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뇌영상과 정신의학"

현직 정신과 의사인 필자가 최근 뇌영상과 정신의학 연구의 성과를 아우르며 뇌영상에 바탕을 둔 정신질환 해설에 나선다. 정신질환에 대해 여전히 큰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고자 한다.

인간 같은 로봇, 로봇 같은 인간

[24] 섬뜩함의 계곡, 언캐니 밸리


00robot1.jpg » 로봇들의 다양한 얼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출처/ 주[1]


흘리개 시절이던 1984년, 우리 또래들의 관심사는 단연 당시 개봉한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 브이(V)>였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하며 주제가를 수도 없이 흥얼거리고, 놀이터의 정글짐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서 주인공 훈이처럼 날라차기를 하고, 태권 브이와 마징가제트가 붙으면 누가 이길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다.


[ 1984년에 개봉한 <로보트 태권 브이>, 그 주제가 ]


나름대로는 무거운 주제를 전하던 이 영화에서 중간중간 분위기를 반전시키던 주인공은 바로 ‘깡통로봇’이었다. 우리편이지만 조금 무섭게 생긴 태권 브이에 비해 주전자를 뒤집어 쓴 깡통로봇은 쉽게 친근함을 자아냈다. 덕분에 차가운 금속으로 이뤄진 로봇이란 존재에 대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호감을 갖게 되었다. 물론 깡통로봇은 실제 로봇이 아니라 인간인 철이가 아이언맨처럼 특수 제작한 철갑을 입은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해 겨울 영화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 극장에서 만난 또 다른 로봇은 조금 달랐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터미네이터>! 어렸던 내게 외국인 배우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헷갈렸고, 자막과 화면을 같이 보는 것이 어려워 중간중간 한 눈을 팔았기에 영화 내용은 많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은빛 금속 골격을 드러낸 채 새빨간 눈을 이글거리며 공격하던 로봇의 모습만은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머리 속에 오싹하게 남아 있었다.


[ 어린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터미네이터 1편의 마지막 전투 장면 ]


은 로봇이지만 왜 한 쪽은 친근하게, 다른 한 쪽은 오싹하게 다가왔을까? 만화와 영화 혹은 착한 주인공과 나쁜 주인공, 아니면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외형만 놓고 보면 깡통로봇보다 터미네이터가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까운데도 덜 친근하게 느껴졌던 점이다. 흔히 ‘닮으면 끌린다’고 하는데 로봇은 예외인 것일까? 2015년 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그려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보면서 오래 전 추억과 함께 질문도 같이 떠올랐다.



로봇에 대한 친밀도와 언캐니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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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 대한 친밀도와 관련해 많이 언급되는 개념으로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섬뜩함의 계곡’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용어는 1970년에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Mori Masahiro)가 처음 제안했다.[2] 일본어로 작성된 논문에서 로봇의 인간 유사성과 친밀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언급된 ‘부키미노타니(不気味の谷)’가 훗날 언캐니 밸리로 소개되었다. 일각에서는 ‘uncanny valley’ 대신 ‘valley of eeriness’가 ‘섬뜩함’을 반영하는 더 정확한 번역이라는 주장[3]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언캐니 밸리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인간은 자신을 닮은 것에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4] 따라서 로봇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로봇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로봇의 인간 유사성과 친밀도가 늘 정비례의 관계에 있지 않다.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로봇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호감은 갑자기 섬뜩함으로 바뀐다. 이후 로봇이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외형이 유사해지면 섬뜩함은 사라지고 친밀도는 인간 사이에서 느끼는 수준으로 다시 상승한다.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중간에 푹 패인 부분이 나타나는데, 모리는 이 곳을 언캐니 밸리라 부른 것이다.

00robot2.jpg » 로봇의 인간 유사성(가로축)과 친밀도(세로축)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중간에 친밀도가 급격히 하락하는 부분이 언캐니 밸리이다. 출처/ 주[2]

를 들어 올해 연말 일곱 번째 에피소드로 찾아올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했던 두 로봇을 떠올려 보자. 이들의 지능이나 성격을 떠나 외형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원통 모양의 몸에 바퀴로 이동하는 ‘아르투 디투(R2D2)’보다 인간의 모습을 지닌 채 두 발로 걷는 ‘시-스리피오(C-3PO)’에게 더 많은 호감을 갖는 편이다.[5]

00robot3.jpg »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요 등장 인물 중 하나인 C3PO와 R2D2. 출처/씨네 21

