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천문학자 마음에 별의 감성이 속삭인다"

'감성이 흐르는 우주 산책' 연재를 시작하며

 

 

 

 #1.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렇다.  

 

 서울에서도 변두리였던 1970년의 답십리. 내가 살던 집은 길고 좁은 골목길 중간쯤에 있었다. 주인집과 문을 따로 쓰는 그나마 독립된 전셋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로 앞집 옆집 친구들과 어울려서 그 골목길을 아지트 삼아 딱지치기나 소꿉장난 같은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해가 질 무렵 친구들이 하나 둘씩 엄마의 호출에 끌려들어가고 나면 나는 늘 혼자 남았다. 직장에 다니시던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까지는 늘 더 긴 시간이 지나야했다. 혼자 놀다가 지치면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그 긴 골목길 끝으로 달려가서는 우두커니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또 언제부턴가는 어둠이 아직 다 물들지 않았는데도 성급하게 자기 모습부터 드러내던 밝은 별 하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어둠이 밤하늘을 다 삼켜버렸는데도 그 별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어 등촌동으로 이사를 갔다. 새집 앞 넓은 골목을 벗어나면 낮은 산 위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혼자 남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곳에 앉아서 그 별을 찾곤 했다.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석기시대의 야성이 감춰져 있듯이 천문학자가 된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아마추어천문가의 감성이 속으로부터 속삭이고 있다. 그 별은 금성이었다.

 

 

#2.

 대학원 학생 때의 일이다.

 

 연구실로 초등학교 여학생 한명이 불쑥 들어왔다. 주위를 살피더니 다짜고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당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친절하게 교과서적인 증거들을 나열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해가 잘 되지 않으니 자신을 납득시켜 보라는 것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납득해서 오라는 것이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저렇게 이야기를 해도 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설득을 해도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꼬마 아이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해서 느끼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자신도 관념적으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황을 모면하자는 심정으로 다음날 다시 오면 천체망원경으로 달도 보여주고 별도 보여준다고 꾀어서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날 오후 늦게 그 여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반 친구를 여럿 데리고 왔다. 짜장면도 사주고 망원경을 통해서 달도 보여주고 둥근 지구 설명도 다시 해줬다. 여전히 고집스럽게도 이해했다고 인정하지 않던 그 학생을 대신해서 허풍선이 같아 보이던 어떤 친구가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고 이제야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천문학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로 ‘과학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우주은하

 

#3.

 1976년 7월 20일 우주탐사선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착륙했다.

 

 얼마 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 한분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창경궁 옆 과학관에서 공개 강연회가 열렸다. 그런데 통역을 맡았던 천문학 교수님께서 제대로 통역을 하지 못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강연장이 썰렁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때 조경철 박사님께서 구원투수로 나섰고 강연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조 박사님의 통역이 좀 이상했다. 영어는 한마디인데 통역은 서너마디를 하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조 박사님께 여쭤보니, 청중들을 위해서 말을 풀어서 설명하다보니 통역이 길어졌다는 것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큰 배려라고 생각했다. 조 박사님이 진행하시던 수업의 조교를 맡은 적이 있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강의는 언제나 즐거웠고 유쾌했다. 수업이 끝나면 예술적인 영어 필기체 글씨와 단아한 한글이 칠판 가득 남아 있었다. 지우기가 아까워 멈칫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4.

  석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천문석 교수님의 강의는 밋밋했지만 늘 진지했다. 한번은 내가 어떤 질문을 했는데 한참을 고민하시다가 모르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다음 수업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천 교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공부해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셨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간을 내리 강의하시던 홍승수 교수님도 잊을 수가 없다. 따라가기 정말 힘든 수업이었지만, 홍 교수님의 치밀함과 열정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단순 명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이영욱 교수님의 강연과 특유의 호소력과 상상력으로 청중을 빨아들이는 박석재 박사님의 대중 강연은 언제 들어도 놀라운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강의는 언제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SETI 연구소의 질 타터 박사님의 정감 있고 카리스마도 넘치는 강연은 늘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세스 쇼스탁 박사님의 스마트하고 위트 넘치는 강연은 언제나 세련미의 극치를 달렸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멋진 강의와 강연의 모습들이다. 나도 그런 강의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학생들과 또 대중들과 만나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것 하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그 분들의 열정과 마음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악몽 같은 강의와 강연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아마추어천문가들의 정기 모임이었는데, 그 날은 어느 천문학 교수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시간 내내 자신이 쓴 책 선전만 하시더니, 강연이 끝나자 그 교수님은 돌연 문을 막고 서서는 책을 사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꽤 값이 비싼 책이었다. 책을 사지 않고는 절대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옆 사람에게 빌려서라도 책을 사야만 했다. 책을 산 것을 확인하면서 한명씩 강의실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지방에서 온 한 친구는 이런 경황 속에 돌아가는 기차를 놓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말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이 아직 몇 분이나 남았는데도 자신이 강의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문을 걸어 잠그는 교수님도 있었다. 학생들은 잠긴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하지 않다가 방학이 시작되자 그 때서야 강의를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그냥 낭독하게 하는 그런 수업도 있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학생을 향해서 분필과 지우개를 집어 던지거나 껌을 씹고 있던 학생을 불러내서 머리에 껌을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던 교수님도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다른 관측 실습이 끝나고 도착하기 힘든 시간에 일부러 자신의 수업 시간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늘 지각생이 넘쳐났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막말을 퍼붓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교수님도 있었다. 대중 강연 중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청중 한 명을 쫒아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도 말없이 그 자리를 떴고 그 이후 다시는 그 분의 강연을 듣지 않았다.

 

 이런 무지막지한 행위들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반항하기 힘들었던 권위주의적인 시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강의 내용도 오래된 철지난 이야기들이었고 재미가 없었다. 교수님들의 고집만 보일 뿐 열정이 보이지 않았다. 멋진 강연을 따라할 능력은 없어도 이런 나쁜 강의를 답습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분들이 내겐 큰 영향을 미친 반면교사 스승이 되었다.

 

 

# 5.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안겨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정말 멋진 책이었다. 문학적 감성이 녹아 있는 한편의 서사시 같았다.

 

 영어 복사본으로 처음 만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어려웠지만 결국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이 듬뿍 담긴 책이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써서 책으로 내고 싶다는 욕망을 마음속에 만들게 했다. 우연히 찾아가게 된 고 라대일 박사님의 빈소에서 유족들로부터 그 분의 책을 한권 선물 받았다.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게임’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어려운 내용을 다정다감하게 자근자근 설명해 내려가는 고 라대일 박사님의 글쓰기 태도와 스타일에 매료되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글, 좋은 책들은 넘쳐나지만 이 책이야말로 ‘코스모스’나 ‘시간의 역사’ 보다 더 소중한, 내겐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글쓰기가 힘들어질 때면 이 낡은 책을 꺼내서 다시 읽어보면서 마음을 다시 잡곤 한다.

 

 

# 6.

  길게 썼지만 요점은 이렇다. 동감하고 배려하고 감성이 깃든 만남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의 강의, 강연, 그리고 글쓰기의 경험을 모두 이번 연재에 쏟아 넣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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