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인지과학자 이정모 교수가 지난 몇 년 간 했던 대학 강의 자료와 최신의 연구 흐름들을 모아 ‘마음, 몸, 기술’에 관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전해준다.

[연재] 재난에 맞선 일본인들의 인지전략이 보여준 감동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5)

[ 후쿠시마의 교훈②: '나의 불행이 네 탓이 아니다' ]

 

 


00fukushima77 » 한 여자아이가 22일 일본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에 있는 지진 희생자 묘지 앞에서 애도 의 표시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지난 3월11일 일본 대지진으로 시작된 여러 재난 사건들의 규모와 전개 속도, 그리고 그 속에서 보여준 일본 시민들의 행동 반응은 우리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 고정관념을 크게 바꾸게 하였다. 재난의 규모와 범위에 대한 놀라움과 걱정과는 달리, 한국인 그리고 세계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경탄하게 한 것은 대재난에 임해서도 일본인들이 거의 자동으로 보여준 공동체적 행동,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그리고 질서의식과 극기의 자세였다. 최근에는 여러 일본인들의 영웅적인 희생 행위도 보도됐다. 이런 모든 것들이 수렴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우리의 기존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폭 바꾸게 했으며 여러 가지로 심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게 하였다.

 

 

 

00fukushimajapan............

우리에게 남은 흑백이분법,

생존 위한 인지 진화전략의 흔적

...............

 

이제 생각하기에, 인류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발전시킨,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지적 전략의 핵심은 여러 상황을 주의, 이해, 기억, 사고할 때에 될수록 최소의 정보처리를 하며 적응하는, 다시 말해 될수록 정보처리(생각)의 부담이나 노력을 줄이고 쉽게 하여 적응하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인지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런 전략이 절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복잡한 정보처리를 구태여 할 필요나 부담 없이, 될수록 빨리 세상을 쉽게 파악하여 분류하고 이해하고, 이에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막강한 위력에 대처하며 다른 동물들과 생존경쟁을 벌이며 생존해온 인류가 오랜 진화 역사를 거쳐 발전시킨 진화적, 인지적, 정보처리적 적응 전략인 셈이다.

 

그런 인지적 전략 중에서 대표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마도 대상이나 상황을 이분법으로, 흑백으로 단순 분류하는 이분법적 사고 전략일 것이다. 될수록 빨리, 나의 일과 다른 사람들의 일들이나 외적 현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고서는 내 것에만 관심을 쏟는,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현상들에 대해서는 무시하던지 무관심하던지 하며 산다는 것은, 내가 그날그날에 쉽게 적응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가장 편한 인지 방법일 터이다. 내편과 네편을 단순 이분법으로 범주화하여 분류하면 적응하기가 편하다. 반면에 중간층이 하나 또는 여럿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서 그에 맞게 사물을 분류하는 일은 가외의 노력이 들고 부가적 정보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상당히 더 드는 인지적 적응 전략이 될 것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다. 예술가나 학자 같은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에서 일부러 정보처리 부담을 늘이면서 무언가를 창조하려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 특히 지적 능력이 낮거나 지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나 의지가 적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적응 전략은 될수록 정보처리 부담을 줄여서 대상이나 현상을 쉽고 빠르게 흑백으로, 이분법으로 범주화하는 인지 전략을 사용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마치 램(RAM) 메모리가 작은 컴퓨터가 멀티태스킹을 못하듯이. 인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간편하게 생각하며 살려는 사람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인지적 편법(인지적 휴리스틱스)이 이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00fukushimajapan

............

우리에겐 없는 무엇:

참사 앞에서 생각하며 배려하는 일본인들

............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지 전략을 사용하며 살고, 또한 이런 전략을 잘 이용하는 편향된 정치가나 종교지도자들은 추종자나 일반 시민들이 깊은 생각에 들지 않게 하면서 자기편이 되도록 유도한다. 보수-진보, 여당-야당, 남한-북한, 기독교인-비독교인, 네편-내편. 한국인-외국인처럼 이분법으로 가르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행동하거나 또는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데 이런 인지 전략이 사용된다. “뭐 복잡하게 정보처리 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냥 내가 던져주는 방식으로 흑백 식으로 사람, 사건, 상황을 범주화하며 내 논리를 따라 오지!” 하는 식인 것 같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실제 현상은 상당히 복잡한 원인과 상태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원인과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정보처리를 더 많이 하고 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단순 정보처리를 하여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행한다. 또는 그렇게 하게끔 일부 정치가들이나 종교계 사람들에 의해 부추겨진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강압으로 지배했던 일본인들, 그래서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아왔던 일본 사람들이 거대한 참사 앞에서 보여주는 여러 반응 행동들은 우리에게 가히 충격적이다. 그들은 자신을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하며 배려하는, 우리에게 모자란 사회적 행동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편의를 고려해 나의 감정 표출이나 나의 거친 행동을 자제하며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나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나' 이전에, ‘우리’를 생각하는 그들의 긍정적인 자세가 이번 재난 현장의 곳곳에서 여러 상황들에서 나타났다. 일본을 잘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일본 사람 모두를 단순 범주화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살아온 일부 한국인들에게 이런 장면들 자체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번 재난은 역설적이게도 단순 범주화된 기존의 우리 생각을 크게 수정하고 넘어설 필요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들 사이에는 될수록 정보처리의 노력을 덜 들이고 인지적 편의를 위해 빨리 사물이나 현상을 단순 범주화하며, 다른 사람의 느낌, 불편, 고통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고 정보처리를 깊이 하고 잘 생각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한국인들도 많기에 위의 경우가 한국인의 일부에게만 적용된다는 단서를 달아야 하겠지만.

