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인지과학자 이정모 교수가 지난 몇 년 간 했던 대학 강의 자료와 최신의 연구 흐름들을 모아 ‘마음, 몸, 기술’에 관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전해준다.

[새연재] 테크놀로지 너희가 '마음, 몸, 이야기'를 아느냐?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1) -연재를 시작하며
     00thinking » 로뎅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

 

21세기 융합 테크놀로지를 여는 인지과학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었던 폴 크루그먼 교수이었다. 그런데 크루그먼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다른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항상 넓게 읽고 생각을 펼쳐오던 데이비드 브룩스이다.

 

그는 경제 문제를 넘어서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해 늘 혜안을 전개하여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던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다. 국내에는 <보보스는 파라다이스에 산다>라는 책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그가 2008년 5월에 뉴욕타임스의 칼럼에서 ‘지금의 시대는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가 아니라, 인지(cognition)의 시대’라고 천명하였다. 세계화 시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 변화의 진정한 핵심을 읽지 못한 채 표면적 측면만 본 정치가, 관료, 기업인들이 하는 잘못된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러한 ‘인지시대의 도래’라는 개념은 이후에 서구의 고등교육 정책 입안에 사용되었고, 유네스코(UNESCO)는 '미래사회의 특징은 인지사회이다'라고 규정하는 보고서를 내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경제가 종래의 경제에서 개념적 경제(Conceptual Economy)로 옮아가고 있음을 2004년에 논했으며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대니얼 핑크는 2006년에 <전혀 새로운 마음: 왜 미래는 우측뇌 사람들이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20여개 국어로 번역되고 최고경영자(CEO)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2003년에 미국과학재단(NSF)은 2년 여에 걸쳐 미국의 최상위급 과학기술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NBIC(나노-생명-정보-인지) 융합 미래 테크놀로지’라는 틀을 만들어 제시하다. 바로 이 틀의 출현 이래로 융합 과학, 융합 테크놀로지, 학문간 융합 등의 논의가 21세기에 전세계적으로 시작되었다.

 

 

 

농업, 산업, 정보화 시대 너머 '개념 시대, 인지 시대'

 

물질 중심의 과학기술주의에 물들어 온 우리 한국인들이 이런 융합 테크놀로지의 틀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 틀이 나노물리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미래 테크놀로지의 틀이지만 미래 테크놀로지의 목표는 신물질이나 신기계의 생성이나 인간 생명 장수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 융합 테크놀로지가 미래에 추구할 것은 신물질 창조나 장수이기보다는, 자연 현상 중에 가장 오묘하다고 볼 수 있는 인간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의 장면, 학교 장면, 직장의 일 장면, 예술적 행위 장면 등에서,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최적으로,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개발하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즉  ‘나노-생명-정보-인지(NBIC)’라는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의 목표는 위와 같은 삶의 여러 상황에서 인간 개개인의 활동 퍼포먼스를 증진하는 데 있는 것이다(enhancing human performance). 종래의 국내 기업에서나 대학 이과 계열에서 추구하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목표이다.

 

이런 새 틀에 따르면 21세기 테크놀로지의 화두는, 과거처럼 물질이나 기계에 대한 창조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 문제이다”라는 인간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대오각성인 것이다.

 

대니얼 핑크가 2006년 그의 책에서 ‘농경시대도, 산업시대도, 정보화시대도 지나갔으며 이제는 개념시대(Conceptual Age)’라고 주창한 이래로 세계 경제 화두가 ‘개념경제’ ‘개념산업’이 되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제는 인지의 시대’라고, 그리고 유네스코가 ‘미래사회는 인지사회 시대이다’라고 천명한 바가 서구에서 각종 인간 퍼포먼스 향상 테크놀로지들의 개발에서 반영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수렴적 연결, 융합이다. 미래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테크놀로지 추구 전략에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연결이라는 것이다. 미래의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 혁신을 모색하기 위하여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고 그러한 생각의, 개념적 전환의 원천은 인문학에서 온다는 것이다.

