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공부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신중하게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6)




00KimHD » 공부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신중하게!. 그림은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대표적인 풍속화 '서당'.


 

좋은 스승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정확한 지식을 알아야 하고, 학생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도 파악해야 하며, 지식을 학생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학생의 정서와 감정을 살피고, 동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좀 더 손쉬운 방법으로 피드백을 주려고 한다. ‘당근과 채찍’만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이 좋으면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하는 부모, 틀린 개수만큼 벌을 주는 교사,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상이나 장학금을 주는 학교, 학생의 성적을 인사나 지원에 반영하는 교육당국 등이 모두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벌로 피드백을 주는 방법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보상과 처벌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상을 받는 행동을 더 많이 하고, 처벌을 받는 행동을 피한다. 문제는 너무 강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상벌에도 정확한 측정은 필요하다


상벌도 피드백이기 때문에 여전히 측정은 필요하다. 측정을 해야 잘하고 못하고를 따져서 상을 주든 벌을 주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벌에는 두 가지 정보가 담겨 있다. 하나는 학생의 실력이다. 학생의 실력을 측정해서 상과 벌을 주니 당연히 상벌에는 학생의 실력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측정 결과에 따라 엄격하게 보상을 주거나 처벌하는 것은 가혹성(exactingness)이라고 한다. 흔히 가혹성을 높이면 학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상벌이 주는 두 번째 정보를 무시한다면 말이다.


상벌을 주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이 두 번째 정보란 측정 방식에 대한 정보다. 학생의 실력 자체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측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상이나 벌은 실력 자체가 아니라 측정 결과, 보통은 시험 점수에 따라 달라진다.


피드백이 일관성 있게 주어질수록 학습이 잘 된다. 이런 일관성을 수반성(contingency)이라고 한다. 가혹성이 높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측정 결과에 대한 수반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측정이든 완벽할 수가 없다. 시험 점수가 학생의 실력을 완벽하게 대변하진 않는다. 결국 상벌이 시험 점수에 수반할수록 학생의 실력에는 덜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실력 자체를 높이는 것보다 측정 방식에 맞추는 쪽으로 학습이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수행은 가혹성의 역 U자형 함수(performance is an inverted U-shaped function of exactingness)'라고 말한다. 가혹성이 높아질수록 처음에는 실력이 향상되지만 너무 높아지면 거꾸로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것을 그래프로 그리면 알파벳 U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보인다고 이렇게 부른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이 점수 1점에 인생이 갈린다면 실력을 키우기보다 점수 따는데 목을 매는 게 당연하다.1)


단적인 예가 한국인들의 영어 시험 점수다. 만점 가까이 맞아도 말 한 마디, 글 한 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취업에 영어 시험 점수를 많이 반영하면 학생들은 영어 자체를 공부하기보다 영어 시험 점수만을 높이려고 시도한다. 일제고사를 보아 학교를 평가하면 어떤 학교들은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을 시험에서 제외하려고 들기도 한다. 정밀한 평가 없이 결과만 가지고 피드백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피하려면 실력을 정확히 측정해서 편법이 통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파악해서 가르치는 일이나,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일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상벌을 주는 편이 더 어렵다.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상만 받고 벌만 피하려고 엉뚱한 짓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차라리 상벌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주지 않아야 한다.



공부는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측정을 정확히 해서 상벌을 주더라도 문제가 있다. 1959년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실험참여자들에게 아주 지루한 작업을 한 뒤에 다음 참여자에게 그 작업이 아주 재밌다고 설득하도록 시켰다. 이 거짓말의 대가로 어떤 참여자들은 20달러를 받았고, 다른 참여자들은 1달러를 받았다. 당시 20달러는 현재 가치로 17만원 정도되는 거금이다. 이후 실험참여자들에게 작업에 대해 평가하게 했을 때 20달러를 받은 사람들보다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


사람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이유를 항상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듯이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정보들을 검토하여 자기 행동의 이유를 찾는다. 큰 돈을 받은 한 사람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돈 때문이다. 하지만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지겨운 일을 하고 거짓말까지 한 사람은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결국, 그 작업이 생각보다 지겹진 않았고 그러니 크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공부는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하는 괴로움도 있다. 다른 보상이나 처벌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이미 공부는 그 자체로 보상이자 처벌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스스로 하게 만들려면 공부의 즐거움이 괴로움을 넘어설 수 있도록 조건을 잘 만들어주어야 한다. 외적인 보상과 처벌도 이러한 조건 중에 일부로서만 주어져야 한다.


