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의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

평범한 직장의 샐러리맨인 전 차장이 어느날 난해한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배워보겠노라고 나섰다. 그를 돕기 위해 나선 물리학자의 친절한 강의가 시작된다.

[연재] "미적분을 알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샐러리맨 전 차장이 아인슈타인이 되기까지 (2)  

 

 

 Untitled-1

 

 

  내가 근무하는 고등과학원(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KIAS)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연구소로서 카이스트 서울 캠퍼스 안에 있다. 캠퍼스 오른편으로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있는 홍릉수목원과 벽을 맞대고 있고 왼편으로는 경희대학교와 경희의료원을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정문 길 건너에는 홍릉 초등학교가 있고 (대부분의 택시 기사분들에게는 고등과학원보다 홍릉 초등학교가 더 유명하다) 그 옆의 예쁜 샛길을 따라 조금만 발품을 팔면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이 조그만 공원 아래 자리 잡고 있다. 편도 2차선인 정문 앞 도로는 경희삼거리부터 홍릉수목원을 거쳐 고려대 지하철역까지 이어지며 그 길을 따라 K자가 들어가는 온갖 국가기관들이 몰려 있다. 이 길은 서울에서 걷고 싶은 길 랭킹 10위 안에 드는 길이다. 이 길을 호위하듯 양쪽으로 죽 늘어선 은행나무가 개나리보다 샛노란 그 잎을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10월 말~11월 초가 되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전자도서관길 » 정보화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 사진 오른편으로 아담한 길모퉁이 카페가 하나 있다.

  대학가 치고는 아기자기한 이 동네에도 숨겨진 맛집이 꽤 있다. 내가 즐겨 찾던 집 중에 경희의료원 주차장 바로 앞에 위치한 아바이 순대집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작고 허름해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데 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인심 푸근하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가 퍼다주는 순대국밥이 나의 주 메뉴였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고깃점과 순대, 이를 넉넉하게 품은 채소들, 그리고 주인장만 아는 비법으로 우려낸 듯한 육수가 서로 겉돌지 않아 비릿한 맛 하나 없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한동안 이 맛에 길들여진 탓에 나는 아직도 순대국 하면 이 집의 맛을 표준적인 맛으로 여기고 있다.

 

샐러리맨 전 차장과 처음 만났던 날 뒷풀이를 했던 그 순대집은 이름 있는 브랜드의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역시 맛은 우리 동네의 허름한 아바이 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아바이 순대가 문을 닫은 터라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래도 허기가 역시 최고의 반찬인지라 국밥이며 순대를 우걱우걱 삼켰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다 되던 때였다.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입에 순대를 물고 전 차장에게 이 말을 하면서 나는 ‘그러니까 어디 가서 우선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배워 오십시오’라는 말을 생략하고 있었다. 나는 전 차장도 내가 생략한 말을 똑같이 되뇌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잔에 남은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래요?”

 

약간 맥이 빠진 그의 이 말에 나는 내 예상이 맞았다는 승리감에 약간 우쭐해졌다. 그러나 그 승리감은 채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그럼 고등학교 수학부터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는 전 차장의 반격에,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쓴 소주가 그 자리에 딱 멈추는 듯했다. 아차, 이거 내가 뭔가 잘못 걸려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마치 기나긴 암산을 할 때처럼 머릿속 계산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허기를 찬 삼아 먹었던 순대국이 나의 표준에는 모자란다는 점까지 깨닫고서는 괜스레 그때까지 잘 먹던 순대며 국물을 물렸다.

 

전 차장, 나이 마흔의 이 사내가 내뱉는 말에서 농이나 거짓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야 하죠?”

 

“미적분 때문입니다.”

 

내가 이 답을 할 때는 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었다. 아니, 거의 기계적으로 미적분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 나갔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겠다는데, 미적분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그 방정식 자체가 2계 미분방정식인 것을. 아인슈타인 방정식으로 축약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뉴턴의 고전역학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적분은 필수적이다. 오죽하면 뉴턴이 미분법을 직접 만들어 냈을까.

 

미적분과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오갔던 당시의 내 머릿속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떠올릴 때의 내 머릿속 모습 »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떠올릴 때의 내 머릿속 모습.

 

왼쪽 아래편에 6자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듯한 수학 기호가 바로 미분 기호다. 화살표를 거꾸로 따라가 보면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좌변은 미분이 두 번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방정식은 2계 미분방정식이다). 물론 그 술자리에서 내가 전 차장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복잡한 위아래 첨자들을 나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관련된 온갖 정의와 산수들이 두루마리 화장지마냥 머릿속에서 둘둘 풀려 내려가자 마치 거기에 씻기기라도 한 듯 식도에 멈췄던 소주도 아래로 흘렀다. 이런 뒷풀이 자리에서도 물리공식을 떠올려야 하다니. 막혔던 술길이 뚫린 탓인지 다시 소주가 눈에 들어왔다. 그 병을 들고 빈 잔을 채우며 전 차장이 다시 물었다.