R2D2의 빨간 전구 같은 눈을 인간의 눈 모양으로 바꾸고, 딱딱한 금속 몸체에 부드러운 인간 피부색 재질을 부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외형이 인간과 더욱 유사해진만큼 호감 역시 올라갈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로봇에 대한 친밀도는 골짜기로 급속하게 추락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언캐니 밸리이다. 일본의 히로시 이시구로(Hiroshi Ishguro) 교수가 쌍둥이처럼 만든 로봇 ‘제미노이드(Geminoid)’를 보고 있노라면 호감 대신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00robot4.jpg » 이시구로 교수와 그가 만든 제미노이드 HI-1. 로봇의 이름은 쌍둥이 자리를 뜻하는 단어(gemini)와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뜻하는 단어(humanoid)의 합성어이며, HI는 이시구로 교수의 영문 이름(Hiroshi Ishiguro)의 첫 글자들에서 따온 것이다. 출처/ 주[6]

과학의 발달로 진정한 휴머노이드가 탄생하면 어떻게 될까?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지상 최대의 로봇>을 우라사와 나오키가 리메이크한 <플루토>의 주인공 ‘아톰’이 좋은 예일 수 있다.[7] 아톰은 인간과 너무나 유사해 경찰서의 경비원이 그를 로봇 전용이 아닌 인간 전용 통로로 안내하고, 인간과 로봇을 식별하는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킨다. 이처럼 로봇이 진짜 인간처럼 느껴지면 인간은 로봇에서 섬뜩함이 아닌 인간에서 느끼는 호감을 갖게 된다.



만화 영화에서, 언캐니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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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 밸리는 일본의 로봇공학자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는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들한테도 큰 관심의 대상이다.[8] 일본의 만화영화는 초당 7-8개의 정지 장면으로 이뤄지지만 미국의 만화영화는 초당 24개로 사실주의를 지향해 왔다. 이런 흐름 속에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을 더욱 실제 인간과 가깝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 언캐니 밸리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화영화를 제작하는 ‘픽사(Pixar)’가 1988년 선보였던 <틴 토이(Tin Toy)>란 단편 만화영화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같은 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오스카 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많은 관객은 정작 장난감을 괴롭히는 아기 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9] 빌리가 막무가내 폭군처럼 묘사되었던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진짜 인간처럼 제작된 주인공은 기대와 달리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다.


[ 귀여움을 자아내야 할 주인공 빌리는 비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


원인은 컴퓨터 그래픽의 특성상 등장 인물의 피부가 자연적인 질감을 잃어버리고 지나치게 매끈거렸기 때문이었다. 픽사가 1995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장편 컴퓨터 그래픽 만화영화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장난감 우디와 버즈로 삼은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3년 뒤 선보인 <벅스 라이프>에서도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곤충이었다. 픽사는 매끈한 피부를 가져도 어색하지 않은 장난감과 곤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디지털 영상의 결함을 우회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 그래픽 만화영화에 인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캐니 밸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2004년 같은 해에 개봉한 <폴라 익스프레스>와 <인크레더블>은 매우 대조되는 결과를 보여줬다.[10] <폴라 익스프레스>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들은 섬뜩하게 만들었다. 반면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신체 비율을 갖고 있던 <인크레더블>의 인물들은 오히려 관객들의 호감을 이끌어냈다. 자연스럽게 흥행 역시 <인크레더블>이 압도적이었다.

00robot5.jpg » 폴라 익스프레스와 인크레더블의 등장 인물. 인간 유사성과 친밀도가 꼭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출처/ 주[10]

후 언캐니 밸리의 극복을 위해 여러 첨단 기술이 영화 제작에 도입되었다.[8] 한 예로 직접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과 몸에 작은 표지자(marker)를 붙여 표정과 동작 자료를  수집하는 '모션 캡쳐(motion capture)'라는 기술이 있다. 하지만 배우의 눈동자에는 표지자를  부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화 영화 속 인간의 눈은 뻥 뚫린 구멍처럼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2007년 <베오 울프>에서는 안구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전류를 화면에 옮기는 안전도(眼電圖, electrooculogram; EOG)로 배우의 눈이 움직이는 양상을 포착해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를 유도했다. 또 2009년 <아바타>에서는 배우들의 얼굴에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해 표정 전체를 디지털화는 ‘이모션 캡쳐(emotiona capure)’를 이용해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어냈다.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영상 기술을 접하다 보면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제작해도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실사 영화도 곧 등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호주의 예술가 크리스 존스(Chris Jones)가 2014년 선보인 <미스터 헤드(Mr. Head)>. ]



