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윈주의자 '자유의지'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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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진화한다
대니얼 데닛 지음, 이한음 옮김 | 동녘사이언스


당신이 손가락을 까닥거리기로 마음먹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결정은 자발적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그저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실험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자유의지’라는 게 뭔지, 또 그런 자유의지가 단지 뇌에서 그저 일어나는 무엇일 뿐 실체는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심각한 의문들을 던져왔다...




당신이 손가락을 까닥거리기로 마음먹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결정은 자발적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그저 일어나는 것일까?”    


1980년대 벤저민 리벳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신경과학과 윤리철학에 심각한 화두를 던지는 실험 결과를 하나 냈다. 피실험자들한테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거리게 하고서 피실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 반응을 관찰했더니, 사람이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의식하기 300밀리 초 이전에 이미 뇌는 그 움직임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의지를 인지하기 이전에 나타난 뇌의 준비 시간은 이후에 이뤄진 여러 연구자들의 실험마다 달라 1초 이내부터 몇 초까지 다양했다.   


이런 실험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자유의지’라는 게 뭔지, 또 그런 자유의지가 단지 뇌에서 그저 일어나는 무엇일 뿐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심각한 의문들을 던져왔다.  


결정론-비결정론 화해 시도

인지과학과 과학철학의 석학으로 꼽히는 대니얼 데닛 교수(미국 터프츠대학)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는 이런 물음에 진지하게 응하는 철학과 과학 탐구의 산물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말했듯이, “물리법칙에 맞설 수 있는 비물질적인 영혼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의 발전 덕택에 신빙성을 잃은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지니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의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세상은 물리적 인과관계에 의해 모두 예측될 수 있다는 결정론의 여러 논리 모형들에서 빠져 있는 틈새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또한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을 숭배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허튼 허점들을 폭로하고, 또한 신경과학과 생물학에서 이룬 갖가지 연구성과를 두루 살피며 여러 복잡하고 기묘한 논증과 사색의 길을 걷고 나서 내놓은 결론은 한마디로 자연과학과 윤리철학의 화해이며,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화해이다.   


‘화해’는 어느 누구의 극적인 승리를 보려는 이들한테는 싱겁게 느껴지기는 하겠지만, 그가 전하는 화해의 이유를 듣다 보면 결정론과 자유지상주의가 너무도 쉽게 버텨온 것은 아닌지 독자들한테 자성하게 한다.  


‘강한 결정론자’는 물리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는 모두 분석되고 예측할 수 있으므로 자유의지는 착각이며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데닛이 파고든 결정론의 맹점은 결정론의 불가피성이 지나친 주장이라는 것이다. 물리 세계에서 과거나 현재, 미래에서 똑같이 되풀이되는 결정론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런 물리 세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는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결정론을 인정한다 해도 ‘피할 수 있음’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정론의 세계를 많이 알아야만 어떤 예측되는 결과를 피하려는 자유의지는 넓어지고 무지한 상태에선 그만큼 자유의지는 줄어드는 셈이다. 


결정론이 아니라 비결정론이 참이며, 이런 이유에서 자유의지는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해, 데닛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이 어떻게 자유의지를 낳는지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등장한다는 비결정론의 불꽃은 “우리를 더 자립적이거나 자율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을 공박한다.  


“선택능력도 오랜 진화의 산물”

데닛은 자연과학의 유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고 있지 않으며, 의식과 자유의지를 지닌 지상의 유일한 종인 인간의 능력을 모두 물질의 산물로만 바라보지도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결론은 매우 섬세하게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의 논증에서 핵심의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다윈 진화론’일 것이다. “자유는 진화한다”라는 책 제목이 내비치듯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며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하며 획득한 우리의 빛나는 ‘진화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얘기했던 문화적 유전자(meme)와 생물학적 유전자(gene)의 상호작용에 의해 획득됐으며, 자연과 환경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 기계’인 인간만의 자산인 것이다.   


번역서에 실린 해제에서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많은 철학자, 인문주의자, 종교 사상가들은 일종의 자유론자들이라고 볼 수 있고, 강성 결정론자의 대부분은 과학자들”이라며, 데닛은 ”결정론과 운명론이 동의어가 아니고 결정론과 자유가 모순 관계가 아니며 자유의지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라고 주장”하는 ‘약한 결정론’ 쪽에 서 있다고 소개했다.   


철학자로서 데닛은 자연과학의 지식이 철학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지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이 내놓은 새로운 발견은 ‘무엇이 자유인지 또는 무엇이 윤리이며 범죄인지 심리와 자유의지, 윤리, 도덕을 성찰하는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이 책은 이런 견해를 충분히 보여주는 과학 친화적 철학서다. (2009년 10월17일치 <한겨레>에 실렸던 글입니다) 

 


책 중에서(145~148쪽)


강한 결정론: 결정론은 참이므로,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다. 고집이 센 유형의 학자들은 종종 자신이 이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하며, 심지어 그것이 아주 쉬운 문제라고까지 선언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결정론이 거짓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유의지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관성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으레 그들은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계속 인도하는 때로 굳건하기도 한 도덕적 확신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탐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인간이 노력하고 기도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위태로운 도덕적 허무주의에 대한 견실한 대안들이 있을까?


자유지상주의: 우리는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결정론은 거짓임이 분명하다. 비결정론이 참이다. 양자물리학자들 덕분에 현재 과학자들 사이에 비결정론이 참이라는 견해가 받아들여져 있으므로, 이것이 그 문제의 행복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장애물이 하나 있다. 어떻게 해야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이 우리에게 이 경이로운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인간행위자라는 명확하고 일관적인 그림을 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어떻게 아원자 비결정론이 자유의지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떤 집단은 그저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문제, 아마도 신경과학자나 물리학자가 할 일이라고 선언한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우리가 도덕 책임의 하향식 제약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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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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