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산타의 과학?

00santa출처/ www.phyorg.com



등학교 1년생 딸아이가 어느날 둘만 타고가던 차 안에서 뜬금없이 무슨 비밀 이야기나 하려는 듯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사실 말이지...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는 없는 거지이~. 나도 다 알아. 지구에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물을 어떻게 하나씩 다 갖다줘? 아빠엄마들 선물이지? 학교 친구들도 산타 같은 건 없대.’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언젠가 겪는 일일 게다. 금방 "사실은 그래"라고 바로 답할 수도 없고 해서 생각하다가, 일단 끝까지 시치미를 떼보고 딸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 카드도 받았잖아? 그때 생각 안 나? 네가 얼마나 좋아했냐?” 딸은 순간적으로 옛 기억의 시간으로 돌아갔는지 더 이상 반박을 하진 않고서 조용해졌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산타 클로스를 소재로 다룬 만화영화를 영화관에서 딸과 함께 봤다. 영화에선 산타가 무수히 많은 요정들과 함께 세상 사람들에 결코 들키지 않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거대 스텔스 비행기를 타고서 엄청난 속도로 지구촌을 누비며 하룻밤 몇 시간 동안에 모든 어린이들한테 선물을 다 전달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산타가 어떻게 지구 어린이한테 하룻밤 새 선물을 다 줄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의심에 답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난 뒤에 딸아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저렇게 선물을 나눠주는구나”라며 믿는 듯 안 믿는 듯한 표정으로 일단 산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산타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사실 성탄절 즈음에 널리 퍼지는 절반 우스갯소리인 이야기 중에는 산타가 존재할 수 없음을 과학적으로 계산해서 증명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24일  어린이가 잠자리에 드는 늦은 밤부터 25일 어린이가 눈을 뜨는 일출 때까지 선물 배달을 완료하려면, 산타한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 뿐이다. 그 시간 안에 지구의 모든 '착한 어린이'한테 다 선물을 나눠준다고 했을 때, 이를 계산해보면 산타의 썰매는 1초당 1046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날아야 하는데 이는 음속보다 수천 배나 빠르기에 산타와 루돌프 사슴들은 공기 저항 때문에 타버리고 말 것이라는…, 고로 ‘산타는 없다!’는 이야기다. 산타가 세상의 모든 착한 어린이들한테 선물을 주기 위해서 썰매에 싣고 날라야 하는 선물 짐의 무게는 어림계산 했을 때에, 산타의 몸무게는 빼고, 대략 35만3440톤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 결과도 있다.


‘과학적 계산’임을 강조하는 이런 식의 이야기에는 여러 버전들이 있고 저마다 온라인을 타고서 널리 읽힌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누구나 어디선가 한번 쯤은 들어본 듯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함께 즐기자며 전해지는 우스갯소리이다. 누가 산타의 부존재를 증명하고자 심각하게 정색을 하고서 핏대 세우며 ‘산타는 없다’고 소리치려 하겠는가? 또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들의 배경에는 달콤한 꿈을 잃어버린 다 큰 어른의 마음이 토해내는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을 수도 있겠다. 최근에는 외국의 어느 방송사 앵커가 방송 중에 산타는 없다는 교육을 자녀에게 일찌감치 해야 한다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는 다음날 사과성 방송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니, 이런 '산타 없음'를 확인하는 데 대한 상실감과 거부감은 꽤나 큰 모양이다.


미롭게도, 산타의 상상을 깨는 이야기에 반론을 펴는 이들 중에는 과학자들도 있다. 인터넷 웹에서 찾아보니, 몇 해 전에 외국의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는 교수와 연구자 네 명이 “산타는 존재한다”며 그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들을 천연덕스러운 진지한 자세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이야기는 다시 과학 뉴스 사이트에도 "산타 클로스의 물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문헌에 따르면 산타는 불이 붙어 있는 굴뚝도 타고 내려온다고 하니, 아마도 산타한테는 이온 보호막(ion-shield)이 있는 게 틀림없고, 그래서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더라도 산타는 공기 저항으로 불타지 않을 것이다.” “산타는 4차원으로 비행하는 게 아니다. 산타는 11차원을 활용할 수 있으며 11차원에서는 산타의 북극 창고에서 선물을 집어오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산타가 어떤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인줄 어떻게 일일이 아느냐고? 어린이들이 쓰고 있는 겨울 모자들은 사실 어린이의 뇌 활동을 읽을 수 있고, 그렇게 측정된 정보는 첨단 안테나 시스템 구실을 하는 루돌프의 뿔로 전송된다.” "사슴들이 날 수 있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공룡을 보라. 공룡은 깃털을 발달시켜 이제는 새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을 나는 사슴이 있다는 게 엄청난 모순인 것은 아니다." "산타는 진공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썰매와 사슴은 중력 작용에 대해 척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날 수 있다" 등등…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유쾌한 이야기들에 애교까지 느껴지며 우후후훗 웃음이 절로 난다.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무엇이 사실이냐' 따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누구나 알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그저 “우리는 꿈이 사실이 아니어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독자들도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심정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에는 노스캐롤리나 주립 대학의 한 교수(기계항공우주공학과)도 자신의 블로그에 "어린이 여러분, 하룻밤에 세계 각지에 있는 모두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너무 믿지 마세요"라며 산타의 최첨단 선물 배달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과학과 기술의 원리를 동원해 설명하는 글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산타가 하룻밤 새에 세계 어린이들한테 선물을 배달할 수 있는 비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대성이론에 대해 고등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산타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릴 수 있고 공간이 오렌지처럼 압축할 수 있고 빛은 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지상에서는 불과 몇 분인 시간을 몇 달처럼 이용해서 선물을 배달할 수 있다. 선물들은 사실 눈 깜박할 사이에 배달된다."


웃자고 하는 천연덕스럽고 유쾌한 산타 우스개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 하나. 과학으로 농담을 구성하고 이를 즐기는 여유, 그런 상상력이 해마다 이맘 때에 등장하는 산타의 물리학 이야기에 밑자락으로 깔려 있다는, 그런 과학문화에서 그런 우스개가 생겨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 님 모두에게 풍성하고 여유 있는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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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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