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용의 "소리와 음악에 빠진 공학자"

소리, 말, 음악, 그리고 그것을 듣고 이해하고 즐기는 귀와 뇌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보다 궁금한 것이 더 많다. 음악가의 예술적 표현과 직관을 인지신경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소리와 음악, 귀와 뇌에 관한 현재진행형 연구보고서.

[연재] 왜 성악가 목소리는 마이크 없이도 잘 들릴까?

(2) 비브라토와 음량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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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김영철. 한겨레 자료사진(2007)



름해 보이지만 사람이 꽉찬 식당으로 들어간다. 먼저 와 식사 중이던 손님 일행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빈 자리가 난 테이블에 서둘러 앉으면 곧바로 주문을 내야 한다.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주방을 향해 큰 소리로 주문 내용을 외친다. 그 소리는 식당 안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를 뚫고 주방까지 정확하게 전달된다. 소문난 맛집의 흔한 점심시간 풍경이다. 주문 내용을 주방으로 전달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서, 시끌시끌한 손님들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큰 소리들이 많은 환경에서도 자신의 소리가 묻히지 않고 잘 들리도록 해야 하는 직업이 또 있다. 바로 성악가이다. 오케스트라가 우렁찬 연주를 하는 동안에도 성악가의 목소리는 악기 소리 위로 또렷이 들려야 한다. 게다가 성악가는 때때로 속삭이는 듯 작은 소리로도 노래해야 하는데, 그 작은 소리도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은 소리는 다른 큰 소리에 쉽게 묻히게 되고, 멀리까지 전달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성악가들은 작고 섬세한 소리까지도 멀리까지 잘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테크닉을 연마한다고 한다.

 


"건강한 비브라토는 좋은 음악소리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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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가 쓴 ‘좋은 음악적 소리의 조건’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 선배가 말하는 좋은 음악적 소리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강조한 것이 ‘건강한 비브라토(vibrato)’였다.

 

먼저 흔히 즐겨듣는 클래식 소품 중에는 마누엘 퐁세(Manuel Ponce)가 작곡한 것을 하이페츠(Jascha Heifetz)가 연주한 ‘에스뜨렐리따(Estrellita)’가 있는데, 지금부터 숨을 죽이고 이 연주를 감상해보자.

 

http://www.youtube.com/watch?v=rOIL8mGeOio

 

하이페츠의 섬세한 동작은 에스뜨렐리따의 선율을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게 표현한다. 선배는 하이페츠가 짧고 여린 음에도 아름다운 비브라토를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이 연주를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선배는, 하이페츠의 바이올린 소리처럼 비브라토가 실려 있는 소리는 작은 소리라도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잘 전달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정말 비브라토를 가미한 소리는 더 멀리 전달될까?

 

비브라토란 지속되는 음의 높이(음고, pitch)를 재빠르게 줄였다 키웠다 하는 테크닉이다. 위의 동영상에서, 지판을 짚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드는 하이페츠의 동작이 바로 소리에 비브라토를 가미하는 동작이다. 이런 비브라토는 단조로울 수 있는 지속음에 변화를 주어 그 소리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음의 높낮이가 다소 모호해지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풍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가들이 ‘건강한 비브라토’를 좋은 음악적 소리의 조건 중 하나로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더 멀리 전달된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는 어떤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말일까? 비브라토를 더하면 소리의 음량이 더 커지는 것일까? 아니면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 파동은 더 멀리까지 전달되는 것일까?

 


비브라토와 관련된 소리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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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음악에 사용되는 소리는 세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높낮이, 크기, 색깔이며, 각각 음고, 음량, 음색이라고 줄여서 말하곤 한다. 피아노 건반에서 오른쪽에 있는 음은 왼쪽의 음보다 ‘음고’가 더 높은 음이다. 같은 피아노 건반을 살살 치면 ‘음량’이 작고 세게 치면 ‘음량’이 크다. 같은 음고, 음량의 소리라도,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는 ‘음색’이 다르다.