 

“미적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인슈타인 방정식 자체가 미분으로 정의되었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리 만무했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남은 잔을 들이키며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미적분을 알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호오, 그 정도인가요?”

 

이렇게 반문하는 전 차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눈빛의 변화는 절대 숨길 수가 없어서 누구라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법이다. 회심의 일타가 역시 효과는 있었나보다. 적어도 미적분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 같았다. 사실 미적분은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운다. 수학을 전혀 모른다는 전 차장도 20년쯤 전 고등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웠을 것이다. 인문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복잡하고 섬세한 미적분의 기교는 배우지 않아도 미적분의 기본 개념과 정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게도 충분히 가르쳤다. (지금은 어떠한지 나는 잘 모른다.)

 

물론 물리학을 제대로 배우려면 자연계 과정 미적분을 꼭 배워야 한다. 여기서는 삼각함수와 지수/로그함수의 미적분을 배우며, 합성함수 미분법, 부분적분법 등 실제 물리 계산에 필수적인 중무장 화기들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계를 졸업한 사람이 물리학을 배우려면 고등학교 수학의 자연계 과정을 반드시 익혀야만 한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려는 전 차장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내가 둔한 탓이 크겠지만) 제아무리 자연계 과정이라 한들 고등학교 때 배운 정도만으로는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일반물리학을 배우면서, 나의 경우 특히 회전운동에서의 회전관성(moment of inertia)을 계산하면서 미분과 적분의 참뜻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적어도 내가 그 순대집에서 샐러리맨 전 차장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미적분으로 가득 찼던 내 머릿속은 시간을 거슬러 일반물리학을 지나 다시 고등학교 수학 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물리학과를 다녔지만 대학 시절에는 ‘수요가 많은’ 수학 과외를 훨씬 많이 했던 까닭에, 고등학교 수학에 관한 한 나도 나름 일가견은 있었다. 그 시절 추억으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는 마치 수학 과외 받는 학생에게 일장 훈시하는 과외 선생마냥 전 차장의 호기심에 화답했다.

 

“그럼요.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의 목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적분을 배우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고등학교에서 입시 공부할 때는 수학이나 미적분이 그렇게 싫었는데…. 물론 그래서 지금 하나도 기억 안 나고요. 그런데 그걸 지금 다시 공부해야 된단 말이죠...?”

 

“네. 그래야 고전역학이든 상대성이론이든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든 적어도 기호라도 알아보죠. 수학 기호를 알아보는 정도만 돼도 답답함이 덜할 걸요? 그걸 떠나서 미적분을 제대로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2008년 9월말 전 차장을 처음 만났던 모임의 뒷풀이 » 2008년 9월 말 전 차장을 처음 만났던 모임의 뒤풀이.

  

확실히 여기서 전 차장은 ‘낚인 듯’ 보였다.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어지고 미적분이 화제의 중심에 올라버렸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수학 공부를 그만둔 지 거의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다시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하는 회의와 두려움과 미심쩍음이 간간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 심정을 낱낱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고등학교 수학. 특히 미적분에 관한 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을 과외지도하면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사고의 흐름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나름 터득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고등학교 수학의 교과 과정을 내 입맛에 맞게 약간은 재구성할 수가 있어서 내가 선호하는 논리구조에 따라 최적의 경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이 마흔의 이 열혈남아에게 미적분을 가르쳐서 터득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내심 확신했다. (내 자신감의 또 다른 근원은 나중에 다시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샐러리맨3_2

 

물론 그로부터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기계적으로 푸는 것은 큰 틀에서 보아 미분방정식을 푸는 것이니만큼 미적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계산법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수준에서만 보자면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적분을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내 말에 샐러리맨 전 차장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보고 싶어요 하는 소박한(?) 부탁이 금세 새로운 세상을 보여 달라는 비장한 염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푸는 것이 미적분을 터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이 많다. 하지만 전혀 수학을 모르는 샐러리맨이 과학을 수학으로 다시 접하는 데에는 미적분이 최대의 장벽임에 분명하다. 그것도 가장 먼저 넘어서야 할.

 

이제는 내가 그의 부탁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답을 줄 차례였다. 이 쉽지 않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는 낚싯밥에 전 차장이 낚인 것인지 나 자신이 낚인 것인지 도무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나의 최종적인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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