 

 

 

00fukushimajapan

............

단순 이분법을 넘어

복잡한 생각, 배려하는 생각이 필요하다

............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에 차이가 생겼을까? 역사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수많은 지진, 해일, 태풍, 화산의 폭발 등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그들은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무력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그런 자연 앞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임을 깨달은 게 아닐까? 또 중국의 현인 임어당의 말대로 ‘불가항력인 것을 체념하며 수용하는 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거기에서 ‘나의 불행은 네 탓이 아니다. 자연 탓이다’ ‘우리가 서로 극기하며 서로 배려하면 도울 때에 자연 재해를 넘어설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대대로 이어지고 그런 문화에서 자랐기에 재난을 만나도 자연히 이런 자세가 자동으로 행동에 배어 나왔을 수 있다.

 

한국은 자연 재해보다는 수많은 외국의 침공을 받으며 많은 재난을 겪었다. 따라서 고난을 겪는 수많은 백성들의 생각은, ‘나의 불행은 외국인 (또는 정치를 잘 못한 사람들의) 네 탓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고착되어 전해져 왔을 수 있다.

 

그런데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런 ‘나의 불행은 네 탓이다’ 식의 사고방식은 될수록 생각을 덜하고 정보처리를 적게 하여 빨리 결론을 내리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불행’의 모든 것을 외국인 또는 정치를 잘못한 사람들, 너네 편의 ‘네 탓’으로 돌리며, 이에 감정적 반응만을 연결하면 되었지, 사태 발전과 전개 그 자체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혹시나 나와 우리가 그런 사태 발전과 전개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유형의 생각이다. 즉 깊은 생각보다는 정보처리 부담을 줄이며 ‘빨리’ 결론을 내리는 식의 사고이다. ‘빨리 빨리 사회’의 대표적 인지 전략이다.

 

한국 사람들은 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에게 아낌없는 위로와 도움을 전하려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람들은 감정적 공감의 면에서, 그리고 그 공감에 바탕한 도움 행동을 바로 내어놓는 면에서 (대표적인 예가 일본 유학 중에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던져 일본인을 구한 의인 이수현의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상당히 좋은 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일본의 재난 사태에서 우리가 일본 사람들한테서 배울 점의 하나는, 내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비록 생각을 많이 하고 정보처리적 부담을 더 지더라도,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에 주는 영향을 배려하며 극기하는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여러 가지로 더 깊게 하고 더 많은 정보처리 부담을 내가 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우선 배려하는 자세가 우리가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하여 일본 사람들한테서 배울 자세이다.

 

이정모의 연재 글 모두 보기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인지과학
인지심리학 전공. 교수 퇴임 전에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심리학사 등 강의했다. 저서로는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 <인지과학: 과거, 현재, 미래>, <인지심리학> 등이 있다.
이메일 : metapsy@naver.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연재] '사람은 겉으론 '창의성' 외치지만 실제론 기피'[연재] "사람은 겉으론 '창의성' 외치지만 실제론 기피"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이정모 | 2011. 12. 19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6) '인간의 반창의성 편향' 보여준 심리학 실험결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바버라 스트로치 지음)의 표지 삽화 부분. 요즈음 국내 학교나 기업에서도, 과학기술 관련 정부기관이나 학원, 학부...

  • [연재] 재주 부리는 로봇은 얼마나 더 똑똑해졌나?[연재] 재주 부리는 로봇은 얼마나 더 똑똑해졌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이정모 | 2011. 05. 18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6) 지난  5월 첫 주에 세계 과학기술의 요람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창립 150주년을 맞이해 여러 행사를 열었다.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가벼운 행사도 있었으나, 이 창립 기념일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MIT에...

  • [연재] 기술대국 일본의 최악 시나리오 예측은 왜 실패했나?[연재] 기술대국 일본의 최악 시나리오 예측은 왜 실패했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이정모 | 2011. 03. 22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4) [ 후쿠시마의 교훈①: 인간 판단 오류에 대한 경각심]   지난 3월11일 이래로, 온 세계가 일본의 대지진과 뒤이어 일어난 여러 재난 참사에 대하여 첨예한 관심을 갖고 매스컴에 주의를 기울이며 지켜보며 듣고 있다...

  • [연재]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연재]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이정모 | 2011. 02. 07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3)                 생활이 복잡해질까봐, 사생활이 침해될까봐 염려하며 끈질기게 저항하여 사지 않고 지내려던 스마트폰을 최근에 드디어 사서 사용법을 한창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기억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되돌아보면 4...

  • [연재]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연재]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이정모 | 2011. 01. 12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2)          미래 융합과학기술 틀: 서구와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요즈음 대학에서도, 과학기술계에서도, 기업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영역 간, 분야 간의 융합이 하나의 화두이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에도, 또 앞으로...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