언캐니 밸리를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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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같은 로봇, 실사 같은 컴퓨터 그래픽. 인공의 존재가 창조자 인간을 빠른 속도로 닮아가면서 언캐니 밸리 역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개념을 둘러싸고는 여전히 많은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일본어로 작성된 모리의 논문을 어떻게 번역할지도 논란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논문이 사실은 수필에 가까웠던 점이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는 애초에 존재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언캐니 밸리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미국의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 교수가 2004년 11월 인터넷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답은 ‘아니오’이다.[11]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만화 영화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가 여배우 ‘제니퍼 러브 휴잇’으로 서서히 바뀌는 6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호감도를 물었다. 결과는 모두 70-80퍼센트(%)로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 즉 언캐니 밸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00robot6.jpg » 한 형체를 점진적으로 다른 형체로 변화시키는, 일명 ‘모핑(morphing)’ 기술을 이용한 조사에서 호감도는 일정했다. 출처/ 주[11]

러나 10여 년 전 기술임을 감안해도 사진들이 조잡해 보이고, 변화의 폭이 너무 큰 느낌을 준다. 이 결과만 놓고 언캐니 밸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할 수 있다. 2006년 미국의 칼 맥도먼(Karl MacDorman) 교수가 위에서 소개한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시행한 다른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12] 로봇이 인간으로 바뀌는 11장의 사진에서 친밀도가 감소할 때 사람들이 섬뜩함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언캐니 밸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00robot7.jpg » 휴머노이드 ‘Qrio’(좌측)가 소설가 필립.K.딕의 인간형 로봇(가운데)을 거쳐 필립.K.딕 자신(우측)으로 서서히 바뀔 때 느끼는 친밀도(검은 실선)와 섬뜩함(빨간 점선)의 정도. 출처/ 주[12]

캐니 밸리의 존재에 대한 의견이 왜 엇갈리는 것일까? 로봇이 다양한 만큼 인간도 다양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맥도먼 교수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명확히 구분하는 종교적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 정서가 불안정하거나 불안 기질이 높은 사람들, 그리고 훼손된 신체 일부나 시체에 혐오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언캐니 밸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3] 이는 추후 관련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를 보다 세밀하게 살펴야 함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혹은 아직까지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캐니 밸리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를 고찰해 2015년 발표된 종설(review) 논문에 따르면, 기존의 여러 가설들은 일관성이 부족하거나 결론을 내리기에는 결과가 부족한 제한점을 지니고 있다.[14] 따라서 향후 비밀을 벗기기 위한 여러 추가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첨단 기술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정신과 영역에서도 자폐증 환아를 위한 로봇 치료[15]나 가상현실을 이용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프로그램[16] 등이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뇌영상으로 접근해 본 언캐니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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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로 발달하는 로봇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처럼 신경 과학 영역에서도 뇌영상학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두 첨단 기술이 서로 만나면 언캐니 밸리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를 이용해 인간을 닮은 로봇이 주는 섬뜩함을 뇌의 입장에서 살펴본 미국 아이스 사이진(Ayse Saygin) 교수의 2012년 연구 결과[17]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구에는 히로시 이시구로 교수가 실제 여성과 유사하게 제작한 인간형 로봇 ‘리플리 큐투(Repliee Q2)’가 사용되었다. 연구진은 이 로봇을 본 적이 없는 실험 참가자 20명에게 실제 여성, 인간형 로봇, 그리고 실리콘 피부를 뜯어내 금속 뼈대가 드러난 로봇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속 주인공들이 손을 흔들고, 고개를 가로젓고, 물을 마시고, 탁자를 닦는 등의 행동을 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참가자들의 뇌 사진이 촬영되었다.

00robot8.jpg »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뼈대를 드러낸 로봇(좌측), 인간형 로봇(가운데), 실제 인간(우측). 출처/ 주[17]

상 속 주인공들은 비교 분석을 위해 연구진이 만든 세 가지 조건이었다. 즉 뼈대를 드러낸 로봇은 기계 외형에 기계적 움직임, 인간형 로봇은 인간 외형에 기계적 움직임, 인간은 인간 외형에 인간적 움직임을 의미했다.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가 뼈대를 드러낸 로봇이나 실제 인간을 볼 때에 비해 인간형 로봇을 볼 때 동작의 지각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이 더욱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볼 때 움직임을 처리하는 뇌의 특정 회로가 활발하게 일하고 있었다.

