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삼성노동자 산재 밝히려 ‘반도체 열공하는 의사’

과학과 사회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공진화해가는 존재다. 과학과 관련한 이슈들이 증가하면서 과학과 사회의 소통은 사회 진보를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최근 들어 과학과 사회는 유리된 상태에서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구성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펼쳐지는 참여 형태의 과학과 사회 소통 현장을 8차례에 걸쳐 찾아가본다

노동자 근무환경 등 증언 통해 진실 밝힐 과학 통역인 필요

“객관·중립성만 강조하는 정부 이제라도 피해자 편 섰으면”



공유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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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공유정옥(37·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씨는 산업보건전문의다. 그는 지난주 32만원을 내고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하루 8시간씩 사흘 동안 반도체 공정 교육을 받았다. 의사인 공유씨가 반도체 교육을 받은 이유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증언을 좀더 잘 통역하기 위해서”이다.


공유씨는 지난 6월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 재판정에서 진창수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재판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지거나 투병중인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청구’ 소송이었다. 재판장은 소를 제기한 5명 가운데 황유미(2007년 사망 당시 23살)씨 등 2명은 백혈병 발병과 근무여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급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황유미씨 사망 이후 반도체 공정라인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증언들을 모아 진실의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어느 것이 주춧돌이고 어느 것이 서까래인지 알 수가 없었죠. 전문가분들이 하나둘 참여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했죠. 판사가 황씨 등의 백혈병이 업무 때문에 발병했을 수 있다는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걸 들으니 그동안 밤새워 진실의 집짓기를 하던 숱한 날들이 스쳐지나가 눈물이 났어요.”


semiconductor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지나가던 지난 8일 공유씨를 서울 구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승인 신청과 소송에서 노동자와 전문가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들어봤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이 직업병일 수 있다는 판단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7년 3월 황씨 사망 뒤 삼성 쪽은 산업보건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황씨가 직업병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했던 2명의 노동자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병으로 숨진 것만으로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사실의 실체를 밝혀줄 증거가 필요했다.”



-어떻게 증거를 찾아냈나?


“황씨 등은 반도체 공장에서 디퓨전 및 세척 공정을 담당했다. 불산이나 이온화수, 과산화수소 등 혼합액에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수작업으로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웨이퍼에 입힌 막질을 씻어내는 이른바 ‘퐁당퐁당’ 작업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다룬 물질이나 작업 환경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지 못한다. 이들의 증언은 전문가들에 의한 통역이 필요했다. 어느 노동자에게 방사선을 썼느냐고 물으면 ‘방사선은 안 썼고 엑스레이는 썼어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가운데 엑스아르에프(XRF) 썼다고 말했을 때 그 증언을 들은 사람이 엑스아르에프가 엑스레이를 쬐어 물질 성분을 분석하는 방사선 조사기구라는 것을 몰랐다면 노동자들이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사실은 묻혀버렸을 것이다.”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직업병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에 타당성은 없었나? 최근 산업안전 컨설팅 전문회사인 ‘인바이런’이 반도체 노동자들의 발암물질 노출 정도와 백혈병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는데.


“처음 전문가들은 반도체 백혈병 증례가 없고 역학연구 결과도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20년 전 이미 미국 반도체 회사 아이비엠(IBM)에서 암환자 노동자 200명이 소송을 벌인 사실이 있다. 아이비엠은 노동자 3만명의 사망 원인을 분석해 백혈병 등 몇 개 암이 일반인보다 높게 나왔다는 한 전문가의 논문 발표를 2년여 지연시키기도 했다. 그 사이 아이비엠 쪽 연구자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어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먼저 발표했다. 인바이런의 경우도 똑같은 길을 가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인바이런 쪽은 ‘과학적이고 국제적으로 공인된’이라는 수식어만 반복할 뿐 발표 근거가 되는 자료는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관련기관에도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정부는 산업보건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적어도 피해집단 편에 서야 한다. 가령 노동부는 노동자 편,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재 피해자 편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겪어보니 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학의 중립성·객관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에 착수할 때 자료를 모두 제공한 뒤 점검회의 때 참석시켜 달라 했더니 그리하면 회사 쪽에서도 오겠다고 해 논쟁에 휘말릴 것이라며 거절했다. 결국 산보연의 개별역학조사 결과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제출됐지만 불승인이 나왔다. 보고서와 회의록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개인정보와 회사 영업비밀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래서 행정소송으로 간 것이다.”



-반올림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가들은 어떻게 활동하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등 대학에 계시는 산업보건 전공 교수 몇 분과 변호사, 노무사 등 10여분이 참여하고 있다. 소송 등 피해자 일을 돕는 한편 다달이 한번씩 공부모임을 가져 논문까지 내보려 한다. 청부과학자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항전문가가 많아져야 한다. 전문가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증언 채집이다. 지난 재판에서 패소한 3명도 증언이 부족해서 졌다. 산업재해 활동에는 투사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암으로 돌아가신 뒤 생전에 좀더 다그쳐 증언을 받아둘 걸 하고 후회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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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선임기자
때론 현미경으로 과학, 과학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때론 멀리서 망원경으로 방관하는 문과 출신 과학기자.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과학기자의 역할에 관해 연구 중.
이메일 :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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