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호의 "법과 생명과학 사이에서"

현대 법정에서는 과학·기술과 관련한 증거나 증언이 자주 다뤄진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법률 논쟁도 벌어진다. 생명과학과 법학을 전공한 필자가 둘 사이에 놓인 협력과 긴장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전한다.

[새연재] 법과 과학의 교차점에서, 다시 보는 진리와 정의

연재를 시작하며


00Justice_Truth »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 조각상(홍콩 야외)과 거울과 뱀을 든 '진리' 조각상(미국 의회도서관, 문의 문양 일부). 출처/ Wikimedia Commons



학, 그리고 법. 언뜻 보기에도 딱딱하고 무미건조할 것 같은 주제들이다. 그런데 이 두 분야의 교차점을 다룬다면? 과연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까? 미국 드라마 <시에스아이(CSI)>의 최첨단 과학수사의 한 장면? 아니면 영화 <마이너러티 리포트>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삼차원 홀로그램을 조작하며 미래의 범죄를 막던 톰 크루즈의 모습?

 

만약 5년 전쯤 같은 질문을 받았더라면 나 또한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대학생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줄곧 생물학도의 길의 걸어오며 사회, 경제, 정치 문제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오히려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순수 과학자는 그런 외부 요소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나름의 믿음 때문에 일부러 관심을 돌리기조차 했던 대책없는 이상주의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희망과 아집과는 달리, 생물학도로서 삶의 현장에서 직접 부딛치고 깨지며 몸으로 겪은 과학계의 참모습은 어떤 다른 분야에 못지않게 사회의 구체적 현실과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였다.

 

그럼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과학과 법에 관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동안 특허변호사가 되기 위해 시작한 법 공부 덕분에 갑자기 사회구조와 정의에 대한 혜안과 안목이 생기거나 하는 거창한 변화는 없었다. 다만, 사회 안에서 과학이 지니는 위상과 역할에 대해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다른 영역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소 피해자적인 입장에서 과학을 바라보던 이전의 관점은, 역으로 법체제와 사회공공 정책 등을 앞질러가며 변화를 주도하는 영향자로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함께 동일한 수평선 상에 놓이게 되었다.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 그리고 사회체제 내에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틀을 제공하고자 하는 법, 두 영역은 모두 궁극적으론 “무엇이 진리인가, 또는 옳은 것인가?”라는, 같은 것 같으나 때론 많이 다를 수 있는 두 개의 화두를 사회에 던지는 두 개의 공존하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진리(truth)와 정의(justice)



“그럼, 저희 같은 미래 지망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능력있는 특허변호사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또는 특허변호사로써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한 여학생이 불쑥 던진 진지한 질문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변호사들은  잠시 입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때는 2007년 가을, 미국 미시건대학에서 막 박사학위를 마치고 워싱턴 디시 근교에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기 위해 이사를 내려온 직후였다. 워싱턴 시내에서 열린 미국세포생물학회 연례학회의 둘째날, 마침 실험실이 큰 이사를 하는 짬을 타 여느 때와는 달리 발표의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학회였기 때문에 학술발표 외에 부수로 함께 진행되는 다른 행사들도 기웃거릴 수 있었다. 그날 점심시간에 내가 방문한 곳은 다른 학회에서도 흔히 봐왔던 ‘커리어 심포지엄’이었다.  연회장의 큰 홀 가득히 학생들과 멘터들로 둘러싸인 수십개의 원형테이블들이 다양한 종류의 관심사에 따라 나눠져 있었다.

 

그 중 유독 내 눈을 끈 건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주제의 테이블이었다. “과학과 법,” 또는“법조계의 과학자.”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 테이블엔 말끔하게 정장을 한 세 명의 변호사들이 여러 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약간 늦게 도착한 나를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 준 인상좋은 아줌마 같은 분은 알고 보니 예일대 의대에서 교수를 하다 조지타운 법대를 나와 특허변호사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고, 다른 두 남자 분들 중 한분도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법대를 나와 파트너 자리까지 오른 베테랑 특허변호사였다. 개인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특허변호사가 되었는지,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는지, 언제 가장 보람되다고 느끼는지 등을 활발하게 묻고 답하던 중, 한 여학생이 뜬금없이 던진 질문에 테이블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었다.

 

“생각의 유연성입니다.” 학생들의 긴장된 눈빛을 의식하며 마침내 한 변호사가 신중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1 더하기 1이 2이지만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그게 3이 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요.” 다른 두 변호사들도 동의하는, 하지만 생각에 잠겨 느리지만 무게있는 끄덕임을 보냈고, 곧 그의 결론이“정확히 맞다”고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의 혼란과 실망감이란! 이전까지 내가 항상 추구했던 건 정신없이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명현상의 복잡성 속에서 1+1=2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법칙, 즉 “진리”를 추출해 내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진 물리학의 연역적인 추론과정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대학생 시절엔 귀납적 추론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생명의 복잡성에 차츰 눈을 뜨다가, 그 무렵은 물리학과 생물학이 접합되어야만 생명체의 원리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게 된 즈음이었다. 연구의 접근방법엔 차이가 있었지만 두 학문 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불변의 “진리”를 찾아내는 도구라는 점에서 과학은 공통의 숭고한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변호사들은 진정한 정의보다는 당면한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그다지 좋지 않은 대중적인 정서를 공유했던 나에게 그 변호사의 대답은 그런 편견을 더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엔 왠지 모를 진정성이 담겨 있었고, 대학교수를 할 때보다 날마다 다른 첨단기술을 다루는 특허법의 일이 개인적으론 더 도전적이고 흥미롭다는 동료 여자 변호사의 말은 내 마음에 적지 않은 잔향을 남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변호사의 대답은 정말로 맞는, 그러나 다소 함축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똑같은 진리를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왜곡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기보단, 하나의 진리에도 여러 가지의 측면이 존재함을 비교, 분석해서 주어진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으리라.

