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사람은 다르다, 공부법도 다르다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11)





00study

 



사람은 모두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니 사람마다 공부법도 다를 수 있다.


공부법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으라”는 조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소개되는 내용들 중에는 괴상한 이야기들도 있다.


예를 들면 2007년 강남구 교육청은 혈액형별 공부법이 포함된 자료를 배포했다가


수거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학습 스타일의 두 가지 축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공부법은 확실히 다르다. 이런 차이를 ‘학습 스타일(learning style)’이라고 한다. 학습 스타일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심리학자 리차드 라이딩(Richard Riding)은 이들을 간단히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학습 스타일을 구분하는 한 가지 축은 언어형과 이미지형이다. 언어형의 사람들(verbalizer)은 공부할 때 말로 듣거나 글로 읽는 걸 좋아한다. 이미지형의 사람들(imager)은 반대로 그림으로 보는 쪽을 좋아한다. 또 다른 축은 분석형(analytic)과 종합형(wholist)이다. 분석형은 말 그대로 개념을 나누어 분석적으로 생각하길 좋아하고, 종합형은 큰 틀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두 가지 축으로 나누자면 학습 스타일에는 크게 언어-분석형, 언어-종합형, 이미지-분석형, 이미지-종합형이 있다. 1)


자신의 학습 스타일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을 ‘맞물림 가설(meshing hypothesis)’이라고 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고, 공부가 잘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게 건강에 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맞물림 가설의 경우에는 어떨까?


 

 

좋아하는 공부법이라고 다 효과적이진 않다


00study1심리학자 로라 마사(Laura Massa)와 리처드 메이어(Richard Mayer)는 맞물림 가설을 실험으로 검증해보았다. 이들은 대학생들에게 건전지, 전기회로, 모터 같은 전자공학 지식을 가르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글, 또 하나는 그림으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한 집단에게는 글로, 다른 집단에게는 그림으로 공부를 시켰다. 공부를 마친 후에는 시험을 보았다.


만약 맞물림 가설이 옳다면 언어형 학생들은 글로 공부했을 때 성적이 더 좋고, 이미지형 학생들은 그림으로 공부했을 때 성적이 더 좋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학습 스타일이 무엇이든 그림으로 공부를 하는 편이 성적이 더 좋았다. 2) 다른 심리학자들도 비슷한 실험들을 해보았지만 맞물림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찾지 못했다.


이것은 모든 경우에 글보다 그림으로 공부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교과목에 따라, 내용에 따라서 글로 읽어야 할 것이 있고 그림으로 봐야 할 것이 있다. 또 분석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도 있고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때도 있다. 그림을 좋아한다고 그림으로만 보려고 한다거나,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때도 분석적으로 보기만 고집한다면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적성-처치 상호작용'


맞물림 가설이 과학적으로 지지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시 음식의 경우로 돌아가면 기본적으로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영양분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식단은 달라질 수 있다. 마라톤 선수와 보디빌더의 식단이 다르고, 수영 선수와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식단이 다르다. 또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


00study1흔히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는 무슨 ‘비법’이 있어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들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아주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에게 효과적인 공부법이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것을 적성-처치 상호작용(aptitude-treatment instruction)이라고 한다. 여기서 적성이란 선천적인 자질만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계발된 능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한 가지 예를 보자. 글의 내용을 머리 속으로 잘 정리하지 못하거나, 배경 지식이 부족하면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글 중간 중간에 적당한 질문을 던져서 글의 내용을 정리해볼 기회를 갖게 하거나, 또는 독자에게 낯선 개념을 상세히 풀어서 써주면 이해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실제로 실험 결과들을 보면 이렇게 쉽게 쓴 글은 독해력이나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하게 쓰인 글은 원래 글을 잘 읽거나 배경지식이 풍부한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요점만 간결하게 쓴 글을 읽을 때보다 오히려 더 헷갈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3)


 

 