00robot9.jpg » 뼈대를 드러낸 로봇(그림 A)이나 인간(그림 C)에 비해 인간형 로봇을 볼 때(그림 B) 뇌의 동작 지각 체계(action perception system; APS)가 더욱 활성화 함. 출처/ 주[17]

뇌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외형과 움직임이 주는 정보가 충돌하면서예측 오류(prediction error)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뇌의 입장에서 보면, 금방 전에 본 것이 인간이고 인간처럼 움직이면 괜찮다. 또 로봇으로 보인 것이 로봇처럼 움직이면 이 역시 문제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 보인 것이 인간처럼 움직일 것이란 기대를 무너뜨리면 뇌는 이렇게 말하며 분주해지는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봐. 너는 저게 인간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다른 영역은 이게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네. 음, 제대로 좀 살펴봐야겠는걸.”[18]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리 마사히로가 시대를 앞선 통찰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움직임이 더해지면 골짜기는 깊어지고, 마루는 높아지면서 언캐니 밸리의 경사가 더 가파르게 변한다고 그가 주장했기 때문이다.[2]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 오싹함을 느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일부 사람들만 즐기던 좀비 문화가 최근에는 저변을 넓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 것이다. 미래에 인간형 로봇이 흔해지면 우리의 지각 체계 역시 이에 맞게 재조정되어 섬뜩함 대신 호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00robot10.jpg » 멈춰 있을 때(실선)와 움직일 때(점선)의 언캐니 밸리. 각각의 최저점에 시체와 좀비가 위치함. 출처/ 주[2]



인간 같은 로봇, 로봇 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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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를 다시 만난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때였다. 착한 로봇으로 돌아온 터미네이터와 자유자재로 몸의 형체를 바꾸던 ’티-천(T-1000)’, 일명 ‘액체 로봇’이 선보인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2편의 또 다른 묘미는 로봇인 터미네이터가 차가운 기계의 성정(性情)을 벗어나 인간미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터미네이터가 “이젠 네가 왜 우는 지 알겠다.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이지만”이라고 말하며 존 코너를 위로할 때 그의 존재는 더 이상 로봇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왔다.


[ 인류가 멸망하는 심판의 날을 막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선택하는 인간적인 터미네이터 ]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은 ‘속편이 전편만 못하다’라는 영화계의 속설을 뒤집은 영화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전편의 규모를 뛰어넘는 화려한 장면들이 한몫했겠지만 그 사이로 인간 본성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일 수 있다. 서로 파괴하는 인간들과, 기계덩어리이지만 생명의 가치를 깨달은 로봇의 대비를 통해 인간됨을 정의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는 달리 1997년에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다. 물론 터미네이터 같은 최첨단 로봇도 주변에 없었다. 대신 이즈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고, 20 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인한 폐해 역시 심각해졌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악성 댓글, 일명 ‘악플’도 그 중 하나이다.


악성 댓글을 다는 ‘악플러’는 어떤 사람들일까? 캐나다 연구진이 2014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성격의 어두운 4요소(Dark Tetrad of personality)’가 두드러지는 사람들일 수 있다.[19] 구체적으로 자신만을 과도하게 사랑하고(자기애성 성격; narcissism), 권모술수에 능하며(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anism), 공감을 하지 못하고(사이코패스; psychopathy),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sadism; 가학증) 특성이 악플러에게 많이 나타난다.

00robot11.jpg » 인터넷에서 토론이나 대화를 주로 하는 사람들에 비해 악플러에서 성격의 어두운 4요소가 현저하게 높게 나타난다. 출처/ 주[19]

구의 추가 분석에서는 가학증이 악성 댓글을 통해 얻는 기쁨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악플러는 자신의 악성 댓글로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아파하는 모습을 즐거워하는 심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오프라인 세상과 달리 익명성에 바탕을 둔 온라인 세상은 악플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놀이터가 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던 악성 댓글은 30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었다. 참사를 교통 사고에 견주고, 사망자를 물고기 밥에 비유하고, 유가족의 단식을 희화하고, 이유 있는 집회를 떼쓰기로 몰아가는 댓글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마저 흔들렸다. 그 때 인간미를 잃은 악플러에게서 낯설지 않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언캐니 밸리였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 로봇에게서 느끼던.


