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정보 사라질 땐 반드시 에너지 필요” 실험 입증

뉴스 해설 독일연구팀, 1비트 정보 지울 때 생기는 극미량 ‘한계열’ 측정

‘맥스웰 도깨비 패러독스’ 해결 평가도...물질-에너지-정보 연관성 주목




‘정보가 지워질 때에는 반드시 열이 생긴다’는 1961년 아이비엠(IBM)연구소 연구원 롤프 란다우어(Rolf Landauer)의 원리를 실험으로 확인했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이 실험은 정보와 열에너지는 무관하지 않고 서로 연계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열역학 제2법칙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물리학자 에릭 루츠(Eric Lutz) 연구팀은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 정보의 최소단위인 1비트의 정보가 삭제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는 실험장치를 만들고서 1비트 정보를 지우는 실험을 했더니 란다우어의 예측 대로 극미량의 열에너지가 방출되는 게 관찰됐다고 밝혔다. 란다우어는 이론적 계산을 통해 ‘어떠한 정보를 어떠한 방식으로 지우던 정보가 지워질 때에는 열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제시했으며, 1비트의 정보가 지워질 때에 ‘1조 분의 1’의 ‘10억 분의 3’ 줄(Joul)가량의 열에너지가 방출된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번 실험결과와 그 의미에 관해 이재원 중원대 교수가 뉴스 해설을 써서 보내왔다. -사이언스온



00Maxwell2그림 1 맥스웰 도깨비 파라독스. 출처/ Wikimedia Commons



래 된 컴퓨터의 냉각팬에서 나는 요란한 소음을 견뎌 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열이 안 나는 컴퓨터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어봤을 것이다. 1961년 아이비엠(IBM)연구소의 롤프 란다우어는 컴퓨터의 이런 발열문제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다가 재미있는 가설을 제시했다. 메모리에서 1 비트의 정보를 지울 때 일정량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 일정량만큼의 에너지(‘란다우어 한계’)를 써야 하며 그 에너지는 결국 열로 발생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란다우어의 원리”라 부르는데 오랜 세월 물리학자들을 괴롭힌 “맥스웰의 도깨비”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맥스웰의 도깨비 패러독스‘ 풀기, 140년


전자기학 연구로 유명한 19세기 물리학자 제임스 클락 맥스웰은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으로 미시세계에서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법칙을 깰 수 있는 패러독스를 제안했다.


위의 그림1과 같이 중간에 문이 있는 어떤 상자 안에 뜨거운 기체 입자들이 있고 그 입자들을 잘 볼 수 있는 가상적 존재 즉 “맥스웰의 도깨비”가 있다고 하자. 평균보다 빨리 움직이는 빨간색 입자들이 오른쪽으로 올 때에만 도깨비가 재빨리 그 문을 연다면 상자의 오른쪽은 왼쪽보다 점점 더 뜨거워지게 될 것이다. 즉, 처음에 무질서의 상태에서 점차 질서의 상태(뜨거운 쪽과 차가운 쪽의 구분)가 생기고 열역학 제2법칙을 깨는 상황이 돼 버린다. 또한 이런 바뀐 상태에서는 오른 쪽의 뜨거운 입자들이 왼쪽으로 팽창하면 거기에서 에너지를 끄집어 낼 수 있기에,  하나의 열원에서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2종 영구기관’이 돼버린다. 물론 현실세계에선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불가능의 확실한 이유가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란다우어와 같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양자암호의 발명자이기도 한 찰스 베넷은 1982년 란다우어 원리를 적용해서 맥스웰의 도깨비 문제를 풀었다. 입자가 상자의 왼쪽에 있을 때 0, 오른쪽에 있을 때 1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를 ‘정보의 지워짐’과 관련시킬 수 있다. 도깨비가 물리적인 존재라면 입자의 위치 정보를 저장한 도깨비의 메모리는 유한하므로 언젠간 메모리를 지워야 하고, 이 과정에서 란다우어의 원리에 의해 도깨비는 반드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므로 도깨비를 포함한 전체 계의 엔트로피는 늘어나고 열이 발생해야한다. 이 때  메모리를 지우는 데 들어간 에너지가 도깨비가 입자들을 골라내어 얻는 에너지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구기관은 불가능 하며 열역학 2법칙은 다시 한번 안전하게 지켜지게 된다.


2010년 일본 연구진들이 <네이처 피직스>에 최초의 맥스웰의 도깨비 실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맥스웰이 이런 제안을 한 지 약 140년만의 일이었다. 나노 크기의 회전계단을 전기장을 이용해 만든 뒤, 열평형 상태의 미세 입자들이 회전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게 했는데 입자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갈 때만 못 가게 막자, 결국 통계적으로 계단 위쪽으로 몰려 정보가 위치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였다. 이 실험에선 전기장을 조정하는 데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열역학 2법칙을 깬다고 할 수는 없다.



'엔트로피 증가' 열역학 2법칙 재확인


근에는 독일의 에릭 루츠(Eric Lutz)와 공동 연구원들이 란다우어 원리, 즉 정보를 지울 때 열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입증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일반적인 컴퓨터 칩에서 나오는 열은 주로 저항 때문에 생기는데 ‘란다우어 한계’보다 수천 배나 크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실험은 쉽지 않다. 이 작은 ‘한계’를 재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광학 핀셋’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그림과 같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유리구슬(붉은 공)을 물에 넣고 레이저를 쏘아 구슬이 W자 모양의 가상적인 그릇(‘이중 포텐셜 우물’)에 있는 것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00Landauer그림 2 란다우어 원리 실험 개요. 출처/ Nature


물이 담긴 용기를 움직여 이 유리구슬을 왼쪽이나 오른쪽 그릇 바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데, 카메라로 구슬을 봐서 왼쪽에 있을 때를 0, 오른쪽에 있을 때를 1이라고 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정보를 지우는 것은 구슬이 원래 어느 쪽에 있던 무조건 한 쪽으로 가게 하는 것에 대응되는데 이때 나오는 열은 너무 작아 직접 측정이 어렵다. 대신 흘러가는 구슬의 속도를 카메라로 관찰해 구슬과 물의 마찰로 열로 바뀌었을 에너지를 추정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서 측정해보니, 평균적으로 1비트의 정보를 지울 때 최소한 ‘란다우어 한계’만큼의 열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실험은 결국 엔트로피 증가법칙이 옳음을 보이고 맥스웰의 도깨비의 문제를 실험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에너지 연관성, 그리고 집적회로, 암흑에너지


이 연구는 컴퓨터공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실리콘 집적회로 소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져서 앞으로 20, 30년 안에 1비트당 내는 열이 란다우어의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물리적으로 그 이하로 열 발생을 줄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크기에선 양자효과도 중요한데 그 경우 어떤 다른 현상이 생길지도 관심사다.


또 다른 관심사는 정보와 에너지의 관계이다. 정보는 보통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이라 여겨지는데, 란다우어 원리는 정보와 에너지 사이의 신비한 연관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론의 유명한 공식인 E = m c 2 을 따르면, 에너지는 물질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정보와 물질 사이의 어떤 연관을 상상해 볼 수 있다. 2007년 나와 동료들은 우주를 가속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가 이 란다우어 원리와 관련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 적이 있다. 최근 이론물리학계나 양자정보학계에선 중력이나 양자역학이 본질적이지 않고 열역학이나 정보론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다는 가설들이 나오고 있다. 어쩌면 정보가 우주만물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일지도 모르겠다.




00LJW


 

■ 글쓴이

 

이재원 중원대 신재생에너지학과 교수
신재생에너지와 이론물리학을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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