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와 다른 기법으로”, 상추·벼 등 식물 유전자 편집
김진수 서울대 교수 등,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논문
‘유전자 가위’ 복합체를 식물 세포에 넣어 표적유전자 기능 없애
“박테리아 이용 GMO와 달라, 규제사항서 벗어나”…46% 성공률
» 외래 유전자를 사용하는 지엠오 기법과는 달리, 외부의 단백질 복합체를 사용해 식물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새 기법이 발표됐다. 새 유전자 편집 기법으로 재배한 상추들. 출처/ 연구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강한 외래 유전자를 식물체에 집어넣어 식물의 유전 형질을 바꾸는 지엠오(GMO, 유전자변형 생물체) 개발 방식과는 달리, 외래 유전자를 쓰지 않고서 식물의 유전 형질을 바꾸는 새로운 기법이 제시됐다. 연구자들은 크리스퍼(CRISPR/Cas9), 즉 ‘유전자 가위’ 기법을 사용한 새 기술은 지엠오와 무관해 그 규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김진수 교수와 최성화 교수. 출처/ 연구팀 제공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체(게놈) 편집 분야에서 오랜 동안 연구해온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겸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최성화 서울대 교수 등 연구진은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낸 논문에서, 식물 외부에서 미리 만든 ‘유전자 가위’ 기능의 단백질 복합체를 상추, 벼, 담배, 애기장대의 세포 원형질체(protoplast, 세포벽이 제거된 식물세포)에 넣어 표적으로 삼은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는 실험을 벌였으며 성장한 식물체에서 46%가량의 성공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의 목적은 표적 유전자를 정확히 제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새 기법의 가능성과 효능성을 시연하려는 것이어서, 실험 결과에서 얻어진 변형 식물이 당장 실용적으로 유용한 품종인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방식이 기존의 지엠오 개발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설명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지엠오 방식: 지엠오를 개발하려면 먼저, 작물 품질을 높이거나 질병 또는 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외래 생물체의 유전자를 발굴한다. 그 외래 유전자를 아그로박테리움 투메파시엔스(Agrobacterium tumefaciens)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체에 삽입한다. 외래 유전자를 식물체의 유전체에 직접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식물체를 감염시키는 박테리아를 운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박테리아를 식물 세포에 감염시킨다. 감염된 식물체 세포는 박테리아의 디엔에이를 간직함으로써, 식물은 외래 유전자로 인해 새로운 형질을 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외래 유전자가 사용되고, 박테리아 디엔에이가 식물체에 남아서 후손으로 유전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형질 전환된 식물체는 지엠오로 분류돼, 안전성과 환경영향에 관한 엄격한 규제와 관리의 대상이 된다.
김진수 교수는 한겨레 사이언스온과 한 전화통화에서 “애초에 1%의 성공율만 나와도 의미 있는 연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공율이 46%나 돼 놀랐다”며 “앞으로 토마토, 바나나와 같은 다른 작물에서도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성·환경영향 논의는: 새 기법은 지엠오 규제 사항에서 벗어나는 다른 기법을 사용했지만 앞으로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는 뉴스 보도에서, 유럽위원회(EC)가 이미 유전자 가위 기법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지엠오와 달리 새 기법이 외래 유전자를 쓰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전자 가위 기법으로 만들어진 식물체를 지엠오로 분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뉴스는 또한 ‘박테리아를 이용한 유전자 변형’ 기법을 지엠오로 규정해 그 규제와 관리 대상으로 삼는 미국에서도 규정 개정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김진수 교수는 “기존 식물 육종과 마찬가지로 안전성의 문제는 없다”라며 “유전자 가위 기법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종자산업을 민주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법이 등장한 지 불과 몇 년만에 식물과 동물 개체 수준에서 실용화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유전자 가위 기법을 이용해 동물과 식물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들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엠오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유전자 편집 기법에 대한 안전성과 생명윤리, 환경영향 등 분야의 새로운 논의들도 점차 본격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
■ 아래는 김진수 교수와 한 전화통화 내용의 일부를 일문일답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번 연구 성과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종자산업을 민주화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스9 기술로 식물 종자의 유전자 변형을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니가요. 지엠오 기수로 질병 저항성, 스트레스 저항성을 갖춘 식물을 만드는 데에는 지엠오 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종자 하나 만드는 데에는 5-10년 걸리는 엄청난 평가 실험을 치러야 하고 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이 때문에 지엠오 종자 산업은 다국적 기업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지엠오 작물은 없지만 날마나 우리는 지엠오를 소비합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유전자 가위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연구를 세계의 여러 실험실들에서 시도했을 걸로 생각되는데, 어떤 요인 덕분에 가장 먼저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당연히 이런 주제의 실험 연구는 세계 여러 실험실들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연구진은 1997년부터, 오래 전부터 유전자 가위 기법에 관해 연구해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먼저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2014년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단백질 복합체를 외부에서 만들어 동물 세포에 넣는 기법을 발표했습니다. 식물 세포가 동물 세포보다 좀 더 어렵습니다.”
외래 유전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간편한, 그런 기법으로 여겨지는데 안전성과 관련해 새로운 논란은 없는지요.
“기존의 육종 방식에서도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을 사용해 무작위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무작위 돌연변이들 가운데에서 품질과 저항성이 우수한 것을 골라내는 방식을 쓰는데, 사실 이것도 방사선과 화학물질로 식물의 디엔에이를 무작위로 절단하고서 그것들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정확하게 표적으로 삼은 디엔에이만을 절단하니까 훨씬 더 정확한 방식입니다. 기존의 육종 방식이 규제 대상이 아니듯이 유전자 가위 방식도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손쉽게 형질 전환 식물체를 만들 수 있다면, 여기저기에서 전문연구자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도 새로운 식물체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이 또 확산한다면, 생태계의 유전자 교란이라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지….
“1980년대에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비슷한 우려들이 많았습니다만, 그 기술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는 없고 현재 그렇게 사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간편하다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기술은 아닙니다. 전문인력과 장비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쉽지는 않겠지만 아마추어 중에서 대단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면 아마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향을 내는 허브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런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식물의 원형질체를 다루고 이것을 식물체로 성장시키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게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 논문 초록
외래 DNA를 세포에 도입하지 않으면서 식물 유전체를 편집하는 기술은 유전자변형 식물에 관한 규제적인 우려사항을 완화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만든 순수 Cas9 단백질과 유도 RNA의 복합체를 애기장대, 담배, 상추, 벼와 같은 식물 원형질체에 집어넣었으며 재생된 식물체에서 표적으로 삼은 돌연변이 발생을 46%의 빈도로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 자연적 변이와 구별되지 않는 소규모의 유전자 첨삭만 있었고 이러한 변이는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수정] 논문 연구진의 지적에 의해, 논문 초록(번역) 중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지적에 감사 드립니다.
-2015년 10월22일 오후 1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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