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실적생산 압력 낮춰야 혁신 나온다” -과학논문 분석

미국 사회학 연구진, 생물의학 출판물 수백만건 분석 논문

‘생산적 전통연구모험적 혁신연구 간엔 본질적 긴장”


00innovation.jpg » 출처 / pixabay.com (변형)


‘혁신적 연구는 모험적이지만 파급력은 크다.’ 과학정책에서 널리 알려진 이런 상식이 수백만 건의 과학 논문을 분석한 사회학 연구자들에 의해 다시 확인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제이콥 포스터(Jacob G. Foster) 등 사회학 연구진은 최근 1934-2008년에 발표된 생의학과 화학 출판물 수백 만 건의 인용 정보와 초록을 모은 학술 데이터베이스(MEDLINE)를 분석해, 그 결과를 <미국 사회학 리뷰(ASR)>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진은 두 가지 범주로 수백 만 건의 출판물을 분석했다. 이미 알려진 지식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생산적인 전통적 연구’와 이전에 없던 주제나 기존 지식들 간에 다리를 놓는 ‘모험적인 혁신적 연구’로 나누어 분석했으며, 연구성과에 대한 보상으로서 ‘인용’과 ‘수상’의 정보를 함께 살폈다. ‘과학자들이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데에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끼치는가’의 물음이 이들의 분석 연구에서 주된 주제가 되었다.


캘리포니아대학 보도자료를 보면, 연구진은 수백 만 건의 출판물들에서 일관된 패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60퍼센트 이상의 출판물이 혁신과는 달리 주로 전통에 어울리는 연구 주제를 다루었으며, 이처럼 기성의 물음에 답을 제공하는 연구들은 논문으로 출판될 기회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연구는 실적 생산에 유리해서, 과학자의 직업 경력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반면에 독창적인 질문을 던지며 전에 없던 새로운 지식의 연결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혁신적인 연구는 상당히 모험적이며 논문 출판이라는 실적 생산에는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혁신적인 연구는 논문 출판의 실패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더 많이 인용되며 훨씬 더 큰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노벨상 등의 수상자 연구 업적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들의 연구가 혁신적인 연구 쪽에 더 가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논문 저자가 보도자료에서 한 말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지식 연결망을 구축하는 출판 논문들은 드물지만 더 크게 보상을 받습니다. … 그러면 혁신보다 전통을 추구하려는 과학자들의 성향은 무엇으로 설명될까요? 우리가 찾은 증거는 간단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즉, 평균적으로 보아 혁신적 연구는 모험(risk)을 정당화할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그런 내기(gamble)와도 같다는 거죠. 과학의 보상을 쌓는 데에 혁신적 연구는 믿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점에서, 연구진은 과학연구 지원정책에서 혁신적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발췌한 일부이다.


“그렇지만 혁신을 자극하는 것은 과학정책에서 중요한 목표이며, 우리는 모험 감수를 촉진하기 위한 두 가지 정책적인 지렛대를 제안한다. 첫째는 직업안정성과 실적생산성의 연계를 풀라는 것이다. … 이런 정책은 경력관리 압박이 보수적인 행동에 강력한 동인이 된다는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 게이츠재단이 그런 것처럼 모험적인 프로젝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모험적 프로젝트의 장애물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적 생산에 중요한 전통적 연구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혁신적 연구 간에는 “본질적인 긴장(essential tension)”이 존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지식을 깊게 하는 연구와 미래를 개척하는 연구가 조화를 이루게 할 때 둘은 과학 발전에 서로 도움을 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본질적 긴장에서 균형 찾는 일은 구체적인 현실 정책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의 실적 생산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체제에서는 혁신이 자연스럽게 자라나기 어려움을 이 논문 저자들은 보여준다.


  ■ 논문 초록

어떤 요인들이 과학자의 연구 주제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가? 과학사와 과학사회학 분야의 정성적인 연구들은 이런 선택의 패턴이 생산적인 전통(productive tradition)과 모험적인 혁신(risky innovation) 간의 “본질적 긴장(essential tension)”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보여준다. 우리는 부르디외(Bourdieu)의 과학 장 이론을 통해서 이런 긴장을 검토하며 메드라인(MEDLINE)에 있는 수백 만 건의 생의학 논문 초록들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경험적인 방법으로 탐구한다.우리는 이 초록들에서 추출한 연결망(network)을 이용해 화학 지식이 전개되는 상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이런 연결망에 기반해 연구 전략의 유형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화학, 화학관계를 도입하거나(혁신), 또는 이미 알려진 것들을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다(전통). 과학자들은 기존의 지식 클러스터들을 공고화하거나(consolidate) 그것들 간에 새로 다리를 놓을(bridge) 수 있다. 출판물에 나타난 이런 전략들이 뭉쳐 있는 분포는 눈에 띄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위험이 큰 혁신 전략은 드문데, 이는 더 많은 초점이 기성 지식에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혁신적인 연구출판물은 보수적인 출판물에 비해서 큰 영향력을 획득하기가 더 쉽지만, 이에 부가되는 보상이 출판의 실패라는 위험을 벌충하지는 못한다. 생의학과 화학 분야의 수상자 업적을 살펴봄으로써, 엄청난 영향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드문 모험(gamble)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펴본 모험적 혁신의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음을 우리 연구는 보여준다. 이런 본질적 긴장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전통을 유지하는 제도적 효과(forces)를 보여주며 정책 개입을 통해 혁신을 불러일으켜야 함을 제시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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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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