물론 악플러도 나름 대로의 변명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수전 손택이 지적했던 것처럼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간접 전달되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20] 혹은 의도적 헛발질로 세월호 참사를 정치 진영의 문제로 만든 정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항변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어쩌면 언캐니 밸리는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인간미를 망각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의 경종이지 않을까?



로봇, 언캐니 밸리,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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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robot)이란 단어는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어원은 강제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당시만 해도 온전히 상상의 산물이었던 로봇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당장 의료 영역에서도 로봇 수술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을 닮은 로봇은 진행 중이다. 얼핏 보면 인간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느껴지는 언캐니 밸리 역시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히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로봇과 관련된 혹은 우리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일 수 있다. 로봇 개를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윤리적인지 아닌지가 논란이 되는데[22] 하물며 인간을 닮은 로봇은 더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로봇이 외형뿐 아니라 내면까지 점점 인간을 닮아간다면 고민의 폭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우리 인간은 과학 기술의 편리함에 함몰되어 인간미를 잃어가며 오히려 기계덩어리 로봇처럼 차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터미네이터가 이미 경고했던 것처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있다(It’s in your nature to destroy yourselves).”




[주]


[1] Mathur, M.B. and D.B. Reichling, Navigating a social world with robot partners: A quantitative cartography of the Uncanny Valley. Cognition, 2015. 146: p. 22-32.
[2] Mori, M., K.F. MacDorman, and N. Kageki, The uncanny valley. IEEE Robotics and Automation, 2012. 19(2): p. 98-100.

[3] http://www.livescience.com/20909-robotics-uncanny-valley-translation.html

[4] http://scienceon.hani.co.kr/192701

[5] http://www.wired.com/2011/11/pl_uncanny_valley/

[6] Bartneck, C., et al., My robotic doppelganger - a critical look at the Uncanny Valley theory. Proceedings of the 18th IEEE International Symposium on Robot and Human Interactive Communication, 2009: p. 269?76.

[7] Naoki, U., 플루토. 2006: 서울문화사.

[8] 진중권, 이미지 인문학 2. 2014: 천년의 상상.

[9]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hy-uncanny-valley-human-look-alikes-put-us-on-edge/

[10] Kaba, F., Hyper-Realistic Characters and the Existence of the Uncanny Valley in Animation Films. International Review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2013. 4(2): p. 188-95.

[11] Hanson, D., Expanding the aesthetic possibilities for humanoid robots. Proceedings of the 5th IEEE-RA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Humanoid Robots 2005.

[12] MacDorman, K.F., Subjective ratings of robot video clips for human likeness, familiarity, and eeriness: An exploration of the uncanny valley. ICCS/CogSci-2006 Long Symposium: Toward Social Mechanisms of Android Science, 2006: p. 26-9.

[13] MacDorman, K.F. and S.O. Entezari, Individual differences predict sensitivity to the uncanny valley. Interaction Studies, 2015. 16(2): p. 147-72.

[14] Katsyri, J., et al., A review of empirical evidence on different uncanny valley hypotheses: support for perceptual mismatch as one road to the valley of eeriness. Front Psychol, 2015. 6: p. 390.

[15] Ricks, D.J. and M.B. Colton, Trends and considerations in robot-assisted autism therapy. Proceedings -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s Automation 2010: p. 4354-59.

[16] McLay, R., et al., Effect of virtual reality PTSD treatment on mood and neurocognitive outcomes. Cyberpsychol Behav Soc Netw, 2014. 17(7): p. 439-46.

[17] Saygin, A.P., et al., The thing that should not be: predictive coding and the uncanny valley in perceiving human and humanoid robot actions. Soc Cogn Affect Neurosci, 2012. 7(4): p. 413-22.

[18] http://edition.cnn.com/2012/07/11/health/uncanny-valley-robots/

[19] Buckels, E.E., P.D. Trapnell, and D.L. Paulhus, Trolls just want to have fun.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2014. 67(97-102).

[20] Sontag, S.,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Farrar, Straus and Giroux.

[21] http://www.npr.org/2011/04/22/135634400/science-diction-the-origin-of-the-word-robot

[22] http://scienceon.hani.co.kr/243178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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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의사, 서울명병원 정신과 과장
우울하던 의과대학 시절에 운명처럼 찾아온 정신과학과 여전히 연애 중인 정신과 의사.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자 늘 고민한다.
이메일 : ir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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