 

이 음고, 음량, 음색이라는 말은 사실, 어떤 하나의 소리를 듣고서 우리가 느끼는 세 가지 다른 범주의 ‘주관적 느낌’을 표현한 양으로, 물리적으로 간단히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 세 가지의 주관적인 속성이 각기 다른 물리적 속성과 대체로 대응된다고 알고 있다. 첫째로, 음고는 소리의 주파수(동일한 모양의 파형이 반복되는 속도)와 주로 대응되어서, 주파수가 큰 소리일수록 음고가 높은 소리로 느껴진다. 둘째로, 음량은 소리의 진폭과 주로 대응되어서, 진폭이 큰 진동의 소리일수록 음량이 큰 소리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인 요소는 매우 다양해서 간략히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다른 주파수 성분들의 배합 비율과 관련이 있다.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는 더 멀리 전달되는가?”라는 질문은 위의 세 가지 소리 속성 중 ‘음량’에 관련된 질문일 것이다. 더 큰 소리라면 더 멀리서도 들릴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음량은 진폭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했는데, 비브라토는 음고를 주기적으로 변화시킬 뿐, 진폭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음량을 주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음악적 테크닉은 트레몰로[tremolo]라고 한다.) 실제로 지속적인 소리를 ‘주파수 변조’ 해도 음압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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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두 그림 모두 가로 축은 시간, 세로 축은 주파수이다. 왼쪽 그림에서는 시간에 따라 주파수가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비브라토를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오른쪽 소리는 비브라토 없는 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시간에 따라 주파수가 일정하다. 두 소리의 진폭 평균은 같다.

 

사실 음고와 음량도 관련이 있기는 하다. 우리의 귀는 어떤 주파수 영역의 소리에는 민감하고 어떤 주파수 영역의 소리에는 둔감해서, 같은 진폭의 소리라도 음고가 크게 다르면 음량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피아노 건반 중 두 번째로 낮은 ‘라’ 음(A1)에 해당하는 주파수인 55헤르츠(Hz)의 사인(sine)파 소리는 다섯 번째 옥타브의 ‘라’음(A5)에 해당하는 880헤르츠의 사인파 소리보다 약 20데시벨(㏈)이 더 커야만(이는 소리 압력으로는 10배에 해당한다), 우리의 귀에 비로소 비슷한 크기로 들린다. 대략 3500헤르츠에 이를 때까지는, 주파수가 높을수록 우리의 귀가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브라토는 음고를 매우 조금씩만 (대체로 반음 이내에서) 변화시키는 테크닉이다. 그 정도의 음고 차이가 음량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는 없다.

 

소리는 먼 곳으로 진행하는 동안 크기가 작아지게 된다. 그럼 혹시 비브라토가 가미된 소리는 거리가 멀어져도 크기가 ‘덜’ 작아진다는 것일까? 이 가설이 맞는지는 아마 쉬운 실험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거리를 점점 멀리하면서 비브라토가 가미된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의 크기가 같은 비율로 감쇠하는지 측정해보면 되니까. 그러나 비브라토가 가미되었다고 평균 진폭이 거리에 따라 정말 ‘덜’ 감쇠하는 것은 아니라는 쪽에, 나는 꽤 많은 돈을 걸 수 있다.

 

비브라토가 음량을 크게 하는 것도, 소리를 더 멀리 전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면,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공연장 구석까지 더 잘 전해진다”라는 음악가의 말은, 대체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말일까?

 

 

비브라토, 또는 주파수 변조를 이용한 실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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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란드 우트레흐트 대학의 음악학자인 라시(Rudolf A. Rasch)는 두 개의 소리를 이용한 실험을 했다. 두 소리는 서로 다른 음고의 소리였고, 둘 중 높은 음고를 가지는 소리의 크기를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청취자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물어보았다.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은 높은 음고의 소리가 낮은 음고의 소리에 비해 20데시벨 이상 작으면, 높은 음고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처럼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을 때 한 소리 때문에 다른 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차폐(masking) 현상’이라고 한다. 특히 두 소리의 주파수가 가까울 수록 쉽게 차폐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마치 인접한 밝은 별 시리우스 A 때문에 시리우스 B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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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시리우스 A와 시리우스 B는 쌍성이지만, 시리우스 A가 너무 밝아 우리 눈에는 시리우스 B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허블 망원경으로는 시리우스 B를 볼 수 있다. 사진 왼쪽 아래의 작은 흰 점이 시리우스 B). 소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큰 소리와 인접한 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시리우스(Sirius) 편

 