인지적 재구성 능력과 공부법


비슷한 현상은 다른 맥락에서도 관찰된다. 어떤 종류의 문제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관점을 좀 달리 해야 풀 수 있다. 간단한 문제를 하나 예로 들자면 떡 6개를 네 명이 똑같이 나눠먹는 경우가 있다. 풀이법은 여러 가지다. 각자 하나씩 먹고 남은 2개는 반으로 잘라 나눠먹거나, 6개를 모두 잘라 12조각으로 만들어서 3조각씩 먹거나, 아니면 떡을 뭉쳐 한 덩어리로 만든 다음에 4등분해서 먹는 것이다. 어쨌거나 떡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6개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르거나 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상을 재구성해서 보는 능력을 인지적 재구성 능력(cognitive reconstruction ability)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캐슬린 크레이머(Kathleen Cramer)와 그의 동료들은 이런 떡 나눠먹기와 비슷한 문제들을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한 반에서는 교사가 문제를 하나씩 풀어주었고, 다른 반에서는 교사가 기본 개념만 설명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풀어보게 했다. 그리고 시험을 봤을 때 어느 반 학생들이 문제를 더 잘 풀었을까? 두 반의 평균에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학생별로 결과를 보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인지적 재구성을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두 반에서 정반대로 나온 것이다. 재구성을 잘하는 학생들은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며 공부를 하게 했을 때는 시험을 잘 보았지만 교사가 일일이 가르쳐주자 성적이 뚝 떨어졌다. 반대로 재구성을 못하는 학생들은 교사가 문제를 풀어주며 가르쳤을 때는 시험을 잘 보았지만, 혼자 공부하게 하면 잘 하지 못했다.4)


 

 

공부법마다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을 보면 대체로 관련된 능력이 높은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능력이 낮은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를 받거나 친절한 교재로 공부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만도 않다.


00study3한 실험에서 중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2주간 사회 과목을 가르쳐보았다. 한 반은 강의를 했고, 다른 한 반은 학생들이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를 하게 했다. 마지막 한 반은 토론을 하게 했다. 이번에는 재밌게도 언어 능력이 높은 학생들은 강의를 들었을 때 성적이 잘 나오고, 언어 능력이 낮은 학생들은 직접 조사를 하거나 토론을 하며 공부했을 때 성적이 잘 나왔다. 5)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공부법마다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것은 교사의 말을 경청하면서 쏟아지는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언어 능력이 높은 학생들에게는 직접 조사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언어 능력이 낮은 학생들은 이렇게 정보가 주어지면 따라가기가 버겁기 때문에 직접 자료를 찾아보거나 토론을 하면서 공부하는 쪽이 효율적인 것이다.


 

 

학생에 대한 정확한 평가 필요

 

사람마다 지식 수준도 다르고 언어, 수리, 공간 능력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정보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할 때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지도(tutoring)의 학습 효과는 교실 강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데 개인의 지식이나 능력에 맞춰 내용과 방법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련되지 못한 교사는 학생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 지도를 해도 교실 강의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다.


독일 심리학자 알렉산더 렌클(Alexander Renkl)과 동료들은 개인 지도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당연하지만 학생의 지식이나 능력을 잘 분석해서 정확한 정보를 교사에게 알려주면 개인 지도의 효과가 높아졌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학생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면 어떨까? 학생의 수준을 실제보다 부풀리건 아니면 낮추건 어느 쪽으로도 정확한 정보를 줄 때보다 개인 지도의 효과는 낮아졌다. 다시 말해 학생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거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앞서 소개한 배경지식이 풍부하거나 독해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설명을 자세히 하거나 중간 중간 질문을 던지는 친절한 글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6)

 

 


스스로 실험 해보기


이제 정리를 해보자. 사람마다 좋아하는 공부법이 있지만, 그 방법이 항상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공부법을 달리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적성이 다르고, 공부법마다 요구하는 적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 각자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지만 공부하는 그 순간에 공부가 잘되는 듯이 느껴지는 공부법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을 계속 고집하게 된다. 결국 자기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해도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숙련된 교사가 지도해주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해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인데 스스로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한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단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우고 몇 시간이나 며칠이 지난 후에 스스로 시험을 쳐서 외우는 방법에 따라 망각이 이뤄지는 속도를 측정했다. 이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를 해보고 얼마 뒤에 스스로 시험을 쳐서 공부법의 효과를 직접 측정해보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몸무게를 달아보며 효과를 확인한다. 공부에 대해서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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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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