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공부를 게임처럼 재미있게 하려면?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10)
지난 4월29일 국회는 만 16살 미만의 청소년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셧다운 제도’를 통과시켰다. 이 제도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고, 많은 학부모들도 게임에 빠진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국회에서 셧다운 제도를 통과시킨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은 공부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여러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번 회에는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게임과 폭력
얼마 전 문화방송 뉴스에서는 컴퓨터 게임이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을 보도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피시(PC)방의 전원을 내려 버린 뒤, 사람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기자는 이 사람들이 “폭력 게임 속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는 멘트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문화방송의 이 ‘실험’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주어지던 보상을 끊어버리는 것을 ‘소거(extinction)’라고 한다. 소거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열리지 않는 문을 발로 차고, 동전 먹은 자판기를 두드린다.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거나 정치인을 뽑아주었더니 이상한 정책을 펼쳐도 사람들은 분노한다. 게임을 하는 중에 전원이 나가서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게임 때문이 아니라 소거 때문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게임은 아무 해도 없을까? 그렇지 않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 실제로 사람들을 어느 정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보며, 이를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들도 많이 있다. 폭력적 게임에 의한 공격성 증가의 한 가지 원인은 폭력에 대한 둔감화(desensitization)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피나 상처를 보거나 비명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자주 보다보면 익숙해져서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에게 끔찍하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면 300밀리초(0.3초) 뒤에 특정한 뇌파가 나타나는데 이를 'P300파'라고 한다. 미국과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장면을 보여주고 뇌의 반응을 측정해보았다.1)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기의 얼굴에 생긴 커다란 종양처럼 단순히 끔찍한 장면을 보았을 때는 P300파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사람 목에 들이댄 칼처럼 폭력적이고 끔찍한 장면을 보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P300파가 낮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여기에 이어서 사람들에게 신호가 떨어지면 상대방보다 버튼을 빨리 누르면 이기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을 하게 했다. 이 게임에서 지면 헤드폰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나오는데, 소음의 세기와 길이는 이긴 사람이 정하게 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패배한 상대방에게 가하는 고통의 정도는 이전 실험에서 측정된 P300파의 세기에 반비례했다. 이 결과는 폭력적인 게임이 사람들을 폭력에 둔감하게 만들고, 폭력에 둔감한 사람들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놀이를 통해 배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의 발달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복잡하고 추상적인 규칙들을 따르는 법을 익힌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이 공부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아이들이 일상 생활 때보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을 때 더 복잡한 문법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
컴퓨터 게임들은 대부분 이런 놀이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옮겨 놓은 것이므로 비슷한 효과가 있다. 옛날 오락실 간판에 흔히 “지능계발”이라는 문구를 써놓곤 했는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보자. 대체로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보다 공간 인지(spatial cognition) 능력이 높다. 이런 차이는 보통 선천적이라고들 한다. 과거의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자는 사냥, 여자는 채집을 담당했기 때문에 남자들이 사냥에 필요한 공간 인지 능력이 여자들보다 높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인 차이라고 해서 후천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근시도 유전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경만 쓰면 간단히 극복할 수 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징 펭(Jing Feng)과 그의 동료들은 공간 인지 능력의 성차에도 이런 ‘안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안경이란 컴퓨터 게임이었다. 여자 아이들에게 액션 게임을 10시간 정도 하게 했더니 남자 아이들과 공간 인지 능력에서 차이가 없어졌다.3)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못해 심지어 사회 문제로도 비화되고 있는 게임 장르가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이하 MMORPG)이다. MMORPG는 환상적인 가상 세계 속에서 사용자가 기사, 마법사, 도둑과 같은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며 모험을 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은 이 장르의 효시가 된 게임으로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에 나온 많은 MMORPG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MMORPG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울티마 온라인을 설계한 라프 코스터(Raph Koster)는 그의 책 <재미 이론>에서 게임의 재미는 결국 ‘학습’에 있다고 주장한다.4) 코스터는 사람들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외부적인 압박이 없다면 배움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재미있는 게임이란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게 적절한 난이도로 배울 거리를 주는 게임이다. 실제로 울티마 온라인을 비롯해서 많은 MMORPG들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한 많은 기술들과 그 세계에 대한 지리와 역사를 익혀가며 게임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가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듣기 좋은 음악, 화려한 시각 효과, 흥미로운 이야기 등 게임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고루 들어 있다. 하지만 게임의 재미는 학습에서 온다는 코스터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인지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진보(steady progress)가 인간에게 강력한 보상이 된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인 B. F. 스키너(B. F. Skinner)는 1958년 역사상 처음으로 “가르치는 기계(teaching machine)”를 만들었다.5) 스키너의 기계는 학생들에게 단어를 가르치는데, 한 단어를 여섯 단계로 나누어 가르쳤다. 학생들은 한 단계를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고, 틀리면 피드백을 받는다. 모든 단계는 충분히 쉬워서 학생들은 거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계속 단계를 넘어갈 수 있었다. 안정적인 진보를 경험하게 한 것이다. 몇 년 전 닌텐도는 스키너의 “가르치는 기계”와 똑같은 원리로 “영어 삼매경”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 게임은 국내에서도 수십 만 장이 팔렸다. 이 게임은 영어 받아쓰기를 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인데도, 무척 재미있어서 한 게임 잡지에서는 이 게임을 “악마가 만든 게임”이라고 평할 정도였다.6)
그렇다면 학교 공부는 왜 재미가 없을까
컴퓨터 게임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 뒤에서 부모들은 이런 말을 던지곤 한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게임의 재미가 학습에 있다면서 왜 학교 공부는 재미가 없을까? 물론 학교는 게임 속 세계처럼 음악과 영상, 흥미로운 이야기로 넘쳐 나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에는 ‘안정적인 진보’가 빠져 있다.
