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추상예술 거장 작품과 아이 그림의 차이는 4%?

알쏭달쏭한 현대 추상예술에 똥침 날린 과학자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의 조롱 담긴 논문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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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들 중엔 이름난 추상 예술가의 작품도 있고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자, 어떤 게 ‘진짜’ 예술가의 추상작품일까요?


미하일 심킨(Mikhail Simkin)이라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연구원(물리학 박사)이 몇 해 전부터 인터넷에 미술 작품 12편을 올려두고는 어떤 게 진짜 예술가의 작품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가려보라고 묻는 일종의 ‘진품명품 퀴즈’에 나오는 그림들입니다. 진짜 작품은 이름난 작가들의 것이고 가짜 작품은 심킨 박사가 뚝딱 해서 그린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전해봤습니다. 저,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미술 과목에선 늘 괜찮은 실기 성적을 받았고, 나름대로 미술 감각(?)을 갖고 있다는 말을 조금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 턱도 없는 미술 감각을 믿고서, 두 눈 무릅뜨고서, 진짜? ...아니 가짜!...아니아니, 진짜 이렇게 감별을 하면서 계속 클릭을 합니다. 이제 정답 확인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헉! ○○% 점(너무 낮은 점수라 공개 못합니다). 이럴 수가!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보시죠.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심킨 연구원이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현대 추상예술 작품들을 조롱하는 듯한 짧은 논문 한 편(2쪽)을 써서, 최근에 물리학 분야의 공개 논문 데이터베이스(arXiv.org)에다 올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추상 예술 거장의 점수는 디(D) 등급 아마추어의 점수와 비슷하다”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추상 작가들의 작품과 어린이들이 그림의 차이는 4%”라는 그의 주장이 가장 인상적으로 눈에 띕니다.


4%?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심킨 나름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킨 자신도 이 논문(?) 또는 논문 형식을 빌린 이 짧은 글을 진지하게 쓴 게 아니라 조롱과 독설 목적으로 쓴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고, 유쾌한 독설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게 적당한 독서법일 것 같습니다).


올해 3월에 심킨의 온라인 진품명품 퀴즈와 비슷하게 오프라인에서 추상 미술작품을 평가하는 실험을 한 뒤에 그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 한 편이 발표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홀리-돌런과 위너라는 연구자들은 미술을 공부하는 32명의 학생들한테 추상작가의 작품 30점과 작가 아닌 다른 이가 그린 작품 30점을 짝지어 제시하고는 어떤 게 더 훌륭한 그림인지 묻는 실험을 벌였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짝지어 제시된 그림들 중 한쪽은 저명한 표현주의 추상화가들의 작품이고, 다른 한쪽은 어린이나 동물들(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심지어 코끼리!)의 작품(?)이었습니다. 피실험자 학생들이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한 비율은 67%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은 올해 3월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처럼 절반을 훨씬 넘은 67%의 수치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런 수치는 “표현주의 추상화가 작품들과 어린이 그림을 구분할 수 없다는 통상의 주장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00abstract » 홀리-돌런과 위너 연구팀이 피실험자들한테 제시한 짝 그림들의 하나. 왼쪽은 4살 아이가 그린 것이고 오른쪽은 추상미술 작가가 그린 것이다. 출처/ Psychological Science

 


그런데 심킨 연구원은 전혀 다른 해석을 가합니다. 먼저 67%의 수치는 자신이 행한 온라인 진품명품 퀴즈에서 이뤄진 조사결과와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운영한 진품명품 퀴즈에는 수만 명이 응답자로 참여했는데, 그는 이런 응답 데이터를 분석해 2007년에 정식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당시 5만6천 명이 참여한 진품명품 퀴즈에서 진짜와 가짜를 식별해낸 정확도는 12점 만점에 7.91점, 그러니까 65.9%였다고 말합니다.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이름난 추상 예술 작가의 작품을 한 눈에 알아보는 비율이 역시 50%를 훨씬 더 넘었군요.