또한 라시가 실험을 통해 알아낸 양처럼, ‘감지가 가능한 최소의 자극량’을 ‘역치(threshold)’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역치가 10데시벨이다”라고 하면, “소리 크기가 10데시벨 정도는 되어야 들리지, 그보다 작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시의 저 실험 결과를 설명하려면, ‘차폐’와 ‘역치’를 합친 말이 필요하다. 어떤 소리에 다른 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을 수도, 묻히지 않아서 두 소리가 모두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차폐 역치(masking threshold)’라는 말을 쓴다. 두 개의 소리를 동시에 듣는 경우, 그 중 한 소리를 표적음(target sound, 혹은 신호signal)으로, 나머지 다른 한 소리는 표적음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차폐음(masker)으로 정하자. 이 때 “차폐 역치는 -20데시벨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표적음이 차폐음보다 20데시벨 작을 때까지만 들리고, 그보다 더 작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라시의 실험에서는 높은 음고의 소리가 표적음, 낮은 음고의 소리가 차폐음이었다. 그리고 실험 결과, 차폐 역치는 -20데시벨이었다. 즉 낮은 음고의 소리보다 20데시벨 작을 때까지는 높은 음고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보다 더 작아지면 차폐되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를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상황으로 상상해보자. 첼로는 줄곧 같은 크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린은 ‘점점 여리게(decrescendo)’ 연주하고 있다. 이윽고 바이올린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고, 첼로 소리만이 남았다. 그 순간 바이올린 소리는 첼로 소리보다 20데시벨 더 작았다.

 

다시 라시의 실험으로 되돌아가자. 이번에는, 높은 음, 즉 표적음의 음고를 주기적으로 변동시켰다. 이를 과학자들은 ‘주파수 변조(Frequency Modulation, FM)’라고 하지만, 이는 바로 ‘비브라토’의 다른 말이다.(이 FM이 바로 ‘FM 라디오’의 FM이다. FM 방송은 우리가 듣는 소리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의 전파에, 우리가 들을 소리 파형 모양의 ‘비브라토’를 실어보내는 것이다.)

 

실험 결과를 보면, 비브라토를 가미하자 차폐 역치는 무려 17데시벨 더 작아져, -37데시벨이 되었다. 즉 비브라토가 없을 때는 표적음이 차폐음보다 20데시벨 이상 작아지면 들리지 않았지만, 비브라토가 더해지자 37데시벨 더 작을 때까지도 들렸다는 것이다. 다시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를 상상해보자. 바이올린이 점점 여리게 연주하여 결국 첼로 소리만이 남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가 지판을 짚은 왼손을 움직여 비브라토를 걸자 바이올린 소리가 작게나마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캐나다 맥길대학의 맥아담스(Stephen McAdams)도 역시 비슷한 실험을 했다. 그는 각기 다른 음고의 /a/, /i/, /o/ 세 모음을 동시에 들려주며, 그 중 한 소리를 표적음(target sound), 나머지 두 개의 소리는 배경음으로 정하고, 청취자들로 하여금 표적음이 얼마나 두드러지게 들리는지 답하게 하였다. 표적음에 비브라토를 가미한 경우, 그 소리가 두드러지게 들리는 정도가 월등히 증가하였다.

 

라시나 맥아담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음악가들의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더 멀리 전해진다”라는 말은 타당해보인다. 특히 라시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비브라토가 더해졌을 때 차폐 역치가 17데시벨 감소했는데, 이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가 대략 8배 더 먼 것이나 마찬가지다. 열린 공간이라면 거리가 2배 멀어질 때 소리 크기가 6데시벨씩 작아지는데, 17데시벨이면 6데시벨이 대략 세 번, 즉 거리가 2의 세제곱만큼 멀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브라토가 있건 없건, 같은 음량의 소리라면 같은 거리에는 물리적으로 같은 양의 소리 에너지가 도달하겠지만, 같은 에너지의 소리라도 비브라토의 유무에 따라 청취자는 그 소리를 들을수도, 못들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실험 결과를 두고, 단순히 “우리는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에 더 민감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소리 합성을 통해 정확히 진폭은 같고 비브라토의 유무만이 다른 두 소리를 만들어 비교해 들어보면, 즉 그림 1의 왼쪽 소리와 오른쪽 소리를 비교해 들어보면,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다른 ‘경쟁’ 소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비브라토가 능력을 발휘한다. 여러 소리가 있는 경우 우리는 각각의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리가 합쳐져 새로운 음색으로 들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큰 소리 때문에 작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한 소리에 비브라토가 더해지면, 우리는 보다 쉽게 다른 소리들로부터 그 소리를 구분해낼 수 있다.

 


우리는 왜 비브라토 소리를 더 잘 구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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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비브라토가 걸린 소리를 보다 쉽게 구별해내는 것일까?

