는 데 몇 걸음이 필요할까? 스물일곱 걸음이다. 1~10m를 1등급으로 묶으면 등급의 개수는 26이며 10의 26제곱 m다. 이는 100억 광년이며, 100억 광년 너머의 대상은 퀘이사(강한 전파를 내는 성운)뿐이다. 이쯤 되면 인간을 ‘먼지 같은 존재’라 하는 게 얼마나 과장된 진술인지 알게 된다. 비례식을 떠올리면 된다. ‘먼지 : 사람’과 ‘사람 : 우주’의 비롓값을 따져보면 어느 쪽으로 부등호가 기울 것인가. 우주 전체에서 사람은 ‘없음’에 가깝다. 적어도 물리적 크기의 대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인 사람이 우주를 이해하려 든다. 가능한 일일까.

 

지은이는 토마스 만에게 기운다. “희망에 부풀어 가망 없이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생명, 마치 자연이 자기 안에서 자기를 찾는 꼴이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자연은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결국 생명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없으니까”(<마의 산>). 인간이 이제껏 쌓은 지식은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일각’ 역시 빙산이라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근대과학이 빙산의 꼭짓점을 찾은 역사적 순간을 1543년으로 못박는다. 폴란드 사람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인쇄본을 임종 직전에 받아본 때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자각이다. “과학혁명을 촉발한 것은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은 행위가 아니라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치워버린 행위였다. 과학은 인간에 연연하지 않는다.” 노장의 설법처럼 자연은 인간사와 무관하다. 과학이 그것을 인식한 순간 과학은 새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1~4장의 내용이다. 지은이가 지닌 과학철학 관점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서술이 곳곳에서 꼬리별(혜성)처럼 반짝이며 흐른다.

 

5~11장에서는 빛과 중력의 문제를 시작으로 우주의 모습을 시간 단위로 살피며 별과 지구, 생명의 탄생, 인류의 출현까지를 아우른다. 곶감 같은 지식도 간식처럼 맛볼 수 있다. 과학자가 아니로되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누구일까? 미국 가수인 돌리 파턴(64)이다. 복제양 돌리(Dolly)의 이름이 그의 것에서 따온 것이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핵을 구성하는 입자인 쿼크의 다른 이름으로 제안한 파톤(parton)은 그의 성을 빌린 것이다.

 

옮긴이는 <당신과 지구와 우주>를 “건강한 의심과 진지한 성찰과 세세한 정보”가 어우러진 책이라고 평했다. 요컨대 이 책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과학을 빌려 쓴 책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당신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며 모든 곳에 있다. 타자들은 우리이다.” 이 문장들은 얼핏 시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과학의 칼날을 들이대도 이 문장들은 온전히 살아남는 진실이라고 이 책은 일러준다. 그리고 인간 이성의 첨단인 과학조차 불확실성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으므로 독자들 또한 삶을 좀더 관대하게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우리는 영원한 존속을 믿고 싶어 한다. 사랑이든, 삶이든, 신이든, 자연법칙이든 영원히 존속한다고 믿기를 원한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끊임없이 일깨우듯이, 확실성은 죽음의 다른 얼굴이다. 아마도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불확실성 속에서 사는 삶일 것이다.”  [전진식 <한겨레> 기자] (• 2월20일치 <한겨레> '책과 생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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