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느슨해지는 실험실 안전, 말보다 대응체제로

실험실 집단폐렴 사태를 보며 -건국대 대학원생의 글


00Labsafety2.jpg » 10일 현재 출입통제 된 동물생명과학대학 건물 입구.


난달 28일, 갑자기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야, 지금 인터넷에 건대에 괴질이 돈다고 난리던데 넌 괜찮니?”


건국대 캠퍼스에 발생한 원인미상의 집단 폐렴 사태 기사가 나와 건국대가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감염자가 실험실 대학원생 위주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국대 대학원생인 내게도 안부 전화가 온 것이다.


학교에 전염성이 예상되는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학교나 총학생회 등을 통해 소식을 빠르게 아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 터다. 왜냐하면 실제로 페렴이 발생한 동물생명과학대학은 주변 이동이 잦은 곳인 만큼 일찍 알아서 스스로 조심하는 게 초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오전에 동물생명과학대학 건물을 폐쇄했으나 그 이후에도 이렇다 할 공지가 없었기에 지인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교내에 발생한 질병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그날 점심때도 그 건물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이날 오후에는 문제가 되는 실험실에 연구용으로 받은 메르스 병원체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기에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괜한 불안감이 컸다. 실험실에서 평소와 같이 실험을 하고 있던 내게 교수님께서 지나가는 말투로, ‘동생대(동물생명과학대학)에서 메르스 연구 하는 교수님 계시지 않았나? 그거 아닌가 몰라 걱정이네~’라고 말했다. 이 얘기가 내 지도교수님뿐 아니라 다른 데에서도 나왔는지, 이런 소문은 근처 학우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퍼졌다.


이날 오전 11시에 동물생명과학대학을 폐쇄했는데, 모두들 질병에 대한 막연한 걱정을 농담으로 덜어내는 모습이었다. 제1교시부터 그곳에서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수업을 중단하고서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후배들도 우스갯소리로 ‘오늘 학교 결석한 친구들이 승리자에요~’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는 아파도 함께하자!’라며 희한한 우정을 다지는 모습도 보여줬다. 물론 나중에 확인된 바로 메르스 바이러스는 동물생명과학대학에 있긴 했으나 안전하게 확실히 밀봉된 채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메르스 사태로 인해 전염성 질병에 대해 불안감을 경험했고, 그래서 정보 전달의 속도와 정확성 등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 있는 시기이다. 그때 메르스 사태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또다시 경험한 늦은 정보 전달 체계는 아직도 질병 발생시의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보완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했다.


이런 느낌이 또 들었던 대목은 폐쇄된 건물의 개방 여부가 번복되었던 점이다. 건물을 소독한 이후에 다시 개방을 결정했다고 학교 측에서 교내 전체 구성원들한테 알림 문자를 돌렸으나, 11월10일인 지금도 역학조사로 인해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마도 학교 측과 역학조사를 하는 방역 당국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전히 원인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역학조사라는 게 원래 참 어려운 것이고, 초기에 건물 전체를 소독해서 원인조사 활동에서는 더 어려움이 생긴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래도 역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점들로 비춰 볼 때,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당장의 사태를 막는 데 급급한 것보다 앞으로 어떤 비상 상황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련 부처들 간에 제대로 된 역할 분담과 빠른 대처 훈련 등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역학조사에 대한 인원 배정도 더 많이 필요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고.


그리고 하나 더, 실험실 안전 관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실험실 사고가 났을 때, 내 주변 대학원생들 사이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충분히 가능하지’였다. 실험실마다 연구하는 분야가 다르지만, 대개 유독한 물질이 많은 곳인 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철저해야 하는 상황에서 ‘옛날 방식처럼 하던 대로 하자’라는 문화와 ‘빨리빨리’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지, 실험실 안전 관리는 제대로 나아지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대학 실험 시설에 대한 관리 소홀이 자주 지적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일도 생겼는데 이제라도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좀 더 체계적이고 확실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많은 구성원들이 느끼고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 실험실은 고위험성 미생물이나 기타 1등급 유해물질은 별로 다루지 않는데, 이날 따라 갑자기 실험실 구성원들이 모두 평소엔 잘 쓰지 않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도 수시로 갈아 끼는 모습을 보며 약간 실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런 모습들 중에는 나도 포함되었고. 평소에는 괜찮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갑자기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고나 할까?


00Labsafety1.jpg » "힘내라 건국". 생명과학 연구자들의 삶이 그렇지만,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수없이 실패를 하다 보면, 비슷한 종류의 실험을 아주 많이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계속 일상적으로 하는 실험이 익숙해지기 때문인지 위험성 있는 물질에 대해서도 그 경계심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이런 사건을 겪게 되면 다시 한 번 자신이 하고 있는 실험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증명하고 밝히고 싶은 실험에 집중하다가 ‘과정 역시 중요하고,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란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들었고 동시에 이런 위험성을 항상 인지하고 그런 데에 덜 노출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부단히 노력하면서 안전성을 염두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폐렴 사태 발생 이후 이제 어느덧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학교에는 ‘다시 한 번 파이팅’을 다지는 아주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학교의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현수막을 보며 학교 구성원들이 힘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 실제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미봉책보다는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말보다 행동이다. 이런 상황이 다시 또 일어나지 않도록 실험실 안전에 대한 여러 사항을 철저히 다지고, 혹시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이고 정확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학교 구성원으로서 커다란 현수막보다 훨씬 더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건국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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