 

1984년 조셉 홀(Joseph W. Hall)은 ‘치익-’ 하는 잡음과 ‘삐이-’ 하는 단순한 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면서, 청취자들이 ‘삐이-’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물어보는 실험을 했다. 즉 ‘치익-’ 하는 잡음이 차폐음, ‘삐이-’ 하는 단순한 소리가 표적음이었다. 라시가 ‘표적음’의 크기를 조금씩 바꾸면서 청취자들에게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물어본 반면, 홀은 ‘차폐음’의 ‘특성’을 바꾸어 가면서 청취자들에게 표적음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차폐음으로 사용한 잡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크기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잡음이었고, 두 번째는 매우 무작위적인 패턴이기는 하지만 진폭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잡음이었다.

 

라시가 신호의 ‘크기’를 조금씩 바꾸었던 것과는 달리, 홀은 잡음의 ‘폭’을 조금씩 바꾸며 들려주었다.

 

잡음의 ‘폭’이란 무엇일까? 음성이든 악기 소리든 자연에 존재하는 소리는 대개 여러개의 주파수를 동시에 가진다. 마치 와인이 여러 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성분들이 어우러져 ‘와인스러운’ 맛과 향을 내는 것처럼, 소리에도 여러가지 주파수 성분이 들어있고, 익숙한 성분들의 조합은 익숙한 ‘음색’으로 느껴진다. 클라리넷 소리스러운 소리 성분의 조합이 있고, 플루트 소리스러운 소리 성분의 조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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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클라리넷(위)과 플루트(아래)의 같은 음(중간 ‘라’ 음: A4)의 주파수 분석 비교. 가로축은 주파수인데, 뾰족한 봉우리 각각이 각 악기 소리의 주파수 성분이며, 저 성분들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에 따라, 어떤 소리는 클라리넷 음색으로, 어떤 소리는 플룻 음색으로 들린다. 출처: (존경하는!) 조 울프(Joe Wolfe) 교수가 이끄는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대학 음악음향학연구실 웹사이트, [1] / [2] / [3].

 

‘잡음스러운’ 소리의 조합도 있는데, 이는 서로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무수히 많은 주파수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홀이 잡음의 ‘폭’을 조절했다는 것은, 이렇게 무수히 많은 주파수를 담을 때, 그 주파수 성분들을 담는 ‘범위’를 다르게 했다는 것이다. 즉 한번은 800헤르츠부터 1200헤르츠까지의 수많은 주파수를 담았다가, 다음 번에는 500헤르츠부터 1500헤르츠까지, 더 넓은 범위의 수많은 주파수를 담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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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좁은 폭의 잡음(왼쪽)과 넓은 폭의 잡음(오른쪽). 그림 3과 마찬가지로 가로 축은 주파수이며, 악기 소리의 주파수 분석 결과에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들이 없이 수없이 많은 주파수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더  넓은 범위의 주파수를 담을 수록, 즉 ‘폭’이 더 큰 잡음일 수록 표적음을 더 쉽게 차폐한다. 즉 차폐음의 주파수 범위가 넓을수록 표적음이 더 잘 안들리게 된다. 표적음의 소리 성분이 차폐음의 소리 성분에 파묻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홀이 발견한 것은, 진폭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잡음의 경우, 오히려 폭이 넓을 수록 신호를 더 잘 들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의 이유를 이해하려면 간략하게나마 청각 기관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소리는 다양한 주파수를 가지고, 주파수가 클 수록 대체로 높은 음으로, 주파수가 작을 수록 대체로 낮은 음으로 느껴진다고 했는데,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낮은 소리부터 높은 소리까지 각각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 즉 어떤 청각 신경 세포들은 500헤르츠를 담당하고, 다른 청각 신경 세포들은 1000헤르츠의 소리를 담당한다. 이를 ‘위치 이론(place theory)’이라고 한다. 소리는 우리 귀 안에 달팽이집 모양으로 말려져 있는 긴 막(기저막, basila membrane)으로 전달되어, 그 관의 특정 부분에 정지되어있는 파동(정재파, standing wave)를 만들어 내는데, 소리의 주파수에 따라 그 정재파가 만들어지는 부분이 다르며, 그 막에는 수많은 청각신경들이 각기 다른 부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곧 다른 주파수의 소리는 다른 청각 신경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애니메이션에서 간략하게나마 이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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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막 진동을 설명하는 개리 매튜스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swf 파일, 위 그림을 클릭하세요). 출처/ 개리 매튜스(Gary Matthews)의 경생물학 웹사이트

