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아, 알고 있었는데"...아는 문제도 틀리는 이유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8)

 

 

 

00class » "저요! 저, 알아요!" 한겨레 자료사진

 

 

공부는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든, 시험 문제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 푸는 법’ 그 자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경우는 드물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몇 가지 문제를 풀어주는 시범을 보이거나 아니면 학생이 직접 문제를 풀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풀이해준다. 교실에서는 “아! 알았는데...”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풀이를 듣고 보니 아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는 문제를 도대체 왜 틀릴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문제를 푼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미로 찾기는 수많은 갈림길들이 얽혀 있는 미로에서 목표 지점까지 가는 길을 찾는 놀이다. 문제 풀기란 이 미로 찾기와 같다. 지문의 주제를 찾는 국어 문제든,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수학 문제든, 아프리카의 기아를 해결하는 현실의 문제든 모두 어떤 목표가 있다. 무수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무엇을 골라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찾는 것은 미로 찾기나 문제 풀기나 똑같다.



간단한 문제를 못 푸는 이유


어떤 종류의 문제들은 아주 간단하다. 퀴즈쇼에 나오는 문제들이 그렇다. 이런 문제는 인터넷 검색만 잘 해도 풀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슈퍼컴퓨터가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이기기도 했다. 결국 이런 문제는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물어본다. 답을 떠올리기만 하면 목표 완수다.


00quizzshow » 고등학생들의 퀴즈대회. 자료/ EBS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알면서 틀리는 경우가 있다. 단서를 보고 특정한 지식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것은 회상(recall)이라고 하는데 회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다. 제일 큰 이유는 충분히 자주 보고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억은 반복을 통해 강해진다. 여기서 반복이란 입으로 중얼중얼 외우는 되뇌기가 아니라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오며가며 또 보는 그런 것을 말한다.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인지 떠올리기 쉽다. ‘세종’이다. 왜냐하면 세종은 자주 들어볼 수 있는 이름이고, 세종과 한글의 관계도 자주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의 다음 왕”은 이름을 들으면 알겠지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자주 들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조선의 22대 임금”이라고 해도 답을 떠올리기 어렵다. ‘정조’는 무척 유명한 왕이지만 그를 말할 때 22대 왕이라고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틀리지 않으려면 반복해서 자주 보아야 한다. 좀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려면 시험 효과를 소개할 때 설명했듯이 회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기억에서 떠올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복잡한 문제를 못 푸는 것도 지식의 문제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문제는 퀴즈쇼나 학교 쪽지 시험이 아니면 흔치 않다. 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에 시험 문제도 복잡해졌다. 현실의 문제들은 원래 복잡하다. 복잡한 문제는 갈림길도 많고 갈림길을 지나면 또 갈림길이 나온다. 첩첩산중이다.


타고 가던 버스가 고장 나서 멈췄다고 해보자. 이 문제의 목표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처음에 선택지는 둘 뿐이다. 버스를 다 고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내리는 수 밖에 없다. 내리고 나면 또 다른 선택지들이 있다.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도 있고,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도 있으며,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목적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수많은 선택을 거듭해야 한다.


학교 시험 문제는 잘 풀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얼마든지 쉽게 푼다. 교통 수단을 고르는 문제가 더 간단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선택지도 훨씬 많고 복잡하다. 이것도 사실은 지식의 문제다.


 

지식의 두 종류: 서술지식, 절차지식


흔히 우리가 지식이라고 할 때는 서술지식(declarative knowledge)을 말한다. 서술지식은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형태를 띈다. 앞서 예로 들었던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이다”가 바로 서술지식이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문제도 있다. 교통 수단을 고르는 문제의 경우 “이럴 때는 어떻게 한다”라는 형태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절차지식(procedural knowledge)이라고 한다.


절차지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키보드를 보지 않고 타자를 칠 수 있는 사람도 어느 글자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허공에 타자를 쳐봐야 대답을 할 수가 있다. 자전거 타는 법은 말로는 아주 간단하다.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서술지식일 뿐이고, 실제로 자전거를 타려면 절차지식이 필요하다.


서술지식과 절차지식은 개념상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처리되는 방식도 다르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어제 경험한 사건도 오늘 잊어버리는 진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들도 어제 연습한 동작을 오늘 시켜보면 잘 한다. 서술지식을 학습할 때는 해마(hippocampus) 등의 뇌 영역이 관여하지만, 절차지식을 학습할 때는 기저핵(basal ganglia) 등의 뇌 영역이 관여한다. 해마는 손상되었지만 기저핵이 손상되지 않아서 서술지식은 저장할 수 없어도 절차지식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문제 풀려면 절차 지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문제는 서술지식만으로 풀 수 없고 절차지식도 필요하다. 학교 공부를 웬만큼 성실히 한 학생이라면 공식을 몰라서 수학 문제를 못 풀지는 않는다. 그 공식을 언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서 틀린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아는데 틀리는 게 아니고, 서술지식만 알고 절차지식을 모르기 때문에 틀리는 것이다.


하지만 절차지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에도 안 나오고 수업 시간에 설명할 수도 없다. 결국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거나 학생이 연습하면서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절차지식도 서술지식처럼 알면서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도 서술지식과 마찬가지로 반복이 답이다.


그런데 절차지식은 서술지식과 달라서 익히기가 더 까다롭다. 서술지식은 답을 보고 외우지만 절차지식은 답을 보아도 그대로 따라 하기가 어렵다. 춤을 못 추는 사람이 잘 추는 사람 흉내를 내면 비슷하기는 해도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팔다리를 아무리 허우적대도 춤은 전혀 늘지 않는다. 거울로 비춰보면서 확인도 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지적도 받으며 고쳐야 한다. 절차지식을 확실히 기억하려면 스스로든 남에게든 피드백을 받으며 연습을 해야 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혀야'


예전의 한국식 외국어 교육은 문법을 매우 강조했다. 요즘에 ‘문법 중심의 교육’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외국어 교육이라는 힐난이 담겨 있다. 그런데 문법도 두 가지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문법이란 언어를 규칙에 맞게 쓰기 위한 절차지식이다. 책에 나오는 문법은 이 절차지식을 말로 풀어 설명해놓은 서술지식이다.


00cooking » 요리책에 있는 서술지식과 손에 익히는 절차지식은 다르다. 사진은 석류탕 만두 요리를 만드는 모습. 자료/ 박미향 한겨레 기자

이해를 돕기 위해 요리로 예를 들어보자. 요리는 말로 설명할 수 있기는 있다.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법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서술지식이다.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요리를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요리를 잘 하려면 요리를 직접 하며 몸에 익은 지식, 즉 절차지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요리책이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요리가 몸에 익지 않은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하고, 요리법이 몸에 익은 사람에게도 기억을 떠올리는 도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서술지식으로서 문법은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법과 같다. 결국에는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서 절차지식으로 저장해야 한다. 책에 나오는 문법은 길잡이이자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로서 가치를 가진다. 그러니까 모든 외국어 교육은 ‘문법 중심의 교육’이고 또 그래야 한다. 다만 과거의 외국어 교육이 문법을 서술지식으로만 외우게 한 것이 흠이었을 뿐이다.


논어의 첫 마디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배우고(學) 때때로 익히면(習)”이다. 줄여서 말하면 글자 그대로 ‘학습’이다. 이것이야말로 학습의 왕도이자, 문제 풀기의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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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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