 

 

 

00stevejobs »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오른쪽)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회장 빌 게이츠. 출처/ commons.wikipedia.org, CC

  

 

애플의 성공에는 인지과학의 관점이 있다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창조하였으며 국내 기업은 갤럭시 등을 만들었지만, 국내 기업에서는 아이폰처럼 사람들의 생각의 틀, 삶의 틀을 온통 뒤바꾸어 놓는 개념적 변혁의 새 인공물을 만들거나, 아니 그러한 새 인공물을 통하여 인공물과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삶의 방식을 전면 재구성하는 그러한 큰일을 이루어 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한국 사회 전반에 아직까지도 팽배해 있는 물질 중심의 테크놀로지 관점, 하드 기계 중심의 고전적 과학기술 관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핑크나 브룩스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또 미래는 산업화시대도, 정보화시대도 지났고, 그를 넘어서 개념시대, 개념적 경제, 개념산업시대, 인지시대가 이미 도래하였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과학기술계나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또는 테크놀로지 개발의 일선에 있는 엔지니어들의 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개념은 아직도 산업화-정보화 시대를 혼합한 정도의 낡은 테크놀로지 개념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다시 올해 2010년 6월에 쓴 칼럼에서 왜 인문학이 테크놀로지에 필요한 가를 몇 가지 언급하고 있다. 그것을 인지과학자인 나의 생각을 첨가하여 재구성하고, 인간의 지능과 기계의 지능의 경계가 무너지는 ‘특이점이 온다’는 주장을 전개한 미래과학자 커즈와일의 생각과, 최근의 인지과학적 입장과를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고차적 생각, 언어, 기억, 그리고 각종 활동은 추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과거에 자신의 몸을 움직이어서(embodied) 활동한 감감-운동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다. 즉 몸 활동을 떠난 추상적 마음, 인지란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런 활동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인공물과(돌도끼, 휴대전화, 컴퓨터, 내비게이션과 같은 하드 인공물, 그리고 법, 경제, 교육 체제 등의 개념적, 소프트적 인공물) 더불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몸 활동 바탕에는 언어화하기 힘든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감성적, 정서적 측면이 늘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인지과학의 관점을 첨가하자면 인간 마음이 하는 기본 적 일이란 개인 나름대로의 이야기(내러티브)를 지어내고 또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든 상황들이 어떤 면에서 보아서는 일종의 이야기를 짓고 이해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이나, 휴대전화 사용하는 것이나, 직장에서 일 하는 것이나, 미래 기술을 생각하여 창출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나, 모두 일종의 이야기 짓기인 것이다. 우리는 평생 이야기 짓기를 하며 그 속에서 살고, 그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각종 인공물(휴대전화, 컴퓨터, 법 등)을 이용하는 삶의 밑바탕에 놓인 인간 마음의 역동적 측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이것을 테크놀로지와 연결할 수 있다. 몸 활동, 정서, 이야기 등이, 즉 인간 마음 작동의 본질이 미래 테크놀로지로 연결, 구현되는 것이다.

 

 

 

마음과 몸, 이야기, 그리고 융합

 

brain

휴대전화 등 인공물을 사용하는 인간 행위의 본질이 일종의 이야기 짓기이며 의미 구성임을 인정한다면 미래 테크놀로지가 인문학과 연결되지 않고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인공지능, 로보틱스, 뇌과학, 심리학, 철학, 언어학, 인류학 등을 연결하여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이루어 내는 연결고리 학문이 인지과학임을 안다면, 미래 과학과, 미래 테크놀로지 개발에서 인지과학의 연결이 필수가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학재단은 ‘NBIC 융합 틀’을 거론한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의 본질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의 과학기술계, 대학, 기업의 어떤 사람들은 미래 융합과학기술 틀의 이러한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NT, BT, IT만 거론하고 있지 그 융합틀(NBIC)의 네 번째 핵심 축인 CogT(인지과학기술) 등장이 미래에 지니는 중대한 의의를 놓치고 있다. 왜 우리는 아이폰 같은 변혁물을 창조해내지 못하고 있는가를 다른 데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연목구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인류의 삶의 방식, 미래 과학기술은 크게 변혁되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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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심리학·인지과학
인지심리학 전공. 교수 퇴임 전에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심리학사 등 강의했다. 저서로는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 <인지과학: 과거, 현재, 미래>, <인지심리학> 등이 있다.
이메일 : metap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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