 

홀의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가설은, 이 각각의 청각신경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패턴이 동일한 소리 성분이 여러개 존재하고, 각 성분을 담당하는 신경들이 그 패턴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동일한 패턴이 여러번 반복된다면, 신경들은 서로 ‘우리가 해독한 소리 패턴이 동일하다’는 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면 그 패턴을 가진 주파수 성분들을 따로 떼어내어, 한 그룹으로 쉽게 분리할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신경들이 동일한 시간 변화 패턴을 공유할 수록, 그 소리가 더욱 쉽게 분리된다. 홀의 실험에서 잡음의 ‘폭’이 넓을수록, 신경 세포들은 더 많은 친구 신경 세포들로부터 ‘동일한 패턴을 해독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차폐음은 더 쉽게 표적음과 분리되었고, 상이한 시간 변화 패턴을 가진 표적음이 더 쉽게 들릴 수 있었던 것이다.

 

(홀의 실험은 ‘진폭 변조’를 사용했으므로, 이는 직접적으로는 트레몰로와 연관되지, 비브라토와 연관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웃 주파수 자극에도 일부 반응하는 ‘청각 필터’의 특성 때문에, 한 개의 청각 신경 입장에서 보면 트레몰로와 비브라토는 동일한 현상일 수 있다. 청각 필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추후 연재에서 차차 하기로 한다.)

 

 

주변에 융화하는 소리, 남들보다 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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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소개한 실험들의 경우처럼 꼭 한 소리 때문에 다른 한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소리가 뒤섞여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오케스트라나 합창은 이러한 현상을 오히려 잘 활용해, ‘오케스트라스러운’, 혹은 ‘합창스러운’ 새로운 음색을 창조한 경우다. 마치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즐기는 ‘소맥’처럼.

 

이때 유독 어떤 그룹의 성분들끼리만 서로 일치된 패턴으로 변화한다면, 그 성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소리는 다른 소리와 섞이지 않고 도드라지게 지각된다. 성분들의 일치성이 이 성분들의 집합을 하나의 ‘튀는’ 소리로 다시 융합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비브라토가 더해진 소리는 더 멀리 전달된다’라는 말은, 멀어질수록 소리 압력이 감쇠한다는 물리적인 현상 외에도, 여러 소리가 함께 존재할 때 각각의 소리를 분리하지 못하는 지각적 현상과, 이것이 시간적인 변화 패턴을 통해 다시 분리되고, 패턴이 일치하는 성분끼리 다시 융합되는 복잡한 인지적 현상까지 설명한다. 그리고 그 소리 성분들의 지각적 분리와 융합은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비브라토를 가미해 연주하면 그 솔로의 선율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반면에 합창단의 단원이 자신의 솔로 파트가 아닌 곳에서 유독 남들과 다른 패턴의 비브라토를 사용하면 지휘자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여러 악기나 여러 사람의 소리가 더해져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 중 유독 어떤 소리가 마음에 와닿았을 때, 그 소리가 꼭 가장 큰 소리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싸울 때에는 더 큰 소리 에너지를 발산하는 덩치 큰 사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지만, 여러 소리가 합쳐지기도, 그중 어떤 소리 성분이 분리되기도 하며 갖가지 조화를 만들어내는 음악에서는, 때로는 더 여린 소리가 더 ‘아름다운’ 비브라토 덕분에 더 잘 들리기도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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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A. Rasch (1978), The perception of the simultaneous notes such as in polyphonic music, Acustica 40, 21-33

S. McAdams (1989), Segregation of concurrent sounds I: Effects of frequency modulation coherence, Journal of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86, Issue 6, pp. 2148-2159

J. W. Hall & J. H. Grose (1988), Comodulation masking release: Evidence for multiple cues, Journal of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84, 1669-1675

 

 

[고침] 편집 과정의 실수로, 그림 3에서 플룻 그림 위에 있어야 할 클라리넷 그림이 빠졌기에 바로잡았습니다. 2012년 6월30일 오전 8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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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용 미국 보스턴대학 이론신경과학센터 박사후연구원
뇌 영상기법을 이용해 사람의 뇌가 소리, 음성, 음악을 지각, 인지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브라이언 무어의 책 <청각심리학>을 번역했다.
이메일 : scienceon@hani.co.kr       트위터 : @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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