 

지난 3년 간의 법학 공부, 그리고 로펌과 연방법원 인턴십 등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머리에 암기된 방대한 양의 법적인 지식이나 법률 조항이 아니라, 주어진 사실을 분석, 추론하고 그것을 역사적 배경, 사회의 현실, 윤리적 당위성, 공공정책의 지향점 등 다양한 상황적 요소에 입각해 판단하는 논리적 사고과정이었다. 언뜻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그런 사고과정 자체의 변환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이었는지 돌이켜보면 꽤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중요한 법조문의 의미가 쉼표 하나의 존재 유무나 그 위치에 따라 어떻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언뜻 보기엔 어이없을 정도로 의미론적이고 수사학적인 지적 유희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입장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법 제정 당시의 사회적 현실, 그리고 각 해석이 사회나 산업계에 끼칠 장기적 파장 등을 동시에 고려할 때 그것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게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로 변하곤 한다. 객관적인 진리는 세상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고 있지만, 무엇이 가장 “옳은가” 또는“정의”인가의 문제에선 그 진리가 사회, 역사적인 관점의 렌즈들을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긴장된 '동반의 여정'



런 점에서 사회의 여러 분야를 다루는 다양한 종류의 법 중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합점을 바라보는 지적재산법이나 법윤리학은 특히 “진리”과 “정의”의 경계선에서 종종 위험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법은 많은 부분에선 같은 방향의 평행선에 있다가도 가끔씩 서로 엇갈리고 충돌하며 긴장된 관계를 만들어내곤 한다.

 

심지어 과학과 법이 같은 지향점을 향해 달리는 경우에도 둘의 속도에 워낙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끔 마찰이 생기게 된다. 법은 우선 국회에서 이뤄지는 제정 과정 자체가 길고 복잡하다.  그 이후에도 관련된 산업체, 이익 그룹, 일반인 등 많은 사회 구성원이 그 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법원에서 그 법을 실제로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판례를 확립해 나가는지에 따라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기간을 거쳐 성숙하게 된다.

 

반면, 현대과학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가끔씩은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까지도 깜짝 놀라게 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발견과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어낸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3년 간 3조 원의 비용과 전세계 수천 명 생물학자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이제 곧 2시간에 100만원의 비용으로 끝낼 수 있게 됐고, 염기서열 분석기기를 개발하는 어느 기업이 몇달 전에 발표한 바를 보면 랩탑에 꽂아 쓰는 유에스비(USB) 드라이브 크기의 염기서열 분석기 20개를 동시에 사용하면 같은 비용으로 15분 만에 한 사람의 게놈 해독을 끝내는 일이 올해 말 무렵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전자회로 집적도가 1년 반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훨씬 넘어서는 속도로,  영화 <가타카(GATTACA)>에 등장한 것처럼 손가락 끝을 찔러 몇 초 안에 염기서열로 사람들을 판별해내는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는 조심스런 짐작을 가능케 해준다.  이렇게 발전하는 염기서열 판독기술이 의학적으로 어떻게 응용되며 어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지, 그에 기존의 법적인 규제와 틀이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할지는 기술 자체의 이해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이처럼 급격히 발전하는 현대 과학기술, 특히 생명공학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기술적인 변화가 몰고오는 예상치 못한 사회적 고민들이 기존의 법적 틀과 어떻게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며 법조계에서 토론과 변화를 유도하는지, 또는 역으로 법과 공공정책의 틀에 의해 사회 안에서 타협을 하고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신경생물학적인 패러다임과 영상기술이 형법에서 야기한 논의를 시작으로, 현 미국 특허법계를 뒤흔들고 있는 유전자 특허와 의료 특허 논쟁, 합성생물학의 위험에 대한 정책적 논의,  유전체학에 기반한 개인화된 맞춤형 의약품이 야기할 프라이버시의 문제, 최근에 강화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소비자 유전검사(direct-to-consumer genetic testing) 규제 법규, 유전자 변형 식품(GMO) 논쟁,  나노기술의 환경, 공중보건학적 규제논의, 그리고 죽음과 뇌사의 기준에 대해 법적 틀에서 이뤄지는 윤리학적 논의 등을 다룰 계획이다.

 

최신의 기술 동향과 그에 반응하는 법조계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각으로 종합해서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특히 몇 개의 주제는 법적이거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멀지 않은 시간 안에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든 지각변동을 겪으리라 예상한다. 현저히 다른 속도이기는 하지만 진리와 정의라는 비슷한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과학과 법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상호작용하는지 들여다보고 같이 고민하며 토론하는 건 분명 보람차고 즐거운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독자 분들의 아낌없는 조언과 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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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호 미국 조지워싱턴법대 법학박사
미국 미시건의대에서 신경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서 미국립보건원(NIH) 박사후연구원을 거쳤으며, 이후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 안의 첨단 과학, 그 교차점의 법적 담론에 매료된 특허변호사.
이메일 : scienc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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