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학생을 책임지지 않는 대학들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9)

 

 

 

00kaist » 최근 재학생 4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으면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무한 학점경쟁’ 중심 학사운영 정책에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요일인 10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안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이정우 선임기자

 

 

학생의 학업성취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학생 책임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론 학생의 책임도 없지는 않지만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


뉴질랜드의 교육학자 존 헤이티(John Hattie)가 쓴 <보이는 학습(Visible Learning)>이라는 책이 있다.1) 5만 건의 교육학 연구를 토대로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끼치는 138가지 변인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부록에는 이 138가지 변인을 영향력 순서대로 늘어놓은 표가 있는데 흔히 한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되곤 하는 평준화나 복지정책, 학급 규모와 같은 변인들은 의외로 모두 100위권 밖이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교육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거나 학업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다른 요소들보다 영향력이 훨씬 적다는 말이다.

 

 


학업 성취도는 가르치는 쪽의 책임


그렇다면 학업 성취도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변인들은 어떤 것일까? 학생의 발달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세 살짜리 아이가 미적분을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전 성취도도 중요하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새로운 것도 더 잘 배운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변인들은 모두 교사나 교육법과 관련되어 있다. 형성평가와 피드백, 교사의 명쾌한 설명 능력, 교사와 학생의 관계 이런 것들이다. 가만히 보면 훌륭한 선생님으로 꼽히는 교사들이 가진 자질이 결국 이런 것이다. 물론 선생님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교사에 교육법에 대한 피드백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00visibleL헤이티가 이 책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도 그것이다. 결국 교사가 중요하다. 그의 책 제목에 ‘보이는(visible)’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청각 교육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지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보이게 하라는 것이다. 형성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학생 스스로에게도 보이게 하지만 교사가 무엇을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있는지 교사에게도 보이게 한다. 물론 멀뚱멀뚱 보고만 있으면 안 되고 적절한 개입을 해야 한다.


아무리 교사가 훌륭해도 학생이 공부를 안 하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확실히 학생의 동기나 태도도 학업 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교사와 교육법의 영향력에 비하면 약하다. 어린 시절 헬렌 켈러에게 도대체 학습 동기라는 게 있기는 했을까?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교사의 역량이다. 그리고 이런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것은 학교와 교육당국의 몫이다. 결국 학생의 학업성취도에 대한 책임은 교사, 학교, 교육당국 즉, 가르치는 쪽에 가장 크다.

 

 

 

책임지지 않는 대학들


그런데 최근의 우리 대학들을 보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이런 저런 ‘개혁’을 하는데 이 개혁의 방향이 한결 같이 가르치는 책임을 포기하는 쪽으로 맞춰져있다. 최근에 여론의 도마에 오른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과 같은 방침이 그렇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당연히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종류의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학원은 학교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진다. 운전면허학원에 가면 “강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틀림없이 합격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약속은 절대 헛되지 않다. 심지어 면허시험에 떨어지면 붙을 때까지 무료로 강습시켜주는 학원도 많다. 그런데 우리 학교를 다니면 무엇을 확실히 배울 수 있다고 보장하는 대학은 드물다. 그리고 이런 약속도 공수표이기 일수다. 대학은 학원만큼도 학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심지어 다이어트 업체도 살이 빠지지 않으면 돈을 물어준다고 광고하는데 말이다.


징벌적 등록금의 논리는 이렇다.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따라서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에게 벌금을 물린다면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학교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학교에게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 않을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의 모닝사이드 아카데미는 학업이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 뽑은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다. 이 학교 학생들 중에는 학습장애나 주의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지닌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이 학교는 일반적인 학교보다 2배나 빨리 진도를 나간다. 그래야 이 학생들이 뒤쳐진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모닝사이드 아카데미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돌려준다. 약속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징벌적 등록금과 똑같은 논리인데 학생이 학교에 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에게 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학교는 역사상 단 한 번도 학생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수업료를 돌려준 적이 없다.2)

 

 

 

'보이지 않는' 영어강의


왜 대학들은 교육을 책임지지 않을까? 이것은 결국 평가의 문제로 돌아간다. 교육의 질을 평가하지 않으니 교육의 질을 책임질 이유도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 최근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영어강의의 경우를 보자.


classroom » 대학 강의실. 한겨레 자료사진

 

영어강의는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쳐서 교과목과 영어,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교육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면 성공적인 경우도 있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친 경우도 있다. 3) 한국은 어떨까? 놀랍게도 아직까지 영어강의의 효과를 평가할만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다.


영어강의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과목을 한국어로 배우고 영어를 따로 배운 학생과 교과목을 영어 강의로 배운 학생을 비교해 보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비교를 한 논문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영어강의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인식도나 만족도 정도에 머물러 있다.4)


이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국내 대학들이 효과도 확실치 않은 영어 강의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게 영어 강의를 많이 하면서도 그 효과에 대한 검증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극비리에 효과를 검증하고 공개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헤이티의 책 제목에 빗대자면 이것은 ‘보이는 학습’이 아니라 ‘안 보이는 학습(invisible learning)’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에도 성취기준이 있고, 평가기준이 있다. 수능 때마다 나오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는 표현은 이 성취기준과 평가기준을 근거로 한다. 물론 이것이 현실에 잘 적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기준이 있기는 하다. 고등교육이라는 대학에는 그런 기준도 없다.


대학 내외부의 평가를 보면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언론사들이 하는 대학평가는 물론이거니와 대학 내부의 교수 평가에서도 교육의 질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이른바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들일수록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더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연구는 대학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교육은 또 별개의 문제다. 교육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쪽 나라를 향해 북으로!


어떤 사람이 마차를 몰고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남쪽 나라로 간다고 대답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어째서 남쪽으로 가는데 말을 북쪽으로 모느냐고 하자 마차를 몰던 사람은 자신의 말이 뛰어나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방향이 틀렸다고 하자 이번에는 노자가 충분하다고 했다. 말이 뛰어나고 노자가 충분해도 북쪽으로 가면 남쪽 나라엔 다다를 수 없다고 하자 말을 몰 던 사람은 자신의 마차를 모는 기술이 뛰어나다며 북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남원북철(南轅北轍)”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리 훌륭한 말과 넉넉한 돈으로 마차를 잘 몰아봤자 다다를 수 없다. 그나마 지구는 둥그니까 그 마차를 몰던 사람은 남쪽 나라에 결국 도착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우리의 대학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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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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