스키너의 “가르치는 기계”와 닌텐도의 “영어 삼매경”에서 각각의 단계는 충분히 쉬워서 학생들은 성공을 거듭해서 경험할 수 있고,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빠르게 피드백이 주어져서 금방 성공을 할 수 있다. 학생과 게이머들은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육 환경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없다. 학생들은 실제로 무엇을 해보기 전에 길고 지루한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운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많이 경험하고, 피드백은 잘 주어지지 않거나 너무 늦다. 아무리 화려한 음악과 영상으로 치장된 컴퓨터 게임이라도 이런 식이라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망해버리고 말 것이다.
요즘 게임 중독 때문에 말이 많다. 이것은 게임 회사들이 게이머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고 게임에만 몰두할 만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들과 경쟁을 할 만큼 학교 교육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 초등학교 교과서 집필자는 교과서 오류에 대해 기자가 검증 과정이 불충분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교과서, 그거 하나 만드는 데 그렇게까지 하란 말입니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7) 이런 실정이니 ‘재미’까지 기대하긴 무리겠다. 게임회사들은 적어도 재미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까지” 하고 있다.
게임으로 공부하기?
그렇다면 게임과 학교 공부를 결합하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에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교육을 뜻하는 ‘에듀케이션’과 오락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라는 장르도 생겨서 이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재미’와 ‘공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많이 있으나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학습용 게임의 예를 보면, 재미는 있지만 학습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학습 효과는 있겠지만 재미는 덜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재미도 학습 효과도 그저 그런 게임들은 더 많다. 이런 게임들은 기존의 컴퓨터 게임에 단순히 영어, 수학, 한자 같은 내용만 덧붙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점진적 진보를 통해 공부 자체를 재미있게 만든 것이 아니라, 게임 중에 학교 공부와 관련된 내용을 곁다리를 보여주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칠레에서 심리학자들과 공학자들이 학습용 게임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8) 연구자들은 초등학교 1, 2학년들을 실험군, 내부 대조군, 외부 대조군의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실험군에 속한 학생들은 3개월간 수업 시간 중에 매일 20~40분씩 학습용 게임을 했다. 내부 대조군에 속한 학생들은 실험군과 같은 학교의 학생들로 평소와 같은 수업을 받았지만 담당 교사들에게는 내부 대조군으로 편성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인 외부 대조군의 학생들에게는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았다.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누는 이유는 두 집단을 비교해서 처치의 효과를 밝히기 위해서다. 또, 사람들은 관찰당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한다. 이것을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고 한다. 이러한 효과를 통제하기 위해 내부 대조군을 둔 것이다. 의학에서 임상실험을 할 때 일부 환자들에게 가짜약(placebo)을 나눠주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3개월 뒤, 실험군의 학생들은 외부 대조군의 학생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것만으로 학습용 게임이 효과적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이르다. 외부 대조군과 똑같은 수업을 받은 내부 대조군의 학생들도 그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호손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실험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고무된 교사들이 더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학습용 게임의 효과라는 것은 대단치 않다.
재미있는 학교를 위해
우리는 공부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배우기를 즐거워하며 공부는 재미있다. 최근에 공부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시도를 보면 대부분 공부 자체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할 내용과 크게 관련 없는 흥밋거리들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겠으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학교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입에 소방 호스를 물리고 물을 쏟아붓’ 듯이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 방식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학습 동기마저 없애버린다. 학생들이 실패보다는 성공을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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