그러니까 이 두 논문만을 두고 얘기한다면, 작가의 추상예술 작품과 어린이나 동물이 그린 그림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인지되고,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정확도는 70% 가까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순전히 이 두 논문만 놓고 얘기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제 심킨 연구원이 왜 진짜 작품과 가짜 작품의 차이가 “4%”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20세기 초에 있었던 심리학 분야의 고전적인 실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약간의 무게 차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식별해내는가 하는 어떤 실험에서, 무게의 값을 미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100g을 96g이나 108g보다 더 무겁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72%와 9%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미세한 차이를 얼마나 인지할 수 있느냐 하는 인간 감각의 한계를 측정해보려는 실험이겠지요. 아무튼 100g이 96g보다 무겁다고 응답해 결과적으로 4g의 미세 차이를 식별해낸 것은 72%가 된다는 것입니다.


심킨은 이를 근거로 이렇게 주장합니다.


"추상작가의 작품이 67%의 비율로 어린이/동물의 작품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되었으며, 100그램은 72%의 비율로 96그램보다 더 무겁다고 평가됐다. 이는 추상작가 작품과 어린이/동물 작품 사이에서 식별해낼 수 있는 차이가 100그램과 96그램 사이에서 식별해낼 수 있는 차이보다 더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작가의 예술 무게를 100 예술그램이라고 놓는다면 어린이/동물 그림의 예술성 무게는 96 예술그램보다는 더 많은 것이 된다. 두 무게의 차이는 4%이다.”


예술성의 차이 식별을 무게의 차이 식별과 직접 비교하다니 매우 도식적이지만 (심킨이 지금 조롱과 독설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놀랍고도 기발한 논리의 전개입니다!


그는 이어 진짜 추상에술 작품과 어린이/동물 작품의 차이를 역도경기의 등급에도 비유합니다. 한 체급의 무게 구간은 대략 12%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94킬로그램부터 105킬로그램까지 몸무게는 하나의 체급에 속한다는 거죠. 그 차이가 12%이니까, 앞에서 얘기한 “4%의 차이”는 한 체급의 구간 안에 충분히 들어오는 수치가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린이와 원숭이가 표현주의 추상 예술가와 똑같은 체급에 속하거나 또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체급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체스 경기에서 이뤄지는 등급 분류에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는 “이는 그들(추상 예술작가들)이 원숭이와 똑같은 등급에 속하거나 또는 그보다 한단계 위의 등급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고릴라를 (최하위 등급인) 초심자라고 분류한다면 추상예술의 거장들은 기껏해야 (이보다 한단계 위인) 디(D) 등급 아마추어가 된다”라는 독설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그림은 물론이고, 고릴라나 침팬지, 심지어는 코끼리가 그린 그림(?)과 추상예술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놀라운 풍자이자 조롱이자 독설인 것입니다.


앞으로 온라인에서 온갖 논란을 부추길 법한 논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예술 비평가가 아니라 과학연구자가 데이터를 갖고서 예술 장르에 대한 총평을 한 셈이니까, 그런 숫자들이 예술을 비평하는 근거가 되느냐, 또는 논문 저자는 예술 비평의 자격을 갖췄느냐를 비롯해 여러 논란이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간혹 현대 추상예술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은 도대체 무얼 표현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와 공감을 하기 어려워 감상하는 우리들을 불편하고 열등감(?) 느끼게 하는 일은 잦았으니, 심킨의 독설 담긴 논문은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통쾌한 공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하게는 ‘초등학생도 이 정도는 그리겠다 ’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잖습니까? 물론 예술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추상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나올 법합니다. 또한 심킨이 얘기한 “4%의 차이”라는 게 예술 영역에서는 그 단순한 숫자의 크기만으로 다 말할 수 없는 또다른 예술적 감성의 척도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젊은 연구자가 던전 독설과 조롱의 작은 화살은, 추상예술 거장들이 신경을 쓰건 안 쓰건 지금 추상예술 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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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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