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몸집 큰 '슈뢰딩거 고양이' 측량방법을 제안하다

서울대 정현석 교수-이창우 박사 연구팀

분자나 원자 무리 수준의 '거시적 양자중첩' 현상 정량화 모델 개발



00quantum1 » 위상공간이라는 수학적 공간에 표현된 양자 중첩상태의 예. 거시적 양자 중첩의 특징인 높은 진동수의 간섭 패턴이 나타난다. 그림제공/ 정현석 교수 연구팀

 

전자,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라는 독특한 현상이 늘 일어난다. 어떤 입자가 이곳과 저곳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거시세계에서는 해괴하게 보일 법한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양자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알쏭달쏭한 비유 하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름하여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 어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라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가 1935년에 미시세계의 독특한 양자 상태를 설명하고자 고안해낸 비유인데, ‘상자 안에 든 고양이’가 비유의 주인공이다. 닫힌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죽은 상태인지 산 상태인지 알 수 없고, 그러므로 상자 밖에서는 고양이의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모두 다 존재한다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산 상태와 죽은 상태라는 두 상태가 이른바 '중첩된' 것인데, 이는 미시세계에서 양자가 어느 특정한 상태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성질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양자중첩'이다.


00cat »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 상자 안을 볼 수 없는 바깥에서는 산 고양이 상태와 죽은 고양이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 출처/ http://ko.wikipedia.org, 위키미디어 공용



그런데 적은 수의 원자나 전자, 광자 등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양자중첩 현상이 이보다 큰 분자나 원자 무리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까? 즉 어떤 경계의 문턱이 있어 그 문턱 너머에 있는, 양자역학의 미시계에 견줘 상대적으로 더 큰 거시계에서는 이른바 '거시적 양자중첩'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걸까?


양자중첩을 연구하는 정현석 서울대 교수('거시양자제어연구단’ 창의연구단장, 물리천문학부)와 이창우 박사후연구원은 최근 분자나 원자 무리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시적 양자중첩' 상태의 크기와 정도를 동시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량적 방법을 고안해 물리학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6월3일치에 발표했다.


00JHS » 정현석 교수(왼쪽), 이창우 박사

양자중첩이 전자, 원자 수준만이 아니라 좀 더 큰 거시적 세계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은 그동안에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돼 왔으며, 광자들 무리나 탄소 분자 같은 물질의 양자중첩 상태들이 관찰돼 보고돼 왔다. 지난 2007년엔 정 교수가 참여한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 공동연구팀이 에너지량을 잘 제어한 광자 무리들을 대상으로 측정 실험을 벌여 거시적 양자중첩 현상이 존재함을 관찰해 <네이처>에 보고한 바 있다. 이번 논문은 그런 양자중첩 현상을 정량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하는 데 도구로 쓸 수 있는 척도와 측량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미 거시적 양자중첩의 크기 또는 정도를 측량하는 여러 제안들이 있었으나 일반화하기는 힘들었는데, 이번에 우리가 제안한 것은 여러 다른 양자중첩 현상들의 크기와 정도를 동시에 측량할 수 있는 좀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정 교수 연구팀은 어떤 물질이 양자중첩 상태에 놓여 있을 때에 ‘가’라는 상태가 나타날 확률적 모형과 ‘나’라는 상태가 일어날 확률적 모형 사이에는 확률적 모형의 간섭 현상이 일어나며, 이 때 생기는 높은 진동수의 간섭 패턴을 분석하면 양자중첩이 어느 정도와 크기인지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을 냈다. 실험 데이터를 활용하는 일종의 수학적 분석 모델이다.


그런데 미시세계에서나 일어난다는 양자중첩 현상이 정말 거시계에서도 일어난다는 말일까? 거시계에서도 ‘가’라는 상태와 ‘나’라는 상태가 중첩된 해괴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인가? 정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모든 물질에서 양자중첩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전자, 원자 수준을 넘어 그 세계가 점점 커질수록 그 효과가 작아져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에서는 효과가 사실상 ‘0’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든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닌다는 이론적인 설명은 거시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 효과는 사실상 0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세계에 견줘 이보다 큰 분자나 원자, 광자 무리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양자중첩 현상이 미시세계에서 그런 것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간혹 나타날 수도 있다. 예컨대 탄소분자들을 쏘아 두 개의 다른 구멍을 통과하도록 할 때, 결정론적 시각에서 보면 탄소 분자는 늘 어느 하나의 구멍만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겠지만 실제에선 탄소분자들이 ‘가’ 구멍과 ‘나’ 구멍을 중첩적으로 통과한 듯한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과를 양자세계가 아니라 이보다 큰 분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거시적 양자중첩'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거시적인 양자중첩은 경우에 따라 작게 나타나기도 크게 나타나기도 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입증돼왔다. 정 교수는 "거시적 양자중첩 효과가 나타나게 하기도, 나타나지 않게 하기도 하는 조건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 분야의 크나큰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거시적 양자중첩 상태는 주로 광자의 무리들, 원자의 무리들이나 분자 수준에서만 관찰돼왔으며, 물질 세계가 커질수록 그런 상태가 나타날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거시적인 양자중첩 현상을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시계의 양자 현상을 양자보다 더 큰 거시계에다 구현하고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만일 분자나 광자 무리, 원자 무리들에 나타나는 거시적 양자중첩 현상을 많이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양자현상을 막는 거시계의 제한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양자 효과들을 거시적 수준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어 양자컴퓨터의 구현 등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에 발표한 거시적 양자중첩의 측량 방법이 이런 알쏭달쏭한 양자현상을 더 많이 이해하는 데 도구로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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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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