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KAIST학생의 호소 “제발 우리말 수업도 해주세요”

독자가 보내온 편지


00KAIST_board2011년 5월 카이스트 교내에 마련된 자유게시판. 사진/ 이은지



영어강의 제도에 대한 카이스트 학생들의 불만과 여러 의견은 <사이언스온>의 대학생 필자인 이은지 님이 쓴 글(“카이스트 숨막히는 공부경쟁제도에 숨통 트이길”)에서 자세히 다뤄진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여러 학생들은 영어 강의가 나름의 장점을 지니며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융통성 없이 운용되는 영어 강의 제도에 대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영어와 우리말을 적절하게 병행하거나 영어 수업과 우리말 수업을 선택하게 하는 등의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영어 강의하는 교수들이 느끼는 전공 지식 바깥의 어학 능력 부담도 만만찮다("영어 강의하는 어느 물리학 교수의 하소연").


특히나 전공 분야의 지식을 공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학업에 뒤처지는 학생들이 영어 강의에 대해 느끼는 부담과 거부감은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카이스트의 한 학생이 사이언스온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카이스트에 입학했으나 단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학업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말 전공 수업을 들을 기회를 달라며 간절히 호소했다. 이 편지는 애초에 학생이 학과 교수진에 보낸 것이었다. 편지는 나중에 사이언스온에 도착했다. 사이언스온은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하는 융통성 있는 강의 정책이 마련되기를 이 학생과 함께 간절히 바란다. 실명을 밝힌 부분만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학생이 전해준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편지 주신 분, 부디 힘을 잃지 마시라고 사이언스온이 응원합니다. -사이언스온







[전공 교수진에 보낸 학생 편지 전문]





00kaist녕하세요~

○○○○과 ○○학번 ○○○입니다.


수업에 대해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메일 보냅니다.


이번에 복학을 하는 학생입니다.


군대를 2년 간 다녀 왔고,

6개월 간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영어 실력이 몹시 안 좋아서 영어 수업과 영어 교재로 진도를 나가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능이 6등급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 전체 평균보다 못한 영어 실력입니다.)


그리고 화학경시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어로 된 화학교재는 대략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수학은 처음 접해 보아서 영어로 보면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5학기를 KAIST를 다녔습니다.

 

 

워낙 기초가 없다보니, 당연히 몰입식 영어 교육을 2년 반 동안 받아도 영어 실력도 제자리였습니다.
카이스트 어학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수업에 1번 참여하고
영어마을에도 참가하고
영어 클리닉에도 교수님을 찾아가서 대화를 했지만,

이 수업들 또한 영어 몰입식 수업일 뿐이어서 영어 교재를 읽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본적인 독해 실력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단어 실력이 굉장히 부족했고요.)


그런데, 정말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까지 한국 수업으로 수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해가 잘 안 된 적이 없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전공 수업을 한글로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구요.

 

과연, 한국말로 수학수업을 한 번 듣고 싶었는데,
07학번부터 모든 전공을 영어로 들어야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해석학, 선형대수학조차도 한국말로 수업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가 수학을 계속할 수 있을지 굉장히 궁금한데,
아무도 수학을 알아듣게 가르쳐주지 않으니, 수학과로 계속 갈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합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테스트 한다는 심정으로 현대대수학을 신청했습니다.
현대대수학 두 개의 강의가 있는데, 한 강의를 한국어로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한번만 한국어 수학수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수학과에서 수학을 가르쳐야지, 왜 못 알아듣는 영어로만 수업하는 것입니까?


6개월간 공부해서 영어를 대략 알아들을 수 있겠지만,
아직도 불안합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을 수업하니, 제발 한 강의는 한글로 열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왜 한국 사람에게 못 알아듣는 영어로 수업합니까?


제가 학교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식은 아닙니다.
같은 과목이 두 개라면 한글강의와 영어강의를 나눠서 열어주시면,
학생입장에서 한글을 선호하면 한글강의를 들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해석학1처럼요!)
수업을 다양화해서 학생이 수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강의하면 교수님도 강의를 잘 못한다는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듣는 사람도 영어로 들으면 내가 잘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갑니다.
이 두가지 작용으로 볼때, 영어수업은 굉장히 수업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학교 정책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정책이 그러니 바꿀수가 없다라고 교수님께서는 대부분 말씀하시는데,
잘못된 정책은 바꾸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교수님들은 정해진 대로만 따라 가십니까?


지금까지 학교정책에 5년간 이렇게 피해를 보고, 자살까지도 생각했던 학생입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군대를 가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면, 아마 1호 학생이 되었겠지요.....
그러면 4명의 학생은 학교 정책이 바뀌어서 자살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학교 들어올 때만 해도 입학장학생에, 화학 1학년 1학기 중간, 물리1학년 2학기 기말은 전체 단독 1등이었습니다.)


다시 KAIST로 돌아오니 교수님께 한번 수업에 대한 건의를 해서
꼭 한국말로 수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학과장이신 ○○○ 교수님,
제 지도교수님이신 ○○○ 교수님,
이번에 해석학1을 한글과 영어로 수업하시는
○○○ 교수님, ○○○ 교수님
이번에 현대대수학 강의하시는
○○○ 교수님, ○○○ 교수님께
메일 보냅니다~


학생의 의견을 수업에 반영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한 적이 없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서,
이런 말을 해 봤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교수님이나 학교에 이야기는 하지 않고,
바보들처럼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만,
교수님들께 한번 수업에 대해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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