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힉스·중성미자 정체 밝혀라" 새해 커지는 기대감

CERN 실험서 '힉스 흔적'...존재 확인 낙관 분위기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속력 검증 나선 새실험 주목


HiggsDecay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양성자들이 고에너지 상태로 충돌할 때 찰나에 생성되는 힉스 입자가 곧바로 다른 입자들로 붕괴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제공



해는 우주 물질의 근원에 한 걸음 다가서는 물리학의 해가 될까?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인 힉스 입자와 중성미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구촌 과학 뉴스의 주요한 열쇠말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지니게 되었는지 밝혀줄 힉스 입자가 실제 존재하는지가 올해 안에 최종 확인될 것으로 여러 물리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힉스 입자의 발견 가능성은 이미 지난해 말 예고됐다. 지난 12월 스위스 제네바 부근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힉스 검출실험을 벌이는 입자물리학자들은 “양성자 충돌 때 생기는 고에너지 신호에서 힉스의 존재를 보여주는 흔적을 관찰했다”며 힉스 발견이 임박했다는 낙관의 분위기를 전했다. 힉스 입자는 흔히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데, 1960년대 물리학 표준모형에서 이론적으로 제시된 입자로 아직 발견되진 않았다.


이 실험에 참여한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CMS실험 한국책임자)는 “곧 가속기를 다시 가동하면 양성자 충돌 실험은 9·10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라며 “지금보다 데이터가 3~4배가량이 더 쌓일 수 있어 표준모형의 힉스 존재 여부가 어떤 식으로건 판가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도전하는 중성미자(뉴트리노)가 과연 빛보다 더 빠른지 다시 검증하는 새로운 실험들도 시작된다. 국제 중성미자 실험그룹인 오페라(OPERA)에 참여한 경상대 윤천실 박사는 “올해에 더 향상된 검출기와 분석방법을 써서 재실험을 할 예정”이라며 “현재 방식과 시기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미국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중성미자 연구프로그램인 미노스(MINOS)도 비슷한 중성미자 실험에 나설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 윤 박사는 “다른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가 중요하기에 미노스 실험은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지난해 오페라 연구팀은 3년 동안 세른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 빔이 730㎞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의 검출장치에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해보니 중성미자가 빛보다 대략 5만 분의 1(57.8 나노초) 더 빠르다는 증거를 얻었다고 밝혔으며, 이에 실험 오차 가능성이 일부 제기되자 보완실험을 벌여 11월에 정식 논문을 발표했다. 박성찬 전남대 교수는 “만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최종 확인되면 이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두 축으로 하는 현대 물리학의 이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


우주 물질의 23%를 차지하지만 정체가 오리무중인 암흑물질에 관해 의미 있는 실험결과가 발표될지도 관심거리다. 손동철 경북대 교수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율을 측정함으로써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여러 실험들이 이미 우주 공간에서 진행 중인데 올해에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00gransasso이탈리아 그란사소 국립연구소의 지하실험실에 갖춰진 중성미자 검출 장치. 오페라(OPERA), 윤천실 박사 제공




■ 일문일답으로 풀어보는 힉스 입자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 힉스의 발견이 임박했다는 떠들썩한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만 물리학의 난해한 이론에서 예측된 힉스 입자의 존재는 일반인한테 여전히 아리송하다. 힉스 입자가 왜 주목받는지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 일문일답은 앞서 사이언스온에 실은 글인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다? 힉스 궁금증 일문일답"에다 다른 연구자들의 도움말을 더 보태고 더 다듬어서 <한겨레> 기사용으로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도움말 주신 분: 입자물리학자 박성찬(전남대)·박인규(서울시립대)·손동철(경북대) 교수




힉스 입자가 곧 발견될 것이라고 떠들썩한데 그리 중요한 물질입니까?


“빛은 질량 없이 광속으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다른 입자들은 질량을 지니고 광속보다 느리게 날아갑니다. 우주에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그걸 설명해주는 단서가 힉스 입자입니다. 우주 만물의 기본 힘과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물리학 표준모형으로 보면, 기본입자들이 서로 다른 질량과 속력을 지니게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다보면 어떤 입자의 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힉스인 거죠. 힉스는 표준모형이 예측하고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유일한 입자라, 힉스의 발견은 곧 표준모형의 완성을 의미하는 대단한 성취입니다.”



힉스는 우주 태초에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 지금은 사라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주 만물이 질량을 지니는 것은 힉스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모두 힉스 입자가 채워져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가 원자핵 둘레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도 전자에 질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힉스가 없다면 우주는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진공이라 해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사실 힉스 입자로 채워진 공간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왜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나요?


“힉스 입자는 초고온·초고압 상태에서만 관측됩니다. 거대 가속기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양성자를 가속하다가 서로 충돌시킬 때 아주 작은 공간에 초고온·초고압 상태가 일순간 만들어지는데 이때 힉스 입자의 흔적이 검출장치에 남는 것이죠. 그런 흔적을 추적해 힉스 존재를 찾아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실험이 이뤄져왔습니다.”



00higgsuniverse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라고들 말하는데, 대체 무슨 뜻이죠?


“힉스 입자가 채워진 장을 힉스장이라고 말합니다. 전기장, 자기장을 생각하면 힉스장이란 말도 조금 이해할 수 있잖을까요? 흔히 힉스장은 물이 가득찬 상태로 비유됩니다. 힉스 입자의 바다라고 생각해보죠. 그 바다에서 헤엄치는 어떤 입자는 저항을 많이 받고 어떤 입자는 저항을 덜 받습니다. 큰 저항을 받는 입자가 질량이 큰 것이고 작은 저항을 받는 입자가 가벼운 것입니다. 빛은 저항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질량이 없고 광속으로 날지요. 다시 말해 힉스장과 다른 입자의 상호작용 때문에 입자에 질량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부여한다’는 건 ‘상호작용한다’는 뜻이군요.


“네, 질량은 기본입자들이 힉스장과 상호작용해 생겨난다고 이해됩니다.”



물리학 표준모형은 기본 입자들(17가지)의 상호작용을 탐구해 우주의 근원을 밝히려는 지식체계로군요.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우주대폭발(빅뱅) 직후에 질량이 생긴 과정은 어떻게 설명되나요?


“우주대폭발 직후는 엄청난 초고온·초고압 상태였습니다. 그때엔 질량을 지닌 입자들이 없었습니다. 기본입자들은 모두 똑같이 질량을 지니지 않은 채 동등했다고 믿어지지요. 그런데 우주가 식으면서 이런 대칭성이 깨졌습니다. 빛은 여전히 질량 없이 광속으로 날지만, 이제 다른 입자들은 저마다 다른 질량을 얻고 광속보다 느리게 날았습니다. 이런 대칭성 깨짐은 곧 힉스장의 작용을 뜻합니다. 즉 우리 우주에 힉스장이 작용하면서, 애초 하나였던 힘인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은 나뉘고 입자들은 저마다 다른 질량을 얻었습니다.”



힉스가 발견된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잖습니까?


“당장 무엇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힉스장의 존재가 증명되는 셈이고, 그러면 질량이라는 것이 결국 힉스장과 다른 입자의 상호작용으로 생긴다는 이론이 입증됩니다. 물리학은 큰 진전을 이루고 우주 물질과 힘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지겠지요. 또한 힉스 입자의 속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변화도 이어질 것입니다. 기초과학은 장기적으로 인간 문명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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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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