외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과도하게 주어지면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칭찬이나 상, 선물을 받기 위해 또는 야단을 맞지 않기 위해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상벌이 주어지지 않게 되면 학생들은 공부하기를 멈춘다. 공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 많이 하기로 세계적인데, 한국 어른들은 책 적게 읽는 걸로도 세계적이다.



묶어놓은 개, 그리고 학습된 무기력


실제로는 많은 보상과 처벌이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상대평가의 장점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수행을 끌어낼 수 있다는데 있다. 절대평가를 해서 일정 수준이 넘는 학생에게 모두 보상을 준다면 그 수준을 넘는 학생이 많아질수록 보상에 필요한 전체 비용은 늘어난다. 하지만 상대평가를 하면 일정 비율만 보상을 하기 때문에 보상에 필요한 전체 비용을 고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누군가는 항상 하위권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항상 처벌을 받거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학생들이 생긴다. 이 학생들이 하위권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다른 학생들도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똑같이 열심히 공부해봐야 제자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초가 부실하니 공부를 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심리학자 셀리그만(Seligman)은 방 한 가운데 약간 높은 벽을 세워 두 칸으로 나누었다. 한쪽 칸에는 바닥에 전기가 흐르고, 다른 쪽 칸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개를 전기가 흐르는 칸에 들여보내면 개는 충격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벽을 넘어 전기가 흐르지 않는 칸으로 도망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다음부터 이 개는 전기 충격을 받으면 재빠르게 전기가 흐르지 않는 칸으로 피한다.


다른 개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전기가 흐르는 칸에 그냥 들여보내는 대신 줄로 묶어 두었다. 개는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고스란히 전기충격을 받아야 했다. 나중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풀어준 다음에도, 이 개는 충격을 피하려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학습한 것이다. 셀리그만은 이 현상에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3)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공부해도 혼나고 놀아도 혼난다면 차라리 놀기라도 하고 혼나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렇게 학생들도 전기충격을 받은 개들처럼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이 학생들에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학생들은 “해도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은 공부하기 그 자체이다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간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진화고 또 하나는 학습이다. 사실은 학습도 진화의 산물이다. 쥐에게 맹물과 설탕물을 주면 설탕물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설탕물을 먹인 뒤에 방사선을 쬐서 메스꺼운 기분이 들게 하면 쥐는 다음부터 설탕물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소리를 들려준 뒤에 방사선을 쬐어도 쥐는 그 소리를 피하지 않는다. 쥐는 맛과 메스꺼움의 관계는 쉽게 학습하지만, 소리와 메스꺼움의 관계는 잘 학습하지 못한다. 자연에서는 음식을 먹고 메스꺼워지는 일은 흔하지만 소리를 듣고 그렇게 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 능력은 아마도 독성이 있는 물질을 먹지 않도록 진화한 결과일 것이다.4)

 

우리의 학습 능력은 과학이나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학교가 등장한 것은 오랜 진화의 역사에 비춰볼 때 극히 최근이다. 한반도에서 보통교육이 실시된 건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질 못한다. 하지만 칭찬, 선물, 야단, 매와 같은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는 수학 공식을 기억하기보다 보상과 처벌을 학습하는데 더 적절하게 맞춰져있다.


따라서 공부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학생들은 공부와 상벌의 관계를 매우 쉽게 학습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공부에서 무엇보다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은 공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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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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