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인지과학자 이정모 교수가 지난 몇 년 간 했던 대학 강의 자료와 최신의 연구 흐름들을 모아 ‘마음, 몸, 기술’에 관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전해준다.

[연재] 기술대국 일본의 최악 시나리오 예측은 왜 실패했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4)

[ 후쿠시마의 교훈①: 인간 판단 오류에 대한 경각심]





00fukushima44 » 지난 11일 밀어닥친 쓰나미로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에서 13일 한 소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먹이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3월11일 이래로, 온 세계가 일본의 대지진과 뒤이어 일어난 여러 재난 참사에 대하여 첨예한 관심을 갖고 매스컴에 주의를 기울이며 지켜보며 듣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재난을 바다 건너 벌어지는 일,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고, 얼마든지, 어느 나라이건, 최근 지구 환경의 빠른 변화와 함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들로서 많은 염려를 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런 재난에 대하여 상당한 침착성을 보이며 대처하여 나아가는 태도에 놀라곤 한다.


자연현상이 보여준 크나큰 위력에 대한 놀라움의 체험과 더불어, 재난을 당한 많은 일본인들이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 대한 ‘남 일 같지 않다'는 걱정어린 염려와, 그들이 여러 상황에서 보여주는 침착성과 영웅적 행위에 대한 긍정적인 경탄을 금하기 힘들면서도, 우리는 ‘그런데 ...’ 하는 일말의 의문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또한 예상 밖 규모의 지진으로 시작된 이런 재난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었느냐는 측면에서 볼 때에 지진과 해일의 규모와 피해 예측에서 드러난 판단 오류, 그리고 도쿄전력 회사를 중심으로 한 원자력 발전소 관련 재난의 예측과 대처방안에서 드러난 판단과 추론의 오류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경각심을 느낀다.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 판단과 추론의 오류 가능성

 

몇 십년 동안 세계 경제의 제2위 자리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으로 발전해왔고 과학과 기술에서도 세계 선진국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일본이 도대체 이런 재난을 왜 예측하지 못하였을까?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불확실성이 개재된 상황에서 인간이 진화심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각종 판단 및 추론 오류와, 또한 그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은 과학과 기술 관련 조직의 의사결정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카네만과 그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의 핵심은 각종 불확실성 아래에서 인간의 판단과 추론, 의사결정이 편향적이고 오류 투성이임을 인지심리학 실험을 통해 경험적으로 입증한 것이었다.


인간은 컴퓨터처럼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멀티태스킹'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의 용량에는 제한이 있게 마련이고, 인간의 정보 처리는 한계를 지닌다는 특성을 띤다. 따라서 인간한테는 어떤 대상에 집중하는 주의의 범위가 제한돼 있어,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는 동안에는 눈앞에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며, 20여개 숫자를 제시하면 그 중에서 대략 일곱 개 안팎의 숫자만을 기억한다.


또한 사람들은 아주 낮은 확률의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여 마치 어떤 점(식역) 이하의 확률은 영(0)으로 취급하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자동차를 한 번 탈 때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1회 승차 당 0.00000025'라고 했을 때에 10%의 사람들만이 안전띠를 매겠다고 응답했으나, 같은 확률을 달리 표현하여 ‘평생 동안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이 0.01이다’라고 할 때 안전띠를 매겠다는 응답을 보인 사람들이 39%로 증가하였다. 사람들은 0.00000025를 영과 같은 것으로 과소 평가하여 자신이 차를 얼마나 많이 자주 타건, 얼마나 시일이 지나건 상관없이 그 확률은 동일할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이번 일본 재해의 지진이나 쓰나미 규모와 그 피해 가능성, 원전 사고 가능성과 그 피해 범위에 대해서도 담당자들이 이와 같이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대한 예언적 언급이 주어질 때에, 예언이 정확함을 보여주는 증거의 신빙성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바, 즉 희망하는 바에 대해 호의적으로 기술했느냐에 치중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일반 시민들은 재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고 주장한 담당자들의 말을, 재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담당자의 말보다, 더 믿고 그런 방향으로 신뢰하고 일상 생활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사건 확률의 회귀 가능성에 대해 많이 오해한다. 어떤 상태가 무한이 반복되면 그 상태는 (+) (-) 상태가 무선적으로 일어나며 결국은 그 상태의 평균점으로 회귀한다는 것이 사건 확률의 객관적 법칙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 상태가 (즉 일본의 경우에, 재난이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상태가) 무한정으로 반복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일본 재난과 관련한 기상 예측이나 원전  담당자들이 이런 객관적 사건의 자연적 회귀 법칙(부정적 사건도 자주 발생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에 대한 오해 오류에 빠졌을 수도 있다.

 

 

 

신념과 희망이 아니라 증거와 객관적 확률에 기반해야

 

종합한다면,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확률을 정확히 계산하여서 판단하고 추리하여, 확률이 더 높은 가능성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 인간의 적응 양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 희망 등을 지지하는 증거만을 찾지, 반증 가능성을 지닌 정보를 탐색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주어진 진술(문제가 없다는 식의 진술) 자체가 허위라는 것을 알려주어도, 그 이전에 자신이 형성했던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는 경향마저 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판단, 추론, 의사결정 등의 인지적 오류 문제 분야를 전공한 심리학 또는 인지과학 전문가가 재난에 대처하는 관련 기관들에 대거 참여해 중요한 정책과 대처 방안 결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일본도 그러하였는지, 한국은 어떠한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른다.

 

이제 21세기에는 물질 중심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 나라의 선진국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기보다는, 그에 첨가하여 인간 요인에 대한 과학기술적 연구의 발전 정도와 그 연구 결과가 과연 어느 정도나 사회 일반 정책이나 환경 관련 기관의 운영과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지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일본 재난에서 미국, 프랑스 등의 서구 국가와 일본의 국가 정책이 대비적으로 부각된 바는, 지금까지 물질 중심의 과학기술관에 치중하여온 아시아 국가들의 성향과, 20세기에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서 인간적 요인에 대한 과학기술 탐구와 사회적 반영을 추구해온 서구 국가들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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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인지과학
인지심리학 전공. 교수 퇴임 전에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심리학사 등 강의했다. 저서로는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 <인지과학: 과거, 현재, 미래>, <인지심리학> 등이 있다.
이메일 : metap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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